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2장: 연옥탑 5층
거인이 일어섰다. 그는 위풍당당한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은빛이 아니라 검은빛 갑옷이었다.
거인이 말했다.
“나는 바로 악몽 대제가 이곳에 남겨둔 심마(心魔)다. 나는 그의 고통의 근원이라서 그는 나를 이곳에 구금한 것이다.”
두변은 당황했다.
연옥탑 제5층의 최종 보스는 뜻밖에 악몽 대제의 마음속 응어리라니.
두변이 물었다.
“연옥탑은 지금 악몽 대제의 통제 하에 있습니까?”
악몽 대제의 심마가 대답했다.
“그렇다. 이 연옥탑은 이세계에서 이곳으로 날아온 뒤에 주인이 없이 텅 비어있다. 악몽 대제가 이 연옥탑을 점령했지. 또 여러 가지 막강한 생명체를 잡아와서 연옥탑의 모든 층에 놓아두고 규칙을 설정했다.
물론 네가 아래 4층을 다 뚫어놨으니, 그건 그가 또 다른 강한 생명체를 잡아와서 텅 빈 연옥탑을 채워야 한다는 의미지. 그렇지 않으면 이 연옥탑은 새로운 시험을 제공해줄 수 없으니까.”
“그렇다면 제5층 시험은 바로 당신을 이기는 겁니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너는 나를 이겨야 하지만 그보다 너 자신의 심마를 이겨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너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고통스러운 감정을 전부 풀어놓을 뿐 아니라, 그걸 천 배, 만 배로 증폭시킬 것이다. 네가 지옥 같은 괴로움을 받아들인 뒤에는 차라리 죽는 게 이런 고통보다 백 배, 천 배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 거다.”
그런 뒤 악몽 대제의 심마가 손짓을 했다.
“시작하겠다. 너는 네 마음속에서 피신처인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곳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심마를 영원히 이기지 못하고,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패배한 뒤, 최후에 자신을 죽일 것이다! 태강 대제 등 세 사람은 내 제자였기 때문에 내가 사정을 봐줬다. 하지만 너는 특수한 신분이어서 사정을 봐줄 수 없다. 만약 내가 오늘 너에게 사정을 봐준다면 미래에 치를 전쟁에서 너는 반드시 죽고 말 테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시작하십시오!”
그 말을 끝낸 뒤, 두변의 눈앞이 갑자기 새까맣게 변했다.
파사삭.
문득 마음이 아픈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한도 끝도 없는 어둠과 고통이 미친 듯이 들이닥쳤다.
“내 남편이 나를 버렸어, 내 남편이 나를 버렸어.”
“여보, 내가 내려가 당신을 찾을게!”
눈앞에 어떤 장면이 나타났다. 약혼녀 임야소가 딸 효효의 손을 잡고, 뒤돌아서 두변을 향해 아름답게 웃은 뒤, 훌쩍 뛰어내렸다.
“안 돼!”
두변이 비명을 질렀다.
그의 심장이 찢어질 것처럼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이치대로라면 이럴 수는 없었다. 그는 이미 딸을 찾은 데다, 곧 약혼녀 임야소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눈앞의 이 장면이 이토록 큰 파괴력을 가질 수 없었다. 두변의 마음을 찢어지게 만들 수 없었다.
하지만 두변은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생각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만신창이가 된 지구가 끊임없이 회전하고 있었다. 지구 전체는 죽음의 땅으로 변했고, 사방이 다 불사족에 좀비가 가득했으며 인간은 없었다.
온 하늘은 잿빛에, 대지에는 푸르름도, 아무런 생기도 없었다.
수많은 시체가 땅을 뚫고 올라와 두변을 가리키며 쉰 소리로 말했다.
“다 너야, 다 너 때문이야. 네가 우리 지구를 망가뜨렸어. 바로 네가!”
“아니야, 내가 대녕 제국이라는 차원을 구해야 미래에 두 세계를 구할 희망이 생기는 거야! 만약 내가 대녕 제국이라는 차원을 희생시켰으면 미래 백 년 뒤 현대 지구도 여전히 멸망한다고!”
거대한 마왕이 하늘가에 우뚝 나타나서 두변을 바라보고 미친 듯이 웃었다.
“하하! 두변, 너는 저번에 네가 위대한 동귀어진을 했다고 정말로 대녕 제국이라는 차원을 구했는 줄 아냐? 하하하? 잠꼬대 같은 소리! 그 파생된 지구의 차원도 파괴되었다. 하하하하!”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이어서 딸 두효의 얼굴이 그의 앞에 나타나서 외쳤다.
