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장: 정석 마포(魔砲)
사공엽이 말했다.
“이런 격광 장치는 광선을 직선으로 쏘아냅니다. 정석 마포에서 포탄을 발포하면 궤적이 곡선입니다. 하지만 속도가 아주 빠르고 화포에 반동이 없어서 안정적인 편이라, 발포 궤적은 거의 직선에 가까운 곡선입니다. 정밀한 계산을 해서, 격광의 속도와 각도를 조절하면 정밀 조준의 효과를 낼 수 있을 겁니다.”
‘정말 엄청나군!’
지금 두변의 군대는 원거리 공격에 몇 가지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첫 번째는 포탄의 살상력이었다. 동방 연합 왕국은 유탄과 고미산 폭탄을 발명하면서 화포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 원래 두변이 가진 화포는 살상력이 무척 약했지만, 이제 정석 마포가 있으니 그 문제는 해결된 셈이었다.
마포의 발포 속도, 동력이 기존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되어서 포탄의 살상력이 대폭 강화되었다.
두 번째 문제는 포탄의 유효 발사 거리였다.
동방 연합 왕국의 유탄포는 유효 발사 거리가 2, 3천 미터가 넘지만, 두변의 마포는 그보다 더 먼 4천, 5천 미터였다.
세 번째 문제는 제일 중요한 화포의 명중률 문제였다. 이전의 화포는 명중률을 온전히 운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동방 연합 왕국은 강선 유탄포를 쓰기 시작하면서 명중률이 많이 향상됐지만, 두변의 마포는 아예 질적으로 다른 명중률을 자랑하게 되었다.
옆에 있던 부홍빙, 여담, 진무제 등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겉보기엔 평범한 화포인데, 어떻게 한순간에 이렇게 강력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두변은 그 원리를 알고 있었다.
이건 이계 버전의 전자포라 할 수 있었다. 전기 에너지를 자력으로 바꾼 뒤, 포탄으로 발사하는 방식이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추월 방법 아닌가. 하루아침에 전자포를 만들어 내다니.
현대 지구의 전자포의 최대 문제점은 초대용량 배터리가 부족해서 순간 폭발력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파란 정석 장치는 그게 가능했다.
전호검 하나에는 파란 정석 2냥 정도만 필요하지만, 정석 마포에는 30근까지 쓸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포탄의 발포 속도가 너무 빨라서 평범한 강철로는 이 발포 속도를 견딜 수 없을 것이다. 평범한 강철이라면 포당에 변형이 생길 것이고, 자칫하면 포당 내부가 터질 위험도 있었다. 하지만 두변의 화포는 낙후된 활강포긴 하지만, 제작 원료가 절세 지하성의 이계 경금으로 현대 지구의 합금 포관에 못지 않게 견고했다.
현대 지구의 전자포는 1분에 발포를 한 번 하기도 어려운데, 두변의 마포는 1분에 몇 발의 포탄을 쏠 수 있었다.
두변이 고미산 폭탄을 만들지 못했고, 대량의 강선포나 유탄을 만들지 못했고, 동방 연합 왕국의 특급 중포도 가지지 못했지만, 정석 마포는 엄청난 발포 거리와 발포 속도, 그리고 놀라운 명중률을 자랑했다.
동방 연합 왕국과의 원거리 화력을 비교하면, 두변은 이미 그들의 과학 문명을 멀리 추월한 셈이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문제는 단 하나, 화포의 수량이었다.
두변이 물었다.
“지금 이런 마포가 몇 대나 있습니까?”
“지금은 이 하나가 전부입니다. 제작에 성공하자마자 주군께 희보를 알리러 달려간 겁니다.”
사공엽이 대답했다.
“동방 연합 왕국의 66만 대군이 이미 결집을 끝냈으니, 곧 군대를 이끌고 우리를 공격하러 올 겁니다. 그러니 최단 시간을 활용해서 마포 300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주군.”
사공엽과 주술사 국사가 대답했다.
부홍빙이 물었다.
“주군, 300대면 충분할까요? 적군의 화포는 1천 대가 넘습니다.”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우리의 마포는 활강포가 아니고, 포탄도 실심 포탄을 쓰지만, 전장에서는 우리가 동방 연합 왕국을 압승할 겁니다. 우린 원거리 화력에서 동방 연합 왕국에게 절대로 밀릴 일이 없습니다.”
기세 소성주가 말했다.
“적군의 신식 화총병은 어떡합니까? 그들이 쏘는 총알 위력이 우리 화살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총알은 우리 갑옷도 뚫습니다. 경금으로 만든 갑옷이나 더 두꺼운 갑옷이어야만 총알을 막을 수 있습니다.”
사공엽이 말했다.
