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과산 스트리머-17화 (17/106)

〈 17화 〉 깐프가 방송을 잘함

* * *

“대체 이것들하고 어떤 방송을 한 거야?”

내가 방송을 할 때도 8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나름 기강을 잡는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들의 채팅을 보고 있으면

자신까지 피폐해지는 느낌이라 오래 방송하기는 싫다.

그런데 이 깐프는 대체 첫 방송을 몇천 명의 악질들을 데리고 5시간 이상을 방송한 건가.

“그냥 저에 대해서 떠들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가더라구요.”

“그래서 다 털어놓은 거야?”

“어쩌다 보니 헤헤.”

이 얼빵한 표정을 보고 있으면 엘프들의 보호를 위해서 라돈을 데려오길 잘한 것 같기도 하고.

시청자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을 몇 개 정도 받고 빨리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자. 화과산 엘프가 방송에 등장하는 일은 오늘이 마지막일 테니, 궁금한 건 오늘 얼른 물어봐.”

[절대 고정출연해]

[화과산 엘프는 치트키인데 이걸 포기하네 ㅋㅋ]

[니 방송보다 엘프녀 보는게 낫지]

[흐름을 모르네 원숭이 새끼]

예상대로 반발이 심하다.

“싫으면 지금 끄지 뭐.”

강하게 나오자 바로 수그리는 녀석들.

녀석들에겐 절대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엘레나, 채팅을 보고 네가 대답하고 싶은 질문들을 골라봐.”

“다들 빠르게 입력하셔서 무엇을 골라야 할지...”

채팅창을 보고 질문들을 선별하는 엘레나.

어련히 알아서 고르시겠지.

“이걸로 할게요, 엘프 분들은 평소에 어떤 음식을 즐겨 먹나요?”

나왔다 엘프 고정관념 1순위 채식 엘프.

“제발 채식주의자라고 답해주세요... 라고 질문을 해주셨는데, 아하하!

저도 생명체인데 풀만 먹고 어떻게 생활하나요.”

[갈!!!!!!!!]

[네 이놈 깐프녀석!!!!!]

[이런 건 엘프가 아니야!!!]

[엘레나 몸에서 나가!!!!]

피눈물을 쏟아내며 채팅을 써 내려가는 종족 차별주의자들.

자신들은 오늘도 치킨 한 마리를 먹으면서 자신들 머릿속 엘프는

풀때기만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기적인 놈들이다.

“너희들의 그런 고정관념, 오늘 엘레나가 다 박살 내버렸네.”

“채식하는 엘프 가족분들이 지구에 따로 계시나요?

”아아, 누군가의 머릿속에 존재했는데 네가 지금 박살 낸 상황이야.“

잘 모르겠다는 듯 갸우뚱하는 엘레나.

”그럼 다음 질문 골라 볼게요, 음...엘레나눈나는 손우진보다 나이가 많을 거 같은데

왜 존댓말을... 아잇, 다음!“

급하게 읽던 것을 끊어버리고 다른 질문을 찾아보는 엘레나.

장수종의 예민한 부분을 찔린 모양이다.

”인간식으로 나이를 계산한다면 제가 우진님보다 나이가 어릴 거에요!“

[마! 내는 그럼 엘프식으로 치면 300살 정도 된다 아이가]

[ㄹㅇㅋㅋ 햄이라 불러라 엘레나]

[우리집 밍키도 사람 나이로 치면 20살 되는데 엘프식으로 하면 200살은 됨]

[위아더 월드로 다 같이 친구 먹을 수 있네 ㅋㅋㅋ]

그런 계산법이 어디 있는가. 있는 그대로의 나이로 계산해야지.

엘레나를 한번 골려 봐야지.

”엘레나 누나.“

”화낼 거에요?“

싸늘하게 노려보는 깐프 누나. 방금 눈빛은 라돈에 버금가는 눈빛이다.

장수종이라도 여자들은 나이에 엄청 민감하네, 무서워라.

”흠흠! 다음 질문 골라 볼게요, 엘프 분들은 보통 어떻게 싸우시나요?

정령술 같은 것에 능통하나요?“

참 전형적인 질문들만 골라서 읽는구나 엘레나.

”어머니 세계수 님의 대전사들은 검을 사용하는 편이고, 정령술에 조예가 있으신 분들은

자연의 정령들의 힘을 빌려서 사용하는 편이에요.“

손에서 작은 바람 덩어리를 소환하는 엘레나.

”이런 식으로 정령들이 힘을 빌려주고 있어요.

하지만 화과산 밖으로 나가면 왠지 기분이 나빠 보이는 어두운 정령들이 많더라구요.“

아마 지구의 탁한 공기나 매연 덩어리로 이루어진 정령들일 것이다.

[좆간이 또...]

[지구가 미안해]

[좆간 네버 체인지...]

[하다못해 유해물질 정령도 있네 ㅋㅋㅋㅋ]

이 정도로 질의응답을 했으면 녀석들도 불만은 없겠지?

이제 방송을 슬슬 마무리할 밑밥을 던진다.

”자. 대충 궁금한 것들은 다 물어본 것 같은데 이제 끈다?“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줬지만 역시나 반발하는 착한 시청자들.

”몇 개만 더 받고 가라고? 엘레나와 무슨 관계냐고 물어보는데...“

여기서 필요한 기술은 손우진 오리지널 주둥아리술.

”마음대로 생각하십쇼.“

이 한마디를 남긴 채 방송을 꺼 버린다.

. . . . .

