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4장: 임야소 공주
보름 전, 태강 대제는 조서를 내려서 태강 제국의 모든 성주, 총독, 천부장 이상 등급을 가진 무장과 관원들을 전부 황궁으로 불렀다. 아주 중요한 성지를 공포해야 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때문에, 지금 대전 안에는 장장 수천 명이 모여 있었다. 태강 제국의 모든 고위층이 전부 이 자리에 모인 셈이었다.
수천 명이 바닥에 무릎 꿇고 엎드려 있었다.
5미터 키의 태강 대제는 그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기나긴 대전을 패기만만하게 가로지른 뒤, 수십 개 계단을 걸어 올라서 30미터 높이의 암흑 황좌에 앉았다.
그는 여전히 겉치레를 따지는 걸 좋아했다.
하긴, 암흑 갑옷을 입고 있는 그는 정말로 패기만만해 보일뿐더러, 황제의 기개가 충만해 보였다.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수천 명이 또다시 삼고구배(三叩九拜)를 올렸다.
서양식 궁전 안에서 서양식 갑옷을 입은 이들이 동방의 군주를 알현하는 방식으로 예를 올리고 있으나, 위화감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도리어 천하에 군림하는 듯한 존귀함과 힘이 도드라져 보일 뿐이었다.
게다가 이들이 태강 대제를 향해 진짜로 경외감과 두려움을 가지며 그를 숭배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태강 대제는 여전히 그들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맨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아홉 명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들은 각자 태강 제국의 9대 원수(元帥)이다. 제국의 50만 직속 군단을 통솔하고 있지.”
태강 제국의 모든 고위층이 다 혈맥 변이자들이었다.
대녕 제국에서는 정상적으로 수련하면 최고 무도 수준인 대종사 등급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말세 이후 지구는 이세계 에너지의 농도가 대녕 제국보다 몇 배나 짙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수련해도 무존 등급에 도달할 수 있었다.
게다가 혈맥 변이자는 수련을 통해 반성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혈맥 변이자 백 명이 악몽 균열에 들어가서 수련하면 그중 대략 두세 명이 살아서 나온다. 만약 악몽 균열에서 10년을 수련하고 살아서 나온다면 심지어 무성 등급을 돌파한 고수가 될 수도 있다.
악몽 균열에서 살아서 나온 사람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모두 악몽 제국, 태강 제국, 꼭두각시 부족, 약탈자 연맹 4대 세력의 고위층이 되었을 것이다.
악몽 균열에서는 무도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지만 5년, 10년의 수련 시간이 필요했다. 그에 비해 연옥탑은 인위적인 곳이라서 천부적인 혈맥이 극도로 높은 사람, 운이 극도로 좋은 사람이라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무성을 돌파할 수 있다.
현재 두변을 제외하면 악몽 대제의 제자거나 손제자(孫弟子)들만 연옥탑에 들어가 시험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이 들어가면 전부 갈기갈기 찢기며 죽을 것이다.
태강 대제가 말했다.
“내가 차례로 1만여 명을 악몽의 균열에 들여보냈는데 결국 백여 명만 살아서 나왔지. 그 백여 명이 전부 여기에 있다. 여기 9대 원수는 전부 악몽의 균열에서 10년을 수련한 사람들이야.”
두변은 9대 원수를 바라봤다. 의심의 여지 없이 그 아홉 명은 태강 대제를 제외하면 무공이 가장 강한 아홉 명이었다.
태강 대제가 계속 소개를 했다.
“나머지 다섯 사람은 태강 제국의 5대 행성(行省)의 총독이야. 이들은 모두 악몽 균열에서 9년 간 수련했지. 백여 명의 장교들도 모두 악몽의 균열에서 5년에서 8년의 시간을 수련한 사람들이야.”
1만여 명을 들여보냈는데 살아서 나온 백여 명이 전부 눈앞에 있었다.
이 백여 명이 바로 태강 제국의 최강자들이었다.
이어서 성주 수백 명과 관원 수천 명, 중위 장교들에 대해서는 더는 소개하지 않았다.
태강 대제가 천천히 말했다.
“짐이 오늘 너희 모두를 소집한 건 한 가지 일을 위해서다. 짐은 내 아우 두변을 태강 제국의 황위 계승자에 책봉하겠다!”
그 말을 듣고 그 자리에 있는 수천 명이 충격을 받았다.
중세든, 중국 고대 봉건제국에서든, 지금과 같은 황제의 말은 분명히 통하지 않을 것이다.
명 왕조의 만력(萬曆) 황제가 바로 그런 예였다. 그는 가장 총애하는 주상순(朱常洵)을 얼마나 태자로 세우고 싶어 했나. 그는 장자 주상락(朱常洛)을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신하들이 주상낙이 제국의 계승자가 되는 걸 죽도록 고수한 탓에, 그 대단한 만력 황제도 신하들을 이길 수 없었다.
