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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과산 스트리머-21화 (21/106)

〈 21화 〉 스위치 온

* * *

서로 탐색전을 한 듯 물러서는 하예은과 케르베로스.

방금 주고받은 한수로 서로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대강 눈치챘을 것이다.

하예은은 자신의 주력 무기 올리브 방망이나 히드라의 활을 쓰지는 못하지만

저번 과업에는 상대가 상대다 보니 사용하지 않았던 사자의 건틀릿을 착용했다.

활이 아닌 건틀릿을 착용한 이상 근접 전투로 저 맹수를 그로기 상태에 빠뜨려야 한다.

거기까지는 하예은 본인의 역량에 달린 일이고, 나는 나만의 준비를 마치자.

허리춤에 매고 있던 커다란 두루마리를 땅에 펼쳐놓은 뒤 계약서를 작성한다.

. . . . .

쉽지 않겠다.

하예은이 케르베로스와 일합을 주고받은 뒤 느낀 소감이다.

네메아의 사자, 그와 비슷하거나 어쩌면 그 이상이다.

단단한 피부, 강대한 힘, 그리고 세 머리에는 사각이 없다.

케르베로스의 꼬리는 뱀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후방 공격도 만만치 않다.

하예은은 손에 낀 사자의 건틀릿을 꽉 움켜쥐고 각오를 다진다.

지금까지 쉬웠던 과업은 없었다. 이번에도 똑같이 극복할 뿐이다.

케르베로스의 거대한 몸집에서 나오는 괴력은 위험하지만, 그만큼 몸집이 크기 때문에

자신이 때릴 수 있는 면적 또한 많다.

하예은이 상대방을 분석하고 있는 동안

『크르르릉­』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으르렁거리는 지옥의 경비견.

이내 머리 가운데 놈의 입에선 열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하예은을 향해 지옥의 화염을 내뿜는다.

근접전만 생각하던 중 예기치 못한 지옥견의 불꽃 세례에 당황한 하예은.

이내 네메아의 사자를 소환해 급히 역장을 펼쳐 화염을 막아낸다.

그걸 노렸다는 듯 냉큼 달려와서 하예은의 역장을 꼬리로 후려치는 케르베로스.

콰앙­!!

케르베로스가 휘두른 꼬리질 한 번에 와장창 박살 난 하예은의 포스 필드.

지옥견은 상대방의 숨통을 끊어버리기 위해 따라가 입질을 준비한다.

“예은아, 이대로 쓰러지는 건 아니지?”

저 멀리서 소환용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는 손우진이 넌지시 안부를 물어본다.

손우진의 안부를 신경 쓰지도 않고 챔피언을 물어뜯으려는 케르베로스.

그때 먼지구름 속에서 사자의 머리 형상이 튀어나와 입질을 준비하던 지옥견의 머리를 후려갈긴다.

퍼억!

받은 만큼 돌려주는 하예은.

케르베로스는 께겡 소리와 함께 원래 있던 자리로 날아간다.

쭉 뻗은 어퍼컷 자세로 사자의 기운을 담아 올려 치는 기술.

하예은의 무투술, 프라이드 로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입에 흐른 피를 팔로 닦아내는 하예은.

“아직 멀었거든요.”

맹견을 잠시 제압한 뒤 안부 인사에 답한다.

방어는 의미가 없다, 최대한 공격적으로 나서면서 상대의 공격은 회피하자.

하예은이 방어를 내리고 공격적인 자세를 취한다.

그러고선 케르베로스가 날아간 장소를 향해 추격하기 시작한다.

. . . . .

“동물 병원에 끌고 가려 하는 주인과 버티는 강아지 같네.”

저승을 개판으로 만들고 있는 하예은과 케르베로스.

온 바닥이 성한 구석이라곤 한 개도 찾아볼 수 없다.

싸움을 지켜보던 중 드디어 내가 개입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케르베로스가 굉장히 열 받았는지 세 개의 아가리에서 열기를 뿜어댄다.

한 개면 몰라도 세 개의 브레스는 지금 저 아이에겐 벅차다.

“아저씨!”

