소설리스트

화과산 스트리머-61화 (61/106)

〈 61화 〉 휴식

* * *

“원숭이 놈도 아닌 인간에게 당해?”

“패배한 것도 모자라 여의주까지 뺏겨 봉인을 당하다니… 망신은 혼자 다 시키는군.”

“형님은 하실 말 없소?”

“…크하! 술맛이 참 좋구나.”

“거 대단히 낙천적이라 좋겠소. 하긴 큰형님의 지시 없이는 움직이지도 않으니.”

“이제 어쩌실 거요? 저대로 날뛰게 두는 건 싫은데 말이지.”

“그만.”

나직하게 울리는 단 한마디에 떠들고 있던 이들의 입이 모두 다물어진다.

“큰형님께서 매우 언짢아하니 당분간은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놈은 언제 치실 예정입니까?”

“조만간 지시가 내려올 테니 대기해라.”

“…알겠습니다.”

“예이 예이.”

. . . . .

복해대성 교마왕을 두들겨 패서 돌려보내고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협회에서 녹화한 전투 기록 영상이 알음알음 유출되어서

결국엔 히어로 말고도 민간에게까지 퍼져 온 국민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지난 배틀 토너먼트에서 발생한 테러 건도 그렇고

불안을 조장하기 싫어 조용히 있던 건데 저렇게 영상이 퍼진 것은 달갑지 않다.

협회장 아재는 유출한 히어로를 찾겠다며 불같이 노하셨고 실제로 영상을 유출한

히어로를 찾아내 징계를 때려버렸다.

그러나 수습하기엔 너무 늦어버려서 귀찮은 일에 휘말린 상황이다.

“안 간다고, 우리나라에서도 할 일이 많은데 내가 거기까지 갈 시간이 있겠냐?”

­부탁합니다. 손우진 씨 당신 말고는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지랄하지 마세요. 팀 그레이트 원은 어디다 팔아먹었습니까?”

­그들을 투입하기엔 너무나 위험한 도박이라…

“끊어요. 전화하면 안 받을 거니 걸지 마시고.”

­손우진 씨! 손우진…

띠리링.

“내가 지 새끼들 뒤치다꺼리해주는 놈인 줄 아나.”

영상이 유출되고 이런 식이다.

다른 나라의 대사관들이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를 걸어댄다.

이유야 뻔하다, 고국에 있는 상위 크립티드를 처리해달라는 거지.

나 홀로 국내의 유명한 상위 크립티드를 지우개로 빡빡 지우듯 박멸하고 있으니

거기에 혹한 놈들이 자신의 나라에도 지원 요청을 부탁하는 것이다.

원래는 이 정도로 귀찮게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교마왕과의 전투가 유출되고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전투를 시청한

타 국가들이 기를 쓰고 나를 초빙하려고 한다.

협회는 내가 외국으로 가게 되면 국력이 유출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는지

나에게 갈 생각이 있냐고 몇 번이나 물어봤는지 모른다.

이래저래 피곤해진 나는 잠시 휴식을 취하겠다고 선언한 뒤 화과산에서 쉬는 중인데

미국에서 또 전화가 걸려 온 것이다.

“얘들아, 뭐 하냐?”

방에서 나온 뒤 2층으로 올라가 금각과 은각을 불러 본다.

나를 따라서 내려온 아이들인데 한동안 일에 빠져 사느라 신경 써주지 못했으니

오늘은 아이들과 놀아줄까.

“뭐 하길래 이렇게 조용하지.”

다시 1층으로 내려와 거실로 나와보니 TV에 집중하고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뭐 하냐?”

“쉿!”

“쉿!”

내게 주의를 주는 쌍둥이.

뭘 보나 싶어서 이렇게 집중하고 있는 걸까.

TV에선 요즘 유행하고 있는 드라마가 한참 진행 중이다.

“너희 드라마도 봤어?”

“응. 예은이랑 유정이가 보던 건데 상당히 재밌어.”

“하계는 놀 것 투성이라 좋아!”

“예은이랑 유정이는?”

“오늘 일 있다고 일찍 나갔어.”

“너희는 이거 언제부터 봤는데?”

“아 좀!”

“우진이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큭큭.”

드라마 시청에 방해를 받은 아이들이 화를 낸다.

