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과산 스트리머-9화 (9/106)

〈 9화 〉 손우진입니다...

* * *

화면에는 검은 대기화면과 시청자들의 채팅만 올라가고 있다.

캠을 켜지 않고 방송을 진행해 나간다.

시청자들이 지금 내 표정을 봤다간 더 화를 낼 테니깐.

유감이지만 늦은 부분에 대해선 전혀 안 미안합니다.

“이번 그리스 출장에서 경비원으로 그리스 드래곤 라돈을 데려왔거든.”

[라돈이 뭔데 씹덕아]

[ㄴㅁㅂ?]

[불 난 집에서 자연스럽게 방송하는거 보소 ㅋㅋㅋ]

[방화범 새끼 태연하게 불내고 방송 중]

[사과는 언제할건데 시발럼아]

[원숭이에게 사과를 바란다? 유입 쳐내]

“라돈이 방귀를 뀌면 뭔 줄 알아?”

[큰 거 온다 꽉 잡아!]

[채팅 지랄 나기 10초전]

[그만해 그만해 그만해 그만해]

[내 배꼽 빠질 준비중임 ㅋㅋㅋㅋ]

“돈까스.”

채팅창으로 밀려오는 하얀색 글자의 파도에 방송이 휘청인다.

개그가 마음에 들었는지 의견을 표출하는 사람들.

물론 읽지는 않았다.

“오랜만입니다, 이런저런 일을 해결하느라 좀 늦었습니다.”

[돈까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노잼]

[라돈이 방귀끼면 돈까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돈까스 시발놈아]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라돈이 승천하면 올라가용 ㅋㅋㅋㅋ]

“이번 출장에서 일 한 것들 녹화했으려나.”

히어로 협회에는 오라클이라는 정보부가 있다.

삼라만상을 살펴볼 수 있는 성좌들에게 선택받은 히어로들은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오라클 정보부에 소속되어 크립티드의 포스필드를 감지해 괴수의 출현을 알린다거나

범죄를 저지른 빌런들을 추적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초상위 크립티드와 성좌의 챔피언 두 명이 충돌했으니

히어로 협회에서도 당연히 그리스 상황을 지켜봤을 것이다.

오라클을 통해서 히어로들의 전투를 시청하고 히어로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어떤 기술을 사용하고 전투 양상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분석하겠지.

뭐라 할 생각은 없다. 그것 또한 협회만의 생존 전략일 테니.

[이 사람 원래 이렇게 방송 혼자함?]

[ㅇㅇ 꼬우면 나가야됨]

[이게 많이 좋아진거임]

[예전 손우진이면 전부 밴 때리고 시작했지]

[ㄹㅇㅋㅋ]

[최다 졸업생 배출 작년 시즌 손우진 ㅋㅋㅋ]

상위 히어로들을 위한 전용 사이트 시크릿 에이전트에 접속한 뒤

이번 전투를 녹화한 영상이 있는지 찾아본다.

“와, 벌써 올렸네, 이 관음증 환자놈들.”

대강 영상을 살펴보니 공중형 전령을 매개체로 전투를 녹화했던 모양이다.

상공에서 날아온 여의봉의 궤도폭격 이후 후폭풍에 휘말린 건지 영상은 그 구간에서 끊겼다.

[좋은 건 같이봐야지]

[화면 좀 키자 5번째 말한다]

[씨발 이럴꺼면 방송은 왜 킨거냐고]

[방장 나 미치는 꼴 보고싶어?]

[화면 킬 때까지 숨 참는다 흡]

금세를 못 참고 지랄을 시작하는 고아단.

“이거 보고 싶다고? 보여 줄 수는 있어.”

동영상을 정지시킨 뒤 송출 화면에 띄워놓는다.

“나는 뭐 협회에서 징계나 경고 정도는 받을 거고.”

그리곤 재생 버튼에 마우스 커서를 올려놓는다.

“영상 본 놈들은 협회 오라클 끌려가서 조사 좀 받고 뇌 세척도 받고 와야 할걸?”

