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과산 스트리머-49화 (49/106)

〈 49화 〉 과외 시작

* * *

모여들 것 같아도 긴장을 조금이라도 풀면 흩어지는 구름 뭉치.

이렇게 사람 마음을 갖고 노는 구름보다 더 짜증나는 것이 있었으니…

“허어, 그렇게 하는 게 아닐 텐데 에잉 쯧쯧…”

“우진이한테는 어렵나 봐 언니.”

“자신만만하던 어제의 손우진은 어디 갔을까?”

구경꾼들은 내 옆에서 속을 박박 긁어놓는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방해는 하지 말아야지, 이건 멘탈을 건드리는 반칙이잖아.

순간 평정심을 잃은 나는 세 명의 방해꾼을 향해서 항의한다.

“거기 세 분! 도와줄 거 아니면 좀 조용히 좀 합시다, 시끄러워서 구름이 다 도망가겠네!”

“내 생전 구름 낚시에서 소음을 탓하는 놈은 처음 보는구나.”

“어머머, 들렸어? 미안해!”

“히히, 우진아 화났어?”

세 명의 방해꾼들 입에 기호 식품을 물려 놓은 뒤 다시 낚시에 집중한다.

연초와 과자가 모두 떨어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감을 잡아야 한다.

입이 심심해지면 또 나를 갈굴테니 말이야.

낚싯대에 결속력을 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낚시를 통해 배우고자 하는 것은 파악하였다.

내가 맨손의 전투를 주력으로 삼는 것도 아니고

미우나 고우나 여의와 함께해야 하는데 오행의 이치를 무구와 쓰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어르신, 계신지요?”

지루한 낚시 연습을 이어가고 있을 때 저 산길 아래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어르신을 찾는 것을 보니 천계의 인물인 거 같은데.

관심이 그리로 쏠려 집중력이 흩어지니 구름 또한 흩어진다.

“이런 씨…”

“공경대장 왔는고?”

욕지기가 목 끝까지 치밀어 올라왔지만 공경대장이란 말에 쑥 내려간다.

높은 분 같은데 괜히 밉보일 필요는 없지.

“어르신이 저를 거처까지 들이신 건 이번이 처음 아닙니까?”

“허허, 간만에 제자를 두게 되어 말일세.”

“호오, 그러면 이 자가 그 오공 녀석의…”

“그렇네, 하계에서 올라 온 원숭이 녀석의 화신일세.”

공경대장?

나는 스승에게 배웠던 지식을 모두 끄집어내 이 백발의 노인이 누구인지 유추한다.

공경대장이라…

아! 스승을 천계로 천거해 온 천계 최고의 인격자 신선이 아닌가.

상제의 최측근인 천계의 브레인, 태백금성이시다.

지상에서 온갖 행패를 부리던 우리 스승을 천계로 회유해 온 인물답게

안하무인의 태도로 모든 이를 대하는 스승이 예외적으로 예의를 표하는 인물들 중 한 분이시다.

천계에서 편히 지내려면 실세에게는 잘 보여야지.

“제천대성의 제자, 손우진입니다.”

“허허 반갑네! 오공의 제자를 만날 줄이야…”

당연히 반가우시겠죠.

자신이 천계로 데려온 문제아가 어느덧 제자까지 데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 감회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새로울 거라 생각된다.

“공경대장을 뵙습니다.”

“공경대장을 뵙습니다.”

“그래, 금동이 은동이도 잘 지냈느냐?”

천계의 높은 분들에겐 쌍둥이의 애칭이 고정인가 보다.

벌써 시종 모드로 돌아간 쌍둥이는 태백금성의 애칭에 토를 달지 않는다.

“자, 이놈은 아직 할 일이 남았으니 내버려 두고 담소나 나누세.”

“그러시지요.”

두 고위 천신은 이내 자신들만의 이야기 세계로 떠나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서 결속력을 익혀야 하는데.

사물에 결속력을 담는 것뿐인데 뭐 이리 어려운 건가?

“도와줄까?”

