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509화 (509/648)

509장: 황제가 된 영설 공주 二

스릉!

마혈 무사 몇 명이 순식간에 젊은 관리들을 대열 밖으로 끌어낸 뒤, 목을 잘라버렸다.

사람들이 경악했다.

두변이 이렇게 단칼에 사람을 죽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남공, 장 대인. 아랫사람 관리 좀 잘하셔야겠습니다. 정견이 달라도 좋게좋게 말하고 헤어집시다. 험한 말을 했다간, 제 칼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십여 명의 젊은 관리들이 격노하면서 소리쳤다.

“우리를 죽인다고 해서, 온 세상 사람의 입을 다 막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천하의 난신적자 같으니라고. 우리 다섯 명, 열 명을 죽일 순 있겠지만, 온 세상 사람을 다 죽일 수 있겠소?”

바로 다음 순간, 수십 명 마혈 무사가 말하던 사람들을 끌고 나와서 죽여버렸다.

두변이 진남공 송결과 장선조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대인들, 잘 들으십시오. 나 두변이 사람을 죽이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나는 내 명성이 실추될까 봐, 여론의 압박이 두려워서 죽여야 할 사람을 못 죽이는 인물이 아닙니다. 대전이 코앞이고, 대녕 제국의 사직은 벼랑 끝에 있습니다. 나는 내 명성 따윈 신경 쓰지 않습니다.”

송결과 장선조는 화가 나서 몸이 떨려왔다.

두변은 두 사람을 무시하고 냉랭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또 제멋대로 지껄이고 싶은 사람 있습니까? 시답잖은 말싸움할 사람은요? 내가 분명히 말하겠습니다. 영설 공주가 황제가 되길 지지하는 사람은 이곳에 남아도 좋습니다. 하지만 내 의견에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당장 서남에서 꺼지십시오. 우리 좀 기분 좋게 헤어지는 건 어떻습니까? 나를 욕하려는 사람은 내가 없는 곳에서 마음껏 입을 놀리세요. 나는 내 코앞에서 내 험담하는 사람을 살려둘 만큼 마음이 넓은 사람이 아닙니다. 난 황제가 되고 싶지 않으니, 명성 따윈 필요 없습니다.”

또 한 명의 젊은 관리가 소리쳤다.

“당신이 황위를 찬탈하려는 거잖습니까. 영설 공주를 황제로 세운 뒤에, 아들을 낳자마자 영설 공주를 죽이고 황위를 찬탈하려고 말입니다.”

마혈 무사가 빛의 속도로 젊은 관리를 끌고 나와서 아예 그의 몸을 두 동강 내버렸다.

송결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두변, 당신이 지금 보이는 행실이 짐승만도 못한 영덕 위제와 무슨 차이가 있소? 당신은 정말 신세를 망치고, 천하의 독부(獨夫)가 되는 게 두렵지 않소?”

두변이 말했다.

“내가 갈 길은 유래에 없는 길입니다. 그러니 천하의 독부가 된다고 해도 별로 상관이 없지요.”

진남공 송결이 소리쳤다.

“하늘이 누군가를 망하게 하려 할 때, 먼저 그 사람을 미치게 만들지. 진서왕, 당신이 이렇게 겁도 없이 날뛰는 걸 보니, 당신의 멸망도 얼마 남지 않았나 보오.”

장선조가 큰소리로 외쳤다.

“진서왕의 서남은 우리 충신 군자들을 품지 못하니, 여기서 진서왕과 결렬합시다. 모두 나와 함께 갑시다.”

진남공 송결이 말했다.

“이들은 나와 함께 안남 왕국으로 갈 것이오. 진서왕, 천하에는 서남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명심하시오.”

송결과 장선조는 사람들을 데리고 촉왕부의 수천 명 무사의 호위를 받으며 계림부를 떠나 안남 왕국으로 향했다.

오늘부로, 천윤제에게 충성을 바치던 두 세력이 완전히 갈라지게 되었다.

사흘 뒤.

두변은 계림에서 영설 공주를 황제로 옹립하고, 연호를 진무(眞武)로 정했다.

계림부는 계경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대녕 제국의 임시 수도가 되었다.

이로써 영설 공주는 이 지구의 중화 역사상 최초의 여황제가 되었다.

즉위식은 무척 간단했다.

영덕 황제의 즉위식도 무척 간소했었지만, 영설 공주의 즉위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단출한 수준이었다.

즉위식은 계림부 순무 관아를 개조한 황궁에서 진행되었고, 외국 사자는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두변의 서남 관리들 외에 그 어떤 대신도 즉위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사천, 호남 두 성에서 대량으로 빠져나간 관리들은 북방으로 가서 영덕 위제에게 의탁하거나 안남 왕국으로 간 촉왕 세자를 필두로 한 망명 관리들에게 의탁했다.

게다가 운남, 광서, 귀주에서도 많은 관리가 빠져나갔다.

