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등용문
* * *
안소정을 찾기 이전에 유일교에 찾아가 미카엘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
실종 사건을 상관도 없는 악마들의 소행인 것처럼 말하고
정 신부님이 김승연을 언급하기 전에 끼어들어 무엇을 숨긴 건지.
“죄송하지만 현재 교단 내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습니다.”
교단으로 들어가려 하는 나를 막아서는 교단 내 성기사 단원들.
내가 평소 같으면 이해해 줄 수 있는데
동생이 납치 당한 지금 머리에 피가 많이 몰린 상태라 인내심이 부족할 거다.
“그건 누가 명령한 건데.”
“외부인에겐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날 만나고 싶지 않은지 대응 매뉴얼을 준비를 해둔 천사 녀석.
숨기고 싶은 비밀 하나 정도는 다들 갖고 있지만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될 가능성이 있는 지금 상황에선 털어놔야 할 것이다.
“난 들어가고 싶은데?”
“그럴 수는 없습니다.”
손에 쥔 무기를 다시 한 번 고쳐 잡는 녀석들.
“나 제천대성의 제자 손우진이 출입하기를 한 번 요청한다.”
도술을 읊어 녀석들에게 업(?)을 쌓는다.
나의 출입을 금지하는 그 행위로, 미래에 일어나는 무의미하고 끔찍한 교인들의 희생.
새로운 힘을 손에 넣어 살생을 자행하는 김승연.
미래의 모든 가능성을 지닌 업이 내 입을 통해서 나를 가로막는 성기사 단원들을 짓누르기 시작한다.
크헉... 커억!
각혈하면서 무릎을 꿇는 유일교의 성기사 단원들.
개인 하나하나가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운 업이다.
다 같이 나누어 받았어도 그 무게는 그렇게 가볍지 않을 것이다.
쓰러져 가는 그들을 눈앞에 두고 한 번 업을 불러낸다.
“나 제천대성의 제자 손우진이 출입하기를 두 번...”
<그만! 챔피언,="" 그들을="" 내버려="" 두고="" 들어오도록="" 하라.=""/>
신도 사랑이 끔찍하시군.
후우!
성기사들에게 쌓인 업을 털어버리곤 쓰러져 있는 단원들을 지나 교단으로 들어갔다.
. . . . .
“왜 찾아왔는지는 이미 알고 계신 것 같고.”
나를 막기 위해 성기사들을 교단 앞에 배치한 것부터
켕기는 것이 있다는 소리.
“사건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던 제 동생이 납치 당했습니다.”
<.../>
“이에 대해 할 말은 없으십니까?”
안소정의 납치건을 얘기해도 쉽게 입을 열지 않는 천상의 성좌.
내 언변 실력이 부족한 걸까? 나도 안소정처럼 도우미의 힘이 필요하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머리카락 한 개로 소환할 수 있는 어디서든 티타늄 여의.
“아까 교단으로 들어오면서 한 생각인데, 건물이 생각보다 낡았더라고요.”
여의를 집어 들고 한 번 힘차게 휘둘러 본다.
후웅
“제가 그래도 어릴 적에 신세도 졌는데 철거만 도와드릴게요, 재건축은 교단에서 알아서 하시고.”
<말하겠다 챔피언,="" 멈추어라!=""/>
교단 건물에 애착이 생기신 건지 나를 말리는 미카엘.
<...김승연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겠지.=""/>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하세요, 동생에게 보낸 분신의 지속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아요.”
안소정에게 머리카락 하나를 숨겨 두었기 때문에
잠깐은 분신이 시간이 벌어줄 순 있겠지만, 분신의 전투력은 나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언제까지 버텨줄지 예상할 수 없다.
<김승연은 심판의="" 날에="" 내가="" 거둔="" 아이다.=""/>
심판의 날.
밀레니엄 쇼크 당시 현세에 천사들이 내려와 벌인 학살.
타락한 교인들에게 벌을 내린 그 날에 생존자가 있었다라.
“아이까지는 차마 죽일 수 없었습니까?”
<천사들에게 심판받은="" 이들은="" 천상에="" 올라올="" 수="" 없다.=""/>
조금 침울한 기운으로 말을 이어가는 미카엘.
어긋난 신념을 지닌 배교자 부모가 데려온 아이를 자신이 심판할 권리가 있는 것인가?
이 어린 생명은 천상에도 올라갈 수도 없을 정도의 죄를 지녔는가?
신께 질문을 구해봤지만 스스로 판단하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렇게 거둔 아이를 왜 파문을 하신 겁니까?”
<본인을 부모처럼="" 따르던="" 그="" 아이의="" 믿음은="" 올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천상의 성좌를 섬기는 아이는 유일신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당연히 그 아이에겐 자신을 지켜보는 천사를 신으로 섬겼을 것이다.
성좌를 향한 그 애정이 비틀린 것일까.
<김승연은 자신="" 또한="" 나와="" 같은="" 성좌가="" 되는="" 것을="" 꿈꿔왔다.=""/>
“부모 같은 성좌와 똑같은 존재가 되길 바란 거군요.”
그분에 대한 믿음이 없는 이는 아무리 신성을 쌓는다 해도 천상의 성좌는 될 수 없다.>
천상의 성좌가 자식처럼 키운 것이 오히려 독이 되어버렸군.
자신이 인간인 것에 분노한 나머지 일을 저질러 버렸나.
그것이 김승연을 파문할 수밖에 없던 이유다.>
“그러면 김승연이 주장하는 위대한 과업이라는 것은.”
<아마 다른="" 이의="" 신성을="" 빼앗아="" 스스로="" 성좌의="" 자리로="" 오르려="" 할="" 것이다.=""/>
멍청한 놈.
