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614화 (614/648)

614장: 건곤멸마 진

두변이 진지하게 보이차를 끓이고 있었다.

아름다운 여인 하나가 가만히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의 단정하고 고요한 모습은 성녀를 보는 것만 같았다. 이 여인은 바로 악몽 제국 태자의 아내, 운명 대마주에게 수없이 모욕을 겪은 여인, 살아있는 게 죽는 것보다 몇 배나 더 힘겨운 그 여인이었다.

두변이 말했다.

“차를 드시지요.”

“악몽 대제는 위대한 점술사였어요. 그러니 그는 세상을 구원할 모든 희망을 당신에게 기탁했죠. 하지만…… 그는 또 비관적이며 절망에 빠져 있었어요.”

그 말을 할 때 악몽 태자비는 잠시 침묵하더니, 두 눈에 눈물을 흘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입을 열고 말을 이었다.

“그분은 미래에 대해 비관적이고 절망에 빠져 있었어요. 그래서 임야소를 미리 보내버렸죠. 운명 대마주 조언평이 악몽 제국에 공격하러 오기 전에 임야소를 정토(淨土)로 보냈어요!”

두변은 지금 정토라는 단어를 두 번째로 들었다.

“정토가 뭐지요? 정토는 어디에 있습니까?”

두변이 묻자 악몽 태자비가 말했다.

“난 몰라요. 이 세계와 차원, 우리 주변의 세계, 주변의 모든 차원이 이미 다 파멸되어서 죽음의 땅이 되어버렸어요!”

그렇다. 죽음의 땅이 되어버렸다.

설령 두변이 지구를 해방한다고 해도, 악마가 사라졌을 뿐, 천여만 인류가 살 수 있게 되었을 뿐, 이 대지는 여전히 죽음의 땅일 것이다. 상당수의 식물이 다 죽었고, 나머지도 변이가 되었다.

하늘은 영원히 잿빛이며, 대지는 영원히 스산하고 황량할 것이다.

다시 생기를 회복하려면 수백 년 내지는 천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게다가 수많은 악마가 미친 듯이 지구의 생기를 집어삼키는 와중이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어쩌면 수백 년 뒤의 지구는 완전히 죽어버린 행성이 되어서, 모든 물과 생명이 다 사라져서 화성 같은 존재로 변할 것이다.

악몽 태자비가 말했다.

“정토는 여러 세계, 여러 차원 안에 유일하게 악마에게 오염되지 않은 곳이에요. 유일하게 생기가 가득한 장소일 뿐 아니라, 유일하게 절대적으로 안전한 장소이자, 유일하게 악마의 침입을 막을 수 있는 장소예요. 지구 전체에 단 사람만 정토에 들어갈 자격이 있어요. 그건 바로 악몽 대제예요. 하지만 그는 그 자리를 당신의 아내인 임야소에게 줬어요.

어째서요? 어째서일까요? 어째서 내 남편은 굴욕을 참으며 가짜로 투항해야 하고, 어째서 나를 희생시켜야 하죠? 어째서 조언평 그 짐승이 나를 짓밟고 욕보이게 내버려둬야 하고, 어째서 나를 살지도, 죽지도 못한 꼴로 살게 내버려둬야 하죠? 어째서 임야소는 정토에 갈 수 있었냐고요?”

정말로 불공평해요!

악몽 태자비는 목놓아 울었다.

그녀는 희생하길 원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이런 불공평한 대우가 그녀를 더할 나위 없이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두변은 말을 하지 않고 계속 그녀에게 차를 따라줄 뿐이다.

한참이 지나서야 악몽 태자비는 침착해졌다.

“그녀가 정토로 간 지 얼마나 되었죠?”

두변이 묻자 악몽 태자비가 말했다.

“7년이요. 운명 대마주가 그 당시 백만 악마군단을 거느리고 악몽 제국을 공격하러 왔을 때, 악몽 대제는 그 소식을 숨기고, 임야소 언니에게 이 세계의 형세가 절망적이라서, 유일하게 지구를 구할 수 있는 희망은 정토에 있다고 말해줬어요. 언니에게 더할 나위 없이 강해진 다음에 말세 지구에 돌아오든지, 정토 대군을 거느리고 지구에 쳐들어오라고 했죠.”

“그런데 적어도 아직까지 그녀는 성공을 하지 못한 거군요.”

“맞아요. 게다가 악몽 대제께서도 애초에 그런 희망을 품지 않으셨어요. 그분은 임야소 언니가 안전하게 있기만을 바랐죠.”

정토는 어디에 있을까?

어떻게 정토에 갈 수 있을까?

