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팔괘로 속으로
* * *
천계의 선인들에게 오행의 근원력을 배우는 동안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태백금성께서 소개해 준 과외 선생님들은 모두 1타 강사뿐이었다.
‘천계에서 강한 자가 누구요?’라고 묻는다면
내가 좀 칩니다.
이런 오만한 대답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강사진들에게 과외를 받았다.
사물을 끌어당기는 물의 결속력을 가르친 태백금성.
끊임없이 번지는 불의 파괴력을 가르친 나타.
모든 만물을 품어주는 땅의 조화력을 가르친 탁탑천왕.
무겁고 강인한 금속의 장악력을 가르친 태상노군.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가는 나무의 성장력을 가르친 진원대선.
선생님들은 고위급 선인의 눈높이로 생각하기에
하계 출신 학생이 버벅이는 꼴을 봐주지 않았기에 얼마나 혼났는지 모른다.
특히 태백금성 님을 제외하고는 모두 우리 스승님과 싸워본 적이 있는 분들이라
나에 대한 기대치가 매우 높았을 거라 생각한다.
“인간의 몸으로 여기까지 올라 온 것은 생각들도 안 하시고!”
부웅!
내 투덜거림을 들은 허수아비 병졸들이 칼을 휘두른다.
허접하게 생겼지만 지상의 웬만한 레이드 팀은 혼자서 털어버릴 수 있는
무력을 지닌 놈들이다.
천계의 괴짜 사이언티스트 태상노군 어르신이 만든 놈이라 우습게 볼 놈은 아니다.
내리치는 칼을 피한 뒤 허수아비 병졸을 향해 손아귀를 움켜쥔다.
다리에 힘을 주어 버텨보려 하지만 내 결속력이 더 강하다.
내게로 끌려오는 허수아비 무리.
무생물에게 결속력을 사용하기 위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가.
무생물은 몸에 피가 흐르지 않기에 결속력에 영향을 덜 받는다.
그래서 태백금성의 지도 아래서
처음에는 허수아비 병졸에 물주머니를 달고, 그다음엔 무생물 주위의 수분을,
마지막엔 나무로 만들어진 병졸들 안에 담겨있는 수분까지 끌어당기는 식으로 연습해왔다.
“우선 갑? 팀 탈락.”
쩌적
수분이 빠져나간 병졸들은 삐쩍 말라서 우르르 무너져내린다.
갑 팀의 탈락과 함께 기회를 엿보고 있던 을? 팀 무리가 내 뒤를 기습하지만
여의를 땅에 찍어누르자 대지가 흔들리며 을팀의 허수아비들은 균형을 잃고 쓰러진다.
조화력.
땅에 발을 붙인 자는 어머니 대지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머니의 부름에 납작하게 엎드려있는 병졸들.
콰직!
출력을 더 강화하자 땅속으로 파고들며 박살 나는 허수아비 병졸 무리.
“우리 수하들을 해치운 녀석이 누구냐!”
“용서할 수 없다!”
갑 팀과 을 팀 모두 쓰러뜨리자 나타난 양 팀의 대장.
그래봤자 금각은각 쌍둥이 자매이지만.
역할 연기까지 해 줘야 만족을 하기에 나는 맞받아 쳐준다.
“나다.”
“아 정말, 성의 있게 받아줘야지.”
“우진이는 연기에 소질이 없는 것 같아.”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항의하는 쌍둥이.
정말 까탈스럽기도 해라.
“이 정도면 꽤 성의 있는 대답이라고 생각하는데.”
“너의 대답엔 영혼이 담겨있지 않아.”
“언니 말이 맞아.”
오행을 익히는 것도 모자라 연기까지 배워야 한다니.
내게 대체 얼마나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인가.
나는 쓰러져 있는 허수아비 병사의 머리를 집어 들었다.
“에휴 정말… 네 놈들의 수하? 이 쓰레기를 말하는 거냐.”
그리고선 손아귀의 힘으로 병사의 머리를 박살 낸다.
