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634화 (634/648)

634장: 운명 마왕 一

정토 여황이 냉소하며 말했다.

“그렇게 비웃지 말아라. 너무 큰 은혜를 베풀면 오히려 원수가 된다는 말을 모르나?”

“너는 사실 매우 강해. 더할 나위 없이 강해.”

“당연하지. 나는 용족을 모시는 노비였으니까. 네 어머니가 죽은 뒤로 내가 정토 최고의 강자였어.”

“그럼 나는 어째서 지금까지 살아있는 거지?”

“네 어머니가 너를 너무 사랑해서 너를 너무 잘 지켜줬지. 지구의 수십억 인류 속에 있으니, 우리는 네 존재를 전혀 찾을 수 없었어.”

“그럼 내가 정토 세계에 왔을 때, 어째서 처음부터 나를 철저히 말살하지 않았지?”

정토 여황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40년 전에 네 어머니를 추격하기 위해서 나는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진했어. 네 어머니가 널 임신해서 몹시 약해졌음에도 여전히 나에게 중상을 입힐 수 있었지. 그로 인해 나는 매화궁에서 폐관하며 요양할 수밖에 없었어. 얼굴을 잘 드러낼 수 없을뿐더러, 바람이 불어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을 보이게 되었지. 하지만 대권을 잃지 않기 위해, 나는 정토 세계에서 천부적인 재능이 가장 높은 용예 남자아이를 양자로 거뒀어. 그가 바로 정토 태자였지. 본래 나는 그를 내가 권세를 잡는 꼭두각시로 만들 셈이었지만 뜻밖에 수십 년간 권력을 쥐더니, 그 아이가 야심만만하게 변하더군.”

“그래서 너는 이 틈에 그를 제거하고, 나를 네 도구로 만들려고 했군! 그래서 너는 꿈속 마왕이 황금 지팡이를 바친 게 계략이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정토 태자가 죽도록 좌시했어. 또 꿈속 마왕이 정토 세계를 크게 살육하도록 좌시했지.”

“왜 그러면 안 되지?”

“너는 나와 용녀 막한이 거룡을 장악할 수 있고, 정토 세계를 구할 수 있다는 알지만, 꿈속 마왕이 진짜로 정토 세계를 없애버릴 수 있다는 건 두렵지 않은 건가?”

“너와 막한이 정토 세계를 구할 수 있을지는 나도 확신할 수 없었지. 하지만 나는 꿈속 마왕이 정토 세계를 없애지 못할 거라는 건 확신할 수 있지. 원인은 몹시 복잡하기도, 또 몹시 단순하기도 해!”

두변이 눈을 크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정토 여황을 바라봤다.

“그래. 바로 네가 생각한 게 답이야. 그건 몹시 정상적인 일 아닌가? 자신의 이익, 자신의 권세를 위해서라면 본래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지켜야 할 선이 없어야 하는 게 마땅해.

두변, 알고 있나? 내 상처는 몹시 심해서 본래 폐관하며 백 년을 요양해야 해. 하지만 너에게 몹시 고맙더구나. 동방 거룡 시체의 에너지를 활성화시켜준 덕에, 내 상처가 순식간에 완쾌되었어. 너희만 그 용의 시체 안에서 힘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나도 얻을 수 있어. 나는 용족의 노비이기 때문이야.”

“그게 뭐지?”

“태어날 때부터 용족과 계약을 맺어서 한평생 용족을 시중들어야 하는 노비이지. 알겠어?”

노비 얘기를 할 때, 정토 여황은 뼈에 사무친 원망이 가득한 목소리를 냈다.

“그래서 내 어머니가 아직 너에게 해가 되는 어떤 일을 하기도 전에, 내 어머니가 너희에게 크나큰 은혜를 베풀 때, 너는 미쳐 날뛰듯이 그분을 죽인 건가?”

“그래! 그러면 안 되나?

