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568화 (568/648)

568장: 이태강

이태강?!

태강 제국?

두변의 두피가 저릿해졌다.

그는 소군 방진의 정체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방진이 이소강일 줄이야. 두세 살 때부터 나를 꼬리처럼 쫓아다녔던 애가, 나를 형이라고 부르고 싶었지만, 정작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 그럴 수 없었던 이소강이!

돈이 없어서 배를 굶고, 날 쫓아다니면서 밥을 얻어먹고, 나를 따라 기숙사를 나오고, 내가 임대한 숙소에서 같이 살긴 했지만, 한 번도 방세를 낸 적 없던 이소강.

대학생 때는 두변의 기생충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던 이소강.

두변은 자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여자 임야소를 만난 뒤부터 이소강과 따로 지내게 되었다. 이소강 몰래 집을 나와서 임야소와 동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배은망덕한 이소강은 고등학교 때 두변을 사칭해서 엽해당을 간음했고, 임신한 엽해당을 목 졸라 살해한 뒤에 저수지에 시신을 유기하기까지 해?

그랬던 이소강이 종말로부터 인류를 구한 영웅이 되고, 지고무상한 태강 대제가 된 건가?

괴물 엽해당은 제자리에 멍하니 서서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엽해당이 흘린 눈물들은 전부 불꽃이 되었다.

마음이 죽은 것보다 더한 슬픔이 있을까.

엽해당은 이미 한 번 죽은 몸인데, 또 죽을 수가 있을까?

“나를 죽이러 온 거야?”

엽해당이 부드러워진 말투로 물었다.

두변은 침묵했다.

엽해당이 무척 불쌍하긴 했지만, 이미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엽해당이 말했다.

“너는 내가 십여 년 동안 좋아했던 남자야. 네 손에 죽는 것도 나름의 행복이지. 내 뇌 속에 아주 강한 에너지 결정체가 있는데, 내가 지금껏 모은 모든 에너지가 그 결정체 안에 담겨있어. 네가 그 결정체를 빼가기만 하면, 난 모든 힘을 잃게 돼.”

엽해당이 갑자기 힘을 끌어모으면서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엽해당의 이마가 찢어지더니, 그녀가 말한 반짝거리는 에너지 결정체가 이마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걸 가져가. 이 안에는 어마어마한 힘이 들어있어. 내가 잡아먹은 수천 명의 혼백이 거기 모여있거든. 내가 소리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도 이 결정체 덕분이야. 그러니까 네가 이 결정체를 가진 뒤에, 날 죽여줘.”

두변은 에너지 결정체가 엽해당의 이마에서 나온 뒤, 저수지 전체에 깔려있던 에너지 자기장이 확연히 약해진 걸 느낄 수 있었다.

엽해당은 이 저수지 근처와 댐에 자기장을 만들어놨고, 누구든 이 자기장 안에 들어오면 자신의 통제를 받게끔 해놨다.

“두변,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야?”

엽해당이 아련하게 물었다.

두변이 대답했다.

“응, 정말 좋은 사람이지. 너처럼 의지가 굳건한 사람이야.”

엽해당이 이마에서 떼어낸 에너지 결정체를 천천히 두변의 이마 앞으로 가져갔다.

“얼른 가져가. 응?”

십여 년 동안 축적한 에너지, 그리고 수천 명의 혼백이 담긴 결정체가 두변의 눈앞에 있다.

두변이 결정체를 얻게 된다면, 엄청나게 강해질 것이다.

결정체가 없는 엽해당은 그저 힘없는 귀신에 불과했다.

“내가 너한테 주는 선물이야.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안 그러면 내가 수천 명을 괜히 죽인 게 되잖아.”

엽해당이 다정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경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귀신과 인간의 사랑 이야기라니. 너무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다 나오겠군.”

목소리의 주인공과 다른 한 명이 번개처럼 빠르게 나타났다.

한 사람은 두변을 향해 검을 휘둘렀고, 다른 사람은 괴물 엽해당의 머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아빠!”

예리한 두효가 곧바로 수초를 떨쳐내고 쏜살같이 날아와서 검을 뽑아 들고 두변의 앞을 막았다.

이때, 댐 뒤에서 숨어 있던 영주 능매도 불청객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챙.

효효가 급습한 사람의 검을 막아낸 뒤, 맹렬한 기세로 싸우기 시작했다.

엽해당의 이마를 향해 검을 찌른 사람은 무공이 대단한 사람이었고, 그의 검은 그대로 엽해당의 머리를 관통했다.

검은 피가 엽해당의 창백한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 결정체는 내가 가져간다. 하하하.”

그 사람이 웃음을 터트리면서 엽해당 손에 있던 결정체를 빼앗았다.

두변과 엽해당을 급습한 두 사람은 엽해당이 만든 자기장 범위 밖에서 숨어 있었다.

