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520화 (520/648)

520장: 불길에 잠긴 오주성

쾅, 쾅, 쾅, 쾅.

동방 연합 왕국의 초특급 중포가 다시 발포되었고, 경천동지할 굉음이 울리면서 염주 항구의 화포대가 산산조각이 되었다.

동방 연합 왕국의 함대가 매서운 기세로 염주항에 쳐들어왔다. 이 함대는 두변의 유일한 전함 교룡호를 종잇장 찢듯이 찢어버리려고 위풍당당하게 항구로 들어섰지만, 항구에는 커다란 화물선 몇 척만 있을 뿐, 거대한 교룡호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악마도.

두변이 막천남의 보물을 찾았던 그곳.

이 섬의 밑은 전부 비금광(秘金鑛)이었다. 그래서 지리와 날씨 환경이 유달리 복잡했고, 섬 주변에는 매일 끔찍한 천둥 번개가 내리쳤다. 이 섬이 평온한 날은 한 달에 하루 이틀이 전부였다.

그래서 혈관음과 리아나 군주는 악마도의 날씨가 좋을 때를 틈타서 교룡호 전함을 이곳에 숨겼다. 이곳에 있어야만 동방 연합 왕국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으아아!”

리아나 군주가 장갑을 낀 채 전함의 벽을 힘껏 내리쳤다.

“이건 해군의 치욕이다. 적군이 왔는데 우리의 전함은 전장에 나갈 엄두도 못 내다니! 게다가 쥐새끼처럼 동굴에 숨어서 벌벌 떨고 있기까지 하다니! 이건 유경 왕국의 치욕이고, 두변 친왕의 치욕이다. 우리 전함은 세계에서 제일 앞서있고 제일 강한 전열함이란 말이다!”

혈관음이 말했다.

“맞아. 하지만 당신들의 화포도 이미 낙후되었어. 이대로 동방 연합 왕국의 전함을 상대한다면, 교룡호는 반격도 못 한 채 침몰하고 말아. 이 점은 미주 해역의 전장에서 이미 증명됐잖아. 그 전투에서 유경 왕국이 전열함 세 척을 잃었어.”

리아나 군주가 말했다.

“혈 장군! 당신들의 친왕 전하는 이번에 정말로 끝장인 것 아닌가? 방진 그 악룡이 동방 세계를 전부 통일하려는 거겠지?”

“아니, 그럴 리 없지. 내 부군은 무적이니까, 분명히 승리해.”

“하지만 난 두변이 이길 가망이 전혀 없어 보이는데?”

혈관음이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난 승리의 발걸음이 우리를 향해 오고 있는 게 보여.”

“서둘러라! 어서!”

변이 마랑이 미친 듯이 질주했다.

정석 마포를 등에 실은 마랑들이 두변의 진서왕성을 향해 질주했다.

사공엽과 주술사 국사 군단은 정석 마포를 하나씩 개조할 때마다 세 번 시연을 해본 뒤,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곧바로 마혈 무사에게 마포를 옮기라고 지시했다.

마혈 무사는 최대한 빨리 대결전의 장소로 정석 마포를 옮겼다.

두변 쪽 사람들은 이미 시간과 달리기 시합을 벌이는 중이었다.

두변이 완안영도에게 내린 명령은 오주성에서 동방 연합 왕국을 열흘 동안 붙잡고 있으라는 것이었고, 성화 군단도 같은 명령을 받았다.

13일 후, 잔인하고 피비린내 나는 시가전이 끝나고 오주성은 완전히 함락되었다.

15일 후, 두변의 남부 요충지이자 유일한 항구인 염주성이 함락되었다.

두변은 실시간으로 전서구를 받았다.

두 군대의 손해는 막심했고, 특히 완안영도의 군대는 눈 뜨고 봐주지 못할 지경으로 참담했다.

두 군대에서 총 11만 명의 사상자가 나왔고, 오주성과 염주성은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다.

두변이 명령했다.

“이제 그만 돌아오라고 해라. 그들은 임무를 완수했다.”

두 군대는 두변이 내린 명령을 임무를 완수했다. 그들은 두변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벌어줬고, 두변은 그 시간 동안 충분한 양의 정석 마포를 개조할 수 있었다.

‘두강, 원천조, 막한, 소목지. 너희는 벌써 승리의 영광에 심취했고 천국에 오른 듯한 기분일 테지.

기다려라. 이제 너희를 지옥으로 보내줄 테니.’

두변의 16만 대군은 오주 전투, 염주 전투에서 11만 사상자가 나온 만큼, 그 어떤 말로도 두 전장의 참담함을 표현할 수 없었다.

이 두 전투는 거의 사람을 갈아버리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특히 완안영도가 이끈 8만 병력 중 총 2만 명이 살아남았고, 그나마 남아 있던 4만 여진 무사 중에서는 1만 명만 살아남았다.

사상자는 말만 사상자지, 사실상 대부분 전사했고, 부상병들도 전부 다시는 회복 불가능한 수준의 중상을 입었다.