네 어머니가 죽은 뒤, 동방 거룡의 시체는 본래 계약에 따라 계속 정토 세계에 에너지 보호막을 제공해줄 수밖에 없었지. 하지만 나를 포함해서 아무도 그 에너지를 사용할 수 없었어. 꿈속 마왕이 이 동방 거룡을 장악하려고 한 건 백일몽을 꾼 것일 뿐이야. 애초에 성공할 수 없어. 유일하게 그 에너지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건 단 하나, 진정한 용족뿐이야! 그러니 너와 용녀 막한에게 몹시 감사하구나. 내 상처를 완쾌시켜줬을 뿐 아니라, 최고로 중요한 건 그 동방 거룡의 힘을 활성화시켜줬다는 거야.”

“너는 나를 이용해서 동방 거룡의 힘을 활성화시켰을 뿐 아니라, 나를 이용해서 정토 태자를 없애버렸고, 꿈속 마왕을 없애버렸군.”

“그래. 너는 참 대단하더구나. 역시 구원자 폐하다워. 한데 너는 이제 해야 할 일을 다 끝냈으니 안심하고 죽거라.”

두변은 정토 태자가 죽기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요란하게 큰소리로 웃으며 두변은 반드시 구원자에서 세상을 멸망시킬 자로 변할 거라고 했다. 자신이 지옥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게다가 그는 처음부터 두변에게 대단한 원한을 품었다.

그랬던 이유는 임야소 때문만이 아니라, 두변이야말로 진정한 정토 태자였고, 자신은 고작 대체품에 불과한 것을 알고 있어서였다.

그래서 정토 태자는 처음부터 미친 듯이 두변을 짓밟으며 없애버리려고 했다.

두변이 말했다.

“여황 폐하, 비록 네가 용족의 노비이고 몹시 강하긴 하지만 용족의 법칙에서는 내 권한이 더 높다. 나는 불사불멸한다.”

정토 여황의 손바닥이 검으로 변해서 또다시 두변의 목을 베었다.

하지만 곧 두변의 머리는 다시 자라났다.

“대단하군, 대단해. 너는 확실히 불사불멸 하는구나!”

이윽고 정토 여황이 앞으로 나와서 온몸으로 두변을 휘감으며 상냥하게 말했다.

“움직이지 말고 얌전히 있어.”

정토 여황이 교성을 부리며 말했다.

“자기, 당신 차례에요. 나 혼자서는 두변를 처리할 수 없네요. 그가 가진 용족의 권한이 너무 높아요.”

이윽고 평범한 이목구비를 가진 남자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몹시 평범한 얼굴이었다. 사람들 틈에 있으면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묻혀버릴 얼굴이었다.

“자기소개를 하지. 나는 운명이라고 한다.”

그 평범한 이목구비를 가진 남자가 두변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운명 마왕!

그가 바로 운명 마왕이었다.

지구를 망가뜨린 원흉, 조언평의 지고무상한 주인, 꿈속 마왕도 그와 겨뤄서 패배하는 자.

그야말로 두변의 궁극적인 적이었다.

또 지구의 궁극적인 지배자였다.

게다가 그는 뜻밖에 정토 여황의 연인이었다.

정토 여황이 말했다.

“놀라지 말거라. 우리 같은 지혜로운 생명체는 자신의 힘과 자신의 권세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지. 그 당시 나는 너무 약해서, 네 어머니를 죽이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강한 맹우가 필요했지. 그 맹우가 천사인지, 악마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운명 마왕이 말했다.

“두변, 인성에 대해 너는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다. 무엇이 정의고, 무엇이 사악함이지? 네가 구하려는 게 어떤 물건들인지, 너는 진작 마음의 준비를 했어야 했다. 모든 구원자는 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해. 자신이 구한 사람이 그를 뒤집고, 쓰러뜨리고, 비난하고, 그런 뒤 일만 년을 짓밟을 테니 말이야. 그러니 누구도 호인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

두변, 너는 대단히 자랑스러울 것이다. 너를 없애기 위해 나처럼 대단히 바쁜 존재가 나서다니 말이야. 내 일분일초가 수억 가치인데 지금 내가 이렇게 많은 시간을 낭비해가며 너를 죽이다니 말이지.”