이 둘도 두변과 똑같은 테슬라코일 무기를 만들어서 S급 임무를 완수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테슬라코일 무기라도 엽해당에게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한다는 걸 목격한 뒤, 차마 엽해당에게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급습한 사람은 중년 남자 한 명, 젊은 청년 한 명이었다.

중년 남자는 엽해당의 이마를 가격한 뒤, 청년이 급습에 실패하고 두효에게 기세가 밀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

만약 엽해당이 자발적으로 모든 방어를 해제하고, 자신의 이마를 찢어서 결정체를 두변에게 건네지 않았다면, 중년 남자는 절대로 엽해당을 공격하지 못했을 것이다.

중년 남자가 청년을 돕기 위해서 재빨리 방향을 틀었다.

챙.

중년 남자의 검이 두변에게 닿기 직전, 영주 능매의 검이 그의 검을 막았다.

“임 장로, 그리고 소성주?”

능매가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소리쳤다.

능매는 이 두 사람을 알고 있었다.

엽해당과 두변을 급습한 사람은 빙계성 성주 연진(連晉)의 아들 연벽과 장로 임백년이었다.

빙계성 소성주 연벽이 말했다.

“능매, 내가 누군지 알아본 게 차라리 다행이군. 이 부녀가 괴물과 결탁했다는 걸 봤지? 그러니까 이 부녀를 죽여. 명령이다.”

능매가 반박했다.

“아닙니다. 이들은 이 괴물을 죽이기 위해서 온 겁니다.”

소성주 연벽이 냉랭하게 말했다.

“괴물을 죽인 건 우리지. 이들이 괴물과 한통속인 게 탄로 났으니, 남자는 죽여버리고, 여자애는 하옥시켜.”

소성주 연벽은 그새 아름다운 두효의 얼굴과 굴곡진 몸매를 훑어보고는, 음흉한 눈빛으로 두효를 쳐다봤다.

소성주 연벽이 두효보다 더 강했지만, 두효는 나름대로 잘 버티고 있었다.

두효는 7급 무사이고, 소성주 연벽은 8급 무사였다. 하지만 두효는 천부적인 무도 재능이 뛰어나서 1급 차이의 싸움에도 막상막하 수준으로 싸울 수 있었다.

반면, 능매는 임백년의 공격을 막는 것조차 버거웠다. 능매는 9급 무사지만, 임백년 장로는 그녀와 3급이나 차이나는 12급 무사였다.

“소성주, 저들을 다 죽여버리십시오. 괴물이 십여 년 동안 모아온 힘과 수천 명의 혼백이 그 결정체에 있습니다. 상상 이상으로 강력한 결정체라는 겁니다. 우리가 그 결정체를 차지하려면, 이곳에 있는 세 사람을 다 죽여버려야 합니다.”

하지만 소성주 연벽은 두효를 이대로 죽이기엔 너무 아까웠다.

임 장로는 능매를 죽일 생각으로 검에 힘을 실어서 그녀를 몰아붙였고, 능매는 임 장로의 검을 위험하고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있었다.

“아아아아!”

이때, 머리가 뚫린 엽해당이 비명을 지르더니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외쳤다.

“감히 두변을 죽이려고 해? 내가 사랑하는 남자를? 어서 그 결정체를 두변에게 돌려줘. 당장 돌려줘.”

지금 엽해당의 몰골은 공포영화에 나오는 귀신보다 더 무시무시했다.

안 그래도 귀신이라 머리카락에 수초가 뒤섞여 있었는데, 이젠 이마가 갈라지고 머리에 구멍까지 나서 뇌가 보일 정도였다.

엽해당의 뇌는 하얀색이 아니라 기이한 초록색이었다.

“빨리 결정체를 돌려줘. 돌려달라고.”

엽해당이 소리를 질렀다.

임백년 장로가 엽해당을 향해 외쳤다.

“괴물, 넌 이미 결정체를 꺼낸 몸이라서, 누구든 너를 쉽게 죽일 수 있다. 난 이 여자를 죽인 뒤에 네 남자를 죽일 거다. 하하하.”

푸슉.

12급 무사 임백년의 검이 능매의 몸에 깊숙이 들어갔다.

임백년은 검을 바로 뽑지 않고, 손목을 튕겨서 능매의 몸을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영주 능매의 몸이 힘없이 튕겨 나갔다.

곧이어 임백년이 검을 두변의 목에 겨누고 악랄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난 이제 이놈을 죽일 거다. 괴물, 아무런 힘도 없는 네가 뭘 할 수 있겠어?”

일순간, 괴물 엽해당이 하늘을 향해 포효하더니, 저수지에 있던 모든 혼백이 엽해당의 몸에 붙었다.

