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과산 스트리머-43화 (43/106)

〈 43화 〉 막간 깐프 방송

* * *

안녕하세요.

저는 제니아 출신, 엘프인 엘레나에요.

마력 폭풍에 휩싸여서 마을 전체가 모두 지구로 넘어오는 사고를 겪었어요.

지구는 굉장히 이질적인 행성이에요.

고향 제니아에 존재하는 몬스터들도 존재하고 저희가 이제껏 보지 못했던

기괴한 생명체들도 만난 적이 있어요.

그리고 제니아에선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정령님들도 만나게 되었어요.

거대한 건축물들이 보이는 도시와 가까워질수록

어두컴컴한 기운을 풍기고 어딘가 아픈 듯 콜록거리는 정령님들이 많아졌지만

자연과 친화적인 엘프족을 반갑게 맞이해주셨어요.

지구에 넘어온 이후로는

어머니 세계수를 지키는 수호자, 일레인 오빠를 포함한 대전사들이 가족들을

보호하고 있었지만 지구의 마력 농도는 제니아보다 낮아 제힘을 발휘할 수 없었어요.

저희는 어떻게든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이곳 인간들의 눈을 피해서 인적이 없는 산속을 헤매고 다녔어요.

이런 위기의 상황 속 산속 깊은 곳에서 저희를 잡아먹으려는

투 헤드 오우거를 만났을 땐 모두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때 저희를 구해준 인물이 있었어요.

‘뭐야? 크립티드 말고는 보고 받은 거 없었는데?’

네 맞아요.

바로 그 사람이 우진 님이에요.

손에 든 철봉 하나로 투 헤드 오우거의 양쪽 머리를 박살 내버린 인간.

이 낯선 세상에서 만난 첫 번째 인간이었기 때문에 경계할 수밖에 없었어요.

우진 님은 그런 저희를 보고서도 그저 신기하게 바라보며 말을 걸어왔어요.

‘너희는 또 어디서 온 녀석들이냐?’

‘인간, 어떻게 우리의 말을 할 수 있는 거지?’

‘당신들의 언어로 말하는 게 아니야. 내 말을 너희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것뿐이지.’

우진 님은 마력 폭풍에 휩쓸려 차원 이동을 하게 된 저희 일족의 사정을 듣고선

이곳 지구의 상황을 설명해주셨어요.

지구의 운명을 이루는 축 자체가 뒤틀려서 다른 차원에서 생명체가 넘어오거나

과거 신화 속 몬스터까지 튀어나오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에 저희도 휩쓸린 거였죠.

우진님은 갈 곳을 잃어버린 저희 엘프족을 아무런 조건도 없이 받아주셨어요.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자신의 보금자리 화과산을 관리하기 싫어

저희를 받아준 이유도 있었다고 하네요.

의도가 어떻든지 저희 일족을 구해준 우진 님에게는 항상 고마움을 느끼고 있어요.

하지만 요즘은 우진님이 살짝 미워지려고 해요.

“라돈 님이 설득해주시면 안 돼요?”

「나에게는 그럴 의무가 없다 아이야.」

엘프족 아이들을 가득 태운 채 잠을 자는 거대한 드래곤.

지구의 신화 속 드래곤라돈 님에게 하소연해 봤지만, 소용이 없네요.

인터넷 사용 시간을 제한당한 이후로 제 삶은 무미건조해졌어요.

우진 님과 함께한 인터넷 방송도 그 이후로는 해보지도 못했고.

제게 주어진 시간으로는 인터넷을 마음껏 즐길 수가 없어요.

“우진 님이 라돈 님의 수면 시간이 빼앗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큭큭, 그거는 상상하기도 싫군.」

“제가 그런 상황이라구요…”

「그 나름대로 걱정하는 것이 있어서 그런 거겠지.」

아무도 제 편을 들어주지 않아요.

일레인 오빠도, 예은 씨도, 이제는 라돈 님마저도 제 편을 들어주지 않네요.

그렇게 모든 걸 포기하고 있을 때 우진님이 저를 찾아왔어요.

“엘레나, 부탁이 있어.”

“저도 그러면 부탁이 있어요.”

제가 간절히 원하는 한 가지 소원.

그것을 강력하게 주장해서 이번에야말로 제약을 풀어내야 해요.

