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3장: 15년 전
다른 방 안.
조금 전, 두변은 자신이 죽인 매영체도의 몸속으로 손을 넣은 뒤에 오장육부를 뒤져 에너지 정체를 찾았다.
한참을 찾던 그는 괴수의 심장에서 에너지 정체를 꺼낼 수 있었다.
에너지 정체는 보석처럼 생긴 게 아니라, 고체이면서 유동하는 에너지였다.
두변은 괴수의 심장에서 뽑아낸 정체를 방에 가지고 들어온 뒤,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정체를 손에 쥐고 에너지의 흐름을 느꼈다.
그러다 눈을 지그시 감고 흡성대법을 시전하는 순간, 갑자기 거대한 힘이 두변의 몸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이 거대한 힘은 두변이 다른 차원에서 흡성대법으로 빨아들이는 현기 같은 게 아니라, 그보다 더욱 순수하고 강력한 힘이었다.
이 순수하고 거대한 힘은 두변의 몸속으로 들어가서 그의 골격과 근맥, 온몸의 세포까지 개조하기 시작했다.
일순간, 두변의 골격과 근맥이 단단해졌다.
두변은 앉아있는데도 자신의 민첩함과 힘이 대폭 향상된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가 흡성대법을 시전하면 시전할수록, 그의 손에 있던 정체는 점점 더 작아졌다.
콰드득, 콰드득.
가죽으로 뼈를 감싼 수준으로 야위었던 두변의 몸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위축되었던 근육이 비대해지기 시작했고, 그의 해쓱하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병든 닭 같던 두변이 드디어 활기를 되찾고 예전의 준수하고 매력적인 남자로 돌아왔다.
두변의 골격과 근맥에서 콩을 볶는 듯한 소리가 끊이질 않았는데, 이 소리는 그의 무도 수준이 미친 듯이 향상하는 소리였다.
다음 날 아침.
장소만은 남은 70명 수하를 데리고 취락을 떠날 채비를 했다.
“아줌마, 그냥 여기에 남으면 안 돼요? 우리 취락은 엄청 커서 아줌마랑 아저씨들이 여기서 여유롭게 살 수 있는데.”
두효가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로 장소만의 손을 잡고 흔들면서 말했다.
장소만이 두효의 귀여운 얼굴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여기 남을 수 없어.”
장소만이 준비를 끝낸 뒤에 곧바로 수하들과 떠나려고 하자, 두효가 다급하게 두변을 불렀다.
“아빠, 아빠. 빨리 나와봐요. 장소만 아줌마가 떠나신대요. 얼른 나와서 좀 붙잡아 봐요.”
두변이 문을 열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환골탈태한 수준으로 변한 두변을 보자, 두효가 눈을 반짝였다.
‘아빠가 하룻밤 사이에 엄청 잘생겨졌는데?’
장소만이 언짢은 기색으로 고개를 돌려서 두변을 바라보는 순간, 장소만의 심장이 덜컹 소리를 내면서 떨어지고 말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볼품없는 몰골이었던 두변이 하룻밤 사이에 너무 잘생겨졌다.
심지어 고등학교 때의 모습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었다.
그래도 장소만은 단호하게 고개를 돌리고 취락을 떠났다.
수십 미터 걸어갔을 때, 장소만이 돌연 걸음을 멈추고 두효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을 짓다가 말했다.
“만약 내가 잘못 기억한 게 아니라면, 내가 네 엄마를 본 적 있던 것 같아.”
바로 이때, 갑자기 대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수히 많은 그림자가 천군만마의 기세로 난호영으로 밀려오기 시작했다.
15년 전, H시!
그때 장소만은 국가 대표 육상팀의 운동선수였다. 그녀는 천부적으로 좋았던 재능에, 십여 년간 힘겹게 땀을 흘린 결과가 더해지니, 마침내 인생의 정점에 올라서 국가대표로서 올림픽에 참가하게 되었다.
세상 최후의 날이 될 그날, 그녀는 어느 대형 버스에 타고 있었다.
그녀는 평생 그 장면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이상하고 낯선 차원이 지구를 뒤덮으면서 모든 이의 시야를 뒤덮었다.
그런 뒤, 하늘에 크나큰 균열이 생기면서 수많은 화구(火球)가 떨어졌다.
푸른색 화염, 백색 화염, 심지어 검은색 화염까지 있었다.
수백만, 수천만 개의 유성우가 지구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거리에 있는 교통수단이 마비되며 수많은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모든 차가 길을 막았고 장소만이 탄 그 버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장소만은 버스 안에서 아름답고 정교하게 생긴 여인이 맨발로 거리를 질주하는 장면을 보았다. 여인의 아름다운 흰 발은 이미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장소만은 그 여인의 얼굴에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던 걸 어렴풋이 기억할 수 있었다. 세상 최후의 날이 강림한 그 장면에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목적지로 뛰어갈 생각만 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저 여인은 분명히 엄마일 거야.”
장소만은 그 당시 그렇게 생각했었다.