“그러면 동의한 것으로 알고 틀겠습니다. 좋은 시간 보내세요.”

[이 미친 새끼야]

[아 진짜 개미친놈이네 ㅋㅋㅋㅋㅋ]

[이거 진짜임? 이걸 왜 틀어]

[저는 눈감았어요 저는 눈감았어요]

[지금 모니터 박살냈다 방장 동영상 켰냐?]

패닉에 빠진 채팅방.

심지어 시청자 수가 줄어드는 것도 보인다.

오라클에 끌려가서 코로 국밥 한 그릇 하기는 싫은지 호들갑들이다.

귀여운 놈들.

“크크크. 야, 이거 하나 본다고 몇천 명 전부 조사 받겠냐.”

내 말 한마디에 지랄 발광들을 멈추기 시작하는 시청자들.

“근데 아직 민간인에겐 비공개 정보라 보여줄 순 없네.

협회가 공개하면 그때 봐라. 얼라들아.”

[속은 놈들 없제?]

[유입쉑들 쫄은거 보소ㅋㅋㅋㅋ]

[몇 천명 나간거야 ㅋㅋㅋ]

[속으면 유입이지 ㄹㅇㅋㅋ]

[진짜 방송 ㅈ같이 하긴 한다]

“아직 여독도 안 풀렸고, 오늘 방송은 근황 전하러 온 거라 사실 날로 먹고 싶어.”

거짓말이다. 화과산 수렴동으로 돌아와서 하루 푹 잔 뒤 피로는 진작 풀렸다.

난 언제나 날로 먹는 것에 진심인 놈이다.

“오늘은 너희가 좋아하는 히어로 초이스 하자.”

[또어로 또이스 시발]

[초이스라도 시켜야됨 안하면 원숭이쉑 걍 이대로 있을걸]

[히어로 초이스? 오히려 좋아]

[니가 날로 먹기 좋은 거겠지]

“자 그러면, 여러분의 열띤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히어로 초이스 진행하겠습니다.”

히어로 초이스.

히어로들의 강함에 관심이 많은 대중을 위해서 만들어진 가상의 선택 게임.

신들에게 선택받아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히어로는 사람들을 지키고 온갖 악의 진격을 막아내는 영웅들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사람인 이상 대중들은 등수를 매기는 것을 좋아한다.

누구 히어로가 더 강하더라, 히어로끼리 싸움이 붙은 것을 봤는데 누가 이겼다더라,

이런 가십들을 갖고도 몇 날 며칠을 떠들 수 있는 것이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을 위해서 가상으로나마 비교하고 입을 털 수 있다는 게 이 게임의 존재 의의이다.

듣기로는 성좌들을 비교했다가 신벌을 맞은 괴담도 들려온다.

“어떤 게임을 골라야 하나, 성좌의 챔피언들 유물 초이스 32강 이거 어때?”

[무지성 여의봉 고르기 아니면 괜찮음]

[여의봉 빼라]

[편파 심판 NAGA]

[무투 편파 판정도 하면 안되고]

“아니 게임 하나 하는데 더럽게 까다롭게 구네.”

이 녀석들은 AI인가? 벌써 내 행동 패턴들을 분석해 두었다가

어떻게 행동할지 벌써 미래를 그려보는 모양이다.

물론 저 지적들이 없었으면 당연히 내 유물을 골랐을 거지만.

“그러면 여의봉은 나오면 바로 탈락시킬게.”

첫 대전은 누가 붙게 될 것인가.

마주친 것은 로키의 파멸의 창 미스틸테인 과 제우스의 심판 아스트라페.

“이건 아스트라페로 갈게.”

[미스틸테인은 신을 죽인 무기인데]

[불멸자 예절주입기 무시함?]

[5252 북유럽 무시하는 거냐고]

[올림포스에게 뭐 받아먹었냐]

“아니, 미스틸테인도 흉악한 무기가 맞긴 하거든?”

