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스위치 오프
* * *
저승의 뱃사공 카론.
죽은 이들이 비통의 강 아케론에 도달하면 그들을 배에 태워
저승으로 실어 나르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 모두 카론이 없다면 이 비통의 강 아케론을 건널 수 없다고 하는데.
강으로 가까이 다가가 손을 한 번 담가본다.
현재 내 상태는 죽음과 삶 그 중간에 걸쳐있는 상황.
이 미세한 생명을 느낀 수많은 망자들이 나를 인식했나 보다.
살아 있는 자에 대한 분노와 비통함을 느끼고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흑흑흑…
억울하다…
원통해…!
이 녀석은 왜 살아있는 거야…!
너도 지나갈 수 없어!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인지 부정한 말을 끊임없이 쏟아내며 내게 다가오는 망자들.
인간이 지닌 삶에 대한 집착은 죽은 뒤에도 꺼지지 않는 것인가.
안타까운 현실에 자비를 베푼다.
“죽어서도 살아생전의 괴로움을 마주하지 못한 불쌍한 이들이여.”
존재의 괴로움, 고성제(???)를 외면한 이들은 자기 자신의 처지를 회피하고 있을 뿐이다.
“태어나는 것, 늙는 것, 병드는 것, 죽는 것, 기쁨과 노여움, 즐거움과 슬픈 일
모두 영속하지 못할 것이니.”
나의 팔을 끌어당기며 울부짖는 망자들에게 작디작은 위로를 건네며 현실을 일깨워 준다.
“불편한 진실을 용기 있게 마주하십시오.
세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평온을 찾으십시오.
평온을 향한 첫걸음을 걸으십시오.”
아아아아
강물 속 망자들의 탄식이 들려온다.
부처의 가르침, 불법을 듣고선 빛으로 환원되기 시작한다.
“의외로 다정하시네요, 아저씨.”
이를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하예은이 웃으면서 말을 건네온다.
“뭐가 말이야?”
“아저씨라면 망자들을 두들겨 패서 쫓아낼 줄 알았어요.”
“참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막돼먹진 않았거든. 투전승불의 챔피언이 그러면 되나.”
싸움의 부처라고는 하지만 부처는 부처 아닌가.
그의 제자인 만큼 마스터 펑키파마의 자비심을 실천했을 뿐이다.
“저 사람들은 어디로 가게 되나요?”
“해탈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을 뿐이야, 자신이 깨달은 곳까지 도달하겠지.”
이 비통의 강에서 끊임없이 비명을 지르는 것보다는 괜찮을 것이다.
아케론을 채우고 있던 대량의 망자들이 떠나가자 나를 노려보는 저승의 뱃사공들.
다양한 신화 속 지옥의 운반자들이 이 부정행위에 화가 많이 났나 보다.
“꼬우십니까? 저는 카론이라는 자가 시켜서 했을 뿐입니다.”
“나는 그런 적이 없네!”
자신이 언급되자 화들짝 놀란 목소리가 들린다.
뱃사공들이 다 함께 쳐다보는 곳을 보자
그곳에 후드가 달린 로브를 입은 노인이 배를 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찾았다.
“아 카톤이었나 카툰이었나, 제가 착각했나 보네요. 볼일들 보십쇼.”
얼굴에 철판을 깐 뒤 저승의 뱃사공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저승의 왕을 뵙고자 하는데 배 좀 빌려 탑시다.”
“뻔뻔한 자로세… 알다시피 공짜로 태워 줄 순 없소.”
“여기 두 명분의 뱃삯입니다.”
하예은에게 건네받은 금화 한 닢을 포함해 뱃사공에게 두 닢을 건넨다.
“흐음… 당신은 살아 있는 자도 죽은 자도 아니군.”
“반은 죽어 있으니 살아 있는 자는 태울 수 없다는 규율은 어긴 것이 아닙니다.”
“정말 제멋대로인 젊은이로세 쯧쯧.”
혀를 짧게 차고는 노를 저을 준비를 하는 카론.
이제야 저승을 향한 여행길에 접어들었다.
출발하기 전 하예은에게 다가가 짧은 조언을 남긴다.