“솔직하게 고백하면 도와줄 수도 있는데.”

그때 다가와 악마와 같이 나를 꼬드기는 금각과 은각.

나 사나이 손우진, 자존심이라는 게 있다.

이 요망한 자매들은 도움을 바라는 순간 사저 행세를 하려 들 것이다.

현계행 택배로 우위에 있는 지금 역전당할 수는 없지.

“됐어. 일단은 혼자서 깨우치고 싶어.”

“흥, 그러시던가.”

“사저들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주세요, 우진 사제.”

영악한 꼬맹이 녀석들, 저럴 줄 알았어.

나는 구름 낚시를 계속해서 이어나간다.

집중해서 구름과 계속해서 지겨운 힘겨루기를 하는 사이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돌아보니 태백금성께서 나의 낚시질을 지켜보고 있었다.

“결속력의 근원은 어디서 찾는지 아는가?”

“예?”

“바로 물이라네. 결속력을 극한으로 익힌다면 이런 일 또한 가능해지지.”

쿠르릉­

신선이 손을 들어 올리자 태산의 마른하늘에는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한곳으로 흐르려는 물의 성질을 기억하게나, 결속력은 그곳에서 나온 힘이니.”

쏴아아아아

먹구름은 비를 쏟아내기 시작하지만 정작 우리에겐 내리지 않는다.

오로지 태백금성의 손아귀로만 모여드는 빗줄기.

빗줄기는 곧 물의 구체를 만들어낸다.

엄청난 숙련도다.

공중에 떠다니는 수증기를 모두 응결하여 먹구름 무리를 불러오는 것도 모자라서

넓게 퍼져 내리는 비를 모두 모을 정도의 결속력이라니.

이것이 고위급 천신의 힘인가?

“완벽히 익힌다면물에 한정되지 않고도 결속력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네.”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더욱 정진하게나. 흠흠…”

실마리를 찾은 나는 재빨리 구름을 향해 낚싯대를 휘두른다.

물을 끌어모은다, 구름 역시 물로 이루어진 것.

낚지 못할 이유는 없다.

. . . . .

“고놈 참 오공 녀석과 쏙 빼닮았어. 힘을 보여주니 눈빛이 살아나는 것을 보게.”

“괜한 참견이 아니었는지요.”

“비를 관장하는 천신의 가르침은 백만금보다 값지지. 왜 변덕을 부린 건가?”

지상의 존재에게 생명의 비를 내리는 천신, 그것이 태백금성의 직책.

비를 다스리는 천신답게 결속력을 다루는 숙련도는 그 누구와도 견줄 바가 없다.

“오히려 태상노군께서 너무 엄격하신 것 아닙니까? 한 번 시범을 보여준다면

진작 낚시에 성공했을 텐데요.”

학습력이 뛰어난 제천대성의 어린 제자라면

이번 태백금성의 지도 한 번에 이를 터득했을 것이다.

무언가 깨달은 건지 신나서 낚싯대를 휘두르는 손우진의 모습을 보라.

자신 나름대로 감을 잡았다는 것이겠지.

“껄껄! 분명 그랬을 테지.”

자신의 긴 수염을 가다듬으며 대답하는 태상노군.

천신과 대화하는 그의 눈에는 아이들과 대화할 땐 볼 수 없었던 총기가 가득하다.

“허나 저 아이는 곧 팔괘로에 들어갈 예정, 변칙적인 팔괘로 속에서 대응할 수 있는

사고력을 길러주고 싶었다네.”

“어찌 죄인들만 들어가는 팔괘로에 아이를 집어넣으려 하십니까?”

“저 아이의 기운을 잘 느껴보게.”

태백금성은 태상노군의 말에 따라 손우진의 기운을 살펴 본다.

“허어!”

그 익숙한 야성의 기운에 천계의 공경대장 마음은 철렁한다.

이건 제천대성의 기운이 아닌가!

원숭이의 제자여서 자신은 이 익숙한 기운을 의심하지 않은 것인가?

