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2장: 두변의 실종
현대 지구, H시.
임야소는 전화를 받은 뒤에 꼭 미칠 것만 같았다.
“차분해야 해. 그래. 내가 차분해야지. 효효는 아이인데, 내가 차분하지 않으면 어떡해?”
임야소는 열심히 심호흡하면서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미안해요. 집에 급한 일이 생겨서 당장 집에 가봐야 해서요.”
임야소가 피아노 강습을 듣고 있던 학생들에게 말한 뒤, 하이힐을 손에 든 채 곧장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녀는 지하철을 탈 새도 없이 곧장 택시를 잡았다.
택시에서 내린 임야소는 한달음에 집까지 달려가서 놀란 아이를 품에 안았다.
“아가, 엄마 여기 있어. 엄마가 왔어.”
두효는 숨을 헐떡이면서 엉엉 울고 있었다.
“엄마, 아빠 찾아줘요. 내 아빠!”
“알겠어. 엄마가 아빠 찾아올 테니까, 효효는 집에 얌전히 있어야 해.”
임야소가 아이를 다독이면서 말했다.
그녀는 딸에게 케이크 한 조각을 접시에 내어준 뒤, 굽 없는 신발로 갈아 신고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임야소가 향한 곳은 단지 내에 설치된 cctv를 볼 수 있는 관리사무소였다.
cctv 화면에는 누군가가 열쇠로 집 문을 열고, 식물인간 두변을 들것에 올려서 밖으로 옮기는 게 보였다.
그리고 화면 속에 익숙한 누군가가 등장했다.
익숙한 사람은 바로 임야소의 모친 허명문이었다.
임야소의 모친이 두변을 어디론가 옮긴 것이다.
임야소는 부아가 치밀어올라서 몸이 부들부들 떨렸고, 떨리는 손으로 모친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두변을 어디로 보내신 거예요? 당장 집으로 돌려놔요.”
임야소가 소리쳤다.
허명문은 대학교수이고, 늘 엄격하고 권위적이었다.
“임야소, 말버릇이 그게 뭐냐? 엄마가 너 대신 그 짐짝을 처리해줬다. 두변은 부모가 없어서 예전의 보호자에게 맡겼다. 고아원의 원장 말이야. 그리고 변호사를 고용해서 두변의 집이랑 차를 다 팔았다. 그 사람 돈은 한 푼도 안 건드리고 재단을 하나 만들었다. 두변이 요양원에서 20년 넘게 살 돈은 될 거야.”
허명문이 담담하게 말했다.
임야소가 핸드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두변은 제 남편이에요. 어떻게 그런 짓을 저지를 수가 있어요? 요양원에 있는 사람들은 두변의 몸을 매일 씻겨주지도 않고, 몸을 뒤집어주지도 않고, 안마도 해주지 않고, 좋은 유동식을 먹여주지도 않아요. 두변이 요양병원에 들어간다면 금방 온몸에 욕창이 생겨서 죽을 거라고요.”
허명문이 말했다.
“그건 인과응보지. 우리가 그 아이한테 못 해준 게 뭐 있니? 두변은 고아다. 애초에 우리 집안이랑 어울릴 급이 아니었다고. 그런데 우리가 두변을 무시하거나 하대한 적 있니? 그런데 그 짐승만도 못한 놈은 네가 임신한 뒤에 외도까지 했다. 두변이 오늘날의 모습이 된 것도 다 인과응보인 거다.”
임야소가 울면서 말했다.
“내가 임신한 걸 모르고 있어서 그래요. 그이는 내가 임신한 걸 알았다면 절대로 외도할 사람 아니라고요. 외도를 저질렀다고 해도 집에 와서 싹싹 빌면서 내게 용서를 구했을 거예요. 그이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데요. 자기 호기심을 자제하지 못했을 뿐이에요.”
허명문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 멍청한 딸을 낳은 거냐? 그 짐승만도 못한 놈이 외도까지 저질렀는데, 아직도 그놈을 감싸고 돌아?
그 못난 놈이 과거에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앞으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폐인으로 지내야 한다. 설마 그놈 때문에 네 남은 생까지 망쳐버릴 생각이니? 넌 아직 젊고, 예쁘니까 다른 괜찮은 남자랑 결혼하면 된다. 넌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임야소가 큰소리로 외쳤다.
“난 지금도 행복해요. 우리 세 식구가 얼마나 단란하고 행복한 줄 알아요? 우리를 갈라놓으려고 하지 말아요. 제가 빌게요. 제발 두변을 돌려줘요. 두변은 이 세상에 가족이 한 명도 없어요. 그대로 두게 되면 두변은 죽어요.”
허명문은 도통 말을 듣지 않는 임야소가 답답해서 손이 떨렸다.
“딸아, 네가 귀신에 씌었나 보다. 내가 이렇게 멍청한 딸을 낳았다니. 하지만 네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 난 이미 두변을 아주 외진 곳으로 보냈다. 넌 절대로 찾지 못해. 네가 지금 실성해서 그렇지, 시간이 조금 지나고 너도 정신 차리면 다 괜찮아질 거야. 그리고 조안평이 미국에서 돌아왔다더라. 하버드 대학 박사 학위를 마치고 돌아와서 그런지, 유명한 병원 몇 곳에서 안평을 모시겠다고 치열하게 경쟁하더라. 안평은 아직도 널그리워하더구나. 네가 아이가 있다는 걸 아는데도 말이야.