수천 개의 혼백이 엉겨 붙은 엽해당의 모습은 정말로 끔찍했다.

엽해당이 날카로운 손톱으로 임백년의 검을 잡더니, 그대로 검을 으스러트렸다.

그리고 다른 손톱으로 빙계성 소성주 연벽의 목을 움켜잡았다.

두효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검으로 연벽의 머리를 찔러서 죽였다.

임백년 장로가 경악해서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엽해당을 쳐다봤다.

엽해당은 에너지 결정체가 없이도 저수지 전체의 혼백을 끌어모을 수 있었고, 여전히 강해질 수 있었다.

임백년이 서둘러 뒤로 몇백 미터 물러나서는 에너지 결정체를 들어올리고 소리쳤다.

“이건 네가 수천 개의 혼백을 모은 결정체라서 아주 귀하고 강하지. 하지만 내가 이걸 으깨서 없애버리면, 네가 사랑하는 남자도 이 결정체를 가질 수 없게 돼.”

괴물 엽해당이 소리쳤다.

“결정체를 두변에게 돌려주면, 네 목숨은 살려주마.”

임백년 장로가 빠르게 몇백 미터 더 후퇴했지만, 엽해당은 그를 놓치지 않고 맹추격했다.

“내가 가질 수 없으면, 아무도 이걸 가질 수 없어.”

임백년 장로가 외치면서 결정체를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쾅.

결정체가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폭발해버렸다.

무수히 많은 혼백이 세상에서 제일 찬란한 에너지 불꽃이 되어 근방 천 미터에 흩뿌려졌다.

“안 돼!”

엽해당이 절규했다.

“하하하. 내가 가질 수 없다면, 아예 없애버리는 게 상책이지.”

빙계성 임백년 장로는 엽해당이 넋이 나간 틈을 타서 쏜살같이 도망쳤다.

“안 돼. 흩어지면 안 돼.”

엽해당이 자신의 몸을 수십, 수백, 수천 줄기의 초록색 불빛으로 나누었다.

초록색 불빛은 거대한 그물망이 되어서 근방 천 미터를 꼼꼼하게 둘러쌌고, 거대한 그물망은 곳곳에 흩뿌려진 에너지 불꽃을 남김없이 감쌌다. 그리고 서서히 그물망이 좁혀지면서 에너지 불꽃을 하나로 모았다.

허공에 흩뿌려졌던 에너지 불꽃이 마지막엔 다시 주먹 크기의 에너지 결정체가 되었다.

하지만 수천 줄기의 빛으로 쪼개졌던 엽해당의 몸은 거의 투명에 가까워졌다.

엽해당이 주먹 크기의 결정체를 두변의 이마에 갖다 댄 뒤, 조심스럽게 결정체를 톡, 하고 쳤다.

그러자, 에너지 결정체가 순식간에 두변의 머릿속으로 들어갔다.

“두변, 이건 내가 네게 주는 사랑의 선물이야.”

엽해당이 쑥스럽게 말했다.

잠시 뒤, 엽해당은 두변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쾅!

엽해당과 작별한 동시에, 막강한 힘이 두변의 머릿속에서 폭발했다.

그리고 폭발한 힘의 중심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 오랜만입니다.’

두변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시스템?

어째서 시스템이 아직도 두변의 머릿속에 있는 걸까?

두변은 시스템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지금 엄청난 힘이 그의 머릿속을 헤집고 있어서 시스템과 교류할 수는 없었다.

이 에너지는 막강한 정신력이었다.

엽해당이 십여 년 동안 수천 개의 혼백을 모았으니, 결정체에 응집된 정신력의 강함은 말로 표현할 필요도 없다.

비록 빙계성 장로 임백년이 결정체를 부숴서 공중에서 소실된 에너지가 많겠지만, 그래도 지금 두변의 머릿속에 들어온 양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강한 정신력이 미친 듯이 두변의 뇌 신경과 정신을 개조했다.

결정체 덕분에 두변의 모든 신경과 신경 세포가 아주 풍성해지고 단단해졌다.

게다가 이 특수한 정신력은 두변의 뇌에서 특수한 정신 프로그래밍을 시작했다.

그렇게 정신없는 2시간이 지난 뒤에야, 두변의 머릿속이 잠잠해졌다.

‘아니, 넌 왜 아직도 내 머릿속에 있는 거지?’

두변이 다짜고짜 시스템에게 화를 냈다.

‘주인님, 저는 고도로 발달한 지능 시스템입니다. 주인님의 영혼에 주입된 이상, 저는 주인님의 영혼에 영원히 존재합니다. 예전에는 꿈속 마왕이 지능 시스템을 장악했습니다. 꿈속 시스템이 슈퍼 관리자였죠. 하지만 꿈속 시스템이 떠났으니, 이제 저는 평범한 지능 시스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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