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과산 스트리머-35화 (35/106)

〈 35화 〉 미스터 손

* * *

“안녕하세요. 오늘 중계를 맡게 된 캐스터 이상준.”

“배틀 토너먼트의 해설을 맡게 된 히어로 최재혁입니다.”

한국 지부 히어로 협회배 배틀 토너먼트의 중계방송이 시작의 막을 올린다.

배틀 토너먼트는 현직에 있는 히어로가 해설위원을 맡아서 한다.

히어로 등급과 상관없이 순수 기량을 겨루는 배틀 토너먼트.

국내 최고의 히어로를 뽑기 위해 개최된 대회.

자신의 실력을 뽐내는 무술 대회나 다름없다.

[뇌신! 뇌신! 뇌신! 뇌신!]

[오오 이번엔 최재혁 나왔네]

[스피드 계열이라 놓치는 장면은 없겠네 ㅋㅋ]

[백만볼트쉑 출세했네]

뇌공(雪?). 뇌사(雪?). 라이진(らいじん).

동아시아의 천둥과 번개를 상징하는 신을 뜻하는 단어.

신의 북소리는 천둥번개를 일으켜 악한 인간이나 귀신, 요괴들을 징벌하는 일을 한다.

뇌공신의 선택을 받은 최재혁은 아직 성좌의 권능이 부족해 챔피언으로

지정받지는 못했지만, 그의 활약으로 인해 챔피언과 다름없다고 취급받는 히어로다.

“사실 저와 같은 일반인들에겐 배틀 토너먼트가 가장 큰 관심사가 아니겠습니까?”

“하하, 히어로들을 보고선 다들 어릴 적에 한 번쯤은 상상하곤 하죠.”

“누가 한국에서 가장 강한 히어로일까.”

“그렇습니다.”

인터넷에서도 진행되는 중계방송을 보러 온 시청자들.

근질거리는 손가락을 참을 수 없어 기어코 중계 방으로 들어온 인간들 뿐이다.

[ㅋㅋㅋㅋㅋ 서열은 절대 못참지]

[ㄹㅇ 상위 히어로 갖고도 맨날 줄세우기 놀이 하는데]

[이번에 챔피언팀 몇 명 나왔냐?]

[경기 전라 경상 쪽은 참가함]

[손우진은? 원숭이 놈 징계 받지 않았냐?]

[예전 동료들 오대혁이랑 사유정은 나왔는데 팀 구성원 한 명을 모름]

[ㅋㅋㅋㅋㅋㅋㅋ 이새끼 무조건 나왔네]

히어로의 대결 중에서도 가장 큰 주목을 받게 되는 챔피언끼리의 대결.

성좌가 선택한 히어로들 중에서도 가장 큰 은총을 받은 단 한 명의 히어로.

인류의 정점에 선 자들이라 할 수 있는 이들.

인류의 최고 전력들끼리 부딪히는 시합은 언제나 큰 화제를 몰고 온다.

“챔피언 팀에는 어떤 제약이 걸려 있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최재혁 해설위원님.”

“네, 챔피언 팀은 일반 히어로 팀과 경기를 진행하게 되는 경우

팀원 중 한 명만이 상대편 3명의 히어로를 상대해야 합니다.”

“이런 규칙이 도입된 이유는 어떤 연유로 그런 건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방송을 보고 계신 현직 히어로 여러분은 알고 계실 겁니다.

챔피언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말이죠.”

[진짜 배틀 토너먼트 챔피언전 본 사람은 공감하지 ㅋㅋㅋ]

[히어로도 사람 아닌데 챔피언은 더 사람 아님]

[정보)지금 말하는 최재혁도 존나 쌘데 저렇게 말하는 거다]

[괜히 히어로들이 기를 쓰고 참가하는게 아니지? 챔피언 팀 이겼다?]

[성좌한테 업적작 할 수 있자나 ㅋㅋㅋㅋ]

“그만큼 챔피언 분들은 규격 외 존재이다, 이런 말씀이시죠?”

“예. 쑥스러운 얘기지만 많은 분이 저를 예비 챔피언이라고 불러 주십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엔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최재혁 해설위원님도 작년에 배틀 토너먼트를 참여하시지 않았습니까?”

“예. 작년 토너먼트의 입상자라 이렇게 해설위원을 맡을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최재혁 해설위원님을 떨어뜨린 사람이…”

“손우진 챔피언이시죠.”

[솔직히 최재혁도 쉽게 털어먹을 줄은 몰랐지 ㅋㅋ]

[풍림화산도 나름 강팀이었는데]

[괜히 뇌신이 챔피언 고평가 하는게 아니지 피해 당사자야 ㅋㅋㅋㅋ]

[원숭이 새끼 제발 참가했다고 말해!]

