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511화 (511/648)

511장: 진남공의 죽음 二

막한 여왕은 직접 선두를 달리면서 1천 곤륜노 무사를 이끌고 무너진 성벽을 향해 돌격했다.

전신을 갑옷으로 무장한 무사 2만 명과 신식 화총병 1만 명도 공성을 시작했다.

진남공 송결이 소리쳤다.

“고작 3만 명으로 우리 30만 대군을 상대하겠다고? 죽고 싶어 환장했나 보구나!”

송결이 직접 몇만 대군을 이끌고 무너진 성벽을 향해 달려갔다.

“죽여라. 다 죽여버려.”

막한 여왕의 속도는 무척이나 빨랐다.

그녀의 뒤를 따르고 있는 곤륜노 무사들은 전부 키가 2미터가 넘고, 눈까지 가리는 비금 갑옷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곤륜노 무사 한 명의 체중은 400근이 넘었고, 100근짜리 검을 가볍게 휘두를 만큼 힘이 셌다. 전투력은 마혈 무사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죽여라! 죽여라!”

막한과 곤륜노 무사들은 순식간에 무너진 성벽에 도착해서 진남공 송결의 몇만 대군을 향해 돌격했다.

“죽어라!”

진남공 송결이 외치고는 검을 뽑아 막한을 향해 힘껏 휘둘렀다.

“죽어라!”

막한도 송결을 향해 검을 찔렀다.

쨍!

검과 검이 부딪히는 찰나, 고막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마찰음이 터져 나왔다. 진남공 송결의 거대한 몸집이 움찔, 하더니 그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송결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머저리 여왕 막한을 바라보았다. 막한의 무공 수준이 꽤 높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이가 어린 그녀를 얕잡아 보고 있었다. 자신은 정상급 종사 수준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어린 여인이 일검에 나를 찔러?

“송결, 당신은 내가 지난 2년 동안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몰라요. 당신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졌어요.”

막한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뒤이어 막한의 뒤를 따르던 곤륜노 무사들이 무너진 성벽을 뛰어넘어 송결의 병사들을 향해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1만 명 화총병도 성벽에서 700미터 떨어진 곳에서 대열을 갖추고 사격을 시작했다.

탕, 탕, 탕, 탕.

성 안에 있던 수비군이 활과 화살을 쏘면서 반격했다. 하지만 평범한 활과 화살의 공격 가능 거리는 최대 300미터일 뿐.

동방 연합 왕국은 고미산을 사용해서 총기의 위력을 증폭시켰고, 강선포 방식의 총기는 유효 사격 거리가 당연히 300미터가 넘었다.

수비군은 화총병에게 속수무책으로 죽임을 당했다.

세 시진 뒤, 순화성 대전이 끝났다.

결과는 진남공 송결과 여창 국왕의 연합군의 철저한 패배였다. 30만 명이 넘는 냉병기 대군이 막한 여왕의 3만 대군에게 처참하게 패배하고 말았다.

“난 안 갈래요. 갈 수 없어요. 갈 거면 같이 가요. 죽을 거면 같이 죽자고요!”

왕후 영신이 울부짖었다.

여창 국왕이 탄식하면서 왕후를 다독였다.

“당신이 죽으면 우리 아이들은 어쩌고.”

“그래도 당신이 죽을 필요는 없잖아요. 지금이라도 같이 출발하면 갈 수 있어요.”

“순화 왕성이 있는 한 내가 있고, 순화성이 함락되면 나도 죽겠다고 이미 맹세했소. 군주는 장난삼아 말을 하지 않아. 왕후는 내가 했던 말을 지키지 말란 뜻이오?”

여창 국왕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랑하는 왕후, 사실 내가 하지 못한 말이 있소. 나는 영창제와 진무제 중에 진무제를 더 지지하오. 하지만 나는 바깥사람이다 보니, 대녕 제국의 속사정에 대해서 입을 열기가 난감하지. 그리고 진남공과 영창제의 망명 조정이 바로 우리 순화부에 있는데, 내가 진무제와 두변을 지지한다고 말한다면, 그들을 내쫓는 것밖에 더 되나. 우리가 진남공에게 태산과도 같은 은혜를 입었는데, 어찌 솔직하게 입을 열 수 있었겠소.”

여창 국왕이 한숨을 쉬었다.

“지금 순화부가 함락되었으니, 드디어 내 속마음을 말할 수 있게 되었구려. 당신은 아무것도 챙길 필요 없이 옥진 군주와 함께 승룡부로 가시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계림부로 가서 두변에게 의탁하시오.”

여창 국왕이 그윽한 눈빛으로 왕후를 바라보았다.

