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 분신의 하루
* * *
“다음 고발입니다. 이거는… 그래, 배틀 토너먼트 때 이용당한 사건이네.”
무언가를 줄줄이 적어놓은 종이를 들고서 떠들고 있는 한 사내, 손우진이다.
정확히는 그의 분신이지만 말이다.
자아가 생긴 이래로 반복 단순 작업 이외에도 스스로 활동할 수 있게 된
분신은 손우진의 방송 은퇴 이후 그의 빈자리를 채우게 되었다.
본체 녀석이 상당히 강해졌기 때문에 불려갈 일도 얼마 없고 해서
흔쾌히 허락했지만 방송하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어떤 것을 해야 할지 몰랐던 분신.
그는 손우진의 실체를 모르는 시청자들을 상대로 고발에 나섰다.
자신을 학대하고 부려 먹는 본체 놈의 진실된 모습을 말이다.
[자기 혼자 진지한 게 웃기네ㅋㅋㅋ]
[종신 콘텐츠냐 ㅋㅋㅋ 왜 끝나질 않음]
[손우진이 부리는 이상 평생 해도 안 끝날 듯]
[마크야 미튜브나 보자 히어로들이 그러는데 손우진 용잡이 영상 올라왔대]
마크.
시청자들이 손우진의 분신을 부르는 별명이다.
손우진은 아니고 또 분신이라고 부를 수는 없기에 간단하게 마크 투를 뜻하는 mk2에서 따왔다고 한다.
“난 본체랑 기억을 공유하기 때문에 이미 알고 있어.”
[아니 존나 단호박이세요?]
[우리 좀 보자고]
[미튜브 틀어줄 때까지 도배함]
[착한 도배 ㅇㅈ합니다]
[미튜브 계정은 로그인 되어 있잖아 한 번만 틀어줘]
“글세… 어떻게 할까.”
[해줘]
[어떻게 싸웠는지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잖아]
[손우진 근데 라돈한테 빌빌거리는 게 엊그제 같은데 어떻게 잡았냐]
[지금 강함이 좀 비상식적이긴 함]
[아는 거 뭐 없음?]
“어떻게 강해졌냐니, 당연히 수련을 통해 강해졌지.”
분신은 이 정도는 말해도 되겠지 하고 스스로 판단했다.
저렇게 대규모로 싸우는데 언제까지 숨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뭐야 그러면 엘프한테 맡기고 자리 비웠을 때 수련하러 간 거였어?]
[이쉑끼 안 하는 척 하면서 은근 열심히 수련하네 ㅋㅋ]
[나름 노력파였네]
[성좌 금수저에 재능충에 노력충까지 시발~ 불공평하네]
[꼬우면 좋은 성좌 만나라 이거야 ㅋㅋㅋ]
“뭐 나야 할당 시간만 채우면 되니깐 어떤 걸 해도 좋아. 생각해보니 차라리 잘됐어.”
분신은 고발서를 소중하게 파일철에 담아두곤 미튜브에 접속한다.
그러고선 검색창에 손우진을 검색한다.
“이거 맞아? 꼬라지들이 대체 왜 이래.”
일본이 놀라고 중국이 놀라고 미국도 놀랐다!! 대한민국 대표 히어로 손우진 이번엔 용 토벌 성공!!! 한국의 히어로 한 명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상황 ‘와 대한민국… 진짜 할 말이 없다.’ 손우진의 최상급 크립티드 솔로 레이드 세계가 애걸복걸하는 이유 중국 네티즌, ‘손우진은 우리의 히어로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중국의 억지!!! 한국 히어로 협회가 나섰다!
화면에 나오는 영상의 미리보기 화면부터가 심상치 않다.
하나 같이 손우진과 교마왕의 교전을 주제 삼아서 얘기하고는 있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지럽게 만드는 것이 일품이다.
[우욱 씹]
[씨발 어질어질 하네 ㅋㅋㅋㅋㅋㅋ]
[그거 말고 히어로만 접속할 수 있는 협회 채널로 가야 됨]
[국뽕튜브 어그로 진심이네ㅋㅋㅋㅋㅋㅋ]
[안 누를 수가 없네 조회수 봐라 ㅋㅋㅋㅋㅋ]
[저러니깐 계속 저러지]
[가슴이 웅장해지는 썸네일이다]
“아 이거 아니야? 잠시만.”