전기능력자인 최재혁의 최대 장점인 속도를 따라 잡힌 순간부터

최재혁의 패배는 정해진 결과였다.

초스피드로 움직이는 자신을 포착하는 붉게 타오르는 금색 눈동자.

최재혁은 챔피언의 붉은 눈을 아직도 잊지 못했다.

“이번 토너먼트에는 손우진 챔피언은 참가하지 않았습니다만 챔피언의 동료인

오대혁 씨와 사유정 양은 참가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두 명의 챔피언이 과연 어떤 이와 팀을 꾸려서 참가했는지 기대가 됩니다.”

“그러면 저희는 잠시 후 예선전 A조의 경기로 찾아뵙겠습니다.”

[또 광고하냐? 이따 올란다]

[돈도 많은데 광고 뒤지게 하네 협회 돈미새 새끼들아]

[협회는 그럼 땅파서 장사하냐? 아니면 구독하든가 ㅋㅋㅋ]

[담배타임 주는데 걍 닥치고 보지 ㄹㅇㅋㅋ]

[채팅방에 협첩 몇 명 있는 것 같은데 협회분들 제발 협회로 돌아가주세요]

[­협­]

. . . . .

“맛있냐?”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리는 법이요.”

“넌 개가 아니라 돼지잖아 이 돼지 새끼야.”

테이블 하나를 꽉 채운 음식들.

하도 안 오길래 뭐 하고 있나 찾아왔더니 이러고 있다.

좌석을 옮겨 다니며 앞에 놓인 음식을 해치우는 중인 오대혁.

이 엄청난 식성에 주위 사람들은 자신들의 먹는 것도 멈춘 채로 이 기행을 쳐다보고 있다.

누구에게 소개해도 창피한 내 동생.

“넌 은퇴하면 먹방이나 하면 되겠다. 적어도 굶어 죽을 일은 없겠네.”

“그런 걸 왜 합니까? 먹기도 바빠 죽겠구만.”

“바짝 벌어라. 나중에 식비 감당할 수 있겠냐.”

“은퇴하면 이렇게 먹지도 않을 텐데 무슨 걱정을 그렇게 하시오?”

과연 그럴까.

이놈은 항상 힘을 비축하는 것이라 핑계를 대지만 내가 보기엔 그냥 먹는 걸 좋아하는 돼지가 맞다.

“먹은 만큼 힘 좀 써 주지 그래?”

“공평하게 돌아가면서 맡기로 하지 않았소?”

“예선전만 선봉 맡아서 해.”

“흠… 내 미스터 손을 위해 힘 좀 써보겠소.”

마지막 한 입을 털어 넣은 후 자리에서 일어나는 녀석.

접시는 남긴 것 하나 없이 깨끗이 비어있다.

“얼마어치 먹었냐?”

“경기 전이라 가볍게 백 단위 정도로만 먹었소.”

“가볍게?”

“가볍게.”

진짜 미친놈 아니야 이거.

노점상 음식을 백만 원 단위로 처먹는 놈은 이 녀석이 유일할 거다.

대혁이 놈은 은퇴 후 무조건 먹방을 해야 한다.

“갑시다! 미스터 손.”

“그래… 가서 식후 운동이나 해라.”

대혁이를 데리고 유정이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대회 관계자에게 무언가를 적어내는 유정이.

“대진표 받았어?”

“네. 대혁이 오빠를 선봉으로 써서 냈어요.”

“야! 아무리 그래도 나하고 상의는 했어야지!”

“어차피 오빠가 데리러 간 이상 대혁이 오빠가 나가는 건 확정이잖아.”

“그건 맞지.”

동생의 합리적인 말에 바로 수긍하는 단순한 녀석.

돼지를 다루는 법이 능숙해진 유정이다.

­팀 웨스트 트리오와 팀 나이츠 헤븐은 시합을 준비해주십시오.

나이츠 헤븐?

아아, 그 칼잡이 녀석들.

유럽의 검성들에게 선택받은 국내 히어로 팀이 참여했나 보다.

“검을 쓰는 놈들이야.”

“촌뜨기 미스터 손이 어떻게 잘 알고 계시오?”

형을 개무시하는 대혁이 녀석.

나름 그리스로 출장도 다녀왔고 아일랜드, 독일 등 쉽게 갈 수 없는 곳도 많이 다녀왔다.

“예전에 가르쳤던 학생 덕분에 알게 됐지.”

“그 루카스라는 아이 말이에요?”