그런데도 두변의 전략적 지도는 정확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냉병기 군대가 열병기 군대를 상대해야만 한다면, 시가전만이 답이었다.

동방 연합 왕국의 화포 대군은 성안 좁은 골목에서 대열을 갖추기가 힘들었고, 화총군도 대규모 사격이 어려웠다.

두변의 군대에게는 대량 총기가 없지만, 일류 궁수와 좋은 활과 화살이 있었다.

화살의 위력이나 사격 거리는 동방 연합 왕국의 후장식 수발총에 훨씬 뒤처지지만, 좁은 골목에서는 이런 활이 좀더 휴대하기 편리하고 급습에 용이했다.

동방 연합 왕국 대군은 오주성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완안영도 병사들에게 급습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동방 연합 왕국은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반 시진 가까이 화포 폭격을 날렸다. 포탄의 위력은 무시무시했고, 견고하던 오주성의 성벽을 아예 말끔하게 평지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도 이 성벽을 지키고 있지 않았음을 알지 못했다.

완안영도의 8만 대군은 그 사이 전부 거리에 숨어서 적군이 진입하길 기다렸다. 8만 대군은 좁디좁은 골목에서, 높은 지붕 위에서, 낮은 창가에서 정확하고 매섭게 화살을 쏘았다.

그래서 첫날 치러진 시가전에서는 두강과 원천조의 군대에 병력 손실이 꽤 있었다.

이튿날, 원천조는 전술을 바꿔서 완전무장한 무사를 성안으로 진입시켰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불리하다 보니, 마찬가지로 급습을 당하면서 사상자가 속출했다.

원천조는 셋째 날에 드디어 곤륜노 무사를 성안으로 들여보냈고, 결국 전세는 역전되었다.

완안영도의 무사들은 무척 용감했고, 여진 무사들은 태생이 호전적이고 전투력이 강했다. 게다가 정예 갑옷까지 입고 있었으니, 일반 병사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하지만 곤륜노 무사들은 그들을 거침없이 죽였다.

완안영도는 투항할 마음이 전혀 없었지만, 그를 따르는 여진 무사와 몽골 무사, 그리고 한군 무사 중 몇몇은 투항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도 투항하지 않았다. 투항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었다.

두회, 두강, 원천조 등은 치가 떨릴 정도로 두변을 증오해서인지, 혹은 이번 전투에 엄청난 자신감을 느끼고 있어서인지, 절대적인 결과와 절대적인 살인 숫자를 원했다.

동방 연합 왕국은 이번 전투에서 포로를 받지 않았다.

이를 알아챈 완안영도 병사들은 이를 악물고 죽을 때까지 싸울 수밖에 없었다.

결국 가장 참혹한 광경이 성안 곳곳에서 펼쳐졌다.

곤륜노 무사 한 명을 죽이기 위해서 수십 명 정예 여진 무사가 목숨을 잃었다. 여진 무사 열댓 명이 곤륜노 무사 한 명을 포위해서 상대하지만, 결국엔 전부 곤륜노 무사에게 죽임을 당했다.

곤륜노 무사는 무척 두껍고 튼튼한 갑옷을 입고 있어서, 웬만한 칼과 창으로는 갑옷을 뚫을 수도 없었다. 게다가 그들이 쥔 검은 백 근이 넘어서, 단칼에 두변 무사들의 갑옷을 뚫고 팔을 자르거나 목을 잘랐다.

곤륜노 무사들은 꼭 지옥에서 온 살신(殺神)처럼 닥치는 대로 적군을 죽였다.

완안영도는 그렇게 힘겹게 13일을 버텼고, 8만 대군 중 2만 명만 살아남았다.

오주성 곳곳에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고, 마른 땅이 없을 정도로 온통 피바다가 되었다.

완안영도의 전군이 전멸하지 않은 이유는 이 성이 이미 전략 가치를 잃어서였다.

성 곳곳에 시체가 널브러져 있는데, 날씨가 더운 탓에 전염병이 창궐하기 시작했다.

두강와 원천조는 대군을 오주성에서 철수시킨 뒤, 군대를 두 갈래로 나누어서 유주성을 치고 임주성을 공격했다.

여황이 두변에게서 퇴각하라는 전서구를 받았을 때, 옆에 있던 완안영도는 거의 울부짖고 있었다.

그날 밤, 횃불 하나가 모든 시신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오주성은 그렇게 불길에 잠겨버렸다.

염주성의 상황은 오주성보다는 조금 나아서, 8만 성화 군단 중 살아남은 사람은 3만 가량이었다.

사상자 숫자가 완안영도의 군대보다 적긴 하지만, 염주성의 전장도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성화 군단은 두변에게 극도로 충성하고 그를 열렬히 따르다 보니, 거의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서 칼을 휘둘렀다.

그리고 성화 군단은 염주성에 무척 익숙해서 지리적 우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처절하게 지고 말았고, 두변은 성화 군단의 사상자 수를 듣고 몹시 마음이 아팠다.

