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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과산 스트리머-54화 (54/106)

〈 54화 〉 돌아온 일상

* * *

오랜만에 돌아온 정겨운 내 보금자리, 화과산.

집에 돌아오면 심신이 편안해야 하건만 우리 집에는 싸늘한 긴장감만이 흐른다.

생각지도 못했던 외간 아이를 데려온 것에 충격을 받은 것처럼 행동하는 사유정과 하예은.

내가 동생들과 같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쌍둥이 자매.

네 명이 침묵을 지키고 있으니 괜히 내가 뻘쭘해진다.

왜 서로 인사도 안 하고 대체 뭐 하는 거야…

“얘들아, 서로 인사부터 하는 게 어떨까?”

“…알았어요. 반가워, 오빠의 진짜! 여동생인 사유정이야.”

유정이가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진짜 여동생은 또 뭐야, 예은아 제발 구해줘!

“반가워요, 아저씨의 진짜 후배인 하예은입니다.”

제발…

믿고 있었던 예은이마저도 이런 상태다.

유정이가 가르친 거지? 예은이가 이럴 리 없는데.

“뭐야 얘네들? 이거 시비 거는 거지?”

“무시하는 거야 뭐야!”

쌍둥이는 악동들답게 동생들의 인사를 받고선 가만히 있질 않는다.

“어머? 아직 어려서 그런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뭐? 누구보고 어리다는 거야!”

“너희 꼬마들 보고 어리다고 했지. 체형만 봐도 꼬마들이잖아.”

특히나 기가 센 금각과 유정이가 충돌한다.

크립티드와 싸울 때도 식은땀은 흐르지 않았는데, 지금 이 상황에선 등에 식은땀이 절로 흐른다.

“이익! 은각! 우리의 본모습을 보여주자!”

“알았어, 언니!”

“얘들아 제발 그만!”

말릴 틈도 없이 인을 맺어 도술을 외워버린 쌍둥이.

펑!

자신들의 다른 모습인 금각여왕과 은각여왕의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누구보고 어리다는 건지 모르겠네.”

“그러게 말이야, 언니.”

“오빠!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꼬마들이라고 했잖아!”

“아저씨…”

이 수라장에 저는 그만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습니다.

. . . . .

“그래서 천계로 수련을 다녀왔고요?”

“응,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지금은 괜찮은 거죠?”

“스승님과 선인 분들에게 도움을 받아서 이제는 괜찮아.”

아이들에게 천계에 다녀온 경위부터 금각이와 은각이가 오게 된 경위까지 모조리 실토하였다.

걱정할 것 같아서 조용히 다녀온 것인데 생각지도 못했던

금각이 은각이 덕분에 다 들켰다.

“…으휴, 이 진상! 왜 그걸 이제야 말하는 거예요!”

“아악! 폭력 금지! 예은아!”

“아저씨는 더 혼나도 돼요,”

유정이가 내 등을 진심으로 후려친다.

예은이도 이를 말리지 않고 방관한 상태.

하지만 뭐라고 할 수도 없었던 게 기아스의 부작용으로 영영 이별할 뻔했던 것이라

저렇게 강하게 말은 하지만 눈가에는 눈물들이 조금씩 맺혀 있다.

한참을 혼난 뒤 풀려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여왕 상태인 금각과 은각.

“괜히 따라왔나 몰라, 이렇게 여동생들과 행복하게 지내는데 말이야.”

“그냥 다시 올라갈까 언니?”

정신 나갈 것 같아, 여자들의 타겟팅이 온전히 나에게 집중되니 버티질 못하겠다.

“여자들끼리 좀 화목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 봐!”

“앗! 오빠! 어디 가요!”

“아저씨!”

“손우진!”

“우진아!”

나는 유정이와 예은이, 금각 은각 쌍둥이를 내버려 둔 채 황급히 도망쳤다.

내가 도망친 곳은 신목 자매가 사이좋게 모여있는 곳, 깐프 마을이다.

잠자는 용 라돈, 황금사과 나무, 세계수 속에 숨어 존재감을 지운다.