“제게 걸려 있는 인터넷 제약을 모두 풀어 주세요!”

“내가 아직 안 풀어 줬었던가?”

“풀어 주시기 전까지는 저도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

제 얘기를 들어보고선 씩 웃어 보이는 우진님.

저 웃음을 보니 어쩐지 제가 손해를 볼 것만 같은 예감이 들어요.

“잘됐네. 안 그래도 부탁할 일이 그와 관련된 일이거든.”

“인터넷이랑 관련된 일이요?”

“그래. 일단 수렴동으로 가자.”

저는 우진 님을 따라서 수렴동으로 향했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료, 보글보글 거품이 올라오고 마시면 목이 톡 쏘는 음료수를

준비해 주시고선 얘기를 꺼내시는 우진님.

“엘레나, 정말로 인터넷을 마음껏 하고 싶어?”

“네!”

“그게 일이 된다고 해도?”

“…인터넷만 하는데 돈을 벌 수 있다고요?”

아무리 숲속에서 생활했었지만 알건 다 알고 있어요.

돈이라는 것은 인간들이 노동의 대가로 받는 것일 텐데

어떻게 인터넷만 한다고 돈을 벌 수 있을까요?

“그럼. 그때 방송을 해봐서 알고 있잖아 엘레나.”

“하지만 방송은 신경을 써서 준비도 해야 하고…”

“아냐, 너는 그럴 필요 없어. 그냥 인터넷만 해도 좋으니 방송을 틀고 하면 돼.”

우진 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미 마음은 기울어진 것 같아요.

화과산에서 살고 있다 보니 다른 사람들과는 인터넷으로밖에 소통할 수 없었는데

실시간 방송을 한다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얘기할 수 있는 거잖아요.

“내가 잠시 수련 때문에 자리를 오랜 시간 비워야 해 엘레나.”

“그 빈자리를 제가 대신 채워야 하는 거군요.”

“그런 셈이지, 할 수 있겠어?”

“도전해 볼게요.”

어차피 저에게 주어진 답은 하나밖에 없어요.

우진 님은 편하게 방송해도 된다고 했지만 그래도 몇 가지 궁금한 점을 물어봐야겠어요.

“우진 님의 아이디로 방송을 해도 될까요?”

“내 방송을 보는 놈들은 오히려 더 좋아할걸?”

조금은 공감이 되네요.

우진 님의 방송에 처음 출현했을 때만 해도 반갑게 맞이해주셨거든요.

“새롭게 방송을 시작해도 제 방송을 보러 와 주실까요?”

“엘레나, 인터넷을 하다 보면 제목만 보고 글을 눌러본 적이 있지 않아?”

“있어요. 제목에 충격, 실화, 속보 같은 수식어를 달아 놓고 정작 보면 쓸데없는 글이었어요.”

“지금은 네가 그래야 해.”

아하, 우진 님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알 거 같아요.

예전처럼 엘프인 제가 방송을 한다면 엘프에 대해 궁금하신 사람들이

방송을 찾아올 거라는 소리네요.

“하루에 얼마나 해야 하나요?”

“편할 때 키고 원할 때 끄면 돼.”

“그렇게 방송을 대충해도 될까요?”

“응, 너는 그래도 사람들이 이해할 거야.”

방송 초보인 제가 그래도 되는 걸까요…

그렇지만 경력이 있는 우진 님이 그래도 된다고 하니 믿어야죠.

그렇게 제 정식 인터넷 방송이 결정되었어요.

. . . . .

“푸흐흐, 아!”

제한 없는 인터넷에 빠져 있다 보니 제가 방송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까먹게 되네요.

저는 서둘러 가려두었던 채팅창을 확인해 봤어요.

[너희는 이거 대체 왜 보고 있냐?]

[엘프 누나가 웃잖아 그냥 ㄹㅇㅋㅋ만 치라고]

[ㄹㅇㅋㅋ]

[손가놈이 가르쳐서 그런지 소통퀸이시네]

제가 신경 쓰지 않는 동안 방송을 찾아와 주신 분들께서 서로 대화를 주고받고 계시네요.

저는 시청자분들께 늦은 인사를 건넸어요.