세상 최후의 날에 공포를 이길 수 있는 게 있다면 당연히 사랑일 테니까.
그녀가 뛰어서 집으로 돌아가려는 이유는 어쩌면 자신의 아이와 가족을 구하려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녀도 한낱 사람이니, 어쩌면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죽으려는 건지도 몰랐다.
그 순간, 장소만도 집으로 뛰어서 돌아가 부모님과 함께 죽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녀의 집은 수백 리나 먼 곳에 있었다.
물론 거기까지였다면 그녀는 십여 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여인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펑!
이어서 거대한 화염 한 덩어리가 세차게 떨어졌다.
큰 소리가 들린 뒤, 사방 천 미터 안이 다 궤멸했다. 도로가 완전히 찢어져 버리고, 큰 빌딩이 쪼개지듯 무너졌다.
사방 수천 미터 안에 있는 차들이 전부 뒤집혔을 뿐 아니라, 지상에는 100미터 직경의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버렸다.
장소만이 탄 대형 버스도 곧바로 전복되었지만 다행히 그녀는 안전 벨트를 하고 있어서 중상을 입지는 않았다. 하지만 강한 충격파에 의해 머리가 조금 어지러운 걸 보니, 가볍게 뇌진탕이 온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똑똑히 앞을 볼 수 있었다. 방금 전에 맨발로 뛰던 여인이 바닥에 누워서 숨이 곧 끊어질 듯했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깨진 차창을 두고 그녀와 얼굴을 마주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또렷이 보였다. 질투가 날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입, 코, 귀에서 다 피가 흘러나왔다. 게다가 벌린 그녀의 입에서 끝없이 핏덩어리 같은 게 쏟아져 나왔다.
그녀는 살지 못할 것이다.
그런 판단이 들자, 장소만은 내심 몹시 괴로웠다. 하지만 상대방은 자신을 보며 힘겹게 웃어줬을뿐더러, 애를 써서 손을 들어 올리려 했다.
바로 그때, 지면이 떨리기 시작하더니, 거대한 형체 하나가 나타났다.
그건 지구의 사람이 아니었다. 거인처럼 키가 6미터가 넘었다.
그것은 은빛 갑옷을 입었는데 고귀하고 위풍당당해 보였다.
생김새도 지구인과 그다지 같지 않았다. 윤곽이 몹시 뚜렷할 뿐 아니라, 귀가 뾰족했다.
그것은 공중에서 떨어지면서 주변 천 미터 안의 모든 걸 망가뜨렸지만 그것 자체는 여전히 무사할 뿐 아니라, 심지어 입고 있는 은빛 갑옷에 먼지 하나 묻지 않았다.
그는 주위의 울고 소리 지르는 사람들을 모른 척하며 그대로 발걸음을 돌렸다.
죽기 직전의 그 여인이 피가 흐르는 손으로 그것의 은빛 신발을 붙잡았다.
6미터 신장의 이세계 사람은 발을 들어서 그 여자를 그대로 밟아 죽이려 하더니, 1초를 망설이고는 그 여자를 밟아 죽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자가 손을 살짝 들자, 그 여자의 몸이 떠올라서 그의 두 손 위에 떠 있게 되었다.
그렇게 그는 그 여인을 데려갔다. 질투가 날 정도로 정교한 아름다움을 가졌지만 숨이 곧 끊어질 듯한 여인을 말이다.
바로 그 장면 때문에 그 여인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한평생 그 장면을 잊지 못할 것이다.
어젯밤은 날이 어두운 편이라서 촛불이 있어도 잘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두효는 절반은 아빠, 절반은 엄마를 닮아서 장소만은 한순간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데 어젯밤 잠을 잘 때, 그녀는 꿈을 두 개나 꾸었다.
첫 번째 꿈에서 그녀는 고3 시절로 돌아가 두변과 첫 데이트를 한 꿈이었다. 물론 그녀는 이미 이 꿈을 여러 번이나 꿨을 뿐 아니라, 매번 이 꿈만 꾸면 노기등등해졌다.
두 번째 꿈은 바로 세상 최후에 날이 왔을 때 그녀가 봤던 그 장면이었다.
깨어난 뒤, 그녀는 조금 이상한 점을 느꼈다. 곧 두효가 그 여인과 몹시 닮았다는 걸 깨달았다. 특히 생김새가 주는 느낌이 똑같았다.
이 아이는 아빠와 엄마의 장점만 그대로 물려받아서 부모를 쏙 빼닮은 초특급 미녀였다.
장소만이 15년 전에 봤던 일을 말해주자, 두효는 두변의 품속에서 큰 소리로 울었다. 괴로움이 가득했지만 또 다행이라는 마음도 들었다.
두변은 크게 숨을 들이켜면서 딸의 등을 가볍게 토닥여줬다.
그는 그 당시 약혼녀 임야소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웠을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맨발로 집까지 달려서 두변, 딸과 함께 죽으려고 했으니 말이다.
