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광신도
* * *
의자에 묶여있는 악마 숭배자의 모습을 찍고 있는 카메라 하나.
이 세 명의 촌극을 조용히 담아내고 있다.
그것을 지켜보러 들어오는 시청자들.
[뭐냐 이거 실제 상황임?]
[이건 또 뭔 컨셉임?]
[옆에 눈나는 누구야]
[복장 봐서는 유일교 이단심문관 같은데?]
“이름.”
“천상의 적대자, 세상 모든 악의 수장이신 그분의 충실한 종...”
짝
“이름.”
“...유재혁.”
“나이.”
“대체 왜 이런 걸 물어보는 거냐!”
짜악
“28살이다...”
“직업.”
“악마 숭배자.”
“악마 숭배자가 일을 하기나 해, 돈을 벌어와? 똑바로 대답 안 해?”
잠시 머뭇거리는 녀석.
“..직...수.”
“안 들려, 크게 말해.”
“무직 백수다!”
“그래, 28살 취미로 악마를 숭배하는 무직 백수 재혁 씨.”
[재혁아...]
[뺨 부은 거 봐 진짜 때렸는데?]
[무직백수 악마숭배자 28살 재혁이 ㅋㅋㅋㅋ]
[놀리지마라 남일 같지 않다...]
[AV 면접 보냐고 지금 ㅋㅋㅋㅋ]
크윽...
자신의 현실을 마주치자 신음을 내뱉는 녀석.
자신을 찍는 카메라 앞에서 솔직하게 고백하기 힘들었을 텐데
용기 있는 모습에 찬사를 보낸다.
“납치 사건은 본인이 일으킨 것이 맞나요?”
“빨리 나를 풀어라! 그분께서 노하실 거다!”
“유일교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그러니깐, 왜 그걸 우리한테 와서 찾는 거냐고 아까부터 말했잖아!”
“정말 독하네요, 챔피언 님.”
“이것까지는 존엄성을 지켜주기 위해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지.”
도술로 종이 한 장과 볼펜 하나를 소환한 뒤 글귀 하나를 써 내려간다.
“이거 읽을래? 아니면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을까?”
“그만둬! 지옥의 성좌를 모독할 셈이냐!”
“내가 모독했냐? 네가 읽었을 뿐이지.”
“그런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여 놓지 마라!”
‘지옥의 수장 사탄은 천국 출신 낙제생이며 지옥으로 쫓겨난 패배자이다.’
지옥의 성좌를 숭배하는 놈들이라면 읽기만 해도 온몸의 구멍에서 피를 토해내고
득달같이 반박할 만한 문장이다.
“낭독하시오.”
“죽어도 못해!”
“그럼 죽어야지 뭐, 어쩔 수 있나. 소정아, 오 장의사 데려와.”
안소정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방금 까지만 해도
유재혁이 소환한 지옥의 피조물이었던 것들의 찌꺼기가 묻어있는 전투 망치를 들고 온다.
“뿔박이단, 낭독하시오.”
“못해!”
“오.”
“뭐...뭘 세는 거야 지금?”
“사.”
“기다리라고! 뭘 세는 거냐고 묻잖아!”
“삼.”
숫자가 줄어들수록 함께 올라가는 안소정의 오함마.
그걸 본 녀석이 발작을 한다.
“못 말한다니깐!!! 우리가 한 일이 아닌데 어떻게 자백하냐고!!!”
“이.”
“이 미친 새끼야!!! 사람이 말을 하면 들어!!!”
“일.”
[재혁이라는 사람 연기 존나 잘하는데 ㅋㅋㅋ]
[이거 연기지? 서로 짜고치는 거지?]
[제발 주작이라고 말해줘]
[와 시발 방송 이러다 정지먹는다ㅋㅋㅋㅋㅋ]
[어우 씨발 눈 감았다 죽었냐?]
뿔박이를 향해서 날아드는 오함마.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다니, 참된 신자이다. 부럽다 사탄!
“끼에에에에에엑!!!!!”
단말마를 남기며 기절해버린 뿔박이 녀석.
애초에 죽일 생각은 없었기에 안소정의 성스러운 오 장의사는 녀석의 눈앞에서 멈춘 상태다.
