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 팔괘로 속으로
* * *
손우진이 팔괘로에 들어간 지 41일째 되는 날.
아직도 팔괘로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팔괘로의 불이 꺼지기 단 일주일의 기한이 남은 상황인데
손우진을 가르친 천계의 강사들은 모두 팔괘로 앞에 모여 안절부절못한 상태이다.
“지금이라도 안을 확인해보는 게 어떻습니까?”
천계의 투신, 중단원수 나타가 안건을 꺼낸다.
불의 근원력을 가르친 것은 자신이지만 인간의 몸으로 팔괘로의 불을
언제까지 버틸지 감이 안 오는 나타는 손우진의 구출 얘기를 넌지시 꺼내 본다.
나타의 제안에 태상노군은 고개를 젓는다.
“지금 와서 꺼내면 이도 저도 아닐세, 아이를 믿고 기다려야지.”
“크흠…”
“…”
“죄인 말고는 들어가는 것이 비상식적이니 원…”
나타는 답답한 마음에 조용히 있는 제천대성을 불러본다.
어찌 자신의 수제자가 죽을 고비에 처했는데 저리도 얌전히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손행자는 제자 걱정이 되지도 않는가? 어떻게 그리 가만히 있을 수 있나.”
조용히 눈을 감고 얘기를 경청하던 손오공의 눈이 떠진다.
원숭이 투신은 황금빛 눈동자로 닦달하는 나타를 바라본다.
“제가 방정을 떨어봐야 저 안에 들어간 제자 놈에게 도움이 되겠습니까?”
“저저 말하는 본새하고는! 저렇게 인정머리 없을 수 있을까!”
굉장히 냉소적인 손오공의 태도에 나타의 성질에 불이 붙는다.
저것이 제자를 걱정하는 스승의 태도인 것인가?
분기탱천하는 나타의 모습에 괜스레 옆에 있던 탑탁천왕이 움츠러든다.
“진정하게 나타. 제천대성의 말처럼 지금은 우리가 해줄 일은 믿고 기다리는 것뿐이라네.”
“하지만!”
“자자, 앉아서 마음을 가라앉히게.”
태백금성이 둘 사이에 끼어들어 중재에 나선다.
팔괘로의 불은 49일을 꼬박 채워야 달아오른 불이 꺼진다.
하루를 못 참아 일을 그르치느니 자신들의 수강생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태백금성은 판단하였다.
“하나 궁금한 것이 있네, 제천대성.”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진원대사가 손오공을 부른다.
“말씀하십쇼.”
“그래도 자네가 유일하게 팔괘로에 들어가 생존한 이 아닌가? 자네 생각에는 손우진 군이 살아 돌아올 거라 예상하는 건가?”
절대로 차분하다고 할 수 없는 손오공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진원대사는
저렇게 얌전히 있는 원숭이 녀석이 이상해 질문을 건네본다.
내심 속내를 들킨 손오공은 콧방귀를 픽 내뿜곤 대답한다.
“저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제일 필요한 요건이 뭔지 아십니까?”
다른 이들은 자신만의 답을 생각한 채 가만히 제천대성의 답변을 기다린다.
선단? 강철과 같은 신체? 오행을 보는 안목?
그러나 손오공은 이들의 기대와는 달리 다른 답변을 내놓는다.
“순발력입니다, 순발력.”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선생들.
이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손오공은 말을 이어나간다.
“팔괘에 대한 이해는 기본 중의 기본, 그저 맨몸으로 버티는 짓은 저는 물론이고 그 어떤 투신이 와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 당시 많은 선단을 훔쳐먹고 구 천년 산 천도복숭아를 있는 대로 처먹었지만
팔괘로에 갇힌 상황에선 죽음의 공포를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만약 자신이 수보리조사 밑에서 도를 닦지 않았더라면?
팔괘로에서 나온 것은 손오공이였던 검은 재 한 줌이었을 것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팔괘로 속에서 불길을 막아줄 바람 손(?) 방향을 찾는 순발력, 그거면 됩니다.”
제자 손우진 놈은 정에 약해 호구 같은 일면이 있을지언정 절대 멍청한 놈이 아니다.
그 비상한 머리로 잔머리를 굴리다 자신에게 혼난 것이 대체 몇 번째인가.
“제 제자는 미련한 놈이 아닙니다. 알아서 처신을 잘하고 있을 테니 기다려봅시다.”
손오공은 자신의 제자를 믿는다.