눈앞의 두변은 태강 대제의 아들도 아니고, 친동생은 더더욱 아니며 완전히 낯선 사람이었다.
9대 원수, 5대 총독, 장교 백여 명, 성주 수천 명 가운데 빙계성주 연진만 그를 알았다.
고대 중국 황제도 자신이 총애하는 아들을 태자로 세우고 싶어도 성공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눈앞의 태강 대제는 전혀 상관없는 낯선 이를 새로운 황제로 세우려고 하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수천 명은 충격을 받았지만 차마 아무도 거역할 수 없었다.
태강 대제가 너무나 강했기 때문이다.
9대 원수, 5대 총독이 모두 연합한다고 해도 다 태강 대제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심지어 태강 대제는 한 손만 써도 그들 열네 명을 없애버릴 수 있었다.
이 무도 지상주의의 말세에서 태강 대제의 의지가 모든 걸 대변했다. 감히 그에게 거역하는 사람들은 모두 죽음이라는 것을.
바로 태강 대제의 절대적인 권위 아래에서 수많은 가혹한 율법은 그대로 통할 수밖에 없었다.
태강 대제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짐이 내 동생 두변을 태강 제국의 황위 계승자로 세우겠다는데, 다른 의견이 있는 건가?”
그 말을 듣자, 9대 원수가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신, 명을 받들겠습니다!”
이윽고 5대 총독도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신, 명을 받들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장교 백여 명과 성주 수백 명이 전부 질서정연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신, 명을 받들겠습니다!”
태강 대제가 말했다.
“이제, 황위 계승자를 만나보거라!”
그곳의 수천 명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신, 전하를 뵙습니다!”
태강 대제가 말했다.
“그럼 이만 해산해라. 각자 돌아가서 자기 직무를 다하도록!”
“신, 명을 받들겠습니다!”
수천 명이 전부 물러났다.
태강 대제는 모든 이 앞에서 줄곧 이렇게 냉혹하고 말수가 적었다.
두변, 태강 대제, 두효 세 사람은 이내 악몽 제국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비행기를 타는 게 아니라 태강 대제가 두변과 두효를 데리고 날았다.
두변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날 수 있는 거지?”
“악몽의 균열 안에 비행 이수가 있지. 그 이수들의 날개는 사람의 몸과 융합할 수 있어. 물론 연옥자 경지에 이르러야지 그 날개를 제어해서 비행할 수 있게 되지.”
그들은 계속 동쪽으로 날아갔다.
이번에 태강 대제는 여전히 몹시 높게 날았다. 이렇게 해야 공기 저항이 더 적어서 현기를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걸 보면 비행은 내력을 몹시 소모하는 일 같았다.
한 시간을 넘게 날아서 이내 육지를 떠나 바다 위로 진입했다.
태강 대제는 일전에 악몽 제국이 섬이며, 말세 전에는 지구에 없던 섬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었던 두변은 이 악몽 제국이라는 새로운 섬에 비교적 기대를 갖고 있었다.
바다로 들어와서 또 장장 천여 리나 날았다.
이윽고 두변은 악몽 제국이란 섬을 발견하는 순간 놀라서 넋이 나가고 말았다.
그곳은 공중에 떠 있는 섬이었다. 섬 위에 빼곡하게 각양각색의 건축물과 성루가 가득했고, 이 공중에 떠 있는 도시 전체가 바로 악몽 제국이었다.
악몽 제국의 상공에는 비행 이수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각양각색의 비행 이수 장장 수천 마리가 질서정연하게 줄지어서 주변의 공역을 순찰하고 있었다.
눈앞의 이 악몽 제국은 정말이지 이세계의 느낌이 충만한 곳이었다.
사실 이 섬은 이세계 대륙에서 그대로 떨어져서 날아온 것이라서, 어느 곳 하나 지구에 속하는 곳이 없었다.
태강 대제의 모습을 본 비행 기병 한 무리가 즉시 그를 맞으러 다가왔다.
“태강 친왕 전하를 뵈옵니다. 폐하께서 이미 전하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악몽 제국의 비행 기병 대장이 이수 위에서 인사를 했다.
‘태강 대제가 아니라? 왜 또 태강 친왕이 되었지?’
그런데 상황을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태강 대제는 지상에서야 제왕으로 불리지만 공중에 있는 악몽 제국에 들어서면 왕으로 부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악몽 대제의 제자라서 친왕의 직함에 책봉된 것이다.
태강 대제가 말했다.
“꼭두각시 부족의 소친왕과 약탈자 연맹의 염친왕 모두 왔는가?”