“강을 지나는 동안엔 절대 강물을 쳐다보지 마,
그리고 저 영감이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말고.”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는 하예은.
눈치가 빨라서 좋다.
. . . . .
우리를 태우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카론의 나룻배.
카론이 노를 저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심장까지 오싹해질 정도의 한기가 우리를 덮친다.
시름의 강 코퀴토스에 도달했나 보군.
강물을 쳐다보면 생전 자신의 삶을 보여주는 신기한 강물.
죽은 자는 살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시름에 잠긴다고 하여 시름의 강이라 불린다.
챔피언의 삶도 여지없이 투영하는 시름의 강.
단란한 부모님의 모습 그리고 동생과의 추억들이 보인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렇게나마 볼 수 있었으니 이번 출장은 의미가 없지는 않네.
강물을 향해 손을 뻗으니 그대로 얼어붙어 산산이 박살 나는 옛 추억을 담은 강물.
“지나간 시간을 붙잡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지.”
오랜만에 가족들 얼굴을 본 것에 만족하자.
얼어붙은 손을 꽉 움켜쥐어 얼음을 박살 내버린다.
“허어! 그렇게 쉽게 시름을 털어내다니, 미련이 없나 보구만.”
“미련이 있음을 알기에 쉽게 털어내는 거죠.”
투전승불의 밑에서 고행을 겪은 시간이 얼마인데 이곳에서 사로잡히겠는가.
서당개도 풍월을 읊는 마당에 나도 부처 그 언저리쯤 경지라도 도달 했겠지.
우리를 태운 나룻배가 마음을 얼어붙게 만드는 시름의 강을 지나자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곳, 불길의 강 피리플레게톤에 도달한다.
“저승의 강 주제에 일교차는 한국과 같네.”
추웠다가 더웠다가, 정도가 없는 일교차다.
이곳은 망자들의 영혼을 불태워 순수한 영혼으로 거듭나게 하는 곳이지만
성좌의 챔피언인 우리들의 굳건한 영혼은 태울 수 없다.
“이 정도면 따끈따끈한 정도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나 하예은이나 얼굴과 몸 전체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아이고 젊은이! 이 노인네가 오랜만에 배를 몰아보니 더위에 정신을 못 차리겠네.”
이 찜질방과 같은 환경 속에서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늙은이가 갑자기 신세 한탄을 한다.
말하지 않아도 더워 보입니다.
“그 답답한 로브를 좀 벗으세요. 그것만 해도 한결 좋아질 거 같습니다만.”
“이 사람아! 이건 내 직업복인데 함부로 벗으라는 말은 하지 말게,”
나의 배려가 답답하다는 듯 소리치는 카론.
이어서 은밀한 목소리로 내게 한 가지 제안을 해 온다.
“이 늙은이의 노를 잠깐만 맡아 줄 수 있겠나? 잠깐만 쉬고 나서 내 최대한 빨리 노를 젓겠네!”
“어휴, 어르신이 힘들다고 하시는데 이 젊은이가 어찌 거절합니까?”
“하하하! 정말 고맙네. 역시 자네는 첫눈에 봤을 때부터 범상치 않아 보였네.”
혹여나 내가 거절할세라 얼른 노를 건네는 카론.
그가 건네는 노를 붙잡는다.
노를 붙잡으니 인심 좋은 표정을 싹 지워버리는 노인네.
“크크크크…하하하하하!!!”
이윽고 사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크게 웃어버린다.
참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저승의 뱃사공.
“거참, 노를 잠깐 놓은 것이 그리 즐거우십니까?”
“잠깐이 아니다 멍청한 것. 이제부터 네 놈이 카론이다.”
흐흐흐, 그리도 기분이 좋은지 또 한 번 실소를 흘리는 카론.
“카론은 저승의 배를 모는 뱃사공의 지위를 뜻하는 말, 네 놈이 노를 잡은 순간부터
그 지위를 물려받은 것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크흐흐흐, 자네도 저승의 배를 몰면서 자네처럼 멍청한 이를 찾을 때까지
망자들을 태우게나. 그럼 어서 나를 저승까지 태워주게 하하!”
카론이였던 이 자도 오랫동안 저승의 뱃사공 역할을 떠맡은 건지
홀가분 하다는 표정으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려 한다.