악몽 대제는 그 점을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 악몽 태자만 모를 뿐 아니라, 악몽 태자비도 알지 못했다.

두변은 자신에게 차를 한 잔 따른 다음에, 또 악몽 태자비에게 차를 한 잔 따라줬다.

그가 말했다.

“당신에게, 당신의 남편에게 한 잔 올리겠습니다. 그 외에 나는 반드시 당신을 위해 복수를 할게요. 나는 조언평의 가죽을 벗기고 힘줄을 뽑아버릴 겁니다.”

악마는 지상에서 사는 게 아니라 지하에서 산다. 지심(地心)의 에너지를 집어삼켜서 강해지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악마 소굴은 지하 가장 깊숙한 곳에 있었다.

이번에 두변이 운명 대마주 조언평을 격노하게 만드는 데에 성공하자, 조언평 휘하의 악마군단 백만이 벌떼처럼 총출동했다.

사방 수백 리의 해수면이 악마들에게 빼곡하게 뒤덮혔다. 그것들이 비행하는 속도는 몹시 놀라워서 시간당 천 킬로미터 이상에 달했다.

고작 다섯 시간 만에 그것들은 바다를 날아서 건넌 뒤 태강 제국의 동부 경내에 진입했다.

태강 제국의 동부에는 대규모 도시와 부락이 있어서 적어도 인구가 이백여만이 넘었다.

물론 태강 제국의 성주들은 동부 행성의 총독을 포함해서 전부 두변을 배반했다. 전투가 개시되기 전에 그들은 심지어 약탈자 군단의 대원수를 찾아갔을뿐더러, 꼭두각시 부족의 대추장을 찾아가서 그들에게 투항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나타냈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운명 대마주 조언평에게 투항해서 그의 개가 되는 것이었다.

지금 태강 제국의 동부 행성의 총독이 몇만 군대를 거느리고 광장에 무릎 꿇고서 조언평의 악마군단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홀연지간에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분명히 밝은 대낮이었건만 갑자기 어두운 밤처럼 되어버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수많은 악마 대군이 하늘을 먹구름처럼 뒤덮으며 쳐들어왔다.

“태강 제국 동부 행성의 총독이 동부 군단을 거느리고 운명 대마주 폐하를 뵙습니다.”

이윽고 수만 명이 일제히 고개를 조아렸다.

운명 대마주 조언평은 하얀 서양식 예복을 입고 있어서 비길 데 없이 잘 생겨 보였다. 하지만 등 뒤에는 무시무시한 악마의 날개가 달려있었다.

그가 잠시 멈춰서자, 백만 악마군단이 공중에 붕 뜬 채 지면을 빼곡이 뒤덮었다.

태강 제국 동부 행성의 총독이 말했다.

“제가 비록 가진 힘은 비천하나 군대를 거느리고 위대하신 대마주 폐하를 따르길 원합니다. 당신과 함께 두변, 그 어릿광대를 없애고, 그의 휘하를 모조리 죽여버리겠습니다!”

“너는 내 개가 되고 싶은 거냐?”

조언평이 묻자 동부 행성 총독이 말했다.

“예, 저는 당신의 개가 돼서 당신을 따라 두변을 없애길 원합니다.”

“내 개가 되도 좋지. 내 악마군단은 배가 고프니까. 너희 동부 행성에는 사람이 얼마나 있지?”

“평민 2백만입니다.”

“그들을 전부 바쳐라. 내 악마군단을 배불리 먹여야겠다.”

동부 행성의 총독이 말했다.

“예! 저는 이미 모든 평민에게 공터나 광장에 모이라고 명령을 내려두었습니다. 위대하고 존귀하신 악마군단이 언제든지 즐길 수 있도록 말입니다!”

조언평이 손짓을 하며 말했다.

“너희는 아침 식사를 하거라!”

까악, 까악!

순식간에 백만 악마군단이 힘차게 흩어져서 동부 행성의 수많은 부락과 도시를 향해 돌진했다.

으아아악!

절망적이고도 처참한 비명소리가 곳곳에서 울려퍼졌다.

수많은 인간이 조언평 휘하 악마군단의 접시 위에 놓인 식사가 되었고, 고기가 되어 배 속으로 들어갔다.

30여분 뒤.

두변은 태강 제국 도성에 있는 황궁 가장 높은 곳에 서 있었다.

갑자기 온 하늘이 어두워졌다.

동쪽 하늘에서 거대한 먹구름과 하늘 가득한 피의 기운이 다가오고 있었다.

조언평의 백만 악마군단이 온 것이다.

두변의 눈빛이 흠칫 떨렸다.

