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4장: 가소로운 일
두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약탈자 상교가 그 말을 듣고 큰소리로 웃었다.
“하하하하! 정말로 가소롭군. 내가 모를 줄 알았나? 난호영 부락에는 너희 부녀 두 사람밖에 없다. 게다가 연진 성주에게 밉보였지. 내가 너희를 죽이면 연진 성주도 내심 내게 감격할 텐데, 어떻게 태강 제국과 싸우게 되겠나?”
이윽고 약탈자 상교가 큰소리로 외쳤다.
“내가 수 셋을 거꾸로 세겠다. 만약 네가 장소만 등 배신자들을 내놓지 않으면 우리가 곧장 쳐들어가서 너희를 모조리 죽여버리고, 너희 부녀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겠다. 음, 아니지. 네 딸은 그토록 아름다우니, 분명히 장군께서 좋아하시겠지. 그 아이를 죽었다가 살아날 정도로 유린할 것이다. 하하하하!”
그 말을 듣자, 두변은 분노가 치솟았다.
딸은 자신의 생명줄인데, 눈앞의 이 약탈자가 그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3!”
“2!”
“1!”
약탈자 상교가 큰소리로 외쳤다.
“시간이 되었다. 발포할 준비를 하라!”
“아무래도 나를 내어주는 게 좋겠어.”
장소만이 그렇게 말하자, 두변이 답했다.
“우리 두 사람이 당신들 칠십여 명을 내어준다고? 너는 머리가 있는 거냐?”
지능이 딸린다는 욕을 먹은 장소만은 예쁜 얼굴을 실룩였다.
약탈자 상교가 큰소리로 외쳤다.
“시간이 됐다! 쳐들어가서 배신자들을 모조리 죽이고, 저 기생오라비 같은 영주를 갈기갈기 찢어버려라. 그의 딸은 잡아서 장군께 바쳐라.”
“발포!”
탕, 탕, 탕.
순식간에 밖에서 총 천 개가 발포되고, 총탄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두변, 두효, 장소만 등은 급히 웅크려 앉아서 두꺼운 담장을 빌려 몸을 엄호했다.
이 담장들은 전부 철근에 콘크리트를 부어서 만들어졌다. 장장 3, 4미터 두께나 되어서 총으로는 관통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가우스 라이플을 써도 관통은 불가능했다.
단지 두변 쪽에는 고작 수십 명이 있는데 반해, 밖에는 장장 천여 명이 있으니 차마 눈에 띄게 반격할 수 없었다.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면 완전 수동적으로 얻어터지며 벌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약탈자 상교가 미친 듯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벽 뒤에 숨었다고 소용이 있을 것 같나? 우리는 대포도 가지고 있으니 너희 벽 뒤에까지 쏠 수 있고, 너희의 높은 담장을 꿰뚫어버릴 수도 있다고. 하하하!”
장소만은 부아가 치밀었다. 그녀는 화끈한 성격이라서 즉시 총을 들고 머리를 내밀며 반격하려고 했다.
두변이 단숨에 그녀를 제지하며 말했다.
“미쳤어? 죽고 싶어?”
장소만이 말했다.
“나는 차라리 죽어도 이 벽 안에서 거북이처럼 머리를 숨기며 찌질하게 있고 싶지 않다고!”
“누구 활 같은 거 있나?”
두변의 말에 누군가가 그에게 강궁을 건넸다.
말세에는 온갖 무기가 다 있었다. 가우스 라이플뿐 아니라, 리커브 보우(Recurved bow)까지.
두변이 그걸 받아서 당겨보니 대단히 힘이 센 활이었다. 150파운드가 넘는 활이라니. 이런 활로 쏜 화살은 가우스 라이플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근거리에서라면 평범한 보병총에도 밀리지 않을 듯했다.
두변은 다행히도 어제 매영체도의 힘을 집어삼켰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힘이 드는 활을 당기지도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활에는 총보다 또 한 가지 우위가 있었다. 그건 머리를 드러낼 필요 없이 포물선으로 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두변은 높은 담장 뒤에 서서 눈을 감고 정신력을 내뿜었다.
그러자 바깥에 있는 모든 이의 형체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밖에 있는 약탈자들에게는 대포가 세 대 있었다. 한 대는 구경이 작지 않았지만, 또 다른 두 대는 박격포였다. 지금 포수는 발포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이렇게 근거리에서 이 정도 두께의 콘크리트 벽은 정말로 철갑탄에 의해 관통될 것이다. 게다가 박격포는 벽 뒤에 숨은 사람들을 쉽게 적중해서 한 번 포를 쏘면 수십 명이나 터뜨려 죽일 수 있다.
지금 포수들이 방위를 조정하며 조준하고 있으니, 곧 발포가 시작될 것이다. 일단 발포하면 상상할 수 없는 결말을 맞는다. 두변 쪽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을지 모른다.
곧 두변이 놀라운 공연을 펼치기 시작했다.
정신력 고정술!
순식간에 두변은 100미터 안에 있는 포수 세 명을 쉽게 고정시켰다.