두변이 운명 마왕을 쳐다보며 천천히 말했다.

“내가 꿈속 마왕을 죽여서 너는 화가 났나?”

운명 마왕이 웃으며 말했다.

“맞혀봐라!”

“지구에 말세가 온 뒤, 너는 동반구를 조언평에게, 서반구를 꿈속 마왕에게 주며 사라졌다. 너는 무엇을 하고 있었지?”

“수백만 내지 천만 악마를 다스리는 건 소꿉장난 같은 놀이라서 나는 안 좋아한다. 그건 조언평과 꿈속 마왕에게 맡기고 놀라고 하면 그만이다. 내가 원하는 건 지구 전체…….”

“지구 전체라고?”

“그래! 나는 지구 전체의 힘을 집어삼켜서 지구 전체를 흐물흐물한 찌꺼기처럼 만들어서 지구가 화성보다 더 죽은 것처럼 변하게 만들 것이다. 지구에 더 이상 물 한 방울, 아주 조그마한 생명도 없게 만들겠어. 자기장도 사라지고, 대기도 사라질 것이다. 한 사람이 음식을 먹고 나면 영양을 섭취한 뒤 똥을 싸지. 하지만 그 똥은 가치가 있고 에너지가 있어. 그에 비해 지구는 나에게 모조리 빨린 뒤에 대변보다 더 가치가 없어질 것이다. 물론 극적인 언어로 표현하자면 지구는 곧 나에게 모조리 집어삼켜진 뒤, 내가 싼 똥으로 변할 것이다. 하하하하!”

두변이 물었다.

“최근 몇 년 동안 너는 줄곧 땅속에 있었구나.”

운명 마왕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자, 두변, 이걸 봐라…….”

두변이 아래에 있는 지구를 바라봤다.

그의 눈앞에 생전 처음 보면 장면을 보았다.

큰소리가 울려 퍼진 뒤, 지구 전체에 수많은 거대한 구멍이 생겨났다. 모든 구멍은 직경이 수백 킬로미터가 넘을뿐더러,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어서 곧바로 땅속으로 이어졌다.

그런 뒤 거대한 촉수들이 연달아 지구의 그 거대한 구멍 속에서 뚫고 나왔다.

너무나 구역질 나게 생긴 촉수였다.

문어의 촉수 같기도 하고, 악마의 촉수 같기도 했다.

수십 개, 수백 개, 수천 개에 달했다.

모든 촉수가 직경이 수만 미터 두께였고, 길이는 수천 킬로미터를 넘어섰다.

이 수많은 촉수가 순식간에 지구 전체를 꽉 붙들었다.

“저게 내 본체다. 크지 않으냐?”

운명 마왕이 웃으며 말했다.

크냐고?

클 뿐이겠는가?

이제 보니 십여 년의 시간 동안 운명 마왕은 줄곧 지구의 중심에서 미친 듯이 에너지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러다 지금 드디어 땅을 뚫고 나왔다.

운명 마왕이 말했다.

“꿈속 마왕은 교양인이라서 머릿속에 온통 엉망진창인 게임들이 가득했지. 십여 년이란 시간 동안 계속 소꿉장난 같은 놀이를 하며, 한마음으로 정토 세계를 없애버리고, 동방 거룡의 에너지를 빼앗을 생각을 했단 말이야. 그의 생각은 너무 협소하고, 격조가 너무 떨어진단 말이야. 동방 거룡의 에너지는 개뿔, 지구 전체의 에너지에 비하면 그게 뭐 대수라고?

정토 세계는 개뿔, 동방 거룡도 개뿔, 다 말하기도 하찮은 에너지지. 행성 전체의 에너지야말로 가장 거대하지. 게다가 대부분의 에너지는 너희 인간이 개발하지 못했을뿐더러 알지도 못해.”