세상 속 모든 생명체는 고유한 본원진기를 갖고 태어나는데

아무리 제자라 하여도 스승의 기운과 똑같을 수는 없는 법이다.

“어떻게 하늘 아래 두 명의 본원진기가 같을 수 있나이까?”

“서역의 요상한 주술을 배웠다고 하더군, 언어를 매개로 삼는 주술에 현상이 불려온 게야.”

“자기 스승의 힘을 자신에게 덮어씌운 것이군요.”

“맞네.”

“크흠…”

태백금성은 침음성을 흘린다.

이대로라면 그는 선인이 될 것이 뻔하기에 현계에 남을 수는 없을 것이다.

태상노군의 말대로 이를 해결할 방법은 역시 팔괘로가 가장 깔끔하다.

합쳐지기 이전의 지금 상태라면 팔괘로의 뜨거운 불길로 분리시킨 뒤

이 유사 제천대성의 힘은 선단으로 만들어 흡수하게 만들려는 것이겠지.

하지만 팔괘로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두 가지 방법뿐이다.

화로의 열기를 버틸 수 있는 신체를 지니고 있거나 오행의 이치를 전부 깨우치고 있을 것.

“영약과 선단을 먹이는 법은 어떠십니까?”

“의미 없네, 인간의 몸으로 흡수하기엔 너무 오랜 시간이 필요해.”

태생부터 강자로 태어난 제천대성과는 달리 손우진은 강하다 해도 인간이다.

원숭이 놈이야 무리 없이 이것 저것 처먹고도 빠르게 흡수했으나

하계에서 할 일이 있는 손우진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결속력 말고도 나머지 네 가지 힘을 더 배워야 할 텐데, 가능하시겠습니까?”

“내 그래서 자네를 부른 것이 아닌가 하하!”

“이리도 값비싼 수업을 듣는 이는 이 아이가 처음이군요, 허허.”

대격변 이후 하계에 다시 한번 간섭하려는 대요괴들을 막아내기 위해선

손오공의 제자가 필요하다.

다섯 기운에 담긴 근원력을 저 어린아이가 빠르게 습득할 수 있도록 도울 수밖에.

태백금성은 자신이 알고 있는 오행의 전문 분야별 선생님을 빠르게 추려내기 시작했다.

. . . . .

“이 맛에 구름 낚시를 다니셨군.”

낚싯대에 딸려 오는 구름 뭉치.

이 맛에 어르신이 그렇게도 구름 낚시를 다녔던 거구나.

착 감기는 것이 정말로 살아있는 물고기를 잡는 것과 같다.

“뭐 이리 빨리 배우는 거야.”

“재미없어.”

자신들의 도움 없이 결속력을 터득하니 쌍둥이가 토라졌나 보다.

“내기 하나 할까? 나보다 커다란 구름을 낚으면 선물을 줄게.”

“진짜? 무슨 선물?”

“선물 좋아!”

“선물은 미리 알면 재미없지.”

신이 난 아이들은 낚싯대를 소환해서 달려온다.

그렇게 한참을 구름 낚시를 즐긴 뒤 하산하였다.

“어떤가? 낚시를 통해 배운 것이 있는가?”

태상노군 어르신의 질문.

배운 것이야 많다.

“낚시는 저랑 안 맞는 거 같아요.”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던 자네가 할 소리는 아닌가 싶네.”

“뭐… 그냥 쌍둥이들의 장단에 맞춰 준 거죠.”

경력 있는 선배라고 나보다 커다란 구름을 낚은 쌍둥이는

내게 선물로 받은 머리끈으로 서로 머리 모양을 바꾸느라 정신없는 상태다.

“본인 말고도 새로운 선생들을 준비해 둘 테니 기대하게나.”

태백금성은 결속력을 알려주셨는데 새로운 선생들?

오행의 힘을 모두 배우려면 아직도 4가지나 남았다는 소리인데.

“설마 오행 하나하나에 모두 붙이실 건 아니죠?”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배우는 것이 확실하지 않겠는가.”

통 한번 참 크셔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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