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과산 스트리머-27화 (27/106)

〈 27화 〉 스승과 제자

* * *

루카스의 실력 측정을 위해 밖으로 나가 전투 능력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평원에 펼쳐진 푸른 녹빛의 바다.

아일랜드의 초원은 시야에 걸리는 것이 없다.

우리 둘만 있는 초원, 바람에 흔들리는 풀들의 아우성은 적막하게 느껴진다.

“여기서 뭔 재미로 사냐?”

“스승님과 얘기하고, 훈련하면서 시험 준비를 하고 있어요.”

현대 문물에 익숙해져 있는 나는 이곳에서 하루라도 못산다.

여기서 홀로 지내다 보니 이렇게 소심해진 것이 아닐까.

이놈은 하루빨리 합격해서 히어로 활동을 해야 한다.

사람들과 부대끼고 정신없는 생활을 겪다 보면 조금 괜찮아지겠지.

“그럼 빨리 붙어야지.”

“죄송합니다…”

“말투.”

“죄송합니다!”

이 패기 없는 놈의 모습을 보면 답답해 미칠 것 같다.

루카스의 실력이 성격과 정반대이길 빈다. 안 그러면 내가 존나게 손해 보거든.

“무기는 어떤 걸 쓰고 있어?”

등에 메고 있던 작대기 형태의 무기를 꺼내 드는 루카스.

이내 둘둘 감싸고 있던 붕대를 풀어 헤친다.

간만에 햇빛을 만난 것이 반가웠던 건지 붉은빛이 맴도는 짐승의 척추와 같은 것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이걸 네가 다룰 수 있다고?”

“저는 익숙하지만 리차드는 아직 미숙한 편이에요.”

요즘 애들 정말 무섭네.

소심한 주제에 무기는 또 왜 이리도 사납게 보이는 것을 쓰는 걸까.

마창 게 볼그(Gáe Bolg).

해룡의 뼈로 만들어졌다고 하는 얼스터 영웅의 유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창은 상대를 다양한 방향에서 꿰뚫어 버린다.

루카스의 손안에서 꿈틀대는 마창은 주인이 반가운지 소년의 손길을 그대로 받아낸다.

“이 정도 유물을 다룰 정도면 안 봐줄 거야. 예비 시험이라 생각하고 전력으로 덤벼.”

“네.”

긴장한 표정으로 창을 꼬나쥐는 겁쟁이 루카스.

내가 심사위원이었다면 표정부터 탈락이야 자식아.

봉과 창의 대결.

사실상 같은 무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가르치기엔 쉽겠다.

얼스터 영웅이 점지한 아이의 실력 좀 한번 보자.

하예은 때와 마찬가지로 상대를 개무시하는 태도로 손을 까딱까딱 접었다 편다.

네 놈이 뭘 하든 상관없다. 올 테면 와 봐라 식의 도발.

오만방자한 태도로 루카스에게 선공을 양보한다.

그런 도발을 보고도 화가 나지 않는 것인지 여전히 긴장한 모습으로 머뭇거리는 루카스.

이내 자세를 잡더니 손에 쥔 게 볼그를 나에게 던진다.

“뭐야.”

나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내 앞에 푹 꽂혀버린 볼품없는 마창.

“피어라!”

주인의 부름에 응답하는 마창의 그림자가 꿈틀거린다.

마창 밑에 있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선 굵은 그림자 가시들이 튀어나와 나를 꿰뚫으려 한다.

이런 식으로 사용하려고 바로 코앞에 던졌군.

뒤로 회피하자 먹잇감을 놓쳐 아쉬운 듯 허공을 꿰뚫어 버리는 게 볼그.

그림자 속으로 녹아든 마창이 꾸물꾸물 움직여 이내 루카스의 발밑에서 솟아난다.

“투창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창술도 배웠습니다!”

말끝을 늘리는 습관을 지적받는 것이 더 무서웠는지 악을 지르며 대답하는 루카스.

참 장족의 발전이다.

이 선생님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루카스의 앞에 도달한다.

“머리.”

뻔뻔하게 내뱉는 말과는 달리 루카스의 허리춤을 노리는 나의 여의봉.

뻔뻔스러운 화과산 원숭이들에게 배운 기만술이다.

이런 나의 농간에도 침착하게 창을 세워 공격을 방어하는 루카스.

“다리.”

이번에도 다리를 노리는 것 같은 궤적을 그리지만 이내 여의는 종착지는 루카스의 머리로 향한다. 급하게 상승하는 철봉의 궤적,

까앙­!

자신의 마창으로 머리를 노리는 여의를 맞받아치는 소년.

방어 쪽은 두말할 것도 없이 훌륭하다.

하지만 이 녀석, 왜 시험에서 떨어졌는지 알 것 같다.

“루카스, 거기서 멈추면 안 되지.”

“네?”

“아니, 잘 막아놓고 왜 반격을 안 하는 건데?”

아까 전 투창도 그렇고 마창에 명령을 내렸다면 뒤로 회피하는 나를 더 추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움찔거리던 게 볼그는 주인에게 어떤 명령을 받은 건지 추적하지 않았다.

지금의 근접전도 그렇다.

내 기만이 섞인 공격도 침착하게 잘 대응했지만 딱 거기까지다.

반격할 생각이 없다 이 녀석.

“너 싸움이 두려운 게 아니라 누군가를 때린다는 것 자체가 무서운 거구나?”

자신의 약점을 밝혀낸 나의 말에 정곡이 찔린 듯 움찔거리는 루카스.

환장하겠네.

. . . . .

기술(?)쪽이 부족했다면 내가 알고 있는 걸 몇 개 정도 알려주거나

실전 압축으로 육체 단련을 때려 박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건 마음(心)의 문제가 아닌가.