“5연속 화살!”
슉, 슉, 슉, 슉, 슉.
화살 다섯 자루가 공중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하나로 연결된 것처럼 담 바깥의 포수들을 향해 쏘아졌다.
장소만 등은 경악했다.
‘두변이 지금 뭘 하려는 거지? 눈을 감고 화살을 쏴? 그것도 하늘에 대고 쏘는 거야?’
이건 점이라도 치려고?
눈을 크게 떠도 제대로 조준할까 말까인데, 하물며 눈을 감고 활을 쏴?’
하지만 잠시 후.
“아아악!”
밖에서 처참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포수들은 전부 획일적으로 머리에 화살이 맞아서 처참하게 죽었다.
장소만은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약탈자 상교는 놀라서 얼이 빠져버렸다.
‘이,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일이 일어난 거야?’
‘안 보고도 명중시킬 수 있다고?!’
물론 두변에게는 정신술(定身術)과 역귀 색명술도 있지만, 포수들이 너무 먼 거리에 있는 데다 두변의 정신력이 아직 그 정도로 강하지 않아서 100미터 넘어서까지 그 술수를 펼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가까이에 있는 이들에게는 가능했다.
한순간, 두변이 역귀 색명술을 시전하자, 괴상한 장면이 나타났다.
담 밖의 약탈자 병사 십여 명의 머릿속에 전대미문의 공포가 솟구쳤다.
구체적인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데 갑작스레 닥치는 공포였다. 이런 공포는 어두운 밤에 귀신을 만났을 때보다 열 배, 백 배는 더 공포스러워서 곧바로 그들의 정신적인 한계를 넘어서 버렸다.
“아아악!”
더할 나위 없이 처참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약탈자 병사 십여 명은 얼굴이 뒤틀리면서 일곱 구멍에서 피를 흘린 뒤, 무참히 놀라서 죽었다.
극도로 공포스러울 때, 사람은 아드레날린이 급증해서 혈압이 큰 폭으로 오르게 된다. 혈액이 격류처럼 심장에 충격을 줘서 심근 섬유가 곧바로 찢어진 뒤, 심장에 출혈이 생기고, 심정지로 죽게 된다.
약탈자 상교는 강한 전사로서, 힘과 무공이야 당연히 두변을 훨씬 능가했다.
하지만 이런 살인 방식은 정말 듣기만 했을 뿐이었다. 소리 소문도 없이 부락의 천 명을 도살했다는 그 역귀의 소문만 들었을 뿐이다.
두변은 역귀 색명술을 끊임없이 시전했다.
한 번 시전할 때마다 약탈자 병사들 십여 명이 얼굴이 뒤틀리며 죽었지만 두변의 정신력도 쏜살같이 소진되고 있었다.
두변의 정신력 수준이 아직은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라서 역귀 색명술의 파괴 범위는 20미터에 불과했다. 게다가 정신력이 낮은 사람에게만 효과를 볼 수 있어서 엽해당처럼 대단하지 않았다.
그러니 두변은 이제 역귀 색명술을 멈추고 계속 활을 쏘았다.
슉, 슉, 슉, 슉.
화살이 연발로 미친 듯이 쏘아졌고, 모든 화살은 반드시 한 사람씩 죽였다.
밖에 있는 모든 이가 놀라서 넋이 나갔다.
‘이 안에 있는 사람은 대체 누구지?’
‘마귀인가?’
‘활을 쏠 때 조준할 필요도 없이 백발백중으로 명중시키는 거야?’
‘그것도 너무 무섭잖아!’
이렇게 기이하고 놀라운 장면을 마주하면서 밖에 있는 약탈자 연맹 사람들은 심지어 총을 쏘는 것도 멈추고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보려고 했다.
밖에서 총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자, 장소만은 위험을 무릅쓰고 담 밖을 쓰윽 쳐다보았다.
이윽고 그녀도 더할 나위 없이 괴상하고 놀라운 장면, 믿어지지 않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두변이 연발로 쏜 화살들에 눈이 달리기라도 한 듯이 백발백중을 자랑하며, 적을 한 명씩 쏴 죽였다.
‘이건 너무 강할 뿐 아니라, 괴상하고 신비롭잖아?’
어제 그녀는 두변이 몹시 초라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이토록 강하고 너무나 대단할 줄이야!
약탈자 상교가 큰소리로 외쳤다.
“저 안에는 정신술사가 있다. 그것도 강력한 정신술사야. 모든 이는 200미터 후퇴한다. 뒤로 200미터 물러나!”
그 말을 듣고 나머지 천여 명이 재빨리 200미터 후퇴했다.
이렇게 되니, 두변으로서는 손쓸 방법이 없었다.
적이 200미터 뒤로 물러나면서 두변의 정신력 공격의 범위와 고정 범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방의 대포와 총은 200미터 밖까지 쏠 수 있었다.
그 말은 두변 일행이 다시 수동적으로 얻어맞는 상황으로 변한다는 뜻이었다.