“손우진!!!”
“절대 용서 못 해!!!”
너무 과몰입한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화를 내는 금각과 은각.
이거 연기 맞겠지?
성장한 모습으로 덤벼오는 금각 은각 자매.
자신의 애검, 칠성검을 휘두르는 금각.
언니를 도와 파초선을 이용해 불꽃을 날리는 은각.
둘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기에 두 가지의 근원력을 사용한다.
금의 장악력으로 여의를 허공에 띄워 금각을 상대하고
은각이 날린 불꽃은 결속력을 이용해 모두 소각시킨다.
“은각!”
“응!”
“이번엔 연계기냐.”
높이 뛰어올라 나를 찍어낼 준비를 하는 금각과 호리병의 입구를 열어 물을 불러내는 은각.
참 재주도 좋은 자매다.
쌍둥이가 어르신에게 물려받은 보패의 성능도 상당히 훌륭하지만
이를 다루는 자매의 활용 능력도 뛰어나기 때문에
어지간한 투선은 두 자매를 상대하기 힘들 것이다.
“태산압정!”
“수룡파!”
거대한 태산을 눌러 찍겠다는 기세로 공격하는 금각과 물로 이루어진 수룡을 불러내 내게 쏘아내는 은각.
저걸 얌전히 받아준다면 꽤 아플 것 같기에 나도 새로운 기술을 준비한다.
신성이 부글부글 끓는 것과 같이 몸에서 솟아 오른다.
신체에만 담을 수 있던 화염의 기운이 내 몸에서 뻗어 나와
주위를 모두 불태우려 한다.
오행 팔괘 4장 분열의 리?.
핑
두 팔을 펼쳐내자 밝은 빛과 함께 내 몸에서 폭발적인 화염의 기운.
압축시켰던 화염은 주변을 모두 불바다로 만들려는 듯 사나운 기세로 뻗어나간다.
은각의 부름에 나온 수룡은 뜨거운 기운에 증발해 버리고
기운을 담은 칠성검으로 화염에 대항하려는 금각 또한 화염에 휘말린다.
“꺄아아아아!!!”
“언니이이!!!”
화염에 휩쓸린 금각 은각 자매.
마지막 순간까지도 가족을 찾는 것이 참 감동적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할 거야, 빨리 안 일어나?”
“헤헤.”
“잘 놀았습니다!”
벌러덩 누워 있던 금각과 은각은 내 핀잔에 몸을 일으킨다.
내가 내뿜은 분열의 기운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금각이 팔에 차고 있는 팔찌 속으로 빨려 들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태상노군 어르신의 역작 중 하나인 금강탁.
어떤 무구도 끌어당기는 힘을 지니고 있고 자연의 기운 또한 모두 흡수하는 성질을 지닌 보패다.
이를 차고 있던 쌍둥이는 내 오행 팔궤권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애초에 마음 놓고 연습하기 위해서 어르신이 빌려주신 거긴 하지만 말이야.
“때가 된 거 같구나.”
모의 연습을 지켜보고 계시던 어르신의 한 마디.
드디어 팔괘로로 들어갈 준비가 되었다는 소리다.
“정말 지금 상태로 들어가도 될까요?”
“본인의 상태는 우진이 너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겠지.”
그렇긴 하다.
이미 스승들께서도 강조했던 얘기지만 자신들은 촉매제일 뿐
근원력을 완벽하게 사용하려면 결국 나 혼자 힘으로 수련해야 한다고 말이다.
“못 버티면 꺼내 주실 거죠?”
“못 버티면 끝이지 이놈아 하하! 팔괘로는 이 늙은이도 버겁다.”
“설마 무서운 거야 사제?”
“사나이라면서!”
이 년들이…
지금 최고 천신도 버겁다는 화로에 들어가야 하는 내 입장은 생각도 안 해주다니.
“내가 죽으면 너희에게 과자 줄 사람도 사라지는 건데?”