임야소, 너는 엄마를 잘 알잖니. 난 말하는 대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고, 절대로 결정한 걸 번복하지 않는 사람이다. 넌 앞으로 평생 두변을 다시 보지 못할 거고, 내가 두변을 어디에 숨겼는지 찾지도 못할 거다. 그러니까 시간 낭비하지 말고, 감정 낭비하지 말아라.”
허명문은 자기 할 말만 끝내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임야소가 허명문에게 미친 사람처럼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허명문은 전화를 계속 받지 않다가 나중엔 아예 핸드폰 전원을 꺼버렸다.
임야소는 포기하지 않고 부친에게도 전화해봤지만, 부친의 핸드폰도 이미 꺼져 있었다.
임야소의 부모는 두변과 임야소를 이번 기회에 아예 떼어놓으려고 작정한 모양이었다.
하긴, 예쁘고 젊은 딸이 이대로 남은 생을 허비하는 걸 두고 볼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임야소는 가슴 한가운데가 뻥 뚫린 것처럼 비통해서,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다.
두변과 연애할 때, 임야소는 자신의 사랑이 완벽하고 결점 하나 없는 완벽한 동그라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변이 외도한 뒤, 그들의 사랑은 더 이상 완벽하지 않았다. 임야소 마음속의 동그라미도 커다랗게 금이 생겼고, 그들의 사랑은 철저히 무너졌다.
하지만 두변이 식물인간이 된 뒤, 임야소는 그가 이 세상에 가족 하나 없다는 걸 더 절실하게 느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이 두변의 유일한 가족이고, 두효의 아빠이니, 그를 돌보는 건 자신의 의무와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임야소는 그럼으로써 자신의 사랑이 다시 완벽해졌고, 금이 갔던 동그라미가 다시 둥글게 채워진 느낌을 받았다.
매일 녹초가 되어서 잠자리에 들지만, 무척 행복했다.
두변은 식물인간이 되었지만 임야소에겐 없어선 안 될 존재였고, 딸 두효도 아빠의 곁을 껌딱지처럼 지켰다.
두효는 아빠가 긴 잠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비록 아빠가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하지만, 두효는 아빠가 여전히 멋있고, 대단하고, 똑똑하고, 제일 좋은 아빠라고 생각했다.
허명문이 이렇게 극단적인 조치를 한 건, 임야소를 위한 건 맞지만, 세 식구를 찢어놓는 짓이었다.
그리고 임야소도 자기 모친 허명문이 얼마나 강경하고 고집이 센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모친은 집 안에서의 사소한 말조차도 절대로 번복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허명문은 두변 때문에 외손녀 두효까지 썩 좋아하지 않았다.
당시에 임야소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허명문은 임야소에게 계속 낙태하라고 강요했고, 심지어 임야소가 마시는 물에 낙태약까지 탄 적 있었다.
임야소는 그 일로 집을 나온 뒤, 절친의 집에서 살면서 순조롭게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
가엾게도 두효는 조산으로 몸무게가 많이 모자라서 인큐베이터에서 한 달 넘게 지내야 했다.
임야소가 혼이 빠진 상태로 집에 도착했을 때, 굉장히 준수한 사내가 집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내가 매력적인 낮은 저음으로 말했다.
“임야소, 오랜만이네.”
임야소가 고개를 들고 사내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한참이 지난 뒤에야 사내를 알아보았다.
이 사내가 바로 고등학생 때 임야소를 열렬히 좋아했던 조안평이었다.
조안평은 고등학생 때보다 키가 부쩍 많이 자랐고, 체격도 많이 탄탄해졌다.
오랜만에 본 조안평의 모습은 키가 크고 잘생긴 배우나 다름없었고, 예거 르쿨트르의 마스터 울트라신 시계에, 지방시 옷을 입고 있었다.
“10년 만이네. 그사이에 전 세계를 다 돌아봤고, 충분히 시야를 넓혔다고 생각했어. 정말 이 세상 모든 미인을 다 보고 온 것 같은데, 네 앞에 서면 꼭 10년 전처럼 긴장되네. 아니, 그때보다 더 떨려. 내가 지금 두 손을 호주머니에 넣은 건, 예의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떠는 걸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그래.”
조안평이 말했다.
고등학교 때 임야소는 학교의 여신이었다. 당시에 조안평은 키가 작고 몸이 왜소한 편이었다. 그때 조안평이 임야소를 미친 듯이 짝사랑했지만, 한 번도 그녀에게 고백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당시의 조안평은 정말 광기 어린 짓을 한 적이 있었다.
바로 임야소의 이름을 종이에 적은 뒤, 그 종이를 씹어 먹었었다.
“밥 한 번 사게 해줄래? 아니면, 나 밥 한 끼 사줄래? 미국에서 막 날아온 터라, 아직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도 못 먹었거든.”
조안평이 물었다.
