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7장: 소목지의 죽음
이때, 영창제는 한 가지 묘수를 떠올렸다. 소목지와 연합해서 두변을 협공하는 묘수 말이다.
영창제가 어디 이런 천재난봉할 기회를 날릴 사람인가.
두변은 기껏해야 기병 2천 명 정도만 데려온 듯하고, 소목지에겐 3천 명 정도가, 그리고 자신의 손에는 6만 대군이 있으니 두변이 질 수밖에 없지 않나.
두변의 군대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2천 명으로 6만 명을 이길 순 없을 것이다.
그리고 두변이 소목지를 죽이게 되면, 영창제 자신의 목숨도 위태로워진다.
영창제는 짧게 고민을 마치고, 선공하는 사람이 우위를 차지한다는 생각에 큰소리로 외쳤다.
“두변 놈은 도의와 이치를 역행하는 난신적자이니, 누구든 그놈을 죽여도 된다. 두변 놈의 군대를 몰살하고, 대녕 제국의 정의를 실현하라.”
그런데 영창제 휘하의 장군들이 이상하게도 제자리에서 서로의 눈치만 보면서 난처한 기색이었다.
지금 영창제 휘하의 대군은 두변에 대한 인상이 깊지 않았지만, 두변이 국왕 여창의 벗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진남공이 두변과 결렬하긴 했지만, 진남공은 한 번도 두변을 공격하려는 뜻을 내비친 적이 없었다.
진남공을 따르는 장군과 병사들은 당연히 진남공의 의지를 따라 두변과는 우물물이 강물을 범하지 않는 것처럼 대했다.
영창제가 홍하성을 공격하러 가자고 했을 때 그 의견에 동의한 것은, 동방 연합 왕국이 두변을 공격하기로 했으니 두변은 절대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홍하성이 동방 연합 왕국의 손에 들어갈 바엔 차라리 대녕 제국의 품에 있는 게 훨씬 낫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살아 있는 두변과 관계를 망치고 직접 교전을 치른다?
그건 장군들이 쉽게 내리지 못할 결정이다. 한때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피땀을 흘렸던 맹우나 마찬가지 아닌가.
휘하의 대군이 꿈쩍도 하지 않자, 영창제 곁에 있던 촉왕부 장군이 호통을 쳤다.
“폐하께서 내리신 명을 듣지 못하였소? 지금 명을 거역하려는 것이오?
두변이 여태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는 것이오? 여인을 황제의 자리에 앉히고, 통치 대권을 빼앗았소. 이렇게 대역무도한 죄를 지은 자는 대녕 제국의 죄인일 뿐만 아니라 정통을 배반하는 역사의 죄인이오. 우리처럼 정의를 따르는 자들은 기필코 이런 난신적자를 척결하여 정의를 실현해야 하오.
그러니 난신적자 두변을 어서 죽이시오!”
“난신적자 두변을 어서 죽여라!”
영창제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선동했다. 뒤이어 그가 검을 뽑아 들었고, 그의 뒤에 있던 촉왕부 무사들도 검을 뽑아 들었다.
당장 두변의 등 뒤를 향해 달려가야 했다. 두변이 소목지의 기병과 이미 한데 엉켜서 전투를 치르고 있으니,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두변의 후방을 습격하려는 것이다.
“두변을 죽여라! 두변을 죽여라!”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영창제와 그의 뒤에 있던 촉왕부 무사들은 경악하면서 제자리에 얼어버렸다.
이들에게는 소목지와 그의 기병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강대한 무사들이라 할 만했다. 게다가 동방 연합 왕국의 최상급 곤륜노 무사들까지 있으니, 두변의 병사가 좀더 많다고 해도 반 시진 정도만 싸워도 이렇다 할 결과가 나오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것은 두변의 기병이 소목지의 기병을 1초에 한 명꼴로 죽이는 광경이었다.
소목지의 3천 병사는 두변의 기병에게 검 한 번 휘둘러 보지도 못하고 죽임을 당했다.
평범한 병사든, 곤륜노 무사든, 전부 두변의 군대의 검에 맞고 즉사했다.