하계의 생활에 너무나도 완벽히 적응한 아이들은 복장도 그렇고 하계인이 다 됐다.

“놀러 갈래? 내가 일하느라 바빠서 못 놀아줬잖아.”

“진짜? 어디로?”

“갈래!”

장소부터 물어보는 금각과 무조건 간다고 대답하는 은각.

“하계 동물들을 실제로 보고 싶지 않아? 동물원이라고 볼 수 있는 곳이 있는데.”

“가자!”

“가자!”

흔쾌히 대답하는 쌍둥이.

“옷 갈아입고 있어. 다른 애들한테도 물어보고 올게.”

신이 나서 2층으로 올라가는 쌍둥이.

그사이에 나는 분신에게 전음으로 의사를 물어본다.

‘갈 거냐?’

‘엘레나와 방송 중이야.’

‘흐응.’

‘뭔데 그 반응은.’

‘좋을 때다.’

분신 놈과 엘레나는 방송해야 한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우리끼리 갈 수밖에 없지.

아이들에게 외출복으로 갈아입는 사이에 수렴동 밖에서 쌍둥이를 기다린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쌍둥이가 문을 열고 나온다.

“뭐야? 너희들이 골랐어? 되게 잘 어울리네.”

“아니, 유정이가 골라준 거야. 그때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몇 시간을 입혔다 벗겼다 했는지 몰라.”

패션에 관심이 많은 유정이에게 잡혔으니 최소 5시간은 걸렸겠지.

옷을 막 입고 다니는 나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며 유정이가 억지로 끌고 간 경험이 있어

쌍둥이를 이해한다.

유정이가 화과산에 오기 전까지는 트레이닝복 하나만 입고 다녔지만

같이 사는 지금은 눈치가 보여 골라 준 조합대로 입고 다니긴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근두운 술법을 걸어준 뒤 함께 구름에 올라탄다.

“은각 넌 어떤 동물부터 보고 싶어?”

“난 그 코가 엄청나게 긴 동물부터 볼 거야! 언니는?”

“나는 표범처럼 생긴 말부터 볼 거야.”

“목이 엄청나게 길었던 말 말이지?”

“응.”

자기들끼리 동물원 구경 순번을 정하는 금각과 은각.

얘기를 들어보니 코끼리와 기린을 보고 싶은가 보다.

“우진이 너는 실제로 본 적 있어?”

“그럼. 가족들이랑… 엄청 예전에 본 적 있지.”

동물원이 얼마 만이더라.

그러고 보니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간 곳이 동물원이었지.

하영이도 동물들을 참 좋아했었는데.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왜 그래?”

“동물원 싫어해?”

잠깐 얼굴이 굳은 것을 눈치챈 쌍둥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본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 녀석들 생각보다 큰데 너희들이 겁먹을까 봐 걱정이네.”

“누굴 어린애 취급하고 있어!”

“그거 하지 말랬지!”

티격태격하는 사이에 도착한 동물원.

쌍둥이를 양쪽 팔에 끼고선 구름에서 뛰어내린다.

토옥!

근두운 술법으로 몸이 가벼워졌기 때문에 땅에 사뿐하게 착지한다.

“대체 왜 이렇게 내리는 거야?”

“주차하기 귀찮잖아.”

금각과 은각을 내려준 뒤 매표소로 향한다.

혹시나 나 때문에 인파가 몰릴 것을 대비해 미스터 손의 선글라스를 쓰고 왔다.

“어서 오세요, 그 혹시…”

“제가 휴가중이거든요, 부탁드립니다.”

“그럼요! 성인 한 명에 어린이 두 명으로 발급해드리면 될까요?”

“우린 어린이가 읍!”

“우리도 성인으로 읍!”

“애들이 아이 취급을 싫어해서요 하하. 그렇게 해주세요.”

반박하려는 쌍둥이의 입을 빠르게 막아버리고선 표를 발급받는다.

표를 받은 뒤 품에서 날뛰고 있는 쌍둥이를 데리고 동물원 안으로 들어간다.

“그만 좀 물면 안 될까.”

입을 막은 손을 자근자근 물고 있는 금각과 은각.

자신들을 어린애 취급해서 이러는 것이다.

뭐 어떡하겠는가, 지금 눈에 보이는 외형은 어린 아이들이 맞는데.

그렇다고 매표원 눈앞에서 여왕의 모습으로 변신할 수도 없는 거고.