성좌들이 지켜볼 수도 있다. 내 뒷배에 깽판의 신이 있지만 그래도 밉보여서 좋을 건 없다.

“하지만 아스트라페에 비해서 범용성이 떨어진다 이 말이지.”

[이거 완전 성능충이네]

[낭만이 천박한 농담이 되어버린 시대 흑흑]

[로키좌 제발 이 방송 봤으면]

아무리 신을 죽였다는 겨우살이 가지라도 벼락을 뿜어대는

제우스의 유물보다는 히어로들이 사용하기엔 활용도가 떨어진다.

“아스트라페도 신성을 많이 소모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녀석이 뉴비 시절에 쓰는 거만 봐서 모르겠네.”

“아무튼 아스트라페 선택하고 다음으로 넘어간다.”

다음으로 붙는 유물들은 얼스터의 영웅 쿠 훌린의 그림자 창, 게 볼그(Gáe Bolg)

그리고 시발.

“왜 벌써 나오냐고!”

[여의봉 아웃!]

[약속 지켜야지?]

[이거 살리면 민심 곱창나거든요 ㅋㅋ]

[여의봉 잘가고 ㅋㅋㅋㅋ]

“아니, 이거 운영자가 조작하고 그런 거 아니야? 성좌들이 개입했나?”

최대한 구질구질하게 살린 뒤 여의봉을 우승시키려 했던 전략이 빠르게 막혀버렸다.

“흠흠, 했던 말이 있으니깐 게 볼그 선택하겠습니다.”

[손하다 추우진]

[어떤 성좌가 니 방송 보고 개입하냐고]

[인터넷에 개입하는 최첨단 성좌가 있다?]

///////

히어로 초이스를 진행할수록 채팅창이 불타는 것이 보인다.

처음엔 내 선택을 그저 지켜보던 시청자들이지만

점점 과몰입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어린 시절 감성으로 돌아간 건지

내 방송은 누구 힘이 더 쌔다, 누가 최강이다, 이런 저차원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아름답다. 이 원초적 불꽃들을 보면 내 마음이 절로 훈훈해진다.

동심을 유지한 채 자신이 챔피언도 아닌데 바락바락 소리치는 사람들.

“여러분, 최강의 유물이 무엇인지 알려드릴까요?”

[그래 방장말 들어보자 알못들은 닥치고]

[현직 말 들어보자 ㅇㅇ]

[우진이가 할 말 있대~]

[그래서 최강의 유물이 뭔데]

그제야 싸움을 멈추고 내 말에 집중하기 시작하는 놈들.

“최강의 유물...그것은 바로.”

이 녀석들도 내가 헛소리를 할 거라 짐작은 하겠지.

기대를 저버릴 순 없다.

“히어로를 응원하는 여러분들 가슴 속 뜨거운 열정이 아닐까요?”

[ㄴㄷㅆ]

[네다씹]

[뭔 개쌉소리를 할까 했는데 기대를 안 저버리네]

[ㅋㅋㅋㅋㅋ 손우진이 답네]

[존나 오글거리네 ㅋㅋㅋㅋㅋ]

아아, 악역은 익숙하니깐.

나 하나로 싸움이 끝난다면 그걸로 된 거다.

다음부터 히어로 초이스는 없다.

고아단이 이렇게 히어로에 진심이었다니, 시작 전 불평불만은 대놓고 한 주제에

너희 히어로 진심으로 좋아하는구나.

"이 새끼들 시작 전에는 또어로 또이스 이런 식으로 투덜대더니."

[하다보니깐 재밌긴 해~ㅋㅋㅋ]

[그래도 승리는 하나님]

[응 아니야]

[그래도 아스트라페 떨군 건 존나 오바였는데]

그새를 못 참고 다시 싸우기 시작하는 시청자들.

녀석들이 바쁜 거 같아서 그대로 방송을 끄고 채팅창을 빌려주었다.

이런 행동에 또 한번 하얀색 파도가 몰아쳤지만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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