“시발… 이건 의사를 찾아가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성좌 양반.”

크립티드의 시대가 도래한 이후 병원에서 가장 바쁜 하루를 보내는 이들은 외과 의사들이다.

괴수에 의해 찢기고 너덜너덜한 사람들을 조립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치료계열의 히어로는 만능이 아니다.

신성을 쏟아부어 치료하기 전에 적어도 사람 구실은 맞춰야 할 것 아닌가.

오늘도 그들은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힘을 쏟아붓고 있다.

그 뒤를 잇는 의사는 정신건강의학과다.

평화롭게 살아가던 인류를 짓밟은 괴수들의 진격.

그에 충격을 받은 사람들의 정신건강을 보살피는 이들에게는 역시 일거리가 끝없이 쏟아지는 중이다.

일반인에 국한되지 않고 초보 히어로들 또한 이들의 주된 고객 중 하나이다.

루카스는 다른 부분은 전부 완성되었지만 멘탈 쪽이 부실한, 언밸런스한 결함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때리는 게 왜 무서운 건데?”

“…”

쉽게 말을 꺼내지 않는 겁쟁이 루카스.

안 봐도 뻔하지.

“리차드 때문이야?”

내 말을 듣곤 고개를 끄덕인다.

“처음부터 이런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리차드가 크립티드와 싸우는 걸 본 이후론 사람을 때리지 못하게 됐어요.”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 루카스.

리차드라는 인격은 성좌에게 선택받은 이후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성좌와 똑같이 급격한 감정변화가 생기면 자신 안에 분노의 화신이 튀어나오는 특이체질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불 가리지 않고 자신의 앞길을 막는 놈들을 손수 찢어버린다는 리차드.

이런 리차드와 몸을 공유하면서 자신의 신체 능력 또한 비약적으로 상승해서

이미 초인의 영역에 도달한 지 오래다.

이로 인해 연습 삼아 괴수와 싸워보려 했던 루카스는 전투가 주는 고양감에 빠져

결국 리차드가 튀어나왔고 크립티드를 맨손으로 찢어발겼다고 한다.

루카스는 이런 생체병기 리차드가 쉽게 튀어나오지 못하도록 자신의 감정 기복을 조절하다 보니 점점 소극적인 성격으로 변모해갔다.

또한 리차드가 날뛸 때 그 괴력을 경험해봤기 때문에

신체 능력은 리차드와 비슷한 자신이 그 힘을 사람에게 써도 되는지 두려움에 빠져

쉽게 공격하지 못한 것이다.

“참나, 좋은 것을 물려주셨군.”

내 유물 아닌 유물, 긴고아보다 더 심각하다고 해야 하나.

성좌가 갖고 있던 광증이 챔피언에겐 이중인격으로 변모되어 발현된 것이다.

“일단 리차드고 나발이고 너부터 어떻게든 해야겠는데.”

좋은 방법이 하나 떠올랐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질문을 던져본다.

“사람만 못 때리는 거지?”

“네. 크립티드는 어찌 되든 상관없어요.”

다행이다.

우리 루카스가 크립티드도 때리지 못하는 비 폭력주의자이었으면 내 안에도 폭력적인 인격이 생겨날 뻔했으니깐.

“루카스.”

“네?”

히어로 자격 시험을 통과할 정도로, 그리고 어디 가서 빌런에게 처맞지 않을 정도로만 가르쳐 놓자.

그 뒤로는 자기 자신의 노력에 달린 일이다.

딱­!

맥 빠지게 대답하는 루카스의 이마를 향해 손가락 딱밤을 놓는다.

“아야!”

“지금 이 정도의 강도를 기억해.”

이마를 부여잡곤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듯 쳐다보는 겁쟁이 루카스.

“지금 내가 때린 것처럼 똑같은 힘으로 내 이마에 딱밤을 쳐봐.”

“하지만 그러다 선생님이 다치기라도 하면.”

“히어로 안 할 거야? 그러면 이 여의봉에 쳐 보던가.”

이 녀석은 결국 심적인 제약이 걸려있으니

자신의 힘을 능숙하게 조절하는 법을 가르쳐 주면 부담도 완화될 것이다.

우선은 자신이 입은 피해만큼 되돌려주는 법부터 가르치도록 한다.

망설이는 겁쟁이 녀석.

그러나 히어로가 되고 싶은 마음은 진심인 건지 딱밤을 준비하는 루카스.

최대한 힘을 조절하는 중인지 굽힌 손가락을 바들바들 떨고 있다.

깡­!

티타늄 합금 철봉이 소년의 손가락 모양으로 우그러졌다.

자신이 저지른 짓을 보고선 나와 시선을 마주치는 녀석.

“…”

“…”

이 녀석의 선견지명 덕분에 내 이마는 무사할 수 있었다.

인생사 쉬운 일이 한 개도 없구만.

처음부터 천천히 가르쳐야겠다.

. . . . .

“루카스는 어느 정도 해결책을 찾았고 다른 놈은 고민 중입니다.”

<고맙네. 동방의="" 챔피언이여.=""/>

“고맙기는요. 저도 강해지고자 맡은 일인데.”

약속대로 자신의 제자의 성취에 진전이 있을 때마다 비기를 알려주기로 한 성좌 쿠 훌린.

“그래서 제가 배울 기술은 뭡니까?”

<챔피언, 이="" 기술은="" 굉장히="" 위험하다네.="" 본인마저="" 파멸로="" 몰고="" 간="" 기술이지.="" 배울="" 각오는="" 되었는가?=""/>

“예. 상관없습니다.”

<…알겠네. 자네에게="" 전수할="" 것은="" 파멸의="" 맹세,="" 기아스(Geis)라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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