라돈 녀석은 여전히 머리 한 개만 깨어있지만 귀찮은 일에 관여하기 싫다는 듯

내가 이곳으로 온 이유에 대해 어떠한 질문도 건네지 않는다.

­손우진.

“어우 깜짝아!”

귓가에 울리는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

아이들이 나를 찾아낸 줄만 알았다.

­이제야 제 목소리가 들리나 보군요.

“누구야?”

­이쪽이에요.

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니 세계수 방향이다.

“…설마 아니지?”

­제 목소리가 맞아요.

이제는 하다못해 나무와 대화할 수 있는 경지까지 이르렀구만.

대단하다 손우진.

“지금까지 왜 조용히 있던 거야? 깐프들이 자리 잡은 이후 꽤 시간이 흘렀는데.”

­손우진 당신과 저의 격이 맞지 않아 서로 대화를 할 수 없던 것뿐이에요.

격이라니, 어린 신목이라도 신은 신이라는 건가?

거의 반신에 가까운 힘을 얻게 된 지금이 돼서야 말이 통한다니, 내 힘이 얼마나 강해진 건지 얼추 감이 온다.

“그래 너 잘났다. 그래서 말을 건 이유는 뭔데?”

­언니와 둘이서 대화하는 건 이제 지루해요. 저희는 새로운 말동무가 필요해요.

“언니? 아아, 황금사과나무를 언니라고 부르긴 하는구나.”

장난삼아 언니 동생 하라고 했지만 신목끼리도 나이로 서열 정리를 하다니.

꽤 웃기는군.

“엘프들과 얘기하면 안 돼? 걔네는 네가 말 걸어 준다면 기뻐서 난리일 텐데.”

­사제를 통하지 않고서는 편하게 대화할 수 없는걸요.

“굳이 사제를 부를 필요가 있어? 너희 가지 정도는 움직일 수 있지?”

내 질문에 답을 하듯 세계수에서 뻗어 나온 가지가 내 볼을 간지럽힌다.

힘 조절까지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 문제없다.

“그래, 신목인데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야지.”

­가지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가만히 기다려 봐.”

휘익!

나는 휘파람을 불어 화과산 원숭이들을 불러 모았다.

왕의 부름에 허겁지겁 달려온 백성들.

전보다 강력해진 내 신성에 장난꾸러기인 원숭이들의 태도가 공손하기 그지없다.

“평소대로 해, 평소대로.”

끼익!!!

이제야 좋다고 나에게 달려드는 녀석들.

원숭이들을 품에 안은 채 얘기를 꺼낸다.

“내가 사는 수렴동이 어딘지는 알고 있지?”

우끼!

나는 원숭이들에게 키를 건네주고선 임무를 맡긴다.

“내 방에 들어가서 이런 모양의 물건 두 개만 가져와 줘.”

땅을 짚어 바위를 소환하고선 손가락에 신성을 담아 조각을 시작한다.

바윗돌로 만들어 낸 것은 다름 아닌 태블릿.

끼이익!!!

왕의 명령을 받은 원숭이들은 현관 키를 건네받곤 수렴동으로 뛰어간다.

­이게 대체 뭐죠?

세계수가 돌로 조각한 태블릿을 보고선 의문을 표한다.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수단이지.”

신격을 지녀야 통신할 수 있는 주파수를 굳이 사용해야 하나?

그냥 세계수가 태블릿을 이용해 자신의 언어를 쓰면 그만 아닌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원숭이들이 정확하게 태블릿을 들고 왔다.

그리고 녀석들은 시키지도 않은 인물도 함께 데려온 것 같다.

“일레인, 오랜만이네.”

“손우진. 아이들이 단체로 뛰어가길래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찾아왔다.”

하긴 원숭이들은 신목에 관심도 없는데 다 같이 무리 지어 이곳으로 향했으니

세계수를 지키는 일레인이 의아할 만한 상황이겠지.

“마침 잘 됐다. 이리로 와봐.”

나는 대신 세계수의 말동무가 되어 줄 대전사를 꼬드겨 이곳으로 부른다.

그러고선 태블릿을 켜 메모장을 실행한 뒤 세계수에게 건네주었다.