부르지도 않았는데 왜 개입하냐고 투정을 부리는 하예은.

“지금도 살짝 휘청거리는데 잘도 막아내겠다, 야.”

우리가 떠들거나 말거나 자신이 받은 무자비한 폭력을 분노로 치환하는 케르베로스.

이윽고 그 분노를 화염으로 뱉어낸다.

『 크와아아아아! 』

발을 들어 땅을 크게 찍은 뒤 우리 앞으로 산을 소환한다.

팔괘 7장 간(?: )

태산을 뒤덮는 화염이 산 너머 우리를 향해 쏟아지려 한다.

하예은에게 얼마나 맞았는지 화염에도 분노가 담겨있는 것 같다.

“두 번 남았어, 마지막 기회는 어디다 써야 하는지 알지?”

“네.”

시니컬한 대답과 함께 내 쪽은 바라보지도 않고 불을 내뿜는 케르베로스를 쳐다보는 하예은.

완전 운명의 숙적을 만나셨구만.

다시 세 머리의 개를 향해 뛰어드는 헤라클레스의 챔피언.

서로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이다.

아마 기세가 먼저 꺾이는 쪽이 지게 될 것이다.

그것을 아니깐 서로 아득바득 싸우는 거겠지.

“작성은 다 끝났는데.”

개싸움을 구경하는 동안 작성하고 있던 소환 계약서 작성을 끝마쳤다.

이제 하예은이 멍멍이를 제압하고 끌고 오는 것만 남아있는 상황.

퍼억­!

뭔가 크게 맞는 소리가 나서 싸우는 현장으로 다시 눈을 돌리니

케르베로스의 왼쪽 머리가 휘청거리는 것이 보인다.

하예은 또한 상태가 그리 멀쩡하지는 않은지 오른쪽 사자의 건틀릿이 깨져있다.

이윽고 하예은이 다른 머리에 달려들어서 남은 건틀렛으로 머리를 후려친다.

쿵­ 쿵­

때릴 때 마다 북 소리가 나는 것 같아.

복날에 개잡듯이 케르베로스를 두들겨 패고 있는 중이다.

케르베로스의 저항이 심해지니 목덜미를 잡아 메치기를 시도하는 하예은.

“하아아아앗!”

큰 기합을 내지른 후 그 거구의 강아지를 들어 엎어친다.

왼쪽 머리가 그로기에 빠져서 제대로 힘을 못 쓰는지 그대로 넘어가는 케르베로스.

『깨겡­!』

쾅­!

넘어가는 거대한 멍멍이, 거기서 분이 풀리지 않은 건지 한 번 더 도약해서

다른 기술을 준비하는 하예은.

손에 장착한 네메아의 사자 건틀릿을 벗어 두 손으로 잡은 뒤

헤롱헤롱 거리는 멍멍이의 옆구리에 박아 넣는다.

“어우!”

보는 내가 다 아프네.

괜히 내 옆구리를 쓰다듬게 된다.

저 위치에 때린 것을 보니 기술로 따진다면 리버 블로우다.

간장 쪽을 크게 후려쳐서 숨이 멎는 듯한 고통을 주는 끔찍한 기술을 그대로 박아넣은 하예은.

저 아이를 화나게 만들면 안 될 것 같아.

“아저씨! 지금이에요!”

“간다 가.”

불공정 계약서가 담긴 소환용 두루마기를 들고 쓰러져 있는 케르베로스에게 다가간다.

일회용이긴 하지만 얌전히 계약에 응하렴.

두루마기를 놈 앞에서 펼친 뒤 도술을 외운다.

서서히 안으로 빨려들어 가는 케르베로스.

그 순간 눈을 떠 버린 맹견.

자기 신체는 어딘가 빨려 들어가는 중이고 눈앞에 놈이 그 원흉인 걸 알아버린 상황.

『와앙­!』

“개놈의 시키가 어디 입질이야.”

등에 메고 있던 여의를 바로 꺼내 들어 버릇없는 멍멍이의 주둥이를 후려친다.

“아직 기운이 남아있는 것 같은데?”

