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510화 (510/648)

510장: 진남공의 죽음 一

동방 연합 왕국의 전함 갑판 위에 절세미인 한 명이 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새하얀 눈 같은 옷을 입고, 정밀하게 만들어진 황금 왕관을 쓴 선녀 같은 여인이었다. 이 여인은 바로 오랜만에 사람들 앞에 나타난 막씨 토사의 유일한 후계자이자, 거의 주화입마 수준으로 여왕 놀이를 하던 막한이었다.

머저리 여왕 막한.

막한이 선두에 서서 어렴풋이 보이는 안남 왕국을 보면서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막씨의 선조들이여, 내가 드디어 막씨 왕족의 왕위를 되찾습니다!”

위풍당당한 함대가 막한의 뒤를 따라오고 있는데, 거대한 전함 위에는 동방 연합 왕국의 정예병들이 가득했다.

소목지가 웃으면서 말했다.

“왕비, 제가 약속한 건 꼭 해내는 놈입니다. 그때 두변이 아니라 저를 믿어 주셔서 참 다행입니다. 안 그러면, 지금쯤 우리는 죽어서 이곳에 없었을 테니까요.”

막한이 말했다.

“나도 내가 약속한 걸 꼭 지킨다. 내가 안남 여왕 자리를 되찾고 막씨 왕조를 되찾으면, 소군 방진의 부인 중 한 명이 되겠다. 네가 말한 두변과 교류가 있긴 했지만, 그자와 무슨 일에서든 엮일 생각이 없다. 그러니 앞으로 다시는 내 앞에서 그자의 이름을 언급하지 말아라.”

소목지가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왕비 전하. 아, 아니지. 여왕 폐하.”

두변이 진남공과 완전히 결렬한 탓에 혈관음은 안남 왕국에서 쫓겨났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두변의 교룡호는 혈관음과 함께 염주 항구로 자리를 옮겼다.

막한의 함대가 안남 왕국까지 몇백 리 남았을 때, 안남 왕국과 진남 공작의 수군들이 수십 척 수군 전함을 총출동해서 전투 태세를 갖췄다.

막한은 전함 3척, 순양함 4척, 그리고 십여 척 화물선을 보유하고 있었다.

안남 왕국과 진남공의 수군을 보더니 막한 여왕이 냉소를 지었다.

“순양함 한 척을 보내서 전투를 시작해라.”

소목지가 흠칫 놀랐다.

막한의 명령이 현명하지는 않았지만 막한이 이미 소군 방진과 정혼을 했고, 미래 막씨 왕조의 여왕이니만큼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두었다.

막한의 명령이 떨어지자, 배수량 1천 톤, 화포는 30대를 넘지 않는 순양함이 안남 왕국의 수십 척 전함을 향해 속도를 높였다.

돛을 올리지 않았음에도 순양함의 속도는 놀랍게도 18노트 정도로, 안남 왕국과 진남공의 전함보다 속도가 월등히 빨랐다.

안남 왕국과 진남공의 수군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전함 한 척으로 수십 척 전함을 상대하겠다는 건가?’

“저 전함을 포위하고 공격하라!”

안남 왕국과 진남공 수군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수십 척 전함이 순양함 한 척을 포위하기 위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순양함까지 1천 미터가량 남았을 때, 하늘을 찌를 듯한 폭발음이 들리고 포탄 10여 발이 안남 왕국의 기함(旗艦)인 왕권호를 향해 날아갔다.

물론, 첫 발포여서 왕권호를 명중시키지는 못했다.

아무리 강선포의 정확도가 많이 향상되었다고 해도, 첫 발포에서 명중하기란 불가능했다. 하지만 1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두 번째 발포가 시작되었다.

콰과과과광!.

포탄 15발 중 3분의 1이 안남 왕국의 왕권호를 명중시켰다.

콰지직.

포탄 5발이 왕권호 기함에서 맹렬하게 폭발했다.

처음엔 전함의 한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고, 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포탄,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포탄이 폭발한 후…… 완씨 반왕에게서 얻어낸 경순양함이 절반으로 갈라지면서 순식간에 침몰해버렸다.

이어서 막씨 여왕의 증기 철갑 순양함이 광란의 활약을 시작했다.

쿠구구궁.

한 번, 또 한 번의 발포 명령이 떨어졌다.

안남 왕국이든, 진남공의 수군이든, 포탄 한 발을 맞았다 하면 전함에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전함에 거대한 구멍이 생긴다는 건 곧 침몰을 뜻했다.

한 시진 뒤, 안남 왕국 앞바다에는 나무 조각과 불꽃, 그리고 시체만 둥둥 떠다녔다.