임야소가 드디어 반응을 보였다.
“알겠어.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 딸아이 좀 돌봐주고 와야 해서.”
조안평이 웃으면서 말했다.
“아, 아이도 데려와. 나 아이 엄청 좋아하거든, 특히 여자아이. 듣기로는 아이가 몸이 허약하다던데, 내가 좀 봐줄까? 내가 의학에 관해서 아주 조금 알고 있어서 어쩌면 도움이 될지도 몰라.”
임야소는 아무런 대답 없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녀는 속이 말이 아니었지만,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두효에게 국수를 요리해줬다.
임야소는 딸이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자리를 지켰고, 딸이 마지막 한 입을 삼킨 걸 본 후에야 말했다.
“아가, 집에서 엄마 기다려야 해 알았지? 만약 엄마가 아주 늦은 시간인데도 안 돌아오면, 유치원의 장 선생님한테 전화해야 해. 알았지?”
임야소가 다정하게 두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두효가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아빠 꼭 데리고 와요.”
“당연하지.”
임야소가 대답했다.
임야소는 샤워를 한 뒤, 옷을 갈아입고 다시 화장을 했다.
그녀의 모습은 오늘따라 유난히 화려하고 우아했다.
모든 준비를 끝냈을 때, 시침은 벌써 저녁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조안평은 밖에서 불평 한 번 하지 않고 인내심 있게 기다리고 있었다.
임야소가 다시 문 앞으로 내려왔을 때, 조안평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숨이 멎는 듯했다.
임야소는 그가 상상했던 모습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조안평은 임야소를 위해 차 문을 열어줬고, 그녀가 차에 타면서 머리를 부딪칠까 봐 차 문 위쪽을 손바닥으로 막아줬다.
조안평의 차는 풀옵션의 포르쉐 파나메라였다.
조안평은 임야소를 데리고 휘황찬란한 빌딩의 루프탑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조안평은 적당한 양의 스테이크를 2개 시키고 그에 어울리는 와인을 곁들였다.
임야소는 포크와 나이프로 우아하게 스테이크를 썰어 먹었고, 조안평과 간간이 와인 잔을 부딪치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조안평은 자신이 유학하는 동안 겪었던 재밌는 일을 얘기해줬고, 그가 어떻게 이렇게 많은 부를 쌓게 되었는지도 대충 설명했다.
조안평은 박사 연구생 시절에 특허 하나를 팔아서 큰돈을 벌었고, 이후에 한 제약 회사의 고문을 겸임하고 있었다.
어쨌든 조안평은 정식 취직을 하기도 전에 경제적 자유를 얻은 대단한 청년인 셈이었다.
“시간이 그렇게 늦진 않았네. 내가 효효를 위해서 선물을 준비했는데, 호주에 갔을 때 우연히 발견한 거야. 내 생각엔 효효가 이걸 분명히 좋아할 거야.”
조안평은 임야소의 집에 가고 싶고, 그녀의 딸을 한 번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완곡하게 돌려 말했다.
임야소가 말했다.
“조안평, 오랜 동창인 걸 봐서, 나 부탁 하나만 들어주라.”
조안평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당연히 들어줘야지. 말만 해.”
임야소가 갑자기 하이힐을 벗더니, 빌딩의 꼭대기를 향해 뛰어 올라갔다.
그녀는 조금 전에 식사하면서 꼭대기까지 가는 길을 미리 봐두었었다.
임야소는 단숨에 빌딩의 꼭대기까지 뛰어 올라갔고, 조안평은 화들짝 놀라 서둘러 그녀의 뒤를 쫓았다.
두 사람은 꼭대기에 도착해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고층 빌딩의 꼭대기에서는 바람이 몹시 거세게 불었다.
임야소가 빌딩 가장자리에 서서 조안평을 향해 외쳤다.
“넌 오지 마. 너한테 우리 엄마 연락처 있지? 지금 엄마한테 영상 통화 걸어줘.”
조안평이 혼비백산한 모습으로 외쳤다.
“알겠어. 알겠으니까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마. 진정해. 알았지?”
조안평이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서 허명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때 안평아? 소소랑은 좋은 시간 보냈니?”
허명문은 꼭 장모가 사위의 전화를 받은 것처럼 환하게 웃으면서 다정하게 전화를 받았다.
조안평은 대꾸할 새도 없이 카메라를 빌딩 끝자락에 서 있는 임야소를 비췄다.
임야소가 빌딩 꼭대기 끝자락에 위태롭게 서서 울부짖었다.
“엄마, 여긴 60층 고층 빌딩이에요. 두변을 내게 돌려줘요. 돌려달라고! 안 그러면 나 여기서 뛰어내릴 거예요. 엄마 딸이니까 엄마도 잘 알죠? 나도 한 말은 꼭 지킨다는 거. 효효는 유치원의 장 선생님께 부탁했어요. 장 선생님께서 결혼하신 뒤에 쭉 아이를 가지지 못하셨는데, 효효를 무척 예뻐하세요.”
허명문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핸드폰 액정을 바라보았다.
임야소가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두변을 내게 돌려줘요. 안 그러면 뛰어내릴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