“제대로 마무리 짓고 올게요.”

개입할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면 이번 과업은 정말로 끝이다.

“유물도 박살 났는데 어떻게 하려고?”

말없이 주먹을 쥔 뒤 들어 올리는 하예은.

흉악한 검은빛 기운을 두른다.

“예은아, 우리는 의견 차이가 있다면 말로 해결하자.”

요즘 애들은 너무 무서워.

. . . . .

­조카의 아이라서 그런가, 정말 괴력은 똑 빼닮았구나.

황당한 얼굴로 소환서를 바라보는 명계의 왕.

거기엔 두들겨 맞아 세 개의 얼굴이 퉁퉁 부은 케르베로스가 그림처럼 박혀있다.

“일회용 계약이라 현세에 잠시 소환된 후 저승으로 돌아올 겁니다.”

­그래, 우리 쪽 아이를 도와줘서 고맙네, 챔피언.

“명계의 왕이시여, 그럼 제 과업은 인정해주시는 것입니까?”

­...

묵묵부답인 명계의 왕 하데스.

속 보인다 속 보여.

“그… 작은할아버님, 인정해주세요.”

­하하하하! 그럼! 인정하고말고!

내 안의 성좌의 이미지가 와장창 무너져간다.

근엄하고 중후한 저승의 성좌, 명계의 왕은 어디 간 것인가.

내 앞에 보이는 신은 가족의 관심에 굶주린 가장만이 보인다.

­그래서, 다시 지상으로 돌아갈 방법은 있느냐?

“예. 천상의 챔피언 안드리안이 저희의 육신을 돌보고 있습니다.

­쯧, 그 뺀질이 녀석. 너희를 핑계 삼아 저승으로 오지도 않았구나.

그리스 금태양을 극딜하는 명계의 왕.

그렇게 명계의 왕에게 보고를 끝마치고 지상으로 되돌아갈 준비를 한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할아버님.“

­힘든 시기에 인간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거라.

사실 저승에 오는 인간들이 너무 많아서 말이야 하하!

서류에 치어 사는 명계의 왕의 투정을 들으며 저승의 입구로 돌아가기로 했다.

. . . . .

”왜 그렇게 말수가 적어지셨나?“

조용히 노만 젓고 있는 카론.

명계의 왕의 손님이라 안 태울 수도 없어 우리를 순순히 배에 태운 뱃사공 녀석.

”끄음... 내 왕의 손님을 몰라뵈어서 미안하네.“

”참나, 환술에 또 당하기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사기꾼 녀석.

이글거리는 불의 강, 얼음의 강, 시름의 강을 건너 우리가 처음 왔던 곳으로 되돌아왔다.

뒤돌아보니 그 가혹한 강을 지나는 사이에도 기운이 빠졌는지 일어나지 않는 하예은.

녀석을 업은 뒤 안드리안이 우리를 소생시킬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그리스 출장과는 반대로 녹초가 되어버린 하예은.

그런데 뒤에서 말소리가 들려온다.

"아저씨, 아저씨는 왜 저를 계속 도와주시는 거예요? 사실 거절할 수도 있었잖아요."

"뭐야 안 잤어? 그러면 내려오지?"

"대답 먼저요."

너 생각보다 무게 나가거든?라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다.

아까 그 주먹에 두른 흑색의 기운을 봤잖아.

"그냥, 세상에 자기를 도와주는 사람 하나 있으면 얼마나 든든하냐."

"…"

그리고 예은아, 나에 대해 오해하는데 그 긴고아를 경험해 보면 절대 거절할 수도 없어요.

말이 없어지는 하예은.

"그리고 말이야, 그놈의 아저씨라는 말은 언제까지 할 거야?"

"내년에 30이면 아저씨 맞죠."

"야! 너랑 나랑 차이 얼마나 난다고 그러냐."

"조만간 저랑 앞자리 숫자가 달라지는데 인정하세요."

그렇게 하예은과 투덕거리면서 시간을 보내는 사이 우리의 몸이 옅어지기 시작한다.

금태양 녀석, 시간이 다 되었나 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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