“응, 내 학생이랑 시비 붙은 놈이 나이츠 헤븐 소속이었거든.”

“흐흐흐, 그런 악연이 있었구만. 내 갔다 오리다.”

대혁이가 자신의 무기 쇠스랑을 어깨에 짊어진 채 터벅터벅 경기장으로 향한다.

배부른 상황이라 여유가 넘친다.

“그런데 이거 방송 나오나?”

“예선전 경기는 몇몇 경기만 보여줄 텐데, 아무래도 저희가 챔피언 팀이니 중계하지 않을까요?”

“제발 무난하게 싸워줬으면 좋겠는데…”

“그러게요.”

. . . . .

“벌써 예선전 D조입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팀은 팀 웨스트 트리오입니다.”

최재혁은 혹시 손우진이 나오지 않았나 팀 구성원을 살펴본다.

“팀 웨스트 트리오는 챔피언 팀이네요. 오대혁 챔피언, 사유정 챔피언 그리고 음…”

“왜 그러시죠, 최재혁 해설위원님?”

“…미스터 손이라는 분이 손우진 챔피언의 자리를 대신해서 참여하셨네요.”

누가 봐도 손우진이 아닌가.

검정 양복과 올백 머리, 그리고 선글라스를 끼고 있지만 그의 개성을 숨기기엔 역부족이다.

최재혁은 공식 방송에서 사고를 치지 않기 위해 허벅지를 세게 꼬집는다.

[미스터 손 ㅇㅈㄹ ㅋㅋㅋㅋ]

[이새끼 백퍼 징계 중이라 저러고 나왔네 ㅋㅋㅋㅋ]

[원숭이 새끼 별명 하나 더 추가됐다 미스터 손 ㅋㅋㅋㅋ]

[손하하하하하하]

“이에 맞서는 팀 나이츠 헤븐은 유럽 유명 길드 나이츠헤븐 소속 히어로들로 이루어져 있네요.”

“그렇습니다. 박지원 히어로, 김상혁 히어로, 양혜원 히어로가 참여했습니다.”

“양 팀의 선봉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웨스트 트리오의 경우 오대혁 챔피언을, 나이트 헤븐은 양혜원 히어로를 선정했습니다.”

[쿰척좌 입장]

[와 시발 풍채부터가 다르네]

[체급 차이 존나 심한데 이거 맞냐?ㅋㅋㅋ]

[저게 보기만 그렇지 다 근육으로 꽉 차 있는 압축 근육이다]

[네 다음 파오후]

오대혁과 첫 경기를 펼치게 될 나이츠 헤븐의 양혜원.

둘은 일반인들이 보기에도 어마어마한 체급 차이를 난다.

“경기 시작합니다! 아아, 시작과 동시에 깊은 찌르기를 시도하는 양혜원 히어로!”

자신도 체급의 불리함을 아는 것인지 기습을 시도하는 양혜원.

경기를 시작했음에도 가만히 서 있는 오대혁은 이를 보고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

검강을 두른 레이피어를 상대방의 복부로 내지르는 양혜원은 이내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

튕겨져 나온 레이피어, 오대혁은 숨을 들이마시기 시작한다.

“아아! 양혜원 히어로의 공격이 통하질 않습니다!”

“시도는 좋았습니다만 오대혁 챔피언, 숨을 들이마시면서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콰앙!

배를 튕겨서 양혜원을 날려버리는 챔피언.

힘을 모아두고 있던 오대혁의 배에 치인 양혜원은 저 멀리 날아간 뒤

벽에 처박힌다.

­크하하하하하하!

심판은 이내 양예원의 장외패를 선언하고 오대혁의 승리를 외친다.

“… 첫 번째 경기는 웨스트 트리오의 오대혁 챔피언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대단한 방어력입니다. 양혜원 히어로가 내지른 매서운 찌르기를 단단한 복부로

막아내는 모습, 굉장합니다.”

이 웃지 못할 경기력에 캐스터 이상준과 해설 최재혁이 열심히 포장하고 있다.

[ㅋㅋㅋㅋㅋ 파워후였고~]

[파워후 펀치! 파워후 펀치! 파워후 펀치!]

[펀치가 아니라 배치기잖아 ㅋㅋㅋㅋㅋ]

[존나 웃기네 ㅋㅋㅋㅋㅋ]

[해설진 인생 최대의 위기 이걸 웃참해? ㅋㅋㅋㅋ]

카메라가 웨스트 트리오의 팀원들을 잡아준다.

이마를 짚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미스터 손과 사유정.

손우진의 말대로 어디에 내놓아도 창피한 동생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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