”그렇게 끝내셔도 되나요? 혹여나 오해라도 하면 어떡해요.“

”저렇게 두루뭉술하게 끝내야 자기들끼리 씹고 뜯고 맛보느라 정신없을 거야.“

커뮤니티에 가서 상상의 나래들을 펼치느라 급하게 방종한 것에는 신경도 안 쓸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리고 엘레나, 우리끼리 마무리 지어야 할 게 있지 않아?“

뜨끔하고 몸을 움츠리는 깐프.

내가 그냥 넘어갈 줄 알았나 보다.

”엘레나, 내가 괜히 제한을 걸어 둔 게 아니야.“

”하지만 지구의 인터넷은 정말 재밌다구요...“

나름대로 항변해보는 인터넷 중독 깐프.

내 집에 들어와서 몰래 컴퓨터를 켤 정도면 중증 환자다.

”인터넷을 즐겨하는 것은 좋은데 그곳에 함몰되는 것은 정말 위험해.

다른 엘프들은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지?“

”네, 저 말고는 다들 관심이 없어요.“

엘레나 녀석이 별종이긴 한가 보다.

전자기기를 사랑하는 숲의 종족이라니,

”그 간극을 정말 조심해야 해, 너밖에 모르는 단어를 사용하다가

엘프들과 다툼이 생기면 어떻게 할 거야?

“그건...”

이 오염된 엘레나가 나에게 인터넷 용어를 뱉은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순수한 깐프들은 배경지식도 없을 텐데 서로 오해만 생길 뿐이다.

“조심할게요...”

“그래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된 거지.”

“그러면 제한은 풀어주실 거죠?”

“아니? 풀어준다는 말은 한마디도 안 했는데?”

다시 한번 벌어지는 엘레나와의 실랑이 2차전.

결국 타협한 끝에 일레인의 감독하에 이용 시간을 정해놓고 컴퓨터를 사용하기로 했다.

집요한 깐프 녀석.

. . . . .

한동안 평화로운 생활이 순조롭게 계속되는 중이다.

괴수도 사건도 빌런도 없는 조용한 삶.

가끔 심심할 때마다 방송을 통해 무료함을 달랜다.

마음의 안식을 취하고 있는 그때 들려오는 전화기의 진동 소리.

위이이이잉­

금태양이다.

이 자식은 왜 전화를 하고 난리야.

“왜 전화했어.”

“Αδελφ! (Adelfós!)”

목에 기름을 두른 듯 유창하게 혀를 굴리는 금태양의 목소리가 나를 반긴다.

“한국어로 말해 새끼야.”

“형제여! 형제가 그리스어로 답해 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신들의 챔피언으로 선정된 이들은 모든 언어로 소통할 수 있다.

언어의 저주에서 해방된 이들끼리 자유롭게 소통이라도 할 수 있어야

지구를 지키든 협력을 하든 할 것 아닌가.

아쉬운 쪽에서 맞춰야지. 내가 다른 말로 말하기는 싫다.

“노 땡큐다 이 자식아, 무슨 일인데.”

호탕하게 웃어버리는 금태양이 본래 얘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하하하! 다름이 아니고 시스터의 과업은 언제 시작할 건지 궁금해서 말이야.”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이 놈은?

이 놈이 시스터라고 부를만한 인물은 하예은이다.

하예은의 과업을 도와준 것은 진작에 끝났는데.

“무슨 소리야, 황금 사과는 진작에 땄다고.”

“형제야말로 무슨 소리인가, 당연히 케르베로스 생포를 말하는 거지!”

내가 계약서를 잘못 읽었나.

신주 한 병을 얻기 위해 나를 올림포스 쪽으로 파트타임 2번에 팔아먹었다고?

“잠깐만, 내가 뭐 하나만 알아보고 연락할게.”

“기다리지 형제!”

띠링­

전화가 끊기자 찾아오는 적막감.

분명 듣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허공을 향해 이 불공정 계약이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본다.

“스승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그 서역의="" 신들이="" 빚은="" 술들이="" 꽤="" 맛있어서="" 말이야.=""/>

“고생하는 제자를 위해 한 병 정도는 챙겨 두셨죠?”

<크흠, 한="" 병="" 정도는="" 줄="" 수="" 있지.=""/>

그것 참 눈물 나게 고맙군요.

제자는 크기는 집채만 하고 대가리는 3개 달린 신화 속 멍멍이와 싸워야 하는데.

괜히 더 지랄해봤자 적반하장으로 긴고아형을 내릴 것이 분명하기에 여기서 참는다.

다시 한번 전화를 걸어서 약속을 잡기로 한다.

“여보세요.”

“날짜.”

“네?”

내 두서없는 말에 당황하는 하예은.

“미안, 나야 손우진. 지금 과업에 대해서 들어서 말이야.”

“아... 아저씨와 상의 없이 성좌께서 진행하신 건가요?”

“상황을 보니 그런 것 같네. 이번에는 금태양 녀석도 참여한다며?”

“금태양이요?”

아 이런식으로 말하면 하예은이 모르겠구나.

뜻을 풀어서 설명해 준다.

“금발 태닝 양아치 그 녀석 말이야.”

“후흡...”

급히 웃음을 참는 기색을 보이는 하예은.

너도 그 녀석이 금태양처럼 보이는 것은 인정하는 거 맞지?

“흠, 안드리안이 들으면 상처 받을 거에요.”

“미안하지만 웃는 거 다 들렸거든, 통화도 녹음해 둘 거야.”

“진짜 심술 좀 그만 부리세요.”

금태양 녀석은 저승의 길잡이로서 동행하는 건가.

라돈보다는 급이 한 단계 떨어지지만, 케르베로스 또한 저승의 문지기.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이런 녀석을 생포하라니, 그 녀석의 도움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마지막 시련은 그래도 저번보다는 쉽겠네."

"생포해야 되는 입장이라 더 어렵지 않을까요?"

"내게 다 생각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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