즉위식이 아무리 단출하다 해도, 외국 사자가 한 명도 없다 해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반대한다고 해도, 영설 공주는 대녕 제국의 새로운 황제가 되었다.

그녀는 서남 5성, 근 150만 제곱킬로미터, 수천만 인구의 최고 군주가 되었다.

이어서 대녕 제국은 내각을 조성하기 시작했고, 통솔부를 마련하여 서남 5성에서 군사와 정치 개혁을 이어갔고, 신법을 더욱 널리 시행하기 시작했다.

두변의 서남군은 정식으로 대녕 제국의 중앙군이 되었다.

영설이 제위에 오른 뒤, 제일 먼저 내린 성지는 이러했다.

‘진서왕 두변에게 대녕 제국의 섭정, 군정 대권을 부여한다.’

그 뒤로 진무 황제는 부홍빙을 대녕 제국의 부성후(傅城侯)로, 기세를 기성후로, 여담을 여성후(勵城侯), 이릉을 능성후(陵城侯)로, 혈관음을 대녕 제국 제1 함대 사령으로, 이문회를 계국공(桂國公)으로 책봉했다.

진무 황제는 현재 있는 환관들 외에 앞으로 대녕 제국에는 환관을 임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여경사와 동창을 해체하고, 안전부를 세웠다.

진무 황제는 이와 같은 성지를 쉬지 않고 내리면서 사람들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제국의 기관 개혁은 과감함을 넘어서 이전의 제국 기관을 전복하는 수준이었다.

물론, 대전이 코앞이다 보니, 안전부든 농림부든 새로운 부를 세웠다고 해도 이런 기관들은 아직은 빈껍데기에 불과했다.

현재 서남 5성에서 최우선으로 여기는 건 곧 다가올 전투에 대한 준비였다.

두변이 서남에서 영설 공주를 황제로 옹립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대녕 제국 전체가 산사태나 해일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들썩였다.

온 천하의 사람들의 첫 번째 반응은 경악이었고, 그다음은 미친 듯이 말과 글로 두변을 향해 욕을 퍼부었다.

두변은 더 이상 난신적자가 아니라, 대역무도하고 천하의 윤리를 뒤엎고 건곤을 파괴하는 만고 죄인으로 낙인찍혔다.

경성에 있던 영덕제는 두변의 행동에 뛸 듯이 기뻐했다. 영덕제 자신은 한동안 천고에 남을 오명으로 허덕이고 있었다.

처음엔 영덕 황제를 말로 공격하고 욕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의 철혈 통치가 펼쳐지는 순간부터 경성에는 피 마를 날이 하루도 없었다.

그의 철혈 통치 때문에 백성들은 영덕제를 쉬이 입에 올리지 못하게 되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영덕제에 대한 인상은 이미 나락으로 떨어진 후였다.

저잣거리와 길거리 곳곳에 영덕 위제가 영도현의 사생아이고, 모친을 시해한 죄가 쓰인 대자보가 붙었다.

관졸들은 아침이 되자마자 대자보를 찢기 바빴지만, 밤만 지나면 대자보가 다시 곳곳에 붙어 있곤 했다.

관아에서 야간 통행금지를 시행했지만, 영덕 위제의 실태를 고발하는 대자보들은 하루도 사라지지 않았다.

온 천하의 사람들이 자신을 공격하고 있으니, 영덕 위제는 화가 치밀어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두변이 영설을 새로운 황제로 옹립하고 나자, 온 천하의 시선과 화력의 목표는 두변과 영설 공주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영설 공주를 진무 위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송결 등이 이미 말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여인 황제가 나타나느니, 차라리 모친을 시해하고 선황의 핏줄이 아닌 영덕 위제가 자리를 지키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적어도 영덕 황제는 남자이고, 따지고 보면 그도 영씨 황족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영덕 위제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역시 하늘은 누굴 멸망시키려고 할 때 꼭 그놈을 먼저 미치게 만드는구나. 두변이 이런 멍청한 수를 두다니. 그놈이 짐 대신 온 세상의 욕을 다 처먹고 있구나.

여인이 황제를 하겠다고? 섭정왕 두변! 며칠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잘 지내보아라. 조만간 짐이 네놈을 흔적도 없이 없애줄 테니.”

“두회, 군대는 얼마나 집결했는가? 언제 전투를 시작할 수 있소?”

영덕 위제가 두회에게 물었다.

“폐하, 지금까지 50만 대군이 모였고, 총 65만 대군을 집결시킬 예정입니다. 우리 군대는 동쪽과 남쪽에서 두변의 서남 5성을 협공할 것이고, 번개보다 빠른 속도로 두변의 서남을 쑥대밭으로 만들 것입니다.”

“자네가 생각하기에 두변의 서남 5성을 파괴하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소?”