“나의 사랑 왕후, 세상은 이미 변했소. 우리는 이미 시대에 뒤떨어져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질 사람들이오. 하지만 두변은 뒤떨어지지 않았소. 그는 이 대전을 오래전부터 준비해왔겠지. 어쩌면 그래서 우리가 진 것이기도 하고. 하지만 또 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이번 대전의 패배는 모든 것의 시작일 뿐이기 때문이오. 왕후, 옥진 군주와 함께 승룡부로 가시오.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두변에게 의탁하시오. 내 안남 왕국의 강산을당신에게 맡기겠소.”

영신 왕후가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안 돼요. 죽을 거면 같이 죽어요. 우리가 함께 두변에게 가서 부탁하면 되잖아요. 우리를 위해서 복수해달라고요.”

여창 국왕이 고개를 저었다.

“내겐 그럴 낯짝이 없소. 내가 이곳에서 죽어야만 보국의 희망이 남을 것이오. 안남 왕국의 신민들은 그들을 위해서 죽은 국왕을 기억해줄 것이오. 만약 내가 도망친다면, 우리 여씨는 완전히 쓰레기 왕족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오.”

반 시진 뒤, 순화성이 함락되었다.

영신 왕후는 수백 명 사람을 데리고 북쪽으로 도망쳤다.

여창 국왕은 세상 사람들에게 했던 맹세를 지키기 위해서 모두의 앞에서 자결했다.

안남 왕국의 영명한 군주 여창 국왕이 붕어했다.

진남공이 십여만 명 잔군을 이끌고 영창제, 안남 왕후 영신, 그리고 망명 조정의 문무 대신들을 보호하면서 북쪽으로 도망쳤다.

순화부의 북쪽 200리 부근에 작은 성, 송결의 10만 대군은 이곳에서 잠시 머무르기로 했다.

막한 여왕의 군대는 화포 이동이 불편하여 이틀 내에 이곳에 도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작은 성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영신 왕후가 말했다.

“10만 잔군은 당장 승룡부로 가야 합니다. 모든 금은과 식량과 물자를 가지고 북상해서 진서왕 두변에게 의탁하고, 함께 동방 연합 왕국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망명 조정의 내각 수보 장선조가 말했다.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두변은 이미 자신의 처를 황제로 옹립했습니다. 세상에 두 개의 태양이 없듯이, 백성들에겐 두 명의 군주가 있을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서남에 들어가게 되면, 대녕 제국에는 황제가 둘이 있는 겁니다. 진무 위제가 퇴위하지 않는 한, 우리는 절대로 서남으로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폐하, 절대로 두변의 영지에 들어가선 안 됩니다.”

장선조의 말에 영창제는 지도를 보면서 넋을 놓고 있다가,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우리는 서쪽으로 향해서 낭발랍방 왕국(현 라오스 북부)으로 간다.”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영창제의 뜻은 무척 명료했다.

막한 여왕이 안남 왕국의 북부를 점령하는 건 두변을 공격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동방 연합 왕국의 주력 대군은 이어서 안남 왕국 북부로 밀려들어 올 것이고, 대군의 수는 10만, 20만, 30만이 넘을 것이다.

영창제는 군대를 이끌고 안남 왕국에서 완전히 물러남으로써 안남 왕국을 막한 여왕에게 고이 줄 생각이었다. 그러면 막한 여왕이 자신들을 추살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들이 안남 왕국에서 물러나면, 동방 연합 왕국은 두변과 치를 전투에 집중할 것이다.

영창제에게는 또 다른 의중이 있었다.

그는 낭발랍방 왕국, 만상 왕국(라오스), 면 왕국(미얀마)은 국력이 약하고 병력이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기에 자신이 가진 10만 대군으로 충분히 이 지역을 자신의 새로운 영지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요컨대 안남 왕국에서 물러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낭발랍방 왕국과 면 왕국의 북부를 점령하면, 자신의 영지가 두변의 서남을 포위하는 모양새가 되는데, 나중에 동방 연합 왕국과 연합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영창제는 자신의 의중을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는 겉보기와 다르게 무척이나 노련하고 극도로 악랄한 군주인 셈이었다.

하지만 영신 왕후는 영창제의 의중을 눈치챘다.

그녀는 영창제가 동방 연합 왕국과의 전투를 피하기 위해서 안남 왕국을 완전히 희생할 작정이고, 더 나아가서 두변의 서남을 빼앗기 위해서 동방 연합 왕국과 조건을 건 야합할 생각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

‘이런 배은망덕한 놈 같으니!’

영신 왕후가 속으로 욕을 했다.

자신의 남편 안남 국왕은 두변을 지지했지만, 진남공에 대한 의리를 생각해서 영창제의 망명 조정을 받아줬다.

그런데 영창제는 은혜를 갚기는커녕 안남 왕국을 통째로 바칠 생각이라니!

하지만 영신 왕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신 왕후는 만약 자신이 뭔가를 알고 있다는 걸 조금이라도 내색하면 영창제가 자신을 위협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영신 왕후가 곧장 옥진 군주를 찾아갔다.

“옥진, 나와 함께 북상해서 승룡부로 가요. 우린 두변에게 의탁해야 해요.”