200미터 뒤로 물러나자, 약탈자 상교는 역귀 색명술이 역시나 사라졌을 뿐 아니라, 높은 담장 안에서도 화살이 더 이상 날라오지 않는다는 걸 발견했다.
방금 전의 그 장면은 너무나 두려웠다. 사신이 목숨을 거두어가는 것과 같았다.
약탈자 상교가 큰소리로 외쳤다.
“안에 있는 정신술사여, 이 거리에서라면 너는 손쓸 방법이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도살당하기만을 기다려라. 내 철갑탄은 쉽게 네 벽을 꿰뚫을 것이고, 박격포는 너희를 전부 터뜨려 죽일 수 있을 거다!”
그와 같은 시각. 난호영 부락 옆에 있는 높은 산의 산꼭대기.
“폐하, 두변이 몹시 위급한 상황인데, 도와줘야 하지 않습니까?”
연진 성주가 무릎 꿇고 바닥에 엎드리고 있었다.
허공이 한바탕 뒤틀리더니, 거대한 군왕이 산꼭대기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영상이 아니라 진정한 태강 대제였다.
그는 온몸을 암흑의 갑옷으로 감쌌고, 투구에는 아홉 개의 뾰족한 뿔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가 이 산꼭대기에 서니, 순식간에 이 높은 산을 완전히 압도해버릴 정도로 패기가 치솟았다.
그는 키가 몹시 커서 진정 거인이라고 부를 만했다.
그가 시선을 모으자, 순식간에 수천 미터 밖에 있는 영상이 눈앞으로 끌려와서 두변과 그의 딸이 똑똑히 보였다.
그런데 그 앞에 말라 죽은 큰 나무 십여 그루가 그의 시야를 조금 막았다.
순간 태강 대제가 큰손을 가볍게 한 번 휘두르자, 나무 십여 그루가 전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아니다. 그가 이 상황을 만회할 수 있는지 보자꾸나. 그가 약탈자 천 명도 상대하지 못한다면 나는 그를 만날 필요가 없으니, 그가 약탈자의 총 끝에 죽도록 내버려둘 것이다. 그가 전세를 역전시킨다면 내가 그자의 앞에 나타날 것이다!”
연진 성주는 머리를 쥐어짜도 두변이 어떻게 눈앞의 곤경을 역전시킬 수 있을지 아무런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에 반해 약탈자의 대포는 손쉽게 두변 일행을 모두 죽여버릴 수 있다.
이제 보니 두변 일행 수십 명은 패배할 운명, 죽을 운명이로구나.
아무런 기적을 만들어낼 수 없을 것 같구나!
난호영 부락의 높은 담장 밖에서 약탈자 상교가 큰소리로 외쳤다.
“발포해라, 발포해!”
“안에 있는 사람을 모조리 터뜨려서 깨끗이 죽여버려라.”
“그 정신술사와 그의 딸을 전부 터뜨려 죽여버리자!”
콰과과광.
순식간에 대포 세 대가 두변 쪽 난호영의 높은 담장을 향해 발포했다
두변 쪽 수십 명은 목숨이 위태로워지면서 곧 죽을 상황에 놓였다.
콰과광.
약탈자의 대포 세 대가 발포되었다.
한 대는 유탄포, 두 대는 박격포였다.
유탄포는 철갑탄을 발사해서 곧바로 난호영의 두꺼운 담장을 꿰뚫은 뒤, 맹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순식간에 폭발로 인해 3, 4미터 두께의 콘크리트 담장에 몇 미터에 달하는 큰 구멍이 생겨났다.
박격포탄 두 발은 기나긴 포물선을 그리며 담장 뒤 수백 미터 위치에 있는 집에 떨어졌다. 한순간 3층 건물 한 채가 폭발하며 무너졌다.
빌어먹을, 이건 현대의 포탄이라서 위력이 더욱더 놀라웠다.
그런데 전문적인 포사수는 두변의 화살에 이미 죽었기 때문에, 박격포 두 대의 명중률이 몹시 떨어졌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두 대에서 떨어진 포탄에 두변 곁의 수십 명 가운데 적어도 태반이 죽었을 것이다.
“더 정확히 발사해랴!”
약탈자 상교가 큰소리로 외쳤다.
이윽고 비전문적인 포사수들이 계속 대포를 조정했다.
콰과광.
약탈자들의 두 번째 포격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조금 더 정확해져서 포탄이 떨어지는 거리가 두변 일행으로부터 100미터도 되지 않았다.
이대로 계속 포격이 이어진다면 두변 등 수십 명은 늦든 빠르든 폭발로 죽임을 당할 것이다.
“나는 절대로 너희 부녀를 끌어들일 수 없어.”
장소만이 이를 악물고는 사람들을 데리고 뛰쳐나가서 바깥에 있는 약탈자 연맹과 맞서 싸우려고 했다.
두변이 큰 소리로 말했다.
“멍청한 여자 같으니라고. 뛰쳐나가서 죽으려고? 우리는 집 뒤로 후퇴해서 저들이 들어오게 만든 뒤에 각개격파하면 그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