녀석은 일주일 뒤 자신의 힘으로 화로의 문을 열고 나타날 것이다.
유일한 생존자의 증언에 다른 선인들은 모두 납득하는 분위기다.
열을 냈던 나타 또한 손오공의 주장에 침묵을 지킨다.
자신들의 수강생을 믿자,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제천대성의 의견이 타당해 보이니 일주일 뒤에 다시 만나는 것이 어떠신지요?”
“그러세.”
“그러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모두 일주일 뒤 팔괘로 앞에서 아이를 마중 나와 줍시다.”
행정가답게 태백금성은 모임의 끝을 알린다.
태상노군도 자신의 시종들을 데리고 돌아가려 하지만 쌍둥이 자매는 손우진이 들어간
화로 앞을 우두커니 지키고 있다.
“우진이 놈이 나오면 매우 배가 고플 텐데, 누가 챙겨줄꼬.”
태상노군의 나직한 한 마디에 뒤를 돌아보는 금각과 은각.
“저희가 챙겨 줄 거예요!”
“집으로 돌아가요.”
“허허! 그래, 얼른 돌아가서 반갑게 맞이할 준비를 하자꾸나.”
아이들을 달랜 태상노군은 아이들과 함께 거처로 돌아간다.
손우진을 삼킨 팔괘로는 41일째 활활 타오르는 중이다.
. . . . .
입에선 아주 강한 단맛이 느껴진다.
체력적으로 한계는 이미 도달한 상황.
주변 환경이 온통 불로 가득한 화로 속에서 쉬지 않고 뛰어다녔더니
발의 감각은 사라진 지 오래고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오래 있다 보니 헛것마저 보인다.
시간 싸움이다.
내가 지치면 죽는 거고, 버티면 내 승리다.
정신없는 환경 덕분에 세고 있던 시간마저 까먹어서 나는 이 기약 없는 싸움이
끝날 때까지 계속 뛰어야 한다.
바람의 방향이 바뀐 순간 나는 재빨리 달리기 시작한다.
한시라도 늦었다간 정화?化의 불이 나를 덮칠 것이다.
“팔괘로에서 살아남기, 며칠째 진행 중인지는 모르겠고 시발!”
입고 있던 옷은 이미 넝마가 되었다.
눈앞에 보이는 채팅방에선 허상의 시청자들이 내 반응을 보고선 마음껏 비웃고 있다.
이것도 직업병인지 나는 미친놈처럼 혼자 떠들면서 외로운 방송을 이어나간다.
‘손우진 죽기 1초 전 ㅋㅋㅋㅋㅋㅋㅋ’
‘표정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돔황챠!!!!!!’
‘NAGA’
‘나가’
‘벌레컷!’
‘실시간 레전드 찍네 원숭이 쉨ㅋㅋㅋㅋㅋ’
“누군 뒤지기 일보 직전인데 너희는 이 순간에도 방해하냐!!!”
그렇게 유일한 대화 대상 허상의 고아단과 이야기를 나누며
정화의 불을 피해 발에 불이 나도록 뛰고 있다.
눈앞에 보이는 물의 감?, 아니야.
정화의 불을 피할 수는 있지만 다음 팔괘의 이동 시간까지 숨을 쉬지 않고 버텨야 한다.
평상시라면 몰라도 체력적으로 한계가 온 지금 들어갔다간 물귀신 행이다.
바람의 손?, 바람의 손, 바람의 손을 찾아야 해.
…찾았다!
손? 방위 쪽으로 몸을 날려 시뻘건 아가리로 나를 집어삼키려던 정화의 불을 피해낸다.
바람을 만난 불길은 매캐한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하지만
나는 눈을 감지 않고 이를 모두 받아들인다.
이렇게 고통받을 바엔 얻어갈 수 있는 힘은 모조리 얻어갈 거야.
스승 또한 이곳에서 화안금정을 획득했으니 성좌에게 부여받은 이 불완전한 붉은 눈을
이곳에서 완성할 것이다.
“쿨럭쿨럭! 칠대성 이 개새끼들아!!! 꼭 처죽여주마!!!”
쉬지 않고 흘러 들어오는 연기 때문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나의 안락한 삶을 방해한 칠대성.
나 손우진은 손행자의 제자라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주는 사람이다.
너흰 사람을 건드려도 잘못 건드렸어.
머릿수가 얼마가 되었던 연관된 놈들은 현세에 발을 붙이지 못할 것이다.