그 기병 수령이 말했다.
“열흘 전에 몽경(夢京)에 도착했습니다. 다들 태강 친왕 전하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윽고 그 비행 기병 대열은 태강 친왕을 가운데에 두고 호위하고는 악몽 제국 섬 중앙에 있는 황궁으로 날아갔다.
악몽 제국의 건축물들은 완전히 생소하다고 할 만했다. 모든 것들이 웅장할 뿐 아니라, 화려하며, 휘황찬란했다.
모든 곳이 다 금빛 찬란하게 빛났고, 모든 건축물에 독특한 예술적인 기운이 충만했다.
뿐만 아니라 지구 곳곳이 다 죽은 듯한 잿빛이었지만, 이곳은 사방이 다 푸르른 나무와 갖가지 꽃들로 가득했다. 거리 곳곳에 조각상과 분수가 놓여 있는 것이, 완전히 꿈의 섬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이곳의 하늘은 유독 파랬다. 그것도 탐이 날 정도의 파랬고 태양도 금빛 찬란한 색이었다.
햇빛이 황궁에 비추자, 찬란한 빛이 눈이 부시게 반짝거릴 정도였다.
악몽 제국의 황궁에서는 모든 무사가 다 극도로 화려한 갑옷을 입었을뿐더러 화려한 이수를 타고 있었다.
화려한 황궁 앞에 착지하자, 아름다운 여자의 인도 하에, 태강 대제, 두변, 두효 세 사람은 악몽 제국의 비길 데 없이 아름다운 황궁 대전으로 들어갔다.
“태강이 폐하를 뵙습니다.”
태강 대제가 무릎을 꿇고 대례(大禮)를 올렸다. 악몽 대제는 그의 지도자일 뿐 아니라 그의 사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두변은 그대로 선 채 화려한 황좌 위의 악몽 대제를 바라봤다.
역시 연옥탑 제5층의 악몽 대제와 똑같이 생겼다. 단지 지금의 그는 은빛 갑옷을 입어서 온몸이 성스러운 빛에 휩싸인 듯했다. 태양처럼 따뜻하게 느껴지면서 자연스럽게 경외감이 들게 만들었다.
그는 과연 장소만이 말했던 것처럼 5미터 키의 거인이고, 긴 귀, 각진 얼굴, 지극히 영민하고 준수한 동시에 오만과 고귀함이 충만했다.
악몽 대제가 두변을 힐끗 보며 물었다.
“태강, 이자가 바로 네가 찾은 계승자인가?”
태강이 말했다.
“예, 폐하. 제가 태강 제국의 황위 계승자를 대신해서 정식으로 악몽 제국의 공주 전하께 구혼을 하고자 합니다. 폐하께서 허락해주시기를 청하옵니다!”
악몽 대제가 말했다.
“가서 공주를 모셔와라!”
그 순간 웅장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공주 전하께 입궁하시라고 전해라!”
잠시 후.
한 줄기 금빛이 대전 밖의 광장에 떨어졌다.
은빛 갑옷을 입은 늠름하고 씩씩하면서 강하고 냉혹한 절세미녀가 우아하고 힘 있는 발걸음을 내디디며 대전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몸매가 언제부터 이렇게 뛰어나게 변했을까? 아무리 은빛 갑옷을 입고 있다고 해도, 그녀의 대단히 긴 두 다리는 더할 나위 없이 매혹적이었다.
그녀의 얼굴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이목구비가 더 입체적으로 변해서 본래도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에 어느 정도 이세계 기운이 묻어났다.
지금의 그녀는 정말로 경국지색이자 당대 제일의 미녀라고 불릴 정도였다.
두효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지도 못하는 것 같다가, 한참이 지난 뒤에야 외칠 수 있었다.
“엄마!”
눈앞의 이 여인은 두효의 엄마와 똑같이 생겼지만 더 아름다웠고 훨씬 더 강해 보였다.
이목구비의 구조가 바뀌지 않았지만 마치 하늘의 신이 다시 한 번 다듬은 것처럼 비길 데 없이 아름다웠다.
심지어 그녀는 키도 변했다. 본래 1.7미터가 안 되던 키가 1.77미터로 변했다.
악몽 대제가 이세계의 용혈 대륙에서 와서 그 당시 숨이 곧 끊어질 듯한 임야소를 구하기 위해서 그녀의 체내에 상당 부분의 이세계 혈맥을 주입한 것이 틀림없었다.
임야소 공주는 두효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그녀의 눈빛은 냉랭하고 무정했고, 심지어 두효의 얼굴을 볼 때조차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두효의 두 눈을 보고 나더니 조금 마음이 움직인 듯 그녀의 냉랭하던 눈빛이 점차 따뜻하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