“안 됩니다!”

침상에 누워 있던 진남공이 소리쳤다.

하지만 진남공은 말을 하자마자 격하게 기침을 하면서 피를 토했다.

진남공 송결은 막한 여왕에게 검을 맞고 중상을 입었지만, 전투가 끝날 때까지 전장에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결국 처참한 패배를 했고, 여창 국왕이 나라를 위해 자결했다는 걸 듣고 계속 각혈을 하면서 목숨까지 위태로워졌다.

“왕후, 잠시만 시간을 주십시오. 옥진과 잠시 할 얘기가 있습니다.”

영신 왕후는 송결을 빤히 바라보다가 자리를 피해줬다.

“옥진, 무릎을 꿇어라.”

송결의 말에 옥진 군주가 송결의 침상 옆에서 무릎을 꿇었다.

“영창제는 대녕 제국의 유일한 정통 황제이니, 너는 꼭 영창제에게 충성을 바쳐야 한다.”

“알겠습니다.”

옥진 군주가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송결이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폐하께서 너를 황후로 맞이하고 싶다고 하시는구나. 이 아비는 이미 그 혼사를 동의했다.”

옥진 군주는 화들짝 놀랐다.

사실, 옥진 군주는 언제나 두변을 마음에 품고 살았다. 두변과 정견이 일치하지 않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녀는 두변을 사랑했다.

옥진 군주가 대답이 없자, 송결이 호통쳤다.

“지금 아비의 명령을 거역하려는 것이냐?”

옥진 군주는 비통함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저는 평생 시집가고 싶지 않습니다. 평생요.”

송결이 격노했다.

“지, 지금 나를 화나게 해서 죽이려는 게냐? 내게 불효를 저지르려는 게야? 이 아비가 폐하께 불충한 짓을 저지르길 바라는 것이냐? 폐하께서 이미 혼례를 청하셨고, 나도 이미 폐하의 청을 들어드리기로 약속했다. 만약 네가 이 혼례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이 아비를 죽음으로 모는 것이다. 넌 차라리 이 아비가 지금 네 앞에서 죽길 바라는 게지?”

송결이 기침을 하면서 또 피를 토했다.

옥진 군주는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눈물을 흘렸다.

“알겠어요. 아버지께서 하라는 대로 할게요.”

“잘 생각했다. 넌 나가보고, 폐하를 이리로 모셔오너라.”

영창제가 송결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송결의 침상 옆에 앉아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송결이 허약한 목소리로 영창제에게 물었다.

“폐하.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요?”

“진남공께서는 어떤 계획이 있으시오?”

“군대를 이끌고 승룡부로 가야 합니다. 두변과 공개적으로 동맹을 맺지 않되, 기각지세(掎角之勢: 달아나는 사슴을 잡을 때, 뒷발을 잡고 뿔을 잡는다는 뜻으로, 앞뒤에서 적을 몰아칠 수 있는 양면兩面 작전의 형세를 비유)로 동방 연합 왕국을 대항할 수는 있습니다.”

“짐은 이미 낭발랍방 왕국을 먼저 점령한 뒤에 면 왕국 북부를 점령하기로 결심했소. 그래야 우리도 설 자리가 생길 테니 말이오.”

송결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영창제를 바라보았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폐하. 안남 왕국을 동방 연합 왕국에 고이 내어주자는 말씀이십니까? 그건 여창 국왕을 배신하는 짓입니다. 폐하,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승룡부가 두변의 영지와 무척 가깝긴 해도, 거기만큼 안전한 곳이 없을 겁니다.”

“짐은 이미 결정했소.”

영창제의 단호한 말에 송결이 몸을 부르르 떨면서 말했다.

“안 됩니다. 폐하. 그건 여창 국왕을 배신하는 것이고, 대녕 제국을 배신하는 짓입니다. 우리가 두변과 동맹을 맺지 않아도 공동의 적을 상대할 수 있습니다. 폐하와 진무제는 형제간의 집안싸움이지만, 동방 연합 왕국은 외적입니다.”

영창제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말했다.

“짐이 이미 결정한 사안이니, 공은 말씀을 삼가시오.”

송결이 애원하듯 말했다.

“폐하, 절대로 안 됩니다. 신은 폐하께서 그런 큰 잘못을 저지르게 둘 수 없습니다.”

송결이 피를 울컥 토해내고는 서둘러 장군들을 모아서 군사 회의를 하고픈 마음에 침상에서 버둥거렸다.

그런데 영창제가 송결의 가슴팍을 손으로 힘껏 누르면서 말했다.

“짐이 이미 결정을 했으니, 진남공은 편히 쉬시오. 10만 잔군은 이제 짐이 맡겠소.”

영창제가 손바닥으로 내력을 살짝 쏘아냈다.

푸악!

진남공 송결은 마지막으로 검붉은 피를 토하고 숨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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