“아빠, 아빠…….”
이어서 본래 밝았던 그 애의 눈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검은 피 두 줄이 두 눈에서 흘러나왔다.
한 여자가 황량한 대지에 나타났다. 그녀가 갓난아이를 안고 힘겹게 죽은 듯이 고요한 대지를 걷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갓난아이를 신문지로 감싸고는 그 아기를 고아원 입구에 놓아 두었다. 그런 뒤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이며 단호하게 그 자리를 떠났다.
갓난아이는 큰소리로 울부짖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한도 끝도 없는 장면들이 미친 듯이 두변의 대뇌 속으로 밀려들었다.
전부 다 어둡고 공포스러우며 고통스러운 장면들이었다.
그 안에는 진짜도 가짜도 있었다. 어떤 건 두변 마음속의 걱정, 부끄러움이 만들어낸 장면이었다.
수많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파도처럼 그에게 솟구쳤다.
평범한 사람은 그것의 10분의 일, 100분의 일을 받아들여도 우울증이 생길 것이다. 그것도 도저히 손쓸 수 없는 우울증 말이다.
한도 끝도 없는 어둠과 고통이 검은 파도처럼 두변을 향해 밀려들어서 그가 곧 침몰해서 질식하려고 했다.
그의 온 세상이 온통 어둠에 뒤덮였다.
암흑의 파도가 점점 그를 침몰시켜서 그를 질식시켜 죽이려고 했다.
그는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도망쳤다.
그런데 그의 눈앞에 얼굴의 일곱 구멍에서 피를 흘리는 두효가 나타났다. 게다가 두효의 얼굴 피부가 끊임없이 부서지고 있었다. 이건 당연히 이런 일이 발생할 거라는 전조가 아니라, 두변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공포, 자신이 딸을 지키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나타난 것이다.
뒤쪽에서도 고통과 암흑의 파도가 계속 밀려들었다.
온 세상에 빛이라고는 한 점도 없었다.
임야소가 그와 몇 미터 떨어진 곳 창틀에 앉아서 그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영설은 품에 아이를 안고 두변을 향해 따뜻하게 미소지었다. 하지만 그녀는 온통 모호하게 보일 뿐 아니라, 그녀와의 사이에 무언가가 한 겹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아서 영원히 그녀 쪽으로 갈 수 없었다.
두변은 고통의 파도와 달리기 경주를 하는 사람 같았다.
뒤쪽에서 고통의 파도가 점점 더 많아져서 필사적으로 그를 쫓아와서 그를 침몰시키려고 했다.
두변은 마음속에 있는 유일한 피난처, 두헌의 영혼에게로 달렸다. 왜냐하면 두헌의 영혼은 텅 비어서 영원히 공포와 고통을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두변이 필사적으로 달려서 마침내 두헌 영혼의 구석진 곳을 찾았다.
그곳은 아주 작고 투명한 방 같았고, 두헌의 모습을 한 사람이 가만히 그곳에 앉아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두변은 두헌의 텅 빈 영혼 속에 들어가서 숨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곳은 유리로 된 방처럼 보였다. 안에 있는 모든 게 똑똑히 보였지만 전혀 들어갈 수 없었다.
유리벽을 두드리며 안에 있는 두헌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자신을 들여보내 달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두헌은 가만히 방 안 모퉁이에 앉아서 움직이지 않았다.
마침내 수많은 암흑, 공포, 고통, 걱정, 부끄러움으로 만들어진 심마의 파도가 두변을 완전히 침몰시켰다.
두변은 숨이 막혔다.
이게 바로 심마의 공격이었다.
당신 마음속의 모든 빛이 의심와 의혹으로 변해서, 고통, 가책, 공포가 열 배, 백 배, 천 배, 만 배로 커져서 당신의 마음을 공격한다.
최후에 당신의 마음을 완전히 압살해서 당신이 영원히 절망하게 무참히 자신의 영혼 속에 침몰하게 만든다.
짊어진 게 많고, 겪은 게 많은 사람일수록 가지고 있는 심마도 많다.
그러니 태강 대제 이소강은 5층의 연옥탑 시험을 통과할 수 없었다.
꼭두각시 부족의 대추장과 약탈자 연맹의 대원수 등 모든 이도 제5층의 시험을 통과할 수 없었다.
악몽 대제처럼 강한 사람도 자신의 심마를 떼어내서 그것을 연옥탑 안에 구금해 최종 보스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두변의 온몸에 경련이 나기 시작했다.