그 순간 들고 있던 종이가 불타고 카메라가 터져 나간다.
지옥 끝 바닥에서 올라오는 음습하고 어두운 기운의 신성이 등장한다.
“신자를 너무 엄격하게 키우는 거 아닙니까?”
<낭독했다면 직접="" 지옥으로="" 끌고="" 왔을="" 터.=""/>
지옥의 수장.
가장 밝은 빛을 지닌 자였으나 심연의 끝자락까지 추락한 자.
의외로 잔챙이까지 신경 쓰는 참된 지옥의 사장이다.
“지옥의 대표님 좀 불러 보려고 재롱 좀 피워봤는데, 한 가지 여쭙시다.”
<물어보거라, 원숭이의="" 제자야.=""/>
“이번 일, 악마 쪽에서 꾸민 거 진짜 아니요?”
<천상을 섬기는="" 어떠한="" 잡것들도="" 공양="" 된="" 적이="" 없다.=""/>
“부모님 이름 걸고?”
전 소속이지만 뭐 어때, 뿌리는 그쪽인 걸 부정할 수 없는데.
크크크. 그래, 그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마.>
비장의 수가 안 먹히네.
쫓겨난 자식이라 부모님 이름 정도는 간단하게 팔 줄 알았는데?
이 정도면 납치는 이들의 소행이 아니다.
천사 미카엘이 틀린 걸까.
지옥의 군주가 직접 인정할 정도면 이쪽의 소행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면 교단 내 누군가가 교인들을 납치했다는 소리인데.
<신의 존재를="" 보았다="" 해서="" 이단아가="" 없으란="" 법은="" 없지.=""/>
“본인 경험담입니까?”
<원숭이의 제자야.="" 악(?)은=""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존재한다.=""/>
<역겨운 냄새가="" 나는="" 계집을="" 위한="" 선물을="" 두고="" 이만="" 돌아가지.=""/>
아무리 그래도 남의 동생에게 역겨운 냄새가 난다니말이 심하시네.
지옥의 바닥에서 기어 올라오는 굶주린 망자들.
내가 쓴 글귀에 토라져서 이런 질 낮은 장난을 치는 것이 분명하다.
그어어어어어
배가 고픈 망자 녀석들이 살아있는 고깃덩어리를 보고 흥분했는지 우리에게 다가온다.
옆에서 헛구역질하는 안소정.
“근데 너 용케 사탄을 보고도 흥분을 안 했다?”
“우웁...사도는 박멸해야 하지만 역겨운 기운에 말할 기운도 없었어요...”
아무리 엘리트 이단 심문관이라 해도 지옥의 대악마와는 체급 차이가 나서
신성에 짓눌려 버린 건가.
커억어어억
강기를 내두른 팔을 한쪽 내어줬지만 씹지를 못하고 버둥거리는 망자 녀석.
팔에 딱 달라붙어 물어뜯는 녀석을 흔들어 보였다.
“안소정, 사탄이 너를 위해 보내 준 놈들인데 네가 맞이해 줘야지.”
콰직
안소정의 오 장의사와 만난 후 자신들의 고향 지옥으로 돌아가는 망자 녀석들.
“사도 제거합니다.”
어휴 살벌해라.
“악마쪽도 아니고 반유일교 단체도 아니면 교단 내 인물이 그랬다는 건데, 의심 가는 사람 누구 없어?”
“교단 내 분쟁이 한 번 있었는데...”
“그 천사를 섬겨야 한다는 그쪽?”
돌고 돌아서 결국은 유일교 내 타락한 성직자가 있는 건가.
아까 사탄의 의미심장한 말이 거슬린다.
“다 들으셨군요.”
“여기까지 왔는데 모르는 게 더 웃기지. 새로운 교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대표는 누군데?”
“김승연 전 신부님이에요. 하지만 파문을 당하셔서 교단 내에 계시진 않아요.”
“파문된 성직자라... 파문이 확정되면 신성은 거두어가지 않아?”
“네, 성좌께서 내려주신 신성은 거두어가세요.”
왠지 안 좋은 쪽으로 상상력이 발휘되는데.