더욱 끔찍한 건, 두변의 병사들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검날에서 푸른빛이 번쩍인다는 점이었다.
소목지의 무사들은 검에 맞았다 하면 곧바로 바닥에 고꾸라졌고, 반항할 힘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렇게 소목지와 함께 도망친 몇천 기병은 꼭 햇살에 녹는 눈처럼 빠르게 죽어갔다.
영창제의 온몸이 떨리기 시작하더니 머리털이 삐쭉 솟았다.
곧이어 그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했다. 갑자기 냅다 돌아서서 말에 올라탔다.
“퇴각하라! 퇴각해!”
수백 명 촉왕부 무사들이 재빨리 영창제를 따라 말에 올라탔고, 그를 호위하면서 위해서 미친 듯이 서남 방향을 향해 달렸다.
영창제의 수만 대군도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그를 따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때, 두변이 손짓을 했다.
대종사급 강자 이도진과 부홍빙 장군이 즉시 3백 명 마혈 기병을 이끌고 영창제의 뒤를 쫓았다.
두변은 손짓을 하는 와중에도 영창제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일각의 시간이 지난 후, 수백 명 곤륜노를 포함한 소목지의 병사들이 전부 죽어버렸다.
소목지 곁에는 이미 아무도 남지 않았고, 두변의 1천 마혈 기병이 소목지를 몇 겹으로 에워싸고 있었다.
“두변 아우, 우리 이러지 말고, 얘기나 좀 하는 게 어때?”
소목지가 웃으면서 물었다.
“얘기 좋지.”
두변이 웃으면서 대꾸했다.
“아우가 가진 건 정석 마포와 번개 검이지?”
소목지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동방 연합 왕국에서도 이걸 연구했나?”
두변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되물었다.
“그렇지. 사실 연구한 지 벌써 10년이 지났는데도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거든. 우리가 호주 대륙에서 이계의 정석을 대량으로 채굴했지만 말이야.”
소목지가 대답했다.
그게 이상할 건 없었다.
동방 연합 왕국은 한쪽에선 과학 선진 문명을 연구 개발했고, 다른 한쪽에선 새로운 에너지 문명을 개척하려고 했다.
이계의 운석이 지구에 침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계의 문명을 생각했을 것이다.
특히 유경 왕국의 철갑 전함의 동력 핵심이 바로 이계 문명의 성과였다.
소목지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정석 마포와 번개 검의 관건은 그 마법의 정석인 거지? 아우가 유경 왕궁에서 경매에 부쳤던 그 마법의 정석 말이야. 당시에 경매가 꽤 치열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성화교도, 동방 연합 왕국도, 유경 왕국도 입찰했으니. 물론, 마지막엔 유경 왕국이 주최국 자격으로 사들였고. 그 정도는 모두가 다 예측했을 테고.”
두변은 그날 유경 왕성의 경매장에서 매마의 혈정체 20분의 1을 경매에 부쳤었다.
유경 왕국은 천문학적인 가치의 금화로 그 작은 혈정체를 사갔었다.
당시에 두변도 유경 왕국의 핵심 동력의 중요 재료가 바로 이 매마의 혈정체라는 것을 눈치챘다.
두변도 이 사실을 알았으니, 소군 방진의 정인인 에인젤도 당연히 같은 답을 생각했을 것이다.
소목지가 말했다.
“아, 진서왕 전하, 얘기해줄 필요가 있어서 하나 말해주자면, 유경 왕국의 국왕은 이미 죽었지. 아우가 국왕에게 팔았던 그 마법의 정석은 이미 소군 전하의 손에 들어갔고.”
두변의 안색이 조금 굳긴 했지만 여유를 잃지 않고 대꾸했다.
“그게 뭐 어때서?”
“그건 우리의 새로운 무기 연구가 혁신적인 돌파구를 찾아냈다는 걸 뜻하거든. 동방 연합 왕국이 얼마나 강대한지는 내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알 테니, 우리가 만약 정석 마포를 만들게 된다면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할지도 알겠군.”
두변은 속으로 냉소했다.
그 티끌만 한 매마의 혈정체가 소군 방진의 손에 들어간들 어떠한가?
