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545화 (545/648)

545장: 용의 골격

성녀가 말했다.

“소군 방진의 무적 함대를 상대할 방법을 생각해봤어요. 당신이 가진 상고 시대 용 혈맥과 관련이 있죠.”

“계속 말하세요.”

“당신 몸에 있는 상고 시대 용의 혈맥은 성화교 선조가 거대한 지하 균열에서 발견한 겁니다. 당시 혈맥은 어떤 골격과 함께 발견되었어요. 꼭 하늘을 나는 용처럼 거대한 골격이었죠.”

“날개가 있는, 하늘을 날 수 있는 용 말입니까?”

두변이 놀란 기색으로 물었다.

“네. 용의 골격은 장장 4백 미터에 달해요. 그리고 그건 칼슘이 아니라 에너지체로 이뤄져 있고요. 상고 시대 용의 골격이 발견된 곳은 성화교의 절대 금지구역으로 지정되었어요. 성화교의 역대 교황들도 골격을 보았죠. 그 거대한 골격에는 어마어마하고 거대한 힘이 깃들어 있는데, 골격은 영원히 침묵을 지키는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당신의 뜻은, 내 몸속의 상고 시대 용의 혈맥으로 그 골격을 깨우라는 건가요?”

“내 추측일 뿐이에요.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아서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소군 방진의 무적 함대를 없앨 방법은 그 방법밖에 없는 것 같군요. 상고 시대 용의 골격은 어디 있습니까?”

“나도 몰라요. 하지만 글랜시스 교황이 이미 당신에게 그 절대 기밀을 알려줬어요.”

“서둘러야겠습니다. 지금 당장 성화교 금지구역에 가야겠어요. 상고 시대 용의 골격에 얼마나 놀라운 힘이 깃들어 있는지 빨리 확인하고 싶군요.”

두변이 자리를 떠나려고 몸을 일으키자, 성녀가 갑자기 자신의 옷을 벗었다. 비키니 차림의 몸매가 두변 앞에 나타났다.

두변의 입이 떡 벌어졌다.

‘비키니? 이 세계에서?’

두변이 놀란 걸 알아챈 성녀가 말했다.

“이 차림이 유경 왕성에서 유행한 지 1년이 다 돼가요.”

두변이 넋을 놓은 표정으로 성녀를 바라보았다.

성녀의 몸매는 이 세상에서 옥진 군주와 대적할 만한 유일한 존재일 것이다.

성녀가 말했다.

“떠나기 전에 의식을 하나 치르셔야 합니다.”

두변이 벌어진 입을 애써 다물고 물었다.

“무슨 의식 말입니까?”

“새로운 교황은 새로운 성녀와 혼례를 올려야 하고, 성화교 13개 왕국의 공주와 혼인을 맺어야 합니다. 우리의 의식은 이 호수에서 수영하고, 모래사장에서 혼례를 올리고, 신성한 의례를 치러야 해요.”

두변은 성녀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성녀가 항상 그녀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면사를 벗었다.

두변은 더욱 놀랐다.

성녀가 면사를 벗는 동시에, 그녀의 눈동자 색이 바뀌었다.

처음으로 면사를 벗은 성녀를 보는 순간, 두변은 모골이 송연해지고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을 정도로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성녀의 아름다움은 여완완, 기음음보다 한 수 위였고, 대적할 만한 사람을 찾을 수 없을 만한 미모였다. 정말이지 세상을 홀리고, 만인을 홀릴 만한 미모였다.

게다가 더욱 중요한 건, 두변은 이 얼굴을 본 적 있었다.

그것도 유경 왕국에서.

소군 방진이 서방 세계에 보낸 대사이자, 그와 제일 가까운 정인인 에인젤!

성화교의 성녀가, 소군 방진의 정인이라고?

두변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성녀를 바라보았다.

에인젤을 딱 한 번 본 적 있지만, 문화적 충격을 줄 정도로 너무 아름다워서 그녀의 외모를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에인젤은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얼굴에서 후광이 느껴졌고, 알 수 없는 우주처럼 신비했다.

두변이 에인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지금 눈앞에 있는 성녀와 다른 점을 찾아보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다른 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성녀가 먼저 물었다.

“그녀를 본 적 있나요?”

두변이 흠칫 놀라면서 되물었다.

“그녀가 아닙니까?”

“당연히 아니죠. 그 사람은 유경 왕국에 있든지 로마나 런던에 있지만, 난 언제나 성화교의 이 산골짜기에 있었어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그 사람이겠어요?”

“당신의 이름은 뭡니까?”

“안젤라예요.”

한 명은 에인젤이고, 다른 한 명은 안젤라라면.

“둘이 혹시 쌍둥이 자매입니까?”

“아뇨. 그건 나도 몰라요. 사실 그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계속 내가 그 여인과 똑같이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항상 면사를 쓰고, 동공 색을 바꾸고 살고 있죠.”

“당신의 부모님은요?”

“전 부모가 없어요. 글랜시스 교황께서 절 주워다 키우셨죠.”

성녀가 두변에게 물었다.