더는 지체할 수는 없을 거 같다.
“우선 그 김승연 신부에 대해서 조사 좀 해줘, 파문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심히 행동하고.”
이 신앙심 깊은 동생이 혹여나 무모한 짓을 할까 걱정이다.
. . . . .
“지난번 방송 뭐였냐고?”
[해명해]
[그 사람 죽었음?]
[마지막에 캠 터진 거임? 펑 소리 나면서 꺼지던데]
[제발 연기라고 말해 나 잠 못자]
“어떨 것 같아?”
[장난치지마! 시발 존나 무섭다고]
[구라지?존나 실감나긴 했음 ㅋㅋㅋ]
[이새끼 괴수 말고도 이제 사람도 도축하냐고]
[속은 놈 없지?]
[배우 이름 뭐냐 연기 잘하던데 ㅋㅋㅋ]
“너희가 재혁이 찾아서 물어보든가.”
위이이이잉
방송 중 걸려오는 전화.
안소정이다.
“잠깐만, 통화 좀 할게.”
[언년이야]
[눈치 챙기고 ㄹㅇㅋㅋ만 쳐]
[진짠지 가짠지 말해주고 가라고 ^^ㅣ발 궁금해서 잠 못자]
방송으로 송출되는 내 목소리를 음소거를 한 뒤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소정아 뭐 좀 알아낸 거 있냐?”
제 뒤를 열심히 뒤쫓아 오시더군요.
안소정의 목소리가 아닌 젊은 남성의 목소리.
이번 사건의 유력 용의자인 그 새끼다.
“너구나?”
하하! 단번에 알아보시네요.
“소정이는 어떻게 했냐?”
보내 주신 이단 심문관은 위대한 과업에 사용될 예정입니다.
덕분에 과업을 좀 더 빠르게 완성할 수 있겠군요. 기분이 어떤가요, 손우진 씨?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 유형 3가지가 있다.
첫째, 내 머리 위에서 놀려고 하는 놈.
둘째, 내 앞에서 깝죽거리는 놈.
셋째, 내 가족을 건드리는 놈.
그런데 이 새끼는 세 가지 요소를 한 번에 갖춰버렸다.
난 우리 성좌처럼 부처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석가의 자비가 어떤 것인지 감도 오지 않아.
그러니 이 파문당한 성직자 새끼는 내 손으로 다짐질을 해야 만족할 것 같다.
“내 기분이 어떠냐고? 아주 좆같아, 이 좆같은 기분을 풀기 위해선
널 만나서 기분이 풀릴 때까지 씹창을 내놓을 건데 감당 가능하겠어?”
하하하! 부디 나를 찾길 바라요. 행운을 빕니다 챔피언 씨.
띠리링
전화도 먼저 끊어버리는 놈.
사소한 것 하나하나 점점 내게 호감을 쌓는 중이다.
[얘 눈 색깔 왜이럼 ㄷㄷ]
[뭐냐 전화 받고 개빡쳤나 본데?]
[이거 화안금정 켜진 거 아님?]
[와 시발 제천대성 보고 지린다는게 이해가 가네;;]
격렬한 감정 변화로 나타나는 원숭이 신의 눈동자가 나온 모양이다.
붉은빛 눈에 금색 눈동자를 지닌 내 모습이 송출 화면에 잡힌다.
“거참 존나게 깝죽거리네.”
직접 만나서 면상을 아작 낼 것이다.
무고한 신도들이나 동생의 안위에 문제가 있다면 그냥 죽여버릴 것이다.
민간인이나 히어로와 비슷한 위치의 이단 심문관을 건든 이상 놈은 빌런과 다름이 없다.
아니 그 이전에 내 가족에게 손을 뻗은 것부터 용서 못 한다.
자신만의 아집에 빠져 파문당한 성직자가 무슨 계획을 꾸미는지 모르겠지만
위대한 과업? 이건 나를 향해 ‘제발 나의 과업을 방해해 주세요‘라고
애원을 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도발을 하셨으니 처맞는 것에 암묵적 동의를 한 거겠지.
김승연 전 신부님, 지금 만나러 갑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