그 정도의 양으로는 무기를 양산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대녕 제국에는 사천성에만 파란 정석이 있고, 호남성에만 붉은 정석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호주에도 이런 정석이 대량으로 묻혀있다고?
소목지가 냉랭하게 말했다.
“그래서 나를 죽이면 안 돼. 내 목숨을 남겨야만 아우에게 이득이 생길 테니까. 내가 돌아가서 소군 전하께 잘 말해보지. 대녕 제국을 둘로 나눠서, 서남 5성은 아우에게, 그리고 남은 걸 영덕제에게 주라고 말이야. 둘이서 사이 좋게 우리 동방 연합 왕국에 편입하고, 다 같이 좋은 맹우가 되는 건 어때?”
“별 쓸데없는 생각을 정성스럽게도 했네.”
두변이 웃으면서 말하더니 옆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이제 한을 푸시지요.”
두변의 옆에 서서 격노한 감정을 애써 다스리면서 기다리고 있던 계청주가 소목지를 노려보았다.
지난번 염주부 때는 계청주가 복수에 눈이 멀어서 큰 잘못을 한 터라, 일시적으로 제5군단 통솔자의 지위를 박탈당했다.
두변은 뒤로 몇 걸음 물러서서, 계청주와 소목지의 전투를 기다렸다.
소목지는 정상급 종사인 만큼 무공 수준이 대단했다. 하지만 그의 상대는 대종사 계청주이고, 1대 1의 싸움에선 소목지가 계청주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소목지는 다섯 수 만에 패배했다.
슉, 슉.
계청주가 깔끔하게 휘두른 검이 소목지의 양손 근맥을 정확하게 잘라버렸다.
계청주가 소목지의 어깨를 잡고 바닥에 무릎을 꿇렸다.
소목지의 준수한 얼굴에 잠시 두려운 감정이 스쳤지만, 곧바로 냉정함을 되찾고 여유로운 미소를 보였다.
“두변, 아우는 날 죽일 수 없어. 아우의 아주 가까운 곁에 우리가 첩자를 심어놨거든. 소군 전하께서 보낸 첩자는 필요할 때 언제든 아우의 주변 사람을 죽이기 시작할 거야. 내가 제대로 기억한 게 맞다면, 예상 선자의 출산일이 곧이지? 드디어 피붙이인 친자식이 생기겠군요. 한 번 상상해봐. 소군 전하의 명령 한 번이면, 그 첩자는 네 아기를 독살하거나 더 잔인하게 죽일 거야.”
소목지가 교활하게 웃으면서 하는 말에 두변의 눈빛이 흔들렸다.
소목지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냉소를 지었다.
“아우, 지금 아우 곁에 숨어 있는 첩자는 내가 직접 연락한 사람이야. 이 세상에 그 첩자가 누군지는 오직 소군 전하와 나만 알고 있지. 나는 소군 전하께서 가장 심복으로 여기는 사람인데, 날 죽여버리면 소군 전하께서 당연히 복수를 해주시겠지. 그때가 되면, 첩자는 아우의 부인과 아이를 이미 죽였을 것이고. 차라리 지금이라도 날 놔주면, 그 첩자가 여자인지, 남자인지는 알려주지. 그리고 내가 완전히 안전해진 다음에 그 첩자의 이름을 알려주고.”
계청주가 소목지의 목에 검을 갖다 댔다.
소목지가 웃음을 터트렸다.
“두변 아우, 아우는 그 사람이 누구일지 꿈에도 모를 텐데? 죽어도 그 사람이 첩자라는 걸 믿지 못해. 하지만 그 첩자가 행동을 개시하면, 아우의 모든 것을 파멸할 거야. 피붙이를 지키고 싶다면, 나를 죽여선 안 돼. 나를 죽이면, 그 첩자가 누군지 영원히 모를 것이고, 넌 영원히 마음 편히 잠들지 못해.”
두변이 소목지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그 첩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성은 뭐인지부터 알려줘 봐.”
소목지가 냉소했다.
“흐흐, 그건 말해줄 수 없지.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면, 보름 내에 네 아기가 죽을 거야. 날 못 믿는다면, 어디 한 번 나를 죽여보든가.”