운명 마왕이 웃으며 말했다.

“자, 두변, 너를 위해 공연을 펼쳐 주지!”

이윽고 운명 마왕의 본체에 달린 수많은 거대 촉수가 지구를 힘껏 쥐었다.

그 순간, 지구가 멈췄다.

온 행성이 자전을 멈췄다!

이건 얼마나 강한 힘이란 말인가?

그동안 두변이 알던 모든 인식을 뛰어넘을 정도였다.

운명 마왕이야말로 가장 악마다운 악마였다. 그는 힘만을 추구하고, 심지어 권세도 개의치 않았다.

그래서 십여 년 동안 그는 1초도 낭비하지 않고 시종일관 지구 중심의 에너지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오늘에 이르러서 마침내 놀라울 정도로 거대하게 변했다.

그럼 눈앞에 이 실성한 듯한 장면에 대해 두변은 시뮬레이션을 해보았을까?

했다!

그는 점술사가 아니지만 악몽 대제는 점술사였다. 그의 뇌 영역은 끊임없이 각성하고 업그레이드되어서 비범한 추론 능력을 갖게 되었다.

악몽 대제는 상황이 극도로 미쳐 날뛰는 듯이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지 그 일이 진짜로 일어났을 때, 두변은 자신이 시뮬레이션했던 것보다 상황이 더 미쳐 날뛰는 걸 깨달았다.

운명 마왕이 말했다.

“두변, 나는 본래 지구 중심에서 계속 미친 듯이 에너지를 집어삼키고 있어서 나오길 원하지 않았다. 1초를 낭비하는 것도 죄란 말이지.

내 시간은 너무 귀중하니, 내가 지금 분신 하나에 불과하다고 해도, 빨리 돌아가서 지구를 집어삼켜야 한다. 나는 심지어 정토 여황과 잠자리를 할 시간도 없단 말이야. 널 죽인 뒤, 나는 즉시 지구 중심으로 돌아가야 해.

두변, 그럼 널 죽인다!”

이윽고 운명 마왕이 손을 내밀어 두변의 정수리를 가볍게 치려다가 갑자기 멈칫했다.

“참, 두변, 번거롭겠지만 너와 용녀 막한의 정신 얽힘을 해제할 수 있나? 물론 네가 정신 얽힘을 해제하지 않아도 나는 널 죽일 수 있다. 하지만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지. 너도 알다시피 나는 에너지를 아주 조금이라도 낭비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거든.”

운명 마왕은 십여 년이나 에너지를 집어삼킨 만큼 구두쇠처럼 아주 조금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두변은 쉽게 알겠다고 대답한 뒤에 자발적으로 용녀 막한과의 정신 얽힘을 끊어 버렸다.

예전에 그가 자발적으로 정신 얽힘을 진행했기 때문에 지금 또 그가 스스로 정신 계약을 해제할 수 있었다.

막한은 그걸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아직까지도 그녀는 정신 얽힘이 대체 뭔지 알지 못했다.

두변이 정신 얽힘을 해제한 뒤, 용녀 막한은 갑자기 마음속이 크게 텅 빈 느낌이 들었을 뿐 아니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괴로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두변이 그녀와의 정신 얽힘을 해제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는 어리둥절했다.

“당신이 손을 써.”

운명 마왕이 정토 여황에게 말했다.

그는 정말로 한계치까지 인색했다. 두변을 때려죽이는 에너지마저 쓰기 아까워하다니.

그런데 하필 운명 마왕은 입만 써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였다.

정토 여황이 광검(光劍)을 뽑아들고서 두변을 조준한 뒤 힘껏 베어버렸다.

“죽어라!”

그녀가 두변의 어머니를 얼마나 원망했나.

짧디짧은 시간 동안 그녀는 미친 듯이 검을 천 번이나 베었다.

이윽고 두변은 완전히 연기로 흩어져서 수많은 먼지로 변했다.

운명 마왕이 웃으며 곧바로 그곳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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