“정말로 내가 그 여자랑 똑같이 생겼나요?”

두변이 성녀 안젤라의 얼굴을 자세히 살핀 뒤, 기억 속에 있는 에인젤의 얼굴과 비교했다.

두 사람의 얼굴은 조물주가 심혈을 기울여서 조각한 것처럼 완벽했고, 다른 점 하나 없이 똑같았다.

“정말 이상하네. 아무리 쌍둥이 자매여도 다른 점이 있을 텐데. 기음음과 기염염도 쌍둥이 자매이고, 무척 닮았지만, 완전히 똑같진 않습니다.”

성녀 안젤라가 말했다.

“에인젤은 소군 방진을 따르고, 나는 당신을 따른다는 게 꽤 재밌지 않나요?”

안젤라가 맨발로 초가집을 나선 뒤, 부드러운 모래사장을 밟으며 호수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꼭 인어처럼 물속에서 헤엄쳤다.

“수영하지 않을래요?”

안젤라가 물었다.

두변은 고개를 저으면서 조용히 모래사장에 앉았다.

“수영하지 않을래요?”

안젤라가 다시 물었다.

두변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인 뒤에 짧은 속바지만 남겨두고 옷을 벗었다.

풍덩.

두변은 호수 안으로 몸을 던졌다.

호수는 무척이나 깨끗하고 시원했다.

두변은 금세 자유롭고 편안한 느낌에 온몸을 맡기고 물고기처럼 물속을 유영했다.

“소군 방진을 만나본 적 있나요?”

안젤라가 물었다.

“한 번 본 적 있습니다.”

“어떻게 생겼어요?”

두변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소군 방진의 얼굴을 떠올리려고 하자, 기억이 흐릿해지더니 그의 얼굴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분명히 본 적 있는데?

두변이 의아하던 찰나, 등에서 갑자기 물컹한 무언가가 닿았다.

안젤라가 두 팔로 그의 목을 감싼 뒤, 곧바로 그에게 입맞춤을 하려고 했다.

“이러지 말아요.”

두변이 말했다.

하지만 안젤라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두변의 입술 위로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그리고 두 사람은 호수 안에서 생명 번영의 신비로운 의식을 치렀다.

잠시 뒤, 호수의 수면 위로 옅은 붉은색이 떠올랐다.

밤이 되자, 안젤라가 물었다.

“이곳의 밤하늘과 당신 고향의 밤하늘이 다른가요?”

두변이 자세히 하늘을 빤히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다르지 않습니다.”

“고향이 그리운가요?”

두변은 자기에게 고향이 없다고 말하려고 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안젤라가 말했다.

“난 고향이 없어요.”

안젤라가 다시 몸을 일으킨 뒤, 호수 안으로 들어가서 잠시 수영을 즐기다가 다시 모래사장으로 올라왔다.

달빛에 비친 안젤라는 꼭 신화 속의 여신처럼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안젤라는 두변을 지나쳐서 곧바로 초가집 안으로 들어갔다가, 잠시 뒤에 다시 밖으로 나왔다.

안젤라는 말없이 옷을 입은 뒤, 면사를 쓰고 눈동자 색깔을 바꿨다.

두변도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가요. 상고 시대 용의 골격을 보러.”

안젤라가 말한 뒤, 고개를 들고 입으로 은은한 소리를 냈다.

그러자 대붕 한 마리가 하늘에서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와 모래사장에 착지했다.

두 사람은 대붕의 등에 올라탔다.

성녀 안젤라가 말했다.

“금지구역이 어딘지는 당신만 알고 있어요. 정신력으로 대붕의 방향을 조절하면 돼요.”

두변이 눈을 감은 뒤, 자신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았다.

안젤라의 말대로, 두변의 머릿속에는 이미 상고 시대 용의 골격이 있는 위치가 기록되어 있었다.

대붕은 두 사람을 실은 채 높은 산을 지나, 망망대해 위를 비행했다.

대붕이 날고 있는 해역은 죽음의 바다였다.

이 해역에는 암석이 넘쳐났고, 살벌한 파도와 천둥 번개가 끊이지 않는 터라, 어떤 선박도 이곳에 접근할 수 없었다.

수만 톤의 거대 함선이 와도 이 해역에선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 해역에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곳곳에서 휘몰아치고 있었다.

죽음의 해역을 지나자, 두변의 시야에 사막섬 하나가 들어왔다.

섬 안에 사막이 있는 건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섬 전체가 사막이라니?

모든 사막은 극도로 물이 부족해서 만들어지는 건데, 사방이 바다인 이곳에 섬 통째로 사막인 섬이 있어?

사막섬은 약 2만 제곱킬로미터 크기로, 누가 봐도 다른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 섬이었다.

대붕이 이 섬 위를 날기 시작할 때, 두변은 곧바로 극도의 건조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진짜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바다 한가운데인데도 이렇게 건조하다니.

이곳은 마치 거대한 힘이 섬 전체와 섬 상공의 수증기를 전부 말려버린 것 같았다.