계청주는 드디어 소원대로 소목지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3일 전.

진남 공작부.

계청주는 막한 여왕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만큼, 막한이 이곳에서 가장 편안한 저택에 머물 것이라 예상했다.

염주부에서 조건이 가장 좋은 저택이 두 곳 있는데, 이문회가 그중 제일 호화롭고 거대했던 여씨 별원을 이미 파괴했다. 그러니 막한이 묵을 만한 곳은 진남 공작부밖에 없었다.

과연 막한은 염주성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진남 공작부를 제일 먼저 공략했다. 그녀는 이곳을 자신의 임시 행궁으로 쓸 것이니, 절대로 화포를 쓰지 말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막한 등이 성 안으로 쳐들어오기 전, 계청주, 영신 왕후, 옥진 공주와 안남 왕국의 고수들은 몰래 진남 공작부에 매복한 채 막한과 소목지가 제 발로 덫에 걸려들길 기다리고 있었다.

계청주의 예상은 적중했다.

소목지와 막한 여왕이 진남 공작부 안으로 들어왔다.

계청주 대종사가 곧바로 일격 필살로 막한 여왕을 공격했지만, 허무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그는 막한과 소목지가 제 발로 진남 공작부 함정에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소목지가 얼마나 교활한지는 잠시 잊은 듯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막한 여왕이 그들의 사냥감이었지만, 사실상 막한은 사냥꾼이었다. 막한과 소목지의 곁에는 항상 눈에 띄지 않는 대종사가 한 명 있었고, 게다가 막한 여왕 스스로도 천부적인 무도 재능이 무척 뛰어나서 무도 수준이 아주 높았다.

이번 교전에서 계청주, 영신 왕후, 옥진 군주 쪽 부상이 심했고, 이들이 데려온 수십 명 고수 중 절반이 목숨을 잃었다.

영신 왕후와 옥진 군주는 중상을 입었고, 계청주도 자신이 흘린 피를 뒤집어써야 했다.

세 사람은 소목지와 막한 여왕의 고수들에게 포위당하고 말았다.

“계 숙부, 숙부의 지능으로 나를 어떻게 해보려고 했던 겁니까? 저번에 만약 두변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숙부의 시신은 땅속에서 썩고 있었을 거고, 계표표는 제 침상 위의 노리개가 되었을 겁니다.”

소목지가 냉소하더니 사악한 눈빛으로 옥진 군주의 몸매를 노골적으로 훑어보았다.

“옥진 군주, 못 본 사이에 몸매가 더 풍만하고 탐스러워졌군요. 아, 설마, 두변과 잠을 잔 겁니까?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소목지가 가슴을 치면서 원망스러운 시늉을 했다.

“아휴, 정말로, 왜 두변에게 몸을 내준 겁니까? 당신을 아주 깨끗이 씻겨서 공물처럼 소군 전하께 바치려고 했는데 말이죠. 이를 어쩔까요. 소군 전하께서는 결벽이 좀 있어서 맑고 순수한 처녀만을 원하십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당신을 죽여야겠군요.”

계청주는 자신의 행동이 무척 후회스러웠다.

전장으로 오기 전, 두변은 계청주에게 절대로 소목지와 막한을 암살하려고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다. 암살을 시도했다가는 교활한 소목지의 함정에 빠질 거라고도 경고했다.

하지만 전장에 나온 순간부터 계청주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원한을 억누르지 못했고, 무도인의 단순한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나마 혼자 죽게 되었으면 모르겠는데, 자기 때문에 영신 왕후와 옥진 군주까지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했으니 너무나 후회스러웠다.

“죽여라. 세 사람을 갈기갈기 찢어서 상자에 담은 뒤, 두변에게 선물로 보내거라.”

소목지가 명령했다.

그때 다행스럽게도 영종오 대종사가 무도 강자들을 이끌고 나타나서 계청주, 영신 왕후, 옥진 군주를 구출해냈던 것이다.

세 사람을 구출한 뒤, 영종오 대종사가 채찍을 들어 계청주를 향해 호되게 휘둘렀다.

“섭정왕은 자네가 이성을 잃을 걸 알고 있었다. 소목지와 막한을 죽이겠다는 경솔한 생각에 그들의 함정에 빠질 거라는 걸 말이다. 섭정왕이 자네가 이럴 줄 알고 나를 보낸 거다. 이제 임무를 완수했으니, 어서 남은 병력을 이끌고 철수해라.”

영종오 대종사가 계청주를 나무랐다.

이어서 부홍빙 장군이 마혈 기병 3천을 이끌고 염주성으로 달려왔다. 그녀는 계청주 등을 쫓던 막한의 주력 부대의 주의를 돌렸고, 성화 군단과 계청주 등은 그 틈을 타서 포위망을 뚫고 철수했다.

3천 마혈 기병은 빠른 속도로 계청주 등을 따라잡았고, 잔군과 함께 백색성까지 순조롭게 퇴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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