시청자들이 알려준 대로 원본 영상을 찾아보는 분신.
얼마 지나지 않아 협회가 올린 원본 영상을 찾아낸다.
“오래 싸우긴 했네. 영상 끝나면 방송 끌 거니깐 알아서 나가라.”
[아니 님아]
[같이 보는 거 아니였음?]
[또 어디 가]
[이 새끼 날로 처먹는 건 손우진이랑 진짜 개 똑같네 ㅋㅋ]]
“이거 보고 싶다면서, 날 왜 필요로 하는데.”
[마크 너가 좀 설명해 주는 걸 들으면서 보고 싶은 거지]
[영상은 이미 다른 방에서 본 놈들도 있을걸]
[그건 그럼 히어로도 인방하는 세상이니]
“아… 존나게 까다롭네, 손우진은 대체 이런 놈들을 데리고 어떻게 방송했나 몰라.”
[님아 마이크 안 꺼져 있는데?]
[백퍼 고의임]
[마크 투가 인성으로는 손우진한테 꿀리지 않음]
[더 매도해줘 헤으응]
[존나 노빠꾸네ㅋㅋㅋ]
까다롭게 구는 시청자들을 향해 조용히 투덜대는 분신.
그런 모습에 이미 익숙해진 건지 그 누구도 반발하지 않는다.
투덜대기만 했지 시청자들이 원하는 대로 다시 자리에 앉는 분신은 영상을 재생한다.
“참 세상 좋아졌어. 남 싸우는 모습도 몰래 찍고 말이야. 이거 수익은 본인한테 주냐?”
[그럴 리가]
[전혀]
[x]
“날강도 새끼들이네.”
협회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분신.
그에게 머뭇거림이란 찾아볼 수가 없다.
[어허 말조심하세요]
[방송에 관계자 있으면 어쩌려고]
[뭘 어째 들으라고 하는 소린데ㅋㅋ]
[할 말은 해야지]
“내가 좆 되나, 본체가 좆 되는 거니 걱정들 마시고. 영상이나 봅시다.”
똑똑!
그때 방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분신은 누군지 알고 있기에 영상을 멈추고 거리낌 없이 대답한다.
“잠깐만, 열려 있으니깐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
당연하게도 손우진의 방송 부스에 볼일이 있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
“어 미안해! 아직까지 방송하고 있는 줄 몰랐어!”
“괜찮아요. 이놈들은 신경도 안 쓸 테니깐요.”
[우린 서로를 너무 잘 알아]
[ㅋㅋ 엘프가 떴는데 뭔 상관이냐고~]
[엘레나 방송하면 여기서 보이는 새끼들 자주 보임]
[그건 니가...]
[니도 그 방 가서 죽치고 있으니깐 잘 보이지]
“나가줄까? 뭐 하고 있었어?”
“그냥 손우진 놈이 싸우는 영상 보고 있었어요.”
“우진 님이? 나도 같이 봐도 돼?”
“예 뭐, 의자는 두 개니깐 보시고 싶으면 앉으세요.”
“고마워 진우야!”
분신을 안아주면서 고마움을 표시하는 엘레나.
엘레나의 강한 자기주장을 하는 미드 덕분에 분신이 난처해한다.
“잠깐, 잠깐만요 좀 떨어져 주세요. 그리고 진우는 또 누굽니까?”
“우진 님의 분신이니깐 이름을 거꾸로 불러봤지.”
“진우라… 뭐 나쁘지 않네요.”
의도치 않게 엘프로부터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 분신.
자기만의 이름을 얻은 것은 처음이라 내심 좋아하는 그다.
[이새끼 입꼬리 올라간 거 봐라 ㅋㅋㅋ]
[마크 투는 뭐 반응도 없더니]
[좆구리긴 했어 사람 이름이 어떻게 마크 투 ㅋㅋㅋ]
[진우 새끼 존나 부럽네]
나란히 앉아서 손우진과 블랙 아쿠아의 첫 조우를 감상하는 둘.
엘레나는 평소 장난스러웠던 손우진의 진지한 모습이 색다른 모양이다.
말없이 감상만 하는 엘프 대신 분신이 입을 연다.
“저놈이랑은 바닷속에서 싸워서 볼 게 없으니 넘길게요.”
재생바를 움직여 영상을 넘기는 분신.