“자, 여기에 하고 싶은 말을 써 봐.”

여린 가지로 태블릿을 붙들고선 무언가를 쓱쓱 적어가는 세계수의 가지.

“손우진, 어머니 세계수 님과 대화할 수 있는 것이냐?”

“뭐, 강해지니깐 이런 것도 되더라.”

“그 능력은 정말 부럽군…”

별게 다 부럽다.

하고 싶은 말을 다 적은 건지 세계수는 일레인에게 태블릿을 건넨다.

세계수가 적은 글귀를 차근차근 읽어 보는 일레인.

“반..가..워요… 일레인…”

허업!

감정 표현이 보기 드문 일레인이 감격한 표정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푸하하하! 뭐야 일레인, 설마 지금 감동한 거야?”

“손우진! 이 태블릿은 이 상태로 마을의 보물로 간직해야 한다!”

“푸흡!”

세계수 덕분에 일레인의 새로운 면모를 보게 되었다.

자신들이 섬기는 신과 대화하면 일레인같이 무뚝뚝한 남자도 이렇게 되는 걸까.

“세계수가 그동안 자기 언니하고만 대화하느라 지루했다더라. 깐프들과 대화하고 싶어 하길래

준비해 준 거야.”

“흠흠! 고맙다 손우진. 어머니 세계수시여, 마을의 다른 이들도 모두 불러오겠습니다.”

뒤늦게 체면을 차린 세계수의 대전사 일레인은 마을의 다른 깐프들을 부르러 뛰쳐나갔다.

­고마워요.

“별말씀을.”

­하나 말해주자면 숲의 아이들을 따라온 것은 일레인뿐만이 아니에요.

“응?”

뒤를 돌아보니 수렴동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이곳까지 찾아왔다.

“얘기들 좀 나눴어?”

. . . . .

아이들에게 붙들려 온 뒤 한참을 있다 풀려나게 되었다.

자신들끼리 선의의 경쟁을 하겠다고 약속했다는데

대체 무엇을 두고선 선의의 경쟁을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금각이와 은각이에겐 2층 나머지 방을 내어주었고 자신들만의 방을 갖게 된 쌍둥이는

무척이나 좋아했다.

자매가 함께 사용할 거라 가장 큰 방,

텅 비어있는 방을 내줬기 때문에 침대나 가구가 필요한 방인데도

순수하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웃음이 나온다.

화과산 패밀리를 모두 만나니깐 이제야 집에 온 느낌이 난다.

“아 맞다, 엘레나!”

엘레나에겐 내 빈자리를 대신해 방송을 권유해 보았는데

어째 이 중독 깐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아이 사랑 세이프라는 족쇄에서 벗어난 이 깐프가 대체 뭘 하고 있길래 보이지 않는 걸까.

나는 예은이에게 엘레나의 행방을 물어보았다.

“엘레나 씨는 지금 시간이면 방송을 하고 있을 거예요. 그래서 일부러 부르지 않았어요.”

핸드폰으로 방송 앱을 실행한 뒤 엘레나의 방송을 찾아본다.

맨 위에 떠 있는 엘레나의 방송.

1만 5천명의 시청자…

“1만 5천명?”

허…

이거 맞나?

현실감 없는 시청자 수에 나는 내 방송 부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나 엘레나는 내 방송 부스에서 방송을 진행 중이다.

똑똑!

“엘프좋아 님 신규 구독 정말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시청자의 끊임없는 구독에 감사함을 표하는 엘레나.

방문 밖에서 노크를 한 나를 눈치챈 엘레나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우진 님!”

대기업이 되어버린 깐프 엘레나가 방송하다 말고 문을 열고선 내게 안겨든다.

“잠깐만!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방송부터 끄고!”

“언제 돌아오신 거예요!”

채팅창을 살펴보니 수많은 갈고리 때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좆됐다.

나는 갈고리의 왕, 후크 선장이 되기 일보 직전이다,

. . . . .

사죄의 의미로 채색 작업에 들어간 은각이를 두고 가겠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유정이와 예은이에게 맞서 싸우는 캣파이트를 상?상 해주세요.

죄인은 이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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