안남 왕국과 진남공의 연합 수군이 전멸한 것이다.

막한 여왕은 철갑 순양함 한 척으로 수십 척 전함을 물리쳤고, 안남 왕국과 진남공의 모든 수군을 없애버렸다.

이게 바로 과학의 위력이고, 문명의 차이다.

“두변의 수군은?”

막한 여왕의 물음에 소목지가 대답했다.

“두변에게는 딱 한 척 전함만 있습니다. 유경 왕국에서 선물해준 교룡호 전함 말이죠. 교룡호는 신비한 핵심 동력이 장착된 철갑 전함인데 항해 속도는 우리 증기 철갑함보다 더 빠르고요. 하지만 우리에겐 교룡호도 그저 바다에 떠다니는 철갑 관짝에 불과하죠.”

“왜지?”

“저들의 화포가 이미 시대에 뒤처져 있습니다. 그들이 쓰는 건 전부 화당포이고 실심 포탄이거든요. 발포 거리가 우리 화포보다 훨씬 짧고, 정확도도 우리 화포보다 낮고, 화력도 우리 화포의 1할 수준입니다. 교룡호 전함은 두변이 가진 유일한 전함인데, 두변은 그걸 자기 목숨처럼 여기죠. 하지만 우리에겐 교룡호가 철갑 관짝밖에 안 된다는 걸 그놈이 알고 있을까요.”

“그럼 파괴해서 없애버려야지.”

한 시진 반 뒤, 막한 여왕의 함대는 순안해 항구를 아주 쉽게, 완전히 점령하고 말았다.

뒤이어 막한 여왕의 육군이 상륙하기 시작하는데, 그 수는 화총 신군 1만 명, 정예 무사 2만 명으로 이뤄진 3만 명뿐이었다. 유탄포 100대와 1천 명 곤륜노 무사를 포함해서 말이다.

소목지가 말했다.

“여왕 폐하, 우리는 선봉대일 뿐입니다. 소군 전하의 남방 전장의 주력 대군이 상륙할 예정이니, 우리는 주력 대군이 도착한 뒤에 순화부를 치는 게 좋겠습니다.”

막한 여왕이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지금 당장 순화부를 공격해. 이곳은 우리 막씨 왕조 제2의 수도였다.”

“하지만 순화부의 방어선에는 안남 왕국 전체 주력의 7할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진남공 송결의 주력 대군만 해도 35만 대군인데, 35만은 우리가 가진 병력의 10배 이상입니다. 우리의 임무는 순안해 항구를 점령하는 것이니, 우리는 지금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두 번 말하고 싶지 않다. 당장 순화부로 진군하라.”

“명 받들겠습니다.”

막씨 깃발을 든 동방 연합 왕국의 3만 대군이 항구에 집결한 뒤, 안남 왕국 순화부를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이틀 뒤.

막한 여왕이 3만 대군을 이끌고 순화부 앞에 도착했다. 2년 동안 이어진 전쟁 탓에 순화부에 있던 백성들은 전부 북쪽으로 이전했고, 한때 번화했던 왕성 순화부는 어느새 거대한 군사 보루가 되어 있었다.

순화부에는 병사들, 혹은 군대를 돕는 민부들이 대부분이고, 민간인은 거의 없었다.

최근 2년 동안 진남공 송결과 여창 국왕의 연합군은 연달아 세 번의 대승을 거두었다. 연합군은 안남 왕국의 멸망을 막아냈고, 완씨 반왕의 20만 대군을 물리쳤으며 국토 3분의 1 이상을 수복했다.

이들이 완씨 반왕을 토벌할 날이 코앞인 상황에, 모두가 예상치도 못하게 막한 여왕이 3만 대군을 이끌고 안남 왕국으로 쳐들어온 것이다.

“폐하, 동방 연합 왕국의 신군이 강하긴 하지만, 병력은 우리의 10분의 1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우리에겐 견고한 성벽이 있지 않습니까. 이번 전투는 우리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저쪽의 통솔자는 막한 토사의 딸이자, 수백 년 전 안남 왕국 막씨 왕조의 후대입니다. 군사에 대해선 일자무식한 여인이지요.”

진남공 송결이 자신 있게 말했다.

“진남공께서 승산이 있다고 확신하니, 짐도 마음이 놓이는군. 이번 승리로 저쪽의 신식 화포와 화총을 얻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소이다. 아군의 전투력을 대폭 향상할 수 있을 테니 말이오.”

“신, 명 받들겠나이다.”

영창제 영충삭의 말에 진남공 송결이 머리를 조아려 대답했다.