곧이어 손우진이 용인의 목을 붙들고 수면으로 올라오는 장면이 나온다.
“적도 상당히 강하지 않았어?”
“아마 수련하기 전 손우진한테는 버거웠을 거예요.”
“대단하다… 진우 너도 저 정도로 싸울 수 있어?”
“저 혼자 있을 땐 본체의 절반의 힘을 낼 수 있으니깐 저놈은 가능할 거예요.”
[아니 2개월 수련으로 이렇게 강해진다고?]
[재능의 차이다 이말이야]
[1년 수련했다간 성좌로 올라서겠네 시발]
[재능충 주거]
“손우진이 여기 있었다면 너희한테 난리 좀 피웠을걸. 자기처럼 고생을 해봐야 한다는 등 그랬겠지.”
“흐흥, 우진 님이라면 그럴 만도 하지.”
[ㅇㅈ]
[ㅆㅇㅈ]
[손잘알]
[그립습니다 우진쿤...]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는 순간이다.
이것은 엘레나조차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그녀도 순순히 인정한다.
영상에선 곧이어 목이 졸린 화신이 물기둥과 함께 바닷속으로 사라지고
교마왕의 등장이 머지않았다.
그들을 찍고 있던 초소형 드론마저도 용이 불러온 먹구름에 영향을 받았는지
화질이 일정치 못하고 초점이 맞지 않기 시작한다.
“어? 드래고니안이네요?”
“당신이 알고 있는 종족이랑은 전혀 상관없을걸요.”
“그치만 비슷하게 생겼는걸!”
“뭐 먼 친척일 수도 있겠죠.”
분신의 수긍으로 교마왕은 졸지에 이세계에 알지도 못하는 친척이 생겨버린다.
이세계에서 온 엘프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분신은 속 편하게 생각한다.
“무기를 휘두르는 속도가 안 보이는데, 진우 넌 보여?”
“저도 이 상태론 미세하게 볼 수는 없어요. 잠시만요.”
잠시 눈을 감는 분신.
분신이 다시 눈을 떴을 땐 제천대성의 시그니처가 그의 눈에 자리 잡고 있다.
“너도 사용할 수 있구나,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우진 님과 처음 만났을 때 이후로 오랜만이네.”
“본체 놈이 사용할 수 있는 건 가능해요. 열화판이지만.”
분신은 성좌급의 대결을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시청자들과 엘레나에게
쉽게 풀어 설명해 준다.
“아 저건 쌍둥이 기술인데.”
“이번에 온 아이들?”
“네. 그 녀석들도 보기보다 강하거든요.”
교마왕을 눌러 찍어버리는 태산압정을 보고선 바로 지적하는 분신.
여래의 손바닥, 자신의 등용문도 배낀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쌍둥이의 기술도 훔치다니.
분신은 속으로 본체의 저작권 의식에 혀를 내두른다.
“저 검은 뭐야?”
“발뭉이라는 검이에요. 아마도 용살자의 속성을 지닌 검이라서 손우진이 여의금고봉을 변화시킨 걸 거예요.”
“굉장하다…”
전투는 어느새 끝을 향해 달려간다.
그때 분신 눈에 띄는 것이 있으니 손우진이 발뭉으로 변한 여의를 어깨 위로 집어드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선 용을 향해서 던지는 모습이 어째 낯이 익다.
“와! 저놈 이제는 완전히 자기 기술처럼 쓰고 있네!”
“왜? 저게 진우 네 기술이야?”
“제가 자아가 없던 시절에 만든 기술인데 손우진 놈이 쓰고 있어요!”
[내 것도 내거 니 것도 내거 아니겠냐 ㅋㅋㅋㅋ]
[꼬우면 본체해야지]
[그런 건 없다 진우 게이야 ㅋㅋㅋㅋ]
[무슨 일이 있어도!!]
[니가 선택하지 않은 손우진 ㅋㅋㅋㅋ]
[절대로!!!]
[바뀌는 일은 없다 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가 이 새끼들아!”
역시나 방송하는 것이 손우진이던 손진우던 놀릴 수 있다면 합이 잘 맞는 시청자들.
놀림당하는 모습이 손우진과 똑같은 분신은 무차별 밴을 난사하기 시작한다.
손우진과 닮은 모습에 엘프는 옆에서 쿡쿡거리면서 지켜만 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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