‘ㄲㅂ 이걸 살았네’
‘우진쿤 너모 무서운 거시에요 호에엥’
‘지금은 아무것도 못 하죠? ㅈㄴ 처맞아야죠?’
‘칠대성이고 나발이고 좆된거 같습니다만’
‘얘 며칠동안 이러고 있었음?’
‘몰?루’
“으아아아!!! 닥쳐 이 버러지들아! 쿨럭쿨럭!”
‘왜 우리한테 지랄임 우린 니 혼자 생각하고 있는 허상인데ㅋㅋㅋ’
‘정신 좀 차려 제발!’
‘정신 나갈 것 같아?’
‘이미 나갔구만 뭘 ㅋ’
쿠웅!
눈물을 닦고 있는 사이 화로의 구조가 또 변한다.
죄인을 태우는 최강의 보패답게 들어온 생명체를 절대 살려 보내지 않겠다는 듯
팔괘로는 쉴 시간도 없이 팔괘의 방위를 바꿔나간다.
화르륵
팔괘의 방위가 바뀐 것을 알아챈 건지 살아 움직이는 듯한 팔괘로의 불길은
무방비 상태인 나를 향해서 달려오기 시작한다.
도망가야 하는데…
축 늘어진 다리는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그래 시발! 이 정도면 할 만큼 했지…”
지금 내가 살아남기 위해선 제천대성의 신성을 써야 한다.
하지만 힘을 쓰는 순간 더는 현세로 내려갈 수 없다.
체념한 나는 크게 한숨을 내뱉고 사납게 달려오는 정화의 불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빨리 와, 이 좆같은 새끼야. 누가 이기나 해 보자.”
‘손우진 멸망전 선언 ㄷㄷㄷ’
‘우리가 힘이 없지 가오가 없나!’
‘가즈아~~~!’
‘우리 등장도 마지막이겠네 ㅋㅋㅋ’
‘기억해.줘’
‘잘 놀다 갑니다 77ㅓ어어어어억’
헛것인줄은 알지만 속된 말로 정말 개띠껍다.
살아서 현세로 내려간다면 꼭! 기강 한번 세게 잡아야지.
쓸데없는 잡생각과 함께 정화의 불이 나를 삼킨다.
. . . . .
정화의 불이 꺼졌다.
49일 동안 뜨겁게 달아올랐던 거대한 천계의 화로는 검은 연기만 내뿜고 있다.
제천대성 손오공, 도덕천존 태상노군, 공경대장 태백금성, 중단원수 나타,
탁탑천왕 이정, 여세동군 진원대사는 약속의 날에 맞춰 다시 팔괘로 앞으로 모였다.
천계의 큰 축을 이루고 있는 이 선인들은 모두 인간 한 명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의 가장 큰 공통사.
손우진은 과연 팔괘로에서 살아남았을까?
행여나 자신들이 가르친 학생이 잘못될까 봐 일도 손에 안 잡히던 일주일이 지나고
이렇게 다시 모였지만 그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않는다.
벌써 한나절이 지나갔는데 팔괘로의 문은 굳게 닫힌 상황.
왜 손우진은 나오지 않는 것인가.
태상노군을 제외한 선생들은 손우진의 스승 손오공을 쳐다본다.
네가 자신만만하게 장담했잖아! 라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선인들.
“거 성미들 한번 급하긴, 좀 기다립시다.”
정말 손우진은 팔괘로에서 살아남지 못한 걸까?
손오공의 무심한 대답에 쌍둥이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흑흑…”
“흐윽! 우진이가 죽었어!!!”
천계에서 같이 지내는 동안 정이 쌓인 걸까?
친우의 죽음에 감정이 격해진 쌍둥이는 결국 울음을 터트린다.
우연치 않게 아이들을 울려버린 손오공은 이내 당황한다.
아니 대체 제자 놈이 죽었다고 언제 그랬는데?
억울한 손행자는 쌍둥이의 눈물을 그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내가 언제 우진이 놈이 죽었다고 그랬느냐? 울음을 그치지 못할까!”
“흐아아앙!!!”
“손오공 이 나쁜 새끼야! 제대로 가르치지 그랬어!!!”
“야!!!”
“못난 놈… 아이들이나 울리고 큰소리나 치고 말이야.”
“손행자,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시는군.”
“크흠! 거 아이들을 울렸으면 책임을 지시오.”
손우진의 죽음이 기정사실이 된 것 마냥 개판이 되어버린 상황.
그 순간
쾅!
팔괘로의 문에 주먹 형상이 튀어나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