삐진 자매를 풀어주기 위해선 놀러 온 본질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토라져서 한마디도 안 하는 자매를 안고선 걸음을 옮긴다.

“우와…”

“우진아! 흠, 우진이 넌 봤다고 했지?”

“응, 코가 엄청나게 길지?”

지상에서 가장 큰 동물 코끼리를 보고서 놀라는 아이들.

지금이야 크립티드에게 밀려 지상에서 가장 큰 생명체 타이틀을 내주긴 했지만

그 웅장한 몸집은 여전히 감동을 주기 충분하다.

“만져보고 싶다.”

“까슬까슬할 것 같은데, 에잇.”

잠시 방심한 사이에 모든 걸 자유자재로 묶고 풀어내는 줄 황금승을 던지는 은각.

황금승에 붙들린 거구의 코끼리는 반항하지도 못한 채 끌려온다.

“잠깐만! 그러면 안 돼!”

“왜?”

“이 아이 생긴 것과는 달리 엄청나게 약해.”

“당연히 너희보다 약하지!”

천계 출신의 대요괴를 지상의 동물이 어떻게 버텨내겠는가!

코끼리가 구슬프게 우는 소리에 뛰쳐나온 사육사분께 사과를 드리느라 혼났다.

정체를 밝혀서 그나마 무마한 거지 빌런 취급받기 딱 좋은 행동이었다.

“히히 까슬까슬 했지?”

“응 까슬까슬했어.”

“만족했어?”

“사실은 더 만지고 싶었는데 우진이 너 때문에 참았어.”

“난 타보고 싶었는데!”

제발 그건 봐주라…

천계 아이들의 거친 사고방식에 정신이 아찔해질 것 같다.

동물원 안에서 팔고 있는 동물귀 모자를 써보고 싶다기에

셋이서 사이좋게 나눠 쓰고 다음 동물을 보러 가기로 했다.

이번에는 은각이 보고 싶어 했던 기린을 볼 차례인가.

“우와아아!”

“언니! 얘는 혀가 검은색이야!”

기린을 보고서 무지 놀라는 아이들.

때마침 기린에게 먹이 주기 체험도 진행하고 있길래

금각과 은각에게 채소를 건네주었다.

“그걸 흔들면 먹고 싶어서 다가올 거래.”

“진짜지? 이리 와!”

“언니말고 나한테 와!”

먹이를 보고선 뚜벅뚜벅 다가오는 기린 한 쌍.

쌍둥이가 준 먹이를 사이좋게 나눠 먹는다.

“오오오! 올라간다!”

“앗 언니만 치사하게! 얘, 나도 올려 줘 빨리!”

“아이고…”

이번에는 아무런 일 없이 넘어갈 줄 알았건만

금각은 손에 쥔 당근에 힘을 빼지 않은 건지 기린이 당근을 물고선 고개를 들자마자

함께 공중으로 끌려간다.

그 와중에 은각은 자신도 올려달라며 채소를 먹는 아이를 재촉하고 있다.

. . . . .

“하아… 부모님들이 왜 놀이동산이나 동물원 가는 걸 꺼리는지 알 거 같아.”

코끼리를 잡아끌고 오지 않나, 기린을 거중기처럼 쓰고 있질 않나.

이 사고뭉치들의 입에 아이스크림을 물려주고 마음의 평안을 찾는 중이다.

구슬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는 아이들.

그래도 유원지나 동물원에 가면 구슬 아이스크림은 먹어줘야지.

“손우진 씨 맞습니까?”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그때 우리 앞에 검은 양복을 입은 외국인들이 다가와 내 신분을 물어본다.

“하하 참나… 아주 작정했구만.”

“본인이 챔피언 손우진이 맞습니까?”

“내가 아니라고 대답하면 너희들이 어쩔 건데.”

“저희는 대화로 해결하고 싶습니다만… 같이 있는 아이들의 안전은 보장하지 못하겠군요.”

기껏 찾아와서 들먹이는 말이 쌍둥이의 신변 위협이라니.

멍청한 새끼들.

“그렇다는데 어떻게 생각해?”

“흐응, 굉장히 건방지구나.”

“음음, 검방져.”

놈들이 대요괴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런데 입에 있는 스푼은 빼고 얘기하면 안 되겠니 은각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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