이보다 더 큰 웅장한 장면을 본 적은 있었다. 머저리 여왕 막한이 3천 5백만 불사족 군단을 거느리고 천 리 넘게 길게 늘어선 장면은 그야말로 전율적이었다.

하지만 막한 여왕의 3천 5백만 불사족 군단은 눈앞의 악마군단 190만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얀 예복을 입은 운명 대마주 조언평이 갑자기 나타난 뒤, 공중에 떠서 화려한 날개 한 쌍을 펼쳤다.

“자, 이제 모든 악마 군단은 포진을 시작하라!”

명령이 떨어지자, 악마군단 190만은 힘차게 흩어져서 빠른 속도로 포진하기 시작했다.

일각 뒤.

비길 데 없이 강력한 악마군단 190만의 포진이 끝났다. 태강 제국의 도성 주위를 계단 형식으로 물 샐 틈 없이 겹겹이 포위했다. 계단 형식으로 진을 친 이유는? 그래야 사면에서 카메라로 촬영하기 수월하기 때문이었다.

“이 진형이 나쁘지 않군!”

운명 대마주 조언평은 카메라에 찍히는 장면을 보며 만족스러움을 드러냈다.

“악마군단 190만은 준비하라!

내가 다시 한번 말한다. NG를 낼 기회는 없다. 한 번에 끝내야 한다!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내야 한다! 1초 안에 태강 제국의 도성을 없애고, 인류를 멸종시킨다. 1초가 넘으면 우리 이 영화는 실패한 셈이다!

내가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겠다!

5!

4!”

태강 제국 도성 안의 수많은 사람이 눈을 감고 죽음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두변의 비장의 무기인 건곤멸마진에 대해서는 소수만 알고 있었다.

절대다수는 이번 전투에 대해 아무런 희망을 가질 수 없었다.

성벽이 파괴된 데다, 5만 악마군단마저 이길 수 없는데 하물며 190만을 이길 수 있을까?

그런데 두변도 속으로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었다.

“3, 2, 1!”

조언평이 카운트다운을 끝내고 깊이 숨을 한 모금 들이마셨다.

모든 카메라가 자신이 찍을 위치를 맞추고서 모든 장면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지면에서는 동부 행성 총독이 거느린 5만 대군이 숨을 멈춘 채 그 장면을 지켜봤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번 대공연의 관중이기 때문이다.

조언평이 큰소리로 외쳤다.

“인류 멸종을 개시한다! 눈 깜짝할 사이에 죽여버려라!

액션!”

운명 대마주 조언평이 명령을 내리자, 악마군단 190만이 순식간에 태강 제국의 도성 안으로 돌진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내는 것!

그게 운명 대마주의 유일한 요구였다.

1초 안에 두변 휘하의 모든 군대, 모든 인류를 깨끗이 죽여버릴 것!

운명 대마주 조언평은 눈을 감은 채, 온몸을 떨며 마지막 장면을 기다렸다.

그와 동시에 두변의 정신이 갑자기 명령을 내렸다.

‘건곤멸마진 가동, 순식간에 적을 격살하라!’

솨악!

갑자기 태강 제국 황궁의 상공에 태양 하나가 터져 나왔다.

그건 운석 33개에 거룡 혼백의 에너지가 더해져 폭발한 것으로, 금황색 빛이 태양보다 천 배 이상은 밝았다.

고귀하고 더할 나위 없이 강력한 빛이었다.

이 새로운 태양이 사방 천 리를 밝게 비추었고, 이윽고 악마군단 190만이 순식간에 전멸해서 연기로 사라졌다.

평범한 악마든, 악마 백작이든, 악마 후작이든 상관없이, 새로운 태양의 반경 안에만 있으면 전부 사라졌다.

완전 눈 깜짝할 사이에 격파되었다.

1초가 아니라 0.1초도 안 되는 시간에 악마군단 190만이 모조리 죽었다.

이곳은 쥐죽은 듯한 정적에 빠지고 말았다.

악마의 카메라 수백 대가 모두 충실히 그 장면을 기록하고 있었다.

땅 위에서 태강 제국 동부 행성의 총독과 그의 5만 대군도 그 장면을 목도하고는 질식할 것만 같았다.

그때, 운명 대마주가 심취한 얼굴이었다.

“이미 죽음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이 장면은 분명히 몹시 완벽하겠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인류가 순식간에 멸종하는 데 0.5초가 걸렸나? 아니면 0.1초?”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조언평은 두 눈을 뜨자마자, 순식간에 온몸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어째서 태강 제국의 도성이 여전히 무탈한 거야? 어째서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죽지 않은 거야?’

내 백만 악마군단은 어디 간 거야?!

방금 전에 그는 자신만의 예술 속에 심취해 있었는데, 이게 왜 이렇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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