“정말로? 난 아직 내 아기를 보지도 못했지만, 벌써 마음속 깊이 그 아이를 아껴. 그러니까 얼른 말해줘. 그 첩자가 누구야?”
“날 놓아주면 알게 된다니까. 아이도 살 수 있고.”
두변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비수를 뽑아 들고 소목지의 목을 살짝 그었다.
정확하게 소목지의 대동맥을 끊어서, 그의 목에서 새빨간 피가 미친 듯이 뿜어나오기 시작했다.
“으아악!”
소목지가 처참하게 비명을 질렀다.
사실 소목지는 지금 아픈 것보다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했다.
소목지는 피가 점점 더 많이 뿜어져 나올수록 제 생기가 사라져 가고, 곧 죽음의 사신이 제 목숨을 거두러 올 것 같은 느낌을 생생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 그 첩자가 누구인지 궁금하지도 않아? 얼른, 얼른 내 혈관을 이어붙여. 아직 살 수 있어. 내가 살면, 그 사람이 누군지 꼭 알려줄게. 날 죽이면 안 돼. 안 그러면 네 아내와 아기도 살아남지 못한다고. 내가 맹세해!”
두변이 웅크려 앉아서 소목지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이놈의 교활함은 정말 상상 이상이군. 어쩌면 죽기 직전에도 이런 악독한 계략을 생각해낼까. 내 아이를 죽일 수 있는 첩자가 있다는 거짓말로 자기 목숨을 건지려고 하다니. 이건 선을 넘은 거지.’
소목지의 목에서 피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고, 그의 두 눈은 점점 초점을 잃어갔다.
“두변! 날 살려줘. 제발 날 살려줘!
첩자 얘긴 내가 아무렇게나 꾸며낸 거야. 내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아니, 섭정왕 전하, 제발 날 살려주세요. 내가 동방 연합 왕국의 기밀을 많이 알고 있고, 소군의 비밀을 많이 알고 있어요!
그걸 내가 다 알려줄 테니까, 날 좀 살려줘요. 소군의 진짜 신분이 궁금하지 않아요? 소군의 최종 사명이 뭔지, 우리가 남미주에서 뭘 찾아냈는지 알고 싶지 않아요? 그건 세계 최종의 기밀이에요. 세상에서 제일 기이하고 강대한 곳이 어딘지 알려줄게요. 내가 알려줄게요.
소군이 지금 엄청난 음모를 꾸미고 있어요. 이 세상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 음모요. 알고 싶지 않아요? 제발 날 좀 살려주세요. 제발요.
계 숙부, 제가 잘못했어요. 저는 숙부의 조카잖아요. 제가 잘못했으니까, 제발 좀 살려주세요.”
소목지의 숨소리가 점점 더 다급하고 거칠어지더니, 결국엔 입을 벌린 채 동공이 흩어졌다.
소목지는 그렇게 눈도 감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교활함의 끝판왕인 사람이 이렇게도 자기 목숨을 아끼다니.
소목지는 죽는 순간까지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결국엔 죽음을 맞이했다.
계청주는 복잡한 심경으로 검을 거두고 한숨을 내쉬었다. 소목지는 계청주 사부의 유일한 손자였다. 한때 계청주는 소목지를 누구보다 가까운 조카로 아꼈고, 그를 사위로 삼아 자신의 후계자로 삼으려 했다.
두변은 몸을 일으켜서 대검을 뽑아 들고 소목지의 머리를 자르려고 했다.
그때, 소목지의 시신이 갑자기 움찔하더니 시신이 눈을 번쩍 떴다.
“으악! 두변, 이미 나를 죽였으면서 왜 머리를 자르려고 해?”
소목지가 당황하면서 소리쳤다.
‘어이쿠, 진짜 제대로네!’
두변은 속으로 감탄하고 말았다.
이렇게 실감 나게 죽은 척 연기를 하다니.
호흡과 맥박을 일시 정지한 건 물론이고, 동공이 풀어진 모습까지 연기하다니!
두변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난처하군.”
두변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목지의 목을 그대로 베어버렸다.
덕분에 소목지는 완전히 죽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