“앗! 그거는 싫은데!”
“꼭 살아 돌아올 거지?”
이 약아빠진 자매 같으니.
. . . . .
푹 자고 일어나서 몸 상태는 최고다.
마지막 만찬을 즐기라는 듯 어제는 쌍둥이가 푸짐하게 한 상을 차려줘
맛있는 식사도 했고, 준비는 모두 끝났다.
천계의 화로 앞.
제자가 드디어 팔괘로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들은 우리 성좌는
직접 찾아와 내게 안부를 건넨다.
“오행은 다 깨우친 게냐?”
“뭐 그럭저럭요, 제 능력 닿는 데까지는 익혀왔습니다.”
“정 버티기 힘들면 내 힘을 써버려라, 까짓거 나랑 천계에서 살면 그만이니.”
“하계의 칠대성은 또 어떻게 하고요, 저 말고 처리할 챔피언도 없는데.”
“속세와 인연을 끊는 것이 선인의 첫 번째 요건이지, 남은 놈들이 어련히 하겠지.”
무책임한 말을 내뱉는 스승님.
내가 천계까지 온 이유를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은 거 같은데요.
“에잉 쯧쯧… 살아 돌아오라고 격려해도 모자랄 판에 뭐 하는 게냐!”
“제가 격려하면 뭐 달라집니까? 자기한테 달린 일이지!”
두 명의 사부가 티격태격한다.
“저기… 저 들어갑니다?”
“네놈은 그래서 문제야! 제자 놈을 받았다고 해서 성숙해진 줄 알았건만!”
“왜 또 옛날얘기를 끄집어 냅니까! 거 사과 했잖소!”
“스승이 되어서 제자가 걱정도 되지 않느냐? 인정머리 녀석이!”
“누가 걱정 안 한다고 했소! 그저 운명은 저놈에게 달린 것이니…”
거 참… 두 스승은 싸우느라 제자는 안중에도 없다.
나는 팔괘로의 문 앞에서 들어갈 준비를 한다.
그때 내 옷 끄트머리를 잡는 손길이 느껴진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나를 잡아 세운 쌍둥이.
“…돌아올 거지?”
“약속해.”
어제까지는 장난도 치고 잘 놀더니 막상 들어가려 하니 자신들이 겁을 먹었다.
천계에서 지내는 동안에 오빠 노릇을 톡톡히 해서 그런지
나와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약속하지 않으면 움켜 쥐고 있는 옷자락을 놓지 않겠다는 듯 꽉 붙잡고 있는 쌍둥이.
그렇게 사저 타령을 하더니 결국엔 어리광이다.
“사저들께서 왜 겁을 먹었을까?”
“…”
“…”
자신들을 놀리는 내 농담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정말로 나를 걱정하고 있다는 거겠지.
여동생을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 알고 있는 나는
어릴 적 동생과 하던 놀이를 쌍둥이에게 시전 한다.
쌍둥이에게 손바닥을 내미는 나.
“자, 여기에 서명해.”
“이게 뭐야?”
“그냥 맨손이잖아.”
“허어… 착한 아이들이 아닌가 보네, 이 글자가 안 보여? 착하게 지내고 있으면 꼭 돌아오겠습니다 라고 적혀 있잖아.”
“아니 사실 보이는데 안 보이는 척 연기한 건데?”
“나도 잘만 보이는데?”
아이들 특유의 오기를 부려 아무것도 없는 손바닥에 글씨가 보인다고 고집을 부린다.
금각과 은각은 붓을 소환해 내 양쪽 손바닥에 글귀를 적는다.
금?과 은?.
자매의 상징과도 같은 글씨를 적었군.
“어르신 말 잘 듣고 있고, 그럼 갔다 올게.”
“말 안 해도 우리는 착한 아이거든!”
“조심해야 해!”
팔괘로의 문이 열리고 아직 불이 붙지 않은 화로 속은 까마득한 심연의 어둠으로 가득하다.
나는 그 어둠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