결국 이세계의 차원이 떨어져서 곧바로 그녀의 오장육부를 찢어놓았다. 그녀가 핏덩어리를 토한 걸 봐서는 장기가 찢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두변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효, 울지 마, 울지 마라! 엄마는 분명히 아무 일 없을 거다. 엄마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데, 천사든 악마든 다 엄마를 불쌍히 여겨서 분명히 엄마를 구해줬을 거다.”
장소만이 말했다.
“나는 단지 네 딸이 그 여인과 조금 닮았다고 생각해. 내가 말한 게 꼭 네 약혼녀가 아닐지도 몰라.”
그렇지만 두효는 그 여자가 분명히 엄마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아침 엄마가 출근하면서 무슨 옷을 입었는지까지 똑똑히 기억하기 때문이다.
“두변, 넌 그녀를 사랑하니?”
장소만이 두변을 바라보며 묻자 두변이 답했다.
“매우 사랑하지.”
“그럼 네가 하루빨리 네 아내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랄게. 나는 간다, 안녕!”
이윽고 그녀는 나머지 칠십여 명을 데리고 떠났다.
지금 두효의 마음속에는 엄마에 대한 생각뿐이라, 더는 장소만이 떠나는 걸 막지 못했다.
그러나 장소만은 여전히 떠나지 못했다.
쿵, 쿵, 쿵.
약탈자 연맹의 천여 명이 난호영을 둘러쌌기 때문이다.
수많은 오토바이, 실제 크기의 장갑차, 가우스 라이플 수십 개, 그리고 무사 수백 명이 있었다.
약탈자 연맹의 상교(上校) 하나가 기이한 갑옷을 입고 손에는 장장 2미터가 넘는 길이의 검은 칼 하나를 들고 있었다.
“난호영 영주는 나와라!”
약탈자 상교가 큰소리로 외치자, 두변이 높은 담장 위에 나타났다.
“우리는 태강 제국과 싸울 마음이 없다.”
약탈자 상교가 첫마디를 했다.
약탈자는 온갖 곳에서 약탈과 살육을 하지만 웬만해서는 공공연하게 태강 제국의 영지와 부락을 공격하지 않는다. 태강 대제가 지나치게 강하기 때문에 약탈자 연맹은 그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두변이 소리쳤다.
“나도 당신들과 전투를 치를 마음이 없다.”
밖에는 장장 천여 명의 무사들이 있었다.
약탈자 상교가 소리쳤다.
“우리 약탈자 연맹의 배신자가 당신 부락으로 도망쳤다. 당신이 그 여인을 내놓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셈 치겠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쳐들어가서 직접 배신자를 데리고 가겠다.”
장소만이 높은 담장에 올라 냉랭하게 물었다.
“상교, 당신이 말한 배신자가 나인가요?”
약탈자 상교가 냉랭하게 답했다.
“알면 됐다. 너희는 즉시 나와라. 우리를 따라 돌아가서 장군의 처벌을 받아라.”
장소만이 버럭 화를 내면서 말했다.
“처벌이라고? 돌아가서 나를 그자의 성노예로 삼으려는 거겠지. 내 수하들은 전부 처형될 테고?”
약탈자 상교가 말했다.
“누가 너희더러 감히 장군의 명령을 거역하라고 했더냐?”
장소만이 말했다.
“우리에게 약탈을 하라고 시키는 건 넘어가겠어. 하지만 무기도 들지 않은 인간 평민 수백 명을 한꺼번에 도살하라고 하는 건, 도저히 그 짓은 할 수 없다.”
약탈자 상교가 말했다.
“너는 장군의 명령을 거역했을 뿐 아니라, 그의 보물까지 훔쳐 갔다. 그 죄만 해도 너는 갈기갈기 찢어 죽여야 마땅해.”
이윽고 약탈자 상교가 두변을 바라보며 말했다.
“난호영 영주, 즉시 배신자 장소만을 내놔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 영지를 평지로 밀어버리고, 이 안에 있는 사람을 모조리 죽여버리겠다.”
장소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두변을 바라봤다. 그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고 싶었다.
두변 쪽에는 달랑 두 사람밖에 없는 데다, 장소만 등 수십 명을 합쳐도 80명이 되지 않았다. 그에 비해 바깥에는 약탈자가 천여 명이나 있었다.
그러니 양쪽의 실력 차이는 현저했다.
자신과 딸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누구든 타협하며 장소만을 내어주려고 할 것이다.
하물며 어제 두변은 장소만의 목숨을 구해준 터라 더 이상 그녀에게 빚진 게 없는 상태였다.
두변이 말했다.
“미안하군. 장소만과 그녀의 수하들은 이미 내 난호영 부락의 백성이 되었거든. 즉 태강 제국의 백성이 되었으니 나는 그들을 내놓을 수 없다. 네가 감히 난호영 부락을 공격하는 건 태강 제국에 싸움을 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말을 듣자, 장소만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두변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쳤어? 너희는 둘뿐이지만 저들은 천여 명이나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