“어서 오세요! 엘레나의 방송에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이걸 읽어 주네 ㅋㅋㅋ]

[내가 눈물이 없는 사람인데 눈물이 다 난다…]

[엘하]

[손우진이 엘프 누나 방송 안 한다고 하지 않았나]

“우진 님은 수련을 떠나셔야 하셔서 한동안은 제가 대신 방송을 진행하게 됐어요.”

[대타? 오히려 좋아]

[엘프 누나 생태계 교란종인데 ㅋㅋㅋ 다른 여캠들 어쩌냐]

[ㅋㅋㅋㅋㅋ 각자도생 해야지]

[그래서 오늘 콘텐츠 뭡니까?]

“콘텐츠요? 음… 저는 그냥 인터넷 하고 싶어서 킨 건데…”

저는 시청자분들에게 제가 처했던 상황을 설명해드렸어요.

저의 힘들었던 과거 이야기를 알게 된 시청자분들은 저를 응원해 주셨어요.

[킹터넷은 못참지 ㅋㅋㅋ]

[원숭이쉑 은근 독하네]

[이런 누나가 풀어달라고 했다? 난 바로 풀어줬다 ㅋㅋㅋ]

[그동안어케 참았나 몰라 ㅋㅋㅋ]

심지어 어떤 분은 제게 힘내라는 의미로 돈까지 주셨어요.

­힘내요 님이 10,000원 후원!

[석방 축하드립니다 뭘 해도 상관없는데 유머글 보시면 같이 봅시다]

“힘내요 님 감사합니다! 제가 보는 글을 같이 보고 싶으신가요?”

[ㅖ]

[ㅔ]

[ㅖ]

[좋은 건 같이 봅시다]

[소통 방송 ㄱㄱ]

저는 지금 보고 있는 글을 화면에 나올 수 있게 설정을 변경했어요.

<어떤 놈이="" 크립티드인="" 거="" 같냐?=""/>

그냥 뿔 달린 말 vs 모가지 길이가 12미터 되는 표범 무늬 사슴

누가 더 말이 되냐?

솔직히 이건 유니콘 말도 들어봐야 한다 ㅋㅋㅋ

“지구의 동물들은 참 신기한 거 같아요.”

[엌ㅋㅋㅋㅋㅋ]

[이걸 이세계인 시점으로 보게 되네]

[뒷 놈이 비현실적이긴 하지 ㅋㅋㅋ]

[엘레나 세계에는 유니콘 있었음?]

“유니콘이요? 유니콘은 지구의 동물이 아닌가요?”

[엥?]

[동물은 아니고 크립티드지]

[엘프 누나는 유니콘 처음 봤나 본데]

[뭐야 ㅋㅋㅋ]

“이 목이 긴 생명체가 몬스터 아니었어요? 어떻게 뿔 달린 말이 몬스터가 될 수 있어요?”

저는 이해가 가지 않아서 시청자들에게 질문을 했지만

사람들은 제 반응이 재밌었는지 한참을 웃으셨어요.

“지구는 대체 어떤 곳일까요…”

[ㅋㅋㅋㅋㅋㅋㅋ 처음 보는 사람은 킹린이 괴물같긴 해~]

[어떻게 뿔 달린 말이 크립티드 ㅋㅋ]

[처녀 아니면 지랄해서 크립티드인게 분명함]

[처음부터 큰 웃음 주시네 ㅋㅋㅋ]

제 반응을 더 보고 싶었던 시청자분들은 도네이션으로 링크를 첨부해

많은 유머 글을 보내주셨어요.

인터넷을 하는 것뿐인데 돈까지 벌고 있는 이 상황.

이러면 안 되지만 제 입꼬리는 어느샌가 올라가 있었어요.

어떡하죠, 어머니 세계수 님? 제 윤리관이 흔들리는 것 같아요.

. . . . .

한동안 엘레나의 방송을 지켜봤지만, 초보라고 하기에는 무색하게 진행을 잘해나간다.

이 정도로 잘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는데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내 시청자 놈들도 엘레나에겐 짓궂게 굴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복귀 이후를 걱정해야 하는 거 아닐까.

엘레나에게 파이를 빼앗기게 생겼구만.

스승님이 내 해결책을 찾았다고 하시기에 화과산의 성역으로 향한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스승님을 믿을 수밖에 없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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