초창기 히어로들이 무투의 길을 걸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성좌에게 받은 신성에는 자신의 신성을 섞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 저것 잡다한 신성을 몸에 축적한다면
그릇이 오염되어 결국 폭주할 것이 뻔하다.
혹여나 온전히 남의 신성을 빼앗는다 해도 자신이 그렇게 바라던 천상의 성좌에 올라갈 수 있을까?
헛된 꿈을 꾸는구나, 김승연.
“제 방식대로 해결할 겁니다.”
<자비를 바랄="" 순="" 없는가?="" 챔피언.=""/>
“제가 대신 처벌하는 것을 마지막 자비로 여기십시오.”
놈은 선을 넘었다.
더는 인간으로 대접할 수 없을 정도로.
다시 한 번 심판의 날이다.
. . . . .
“당신은 미쳤어요.”
쇠사슬 수갑으로 두 손이 허공에 묶인 안소정은 자신을 납치한
이 타락한 성직자를 노려보았다.
“세상이 미쳤는데 나 하나 미쳤다고 달라지는 게 있나요.”
김승연은 교단에서 쫓겨난 이후 신성을 쌓을 수만 있다면 닥치는 대로 뺏어왔다.
일반인, 크립티드, 지옥의 피조물, 유일교 교인들.
이미 몸은 제각각의 신성으로 만신창이다.
상관 없다, 이런 인간의 몸뚱이.
신성을 쌓아 성좌로 거듭난다면 육체적 구속을 벗어 저 천상을 향해, 자신의 구원해 준
천상의 성좌 미카엘 님의 곁으로 향할 수 있으리라.
“자 그럼, 안소정 이단심문관. 위대한 과업의 밑거름이 되어주세요.”
더는 인간의 범주라 부를 수 없을 만큼
온갖 종족의 모습이 담겨있는 뒤틀린 팔을 안소정을 향해 뻗는다.
콰앙!
갑작스럽게 안소정의 뒤에서 나타나
추악한 혼종으로 변한 성직자를 날려버리는 철근.
손우진이다.
“오빠!!!”
안소정은 자신의 오빠 손우진을 불러보았지만, 그의 표정이 어딘가 이상하다.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무표정으로 무언가 중얼거리는 손우진.
“동생을 지킨다. 적은 섬멸한다.”
“오빠! 이 수갑 좀 풀어주세요, 저도 함께 싸울게요!”
“동생을 지킨다. 적은 섬멸한다.”
안소정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같은 말을 중얼거리는 손우진.
“나의 과업을 방해하지 마라 미물아!”
어느새 회복한 김승연이 손우진을 향해 포효를 내뿜는다.
이것을 과연 인간의 범주로 볼 수 있는 모습일까.
자신이 흡수한 신성에 악영향을 받은 건지 몸의 절반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한 지 오래다.
크립티드와 지옥의 마물들, 그들의 육신을 생으로 먹는 기행을 통해 신성을 쌓아왔으니
저주받은 모습으로 변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감정이 기복이 심해지자 점점 숙주의 신체를 변화시키는 김승연의 오염된 신성.
“적은 섬멸한다.”
“죽어!!!”
충돌하는 타락한 성직자와 챔피언의 분신.
콰직
힘의 차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분신의 팔 한쪽이 돌아가선 안 되는 방향으로 비틀린다.
아픔도 느끼지 못하는 건지 다른 손으로 여의를 쥐고 한 번 더 후려친다.
“끄아아아아악!!!”
집요하게 김승연에게 남아있는 인간 부분을 후려치는 분신.
본체에게 명령받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자신이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 활용한다.
“오빠! 팔이!”
“동생을 지킨다. 적을 섬멸한다.”
기계적으로 임무를 되뇌고 있지만, 여건이 좋지 않다.
분신은 이 위험한 상황에 자체적인 판단을 내리고 결정했다.
팔 한쪽이 제 기능을 상실한 이상 장기전으로 가는 순간
저 괴수 같은 놈을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
큰 기술로 승부를 봐야 한다.
본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기술을 썼을까.
화룡점정? 팔 한쪽이 뒤틀려 몸의 균형이 맞지 않는 지금은 투창의 제 위력을 낼 수 없다.
진() 여의금고봉? 본체도 사정사정해서 소환하는 유물을 분신인 자신이 다룰 수 없다.
아직 멀쩡히 남아있는 두 발을 이용하자.
여의를 발끝으로 차올려 허공으로 띄우는 손우진의 분신.
그의 앞엔 타락한 성직자가 잔뜩 뿔이 난 채로 달려오고 있다.
왼쪽 발은 묵직하게 대지를 지탱하고, 오른쪽 발은 가볍게 여의봉을 찬다.
자신의 본체 손우진처럼 용이 되고 싶었던 잉어의 꿈.
분신이 생각해낸 기술.
등용문(??門)
괴수가 되어 버린 성직자를 향해 회전하면서 날아가는 은빛 섬광.
오염된 팔로 급히 막아내는 김승연.
“이까짓 거!!!”
불꽃의 마찰열을 내면서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여의봉과 괴수의 팔.
하지만
파직
날아온 여의봉을 그대로 박살 내 버린다.
“흐흐흐, 무기도 없고 팔 한쪽도 박살 난 네 녀석이 이젠 뭘 할 수 있을까?”
분신은 용이 될 수 없는 것인가?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동안 무표정으로 대응하던 손우진의 분신이 김승연의 말에 히죽 웃는다.
그러고선 천장을 가리키는 분신.
놈, 대응할 방법도 잃어버려 원초적인 속임수를 쓰는 건가.
분신의 제스처를 무시하고 안소정과 분신에게 다가가는 김승연.
콰아앙!
“슈퍼 히어로 랜딩!”
잉어의 부름에 응답하여 날아온 용의 등장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