송결이 영충삭과 작별을 고하고 걸음을 옮기던 중, 대녕 제국 망명 조정의 내각 대신 장선조가 그의 앞길을 막았다.

“진남공,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꼭 지금이어야만 하오? 대전이 코앞이오.”

“영창제 부인께서 요절하셨는데, 옥진 군주에게는 따로 혼례를 약속한 자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두 사람은 하늘이 맺어준 인연처럼 잘 어울리는 한 쌍인데, 공의 영애를 폐하의 황후로 모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송결이 흠칫 놀랐다.

“수보 대인, 이건 대인 혼자만의 뜻이오, 아니면 폐하의 뜻이오?”

“영애 옥진 군주는 고귀한 분위기가 있고, 절세미인인 데다, 여인 호걸의 호방함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공의 영애를 무척 존중하고 좋게 보고 계십니다.”

장선조가 진지하게 말했다.

“폐하의 뜻이라면, 당연히 폐하의 뜻을 따라야지요.”

송결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특수하다 보니, 혼례는 되도록 일찍 치렀으면 합니다.”

“이번 전투가 끝나는 대로 딸을 위해 혼례를 준비하겠소.”

이번 전투는 진남공 송결뿐만 아니라, 영창제의 다른 대신들도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자신들의 병력이 막한 여왕의 열 배이니, 당연히 이길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여창 국왕의 군대가 됐든, 진남공 송결의 군대가 됐든, 모두 백전노장들이어서 이제 막 병사 옷을 입기 시작한 새내기 병사들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여창 국왕은 이번 전투에 대해서 근심이 많았다.

여창 국왕이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옥진 군주를 찾아왔다.

“옥진 군주, 만약 이번 전투에서 패배하게 되면, 군주와 영신 왕후는 최대한 잔병을 끌어모아 북상해서 승룡부로 가거라. 그리고 과인의 아이들을 데리고 서남으로 가서 진서왕 두변에게 의탁하고.”

옥진 군주가 놀란 눈빛으로 여창 국왕을 쳐다보았다.

“국왕 폐하, 저쪽 통솔자는 막한입니다. 제가 그 여인을 좀 아는데, 두변이 그 여인을 머저리 여왕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막한에게는 3만 대군이 전부이고, 우리 병력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막한이 고작 3만 명으로 순화부를 함락시킬 수 있을까요?”

여창 국왕이 말했다.

“나도 내가 괜한 걱정을 하는 것이길 바랄 뿐이다.”

반 시진 뒤, 대전이 시작되었다.

막한 여왕의 3만 대군이 순화 왕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콰과과광!

유탄포 100대가 동시에 발포되면서, 순화부 성문 밖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고 대지가 흔들렸다.

순화부는 지난 2년 동안 두 번의 대전을 치렀다.

첫 대전 때, 완씨 반왕이 30만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순화 왕성을 반년 동안 포위했었는데, 끝내 순화 왕성을 함락시키지는 못했다.

두 번째 대전 때는 완씨 반왕이 다시 30만 넘는 대군을 이끌고 순화 왕성을 두 달 넘게 포위했지만, 결국 빈손으로 퇴각해야 했다.

두 번의 대전에서 패배하면서 완씨는 원기를 크게 상했고, 결국 약 20만의 병력을 잃게 되었다.

그 이후 완씨 반왕은 순화 왕성을 다시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고, 도리어 연합군에게 밀려서 수백 리 밖으로 밀려났다.

덕분에 진남공은 누구든 순화 왕성을 함락하고 싶다면, 최소 50만 이상의 병력을 이끌고 왕성을 포위해야만 가능할 것이라 자신했다.

그런데 지금,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일이 발생했다.

막한 여왕의 3만 대군이 순화 왕성을 공격한 지 한 시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엄청나게 견고하던 순화 왕성의 성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화포 100대가 1천 미터 넘는 거리에서 무차별적으로 폭격했다.

순화 왕성에서 다급하게 기마병 세 부대를 밖으로 내보내서 포화를 뚫고 막한 여왕의 화포 부대를 없애고자 달려 나왔지만, 막한 여왕의 1만 화총병이 기마병들을 꼼짝달싹도 하지 못하게 했다.

수천 명의 기마병이 막한의 포병 진영 300미터 앞까지 다가갔지만, 결국 동방 연합 왕국의 화총과 화포에 맞아 전멸했다.

성벽에서 대지가 뒤흔들리는 굉음이 터져 나오고, 순화 왕성의 견고한 성벽은 수천 발 포탄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수십 미터에 달하는 구멍이 생겼다.

“공성을 시작하라!”

막한 여왕이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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