“시간이 없습니다. 주군에겐 30만 대군이 넘는 병력이 있어서, 아무리 우리가 전력을 다해서 경금 제작을 한다고 해도, 경금 갑옷을 만들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린 이걸 써야만 합니다.”
사공엽이 높이 2척, 폭이 1척 넘는 방패를 가져왔다.
“이 방패의 표면은 경금이고, 안쪽은 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이거면 충분히 동방 연합 왕국의 총알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우리 병사들이 조금 고생을 하겠지만요.”
방패로 화총을 막는다?
언뜻 보기에는 무척 낙후된 방식이지만, 잘 막기만 하면 그만 아닌가?
두변의 대군은 이제 동방 연합 왕국의 원거리 화포도 상대할 수 있으니, 화총병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남은 난관은 곤륜노 무사 8만 명이었다.
두변의 5천 마혈 기병이 전호검을 들고 8만 곤륜노 무사를 상대해야 했다.
이번 전투는 정말 정상을 다투는 경천동지의 대전이 될 것이다.
“사공엽, 주술사 국사. 화포를 마포로 개조하는 작업은 속도가 관건입니다. 최단 시간 내에 꼭 화포 300대를 개조해야 해요. 그래야만 우리가 적군의 화포를 압살하고 이번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명 받들겠습니다.”
두변은 원래 곧바로 호남 행성으로 가서 붉은색 정석을 채굴하려고 했다.
지금은 마포를 제작할 파란 정석은 충분했다. 하지만 붉은색 정석이 아직 무기화하지 못했더라도 격광 조준 장치에 쓰이는 것만 해도 다량의 붉은색 정석이 필요했다.
하지만 두변은 그 전에 계림부를 먼저 들러야 했다. 영신 왕후가 도착했기 때문이다.
“미망인 영신, 황제 폐하와 섭정왕 전하를 뵙습니다.”
안남 왕국 왕후 영신이 영설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고모!”
영설이 영신에게 달려가서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여경(黎擎), 대녕 제국의 섭정왕 전하를 뵙습니다.”
열 몇 살 된 소년이 두변을 향해 예를 올렸다. 여경은 여창 국왕의 장자, 안남 국왕의 태자였다.
여경의 뒤로 아우 둘과 누이가 한 명 있었는데, 어린 누이는 이제 아홉 살이었다.
두변은 여창 국왕과 교류가 잦지는 않았지만, 내적 친밀감은 무척 끈끈했다. 여창 국왕은 좋은 국왕이자 그의 좋은 벗이었다.
어떻게 보면, 여창 국왕은 천윤제보다 더 군주 역할을 잘 해냈다고 할 수 있었다.
두변은 여창 국왕의 희생이 무척 가슴 아팠다.
“형부라고 부르면 된다.”
두변이 여경 왕태자에게 말했다. 그리고는 웅크려 앉아서 여창 국왕의 제일 어린 아들과 딸을 품에 안았다.
아이들의 겁에 질린 얼굴과 붉어진 눈시울을 바라보던 두변이 다정하게 말했다.
“형부가 너희를 보호해줄 테니, 앞으로는 형부 집에서 지내거라.”
“두변, 승룡부도 함락되었어요. 나는 몇천 명만 이끌고 당신의 영지로 왔고요. 안남 왕국 전체가 막한의 손에 넘어갔어요.”
“왕후, 대전은 이제 막 시작입니다.”
영신 왕후의 말에 두변이 여경 왕태자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대전이 끝나는 대로 꼭 왕태자를 도와 안남 왕국 전체를 수복하고, 태자를 왕으로 옹립하도록 하겠습니다. 영존의 유지를 꼭 지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야윈 소년이 허리 숙여 예를 올리면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섭정왕 전하, 우리가 이번에 승룡부에서 수천 명 무사를 데려왔습니다. 비록 몇 명 되진 않지만, 섭정왕 전하께 바쳐서 이번 전투에 미약하게나마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옥진 군주의 규방이었던 방.
두변이 문을 열자, 방 안은 온통 암흑이었고, 창문과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두변은 어두운 시야에서 어렴풋이 폭발적인 몸매의 여인이 멍하니 앉아있는 뒷모습을 보았다. 뒷모습만 봐도 그 여인이 옥진 군주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저런 폭발적인 몸매가 옥진 군주가 아니면 누구일까.
두변이 다가가서 옥진 군주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던 찰나, 옥진 군주가 갑자기 몸을 돌려서 두변의 품에 안겼다.
옥진 군주는 곧바로 뜨거운 입술을 두변의 입술 위로 포개면서 두변의 허리를 안았다.
“두변, 두변 아우, 내가 정말 잘못했어. 하지만 내 탓은 하지 마. 날 욕하지도 말고. 제발 날 용서해줘. 날 원해줘. 나와 밤을 보내줘.”