그의 영혼이 익사하기 직전이었다.
악몽 대제의 심마가 연민의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불쌍한 아이로구나. 너는 몹시 강하다. 하지만 네 강함은 전적으로 의지를 가지고 억제해서 만든 제방에 불과하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네 강함에는 실제적인 의지처가 없다. 의지로 만든 제방은 견고하지만 나중에 붕괴될 때 더 크게 무너지는 법이다.
모든 이는 마음속에 강한 의지처가 필요해. 그런데 너는 그걸 찾지 못했으니 심마에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너의 영혼은 무참히 익사당할 것이다!”
두변의 경련은 점점 더 빈번하게 일어났다. 반대로 그의 움직임은 점점 더 줄어들었다.
영혼이 질식해서 사망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점점 더 가까워졌다.
다른 사람이라면 악몽 대제의 심마가 그를 깨웠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사람은 두변이라서 깨우지 않고 죽도록 내버려두었다.
두변의 정신세계 안.
그는 이미 끝없는 암흑 파도에 침몰하고 있었다. 수영도 할 줄 모르니 무참히 익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뇌 영역에 있는 영혼의 빛이 꺼지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도시를 내려다 보면 수많은 건물에 불이 켜져 있어서 찬란한 은하처럼 보인다.
그런데 에너지원을 잃으면 모든 건물의 등불이 다 꺼져버릴 것이다.
두변의 영혼이 꺼지는 건 그런 풍경과 유사했다. 도시 전체에 대규모 정전이 일어난 것처럼 한 구역씩 연달아 암흑 속에 잠기는 장면과도 같았다.
결국 두변 대뇌에 있는 모든 영혼의 빛이 다 꺼지고, 최후의 빛 한 점만 남았다.
사람의 영혼은 하늘의 은하처럼 수많은 광점(光點)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광점이 다 밝혀졌을 때는 그중 광점 하나, 혹은 광점 한 무더기는 눈에 띄지도 않는다. 하늘에 있는 수천 수억 개의 은하수 사이에 별 한두 개는 발견하지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모든 은하수가 다 불이 꺼지고, 나머지 한두 개 별만 빛을 낸다면 굉장히 또렷하게 보일 것이다.
두변의 영혼에 있는 최후의 빛 한 점이 바로 그가 완전히 잊어버린 기억이었다.
그가 아직 갓난아이였을 때라서 기억 속에 묻혀 있던 것이었다.
아름다운 여인이 아기를 안고 허공을 걷고 있었다. 그녀의 온몸은 다 피투성이였다. 무수한 불빛이 갑자기 반짝이고 나타나서 그녀를 추격해왔다.
다음 장면은 그 여인이 갓난아이인 두변을 안고 그를 고아원 앞에 놓아두는 장면이었다.
그녀는 한없는 사랑을 담아서 두변에게 입을 맞췄다.
“아가, 네 안전을 위해, 엄마는 너와 헤어지지 않을 수 없구나. 네가 크고 나면 꼭 나를 찾아와야 한다. 기억해.”
그녀는 장신구를 아직 갓난아이인 두변 목에 걸어줬다.
이윽고 온몸이 피투성이인 여자가 사라지고, 갓난아이 두변이 와아앙, 하고 큰소리로 울었다.
‘어머니?!’
‘어머니다!’
‘어머니가 있었어. 게다가 그분은 일부러 날 버린 게 아니야!’
그건 완전히 잊힌 기억이었다. 두변의 뇌 영역에서 가장 구석진 곳에 있던 기억이었다.
오늘 두변의 영혼이 암흑과 고통에 침몰되지 않았다면 두변은 영원히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바로 그 빛, 이 기억 덕분에 두변은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작은 불똥도 들판을 태울 수 있는 것처럼, 두변의 다 꺼진 영혼의 광점들이 또 다시 한 구역씩 연달아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최후에 그의 영혼 전체가 완전히 소생했다.
현실에서, 그의 몸은 경련을 멈추고 정상적인 호흡을 회복했다.
악몽 대제의 심마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두변을 바라봤다.
연옥탑에서 이 세계로 도착한 뒤, 아직 한 사람도 자신의 심마를 이길 수 없었다.
두변은 그걸 어떻게 해낸 걸까?
두변이 눈을 뜨고 정신세계에서 벗어났다.
맞은 편에 있는 악몽 대제의 심마는 두변을 한참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네가 너의 정신세계 속에서 무엇을 찾아서, 너의 심마에게 이길 수 있었는지 모르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