“초특급 중포(重砲)가 이미 남해에 도착했고, 곤륜노 군단도 곧 상륙할 겁니다. 동방 연합 왕국의 전력은 두변보다 백 배는 더 강합니다. 이번 전투는 맹호가 떠돌이 개를 상대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두변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찍소리도 내지 못하겠지요. 한 달 반이면 서남 전체를 점령할 수 있고, 두변을 죽일 수 있습니다.”

7월.

진남공 송결과 내각 대신 장선조, 그리고 망명한 수백 명 대신은 촉왕 세자 영충삭을 안남 왕국에서 황제로 옹립했고, 연호를 영창(永昌)으로 정했다. 그리고 안남 왕국 순화부에 임시로 망명 조정을 세웠다.

비록 망명 조정이지만, 이 조정은 수백 명 관리와 10만 대군을 가지고 있었다.

촉왕 세자 영충삭은 제위에 오르자마자 대녕 제국의 호응을 얻어냈고, 많은 문관들이 남하하여 영충삭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영덕 위제의 조정은 이미 방계 세력에게 점령당했고, 진무 위제는 여인의 몸이니, 선황에게 충성하던 관리들은 어쩔 수 없이 안남 왕국으로 망명 간 영창제에게 모일 수밖에 없었다.

남하한 문관들뿐만 아니라, 많은 백성이 영창제를 정통으로 섬겼다. 이로써 대녕 제국에 영덕제, 진무제, 영창제 세 명의 황제가 공존하게 되었다.

망명한 영창제는 세력이 가장 약하지만 제일 정통을 인정받았고, 영덕제는 방계와 동방 연합 왕국을 뒷배 삼아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진무제에겐 두변이 있었고, 세력도 막강했지만, 여인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안남 왕국 순화부.

영창제의 임시 행궁 안.

장선조가 말했다.

“동방 연합 왕국에 60만 대군이 집결했습니다. 두변과의 서남 토벌 대전이 벌써 코앞으로 다가왔군요. 그들이 대전을 치르고 타격이 클 때, 우리가 병마를 이끌고 북상해서 광서를 빼앗아오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부지리처럼 말이지요.”

옥진 군주가 말했다.

“안 됩니다. 비록 우리가 두변의 서남과 정견이 합치하지 않지만, 우리에겐 동방 연합 왕국이라는 공동의 적이 있습니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인 상황이니, 우리는 암암리에 동맹을 맺고 동방 연합 왕국을 함께 막아야 합니다.”

장선조가 말했다.

“두변은 난신적자인데, 어찌 그자와 동맹을 맺겠다는 생각을 합니까? 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진남공 송결이 말했다.

“옥진, 장 대인의 말씀이 맞다. 우린 이익이 아니라, 도의를 보아야 한다. 두변이 건곤을 역행하여 여인을 황제로 옹립했다. 이건 이미 천하의 맥을 끊어버린 것이야. 두변과 동맹을 맺자는 말은 다시 꺼내지 말도록 하여라.”

영창제가 말했다.

“두변이 여인을 황제로 모셨다는 건, 이미 야심을 숨길 생각이 없다는 것이오. 그는 이미 천하의 적이 되었으니, 더는 그와 엮여서는 안 되오. 우리는 그저 앉아서 두변의 멸망을 지켜보면 되오. 그리고 양측에서 대전을 치르는 동안, 우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발전해야 하오.”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독부 두변이 멸망하는 걸 좌시해야 합니다.”

“우리는 두변이 동방 연합 왕국과 싸워서 크게 타격을 입은 틈을 타서 어부지리를 꾀해야 합니다.”

“안남 왕국의 변경을 봉쇄해서 두변의 군대가 이곳으로는 한 발자국도 못 들어오게 해야 합니다.”

관리들이 한마디씩 하면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때, 한 무사가 행궁 안으로 뛰어들어와 큰소리로 외쳤다.

“폐하, 큰일 났습니다. 동방 연합 왕국의 함대가 전투 태세를 갖추고 안남 왕국을 향해 오고 있습니다. 그들의 깃발에는 ‘막(莫)’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행궁 안에 정적이 흘렀다.

‘동방 연합 왕국이? 소군의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

‘이번 전투는 두변의 서남을 치려는 것 아니었어? 그런데 왜 안남 왕국으로 오는 거지?’

‘두변에게 지원군을 단 한 명도 보내지 않고, 변경까지 봉쇄하려던 이유는 그의 멸망을 좌시하기 위해서였는데, 동방 연합 왕국과 두변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을 때 우리는 어부지리를 하고 싶었던 건데, 어떻게 우리를 먼저 칠 생각을 해?’

드넓은 바다 위.

언뜻 보아도 엄청난 전투력을 과시하는 함대가 안남 왕국을 향해 오고 있었고, 함대의 뒤쪽으로는 대형 화물선이 따라오고 있었다.

대형 화물선에는 동방 연합 왕국의 병사들이 빽빽하게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함대의 깃발에는 ‘막’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도대체 어느 막씨일까?

어느 막씨든 간에, 이 함대의 목표는 안남 왕국에 있는 영창제의 망명 조정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