옥진 군주는 표범처럼 두변 위로 올라타 그를 누른 뒤 제 마음속의 슬픔을 쏟아냈다. 그렇게라도 해서 자신의 미안함을 씻고 싶었다.
두변은 이렇게 아무런 방비도 없이 옥진 군주의 밑에 깔려버렸다.
같은 시각.
안남 왕국 승룡부, 왕궁에서는 성대한 즉위식이 치러졌다.
수백 명 문무 관리의 옹립하에, 막한은 막씨 왕조가 회복되었음을 선포하고, 북월(北越) 여왕으로 즉위했다.
막한의 즉위식은 영설 공주나 영창 위제의 즉위식보다 훨씬 더 장엄하고 웅장했다.
50여 국에서 사신을 보내 막한의 즉위를 축하했고, 남월했던 완씨 반왕의 태자도 막한의 즉위식에 직접 참가했다.
동아시아에서 두변 외의 모든 국가에서 사람을 보내 막한의 즉위식에 참석했다.
영덕 위제도 막한의 즉위를 축하하는 사자를 보냈고, 막한을 북월 여왕에 봉한다는 성지도 보냈다.
성화교 세계, 서방세계에서도 백 명이 넘는 사자를 보냈고, 유경 왕국 여송성에서 담판을 하던 사자도 유경 왕국을 대표하여 막한 여왕의 즉위식에 참여했다.
막한의 정혼자가 세계 패주 중 한 명인 동방 연합 왕국의 소군 방진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동방 연합 왕국의 십여 만 대군과 3만 곤륜노 무사가 광장에서 방대한 열병식을 진행하면서 막한의 즉위를 축하했다.
막한 여왕은 드디어 진짜 황금 왕포를 입고 진짜 황금 왕관을 쓰게 되었다.
그녀는 높디높은 황금 왕좌에 앉아서 대전 안에 모인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막씨의 선조들, 그리고 경애하는 아버지, 보셨어요? 내가 막씨 왕족이 몇백 년 동안 이루지 못했던 것을 이뤘습니다. 내가 드디어 막씨 왕조를 회복했다고요.”
막한 여왕이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왠지 왕궁 안의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모든 국왕이 즉위할 때면 선혈, 살육, 공훈이 필요한 법. 국왕의 검이 피를 원하고 있었다.
“두변, 네놈이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으니, 내 국왕의 검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시험해보기 딱 좋구나. 나 막씨 왕조의 위업은 네놈부터 시작해야겠다. 너는 막씨 왕도 패업의 첫 번째 디딤돌이 될 것이다.”
막한이 국왕의 검을 뽑아들고 큰소리로 외쳤다.
“대군은 북벌하여 막씨 왕조의 고토를 수복한다. 반적 두변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위제 진무를 처참히 죽여버려라. 두변의 군대를 몰살하고, 두변의 영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라!”
“대군 북벌하라!”
“대군은 북벌하여, 두변을 죽이자!”
“두변의 영토를 쑥대밭으로 만들자!”
동방 연합 왕국의 수십만 대군이 입을 모아 외쳤고, 그 소리는 하늘을 울릴 정도였다.
열병식을 마친 십여만 대군이 왕궁 광장에서 위풍당당하게 북상하여 두변의 광서 염주부로 향했다.
그 외 십여만 대군은 안남 왕국의 서부를 통해 두변의 백색부로 향했다.
그렇게 30만 대군이 넘는 막한의 군대가 초특급 중포를 끌고, 강력한 화총병과 곤륜노 무사와 함께 북상하기 시작했다.
막한의 군대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까맣게 대지를 뒤덮었고, 파멸의 기세로 두변을 향해 달려갔다.
막한은 왕궁 안에서도 대지의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두변, 들리느냐. 이게 바로 세상에서 제일 강한 힘이다. 우리는 너라는 벌레 한 마리를 백 번이고 넘게 죽여줄 수 있다.”
막한이 북벌을 명령했을 때, 막한의 함대는 육군보다 더 빨리 움직였다.
전열함 3척, 순양함 4척, 호위함 7척으로 이뤄진 막강한 함대는 곧바로 두변의 해상 영역을 향해 항해했다.
같은 시각, 광서 계림부.
여완완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두변을 다정하게 바라보면서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부군, 내가 비밀 하나 알려줄까요? 저번에 당신이 나를 죽이려고 했을 때부터 나는 밤마다 당신의 꿈을 꿔요. 근데 이상하게도 꿈속에선 우리가 정말 서로를 사랑하고, 당신도 나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어요.
부군, 이제 난 떠나요. 이번에 떠나면, 다신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어요. 부군, 몸 조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