“그런데 어르신.”
“나를 불러도 이젠 소용없다네.”
“언제부터 제가 노를 손에 쥐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지금 막 해방된 노예의 귓가를 울리는 손우진의 목소리.
당황한 노인이 깨어나 새로운 뱃사공을 쳐다보자 손에는 노가 없다.
“이,이게 무슨…!”
“혹시 저놈이 노를 잡았습니까?”
노인의 뒤편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카론의 복장과 똑같은 로브를 입고 나타난 손우진이다.
“흐억!”
놀라서 배 한 편으로 자빠지는 노인.
새로운 뱃사공 손우진과 로브를 입은 손우진이 노인을 빤히 쳐다본다.
“너무 더워서 우리를 착각 하신 건가?”
“더위를 드신 것 같기도 하고, 우리가 아닌데 쯧쯧.”
똑같은 얼굴로 태평하게 대화를 나누는 두 명의 손우진.
손우진이 턱을 괴면 또 한 명이 따라서 턱을 괸다.
다른 쪽이 머리를 긁적이면 또 다른 쪽도 긁적이기 시작한다.
“저쪽에 있는 저놈은 어떠십니까?”
“저쪽에 있는 저놈은 어떠십니까?”
같은 억양,성량,발음으로 배의 끝자락을 가리킨다.
카론은 고개를 돌려 배 끝자락을 쳐다본다.
그곳엔 불길을 뚫고 올라온 앙상한 뼈로 이루어진 손이 매달려 있다.
이내 얼굴을 빼꼼 내민 뼈다귀 하나가 붉은 안광을 빛내며 입을 딱딱거린다.
제가 노를 잡았습니까?
뼈다귀는 입을 딱딱거릴 뿐이지만 카론에게는 그렇게 들리는 것 같았다.
이후 모든 손우진이 한마음 한뜻으로 외친다.
제가 노를 잡았을까요?
제가 노를 잡았을까요?
제가 노를 잡았을까요?
불길 속에서 튀어나온 수많은 스켈레톤이.
하늘에서 나타난 손우진의 얼굴이.
배에 올라타 있는 두 명의 손우진이.
모든 시선이 노인을 쳐다보며 동일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그만
그만해!
그만둬!!!
“그만!!! 잘못했네! 내가 잘못했어, 제발 배를 몰게 해주게! 부탁이야!”
귀를 틀어막고 눈을 감은 채 외면한 채 비명을 지르는 전직 뱃사공.
아직 은퇴하고 싶지 않은 성실한 뱃사공 카론.
이렇게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 . . . .
질렸다는 표정으로 애써 나를 외면한 채 열심히 배를 몰고 있는 카론.
“아저씨, 아까는 대체 무슨 일이에요?”
하예은이 좀 전에 일어난 카론의 은퇴 번복 사건이 궁금했는지 내게 질문해온다.
“뭐, 더워서 헛것이라도 봤나 봐.”
제천대성의 눈, 화안금정을 얻은 이후부터는 내게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
모든 진실과 거짓을 꿰뚫어 보는 눈을 상대로 사기를 치려 했던 놈이 멍청한 거지.
놈이 사기를 친 그 순간부터 내 환술에 빠져 자기 혼자 헛것을 보고 허우적거린 것이다.
그렇게 짧은 소란이 지나간 뒤.
구부정하게 휘어있는 강, 명계를 휘감고 있는 스틱스의 강물을 지나오자
보기만 해도 웅장하고 아름다운 궁전이 보인다.
“도착했군.”
“도착했네요.”
이곳이 저승을 다스리는 성좌가 거주하는 곳, 하데스의 궁전이다.
“자 그럼 하던 일 빨리 보게나! 나를 찾지 마시고!”
허겁지겁 떠나가는 지옥의 뱃사공.
이거 어쩌나, 집에 갈 때도 한 번 더 봐야 할 텐데.
“예은아, 여기서부터는 네 차례다.”
“네, 알고 있어요.”
저승의 왕을 알현할 시간이다.
조카의 자식 같은 아이가 왔는데 살갑게 대해 주겠지.
순전히 내 희망사항일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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