사막섬의 중앙에 도착하자, 대붕이 서서히 착지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이곳에 바로 두변이 찾는 상고 시대 용의 골격이 있었다.

평범한 사막처럼 보이는데?

두변은 주위를 둘러보면서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은 사막이니 모든 걸 모래가 집어삼켰을 수도 있다.

두변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더니 땅을 발로 힘껏 굴렀다.

쾅.

굉음이 울려 퍼지고, 주위의 땅이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주위의 모래가 무너지기 시작하더니, 두변과 안젤라가 서 있던 곳이 순식간에 땅속으로 꺼졌다.

두 사람은 재빨리 경공을 이용해서 허공에 떴고, 사막 중앙에 생긴 거대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커다란 구멍을 내려다보았다.

막강한 기운이 일순간 하늘로 솟아올랐다.

두변과 성녀 안젤라가 서로 눈빛을 교환한 뒤, 천천히 구멍 안으로 하강했다.

두변의 무도 수준은 이미 정상 대종사인지라, 현기 내력을 반중력으로 맞바꿀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천천히 구멍 속으로 하강했다.

대균열의 깊이는 무려 만 미터였다.

두변은 착지하기도 전에 거대한 골격을 발견했다. 상고 시대 용의 골격이었다.

이곳은 지하 만 미터인지라 주위가 온통 암흑이지만, 상고 시대 용의 골격은 어둠 속에서 하얀빛을 은은하게 내뿜고 있었다.

상고 시대 용의 골격은 길이가 무려 490미터에 달하는 초특급 거대 골격이었다.

하늘로 솟아오른 힘은 이 골격에서 나온 것이고, 섬 전체가 사막이 된 것도 골격이 내뿜는 화(火) 속성의 기운 때문이리라.

상고 시대 용 골격이 내뿜는 기운이 무려 2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섬을 통째로 말려버린 것이다.

그런데 두변은 조금 실망했다.

두변의 눈앞에 있는 상고 시대 용의 골격은 중국 전통의 용의 모습이 아니라, 서방 세계에서 흔히 묘사하는 커다란 날개가 달린 용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상고 시대 용의 골격을 발견한 지 얼마나 됐습니까?”

두변이 물었다.

“1천 3백 년이 넘었죠.”

성녀 안젤라가 대답했다.

“성화교의 역사만큼 긴 세월이네요.”

“성화교가 성립된 것도 이 용의 골격이 내뿜는 무한한 화 속성 기운 때문이에요. 역대 성화교 교황들도 이곳에서 수련했고요.”

두변이 경악했다.

“상고 시대 용의 골격이 바로 진정한 화신(火神)이었군요.”

“맞아요. 성화교 교황들의 무공이 뛰어난 이유도 이곳의 무한한 화 속성 현기 덕분이에요. 여기서 하루 수련하는 게 바깥세상에서 열흘 수련한 것보다 더욱 효과가 있어요.”

두변이 손을 뻗어서 용의 두개골을 만졌다.

용의 골격은 안젤라의 말대로 평범한 뼈가 아니라, 에너지체였다.

두변이 눈을 감고 손에 정신을 집중하자, 상상 이상으로 방대한 힘과 휘몰아치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 두변은 이곳에서 용의 포효가 들리는 것 같았다.

상고 시대 용은 이미 죽었지만, 죽지 않은 것만 같았다.

아마 역대 교황들도 이 점을 느꼈기 때문에 이 용을 되살리고 싶었을 것이다.

교황들은 천 년이 넘도록 용을 되살릴 방법을 강구했지만, 전부 실패했다.

두변은 성화교의 이수 생물이 발달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성화교는 천 년이 넘도록 한 가지 목표에 매달렸기 때문이다.

두변이 물었다.

“내 몸속에 있는 상고 시대 용의 혈맥을 다른 교황에게 주입한 적 있나요?”

안젤라가 대답했다.

“네. 하지만 시도했던 교황 세 분이 전부 혼비백산했어요.”

“상고 시대 용의 혈맥을 주입하고도 멀쩡한 사람은 나 혼자라는 겁니까?”

“상고 시대 용의 혈맥을 주입하고 아무 반응이 없는 사람도 당신이 처음이지만, 유일무이한 경우이긴 하죠.”

만약 이 용을 부활시킬 수 있다면 소군 방진과의 결전은 어떻게 될까?

방진의 무적 함대는 어떻게 될까?

망망대해에는 숨을 곳도 없으니, 무적 함대는 속수무책으로 거대한 용의 공격에 당해서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을 것이다.

다만, 두변이 어떻게 이 거대한 용을 부활시킬 수 있을까?

두변은 용의 두개골을 손바닥으로 누르면서 용의 정신세계에 들어가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아무리 눌러도 용의 정신세계를 들여다볼 수 없었다. 거대한 골격은 무한한 힘을 내뿜고 있지만, 그 정신세계나 영혼은 느껴지지 않았다.

두변은 자신의 손바닥에 상처를 낸 뒤, 상처에서 새어 나온 피를 용의 두개골에 발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용의 골격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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