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97화 (497/648)

497장: 영덕제의 친부 二

여완완이 놀라서 움찔하더니 눈웃음을 보이면서 말했다.

“부군, 진짜 대단하네요. 어떻게 한 번에 그걸 맞췄어요?”

모든 게 다 명료해졌다.

북명 종주 영도현은 황족이었다. 백여 년 전, 그의 증조부가 번왕 세력에게 밀려서 진왕에게 황위를 빼앗겼다.

진왕이 바로 천윤제의 증조부였다.

영도현의 조부와 부친은 해외로 도피 생활을 했고, 언제나 대녕 제국의 황위를 탈환하려 했다.

영도현 대에 이르러 그는 선대 북명 종주의 제자가 되었고, 북명검파에 들어가서는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했다. 물론 재능뿐 아니라 그를 위한 기회와 우연이 많았다.

영도현은 무척 똑똑한 데다 매사에 신중하고, 마음이 악독하며 수단이 악랄해서, 종국엔 제21대 북명 종주가 되었다.

영도현은 항상 자신이 이미 세속을 벗어났고, 대녕 제국의 제위에 대한 집념을 버렸다고 했지만, 그 모든 말이 거짓이었다.

영도현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탐욕스러운 인간이었다. 그는 이미 북명 종주이면서도 세속 최고의 권력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그럼 영도현과 지금의 태후마마 사이에 간통이 있었던 건가?”

두변의 물음에 여완완이 대답했다.

“영도현이 태후를 유혹했죠. 당시에 태후는 젊었으니까요. 영도현은 닭을 빌려 알을 낳았고, 천윤제에게 보복하기 위해서 그런 짓을 했어요.”

‘영도현은 정말 못할 짓이 없군.’

두변이 속으로 생각했다.

“선황께서는 이 일을 알고 계셨나?”

“아마 모르실걸요. 하지만 영덕제가 자신과 외적으로 닮긴 했지만,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겠죠.”

영덕제는 당연히 천윤제와 닮았을 것이다. 영도현도 결국 천윤제와 사촌 관계이니까.

두변이 눈을 감고 영도현의 외모를 회상해봤지만, 천윤제와 전혀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영도현의 무공 수준이라면, 자신의 외모를 얼마든지 바꿀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두변은 명상 세계로 들어간 뒤, 영도현과 천윤제의 얼굴 윤곽을 비교했다.

눈코입 하나하나 뜯어보면 닮지 않았지만, 두 사람의 얼굴 골격이 매우 비슷했다.

천윤제는 몰랐겠지만, 태후는 당연히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태후는 아들을 위해서라면, 이 사실을 죽을 때까지 발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의혹이 남아 있었다.

영덕제가 영도현의 친자식이라면, 영도현은 왜 여진 제국의 손을 빌려 대녕 제국을 멸망시키고, 남경의 연왕을 제위에 올리려고 했던 걸까.

왜 굳이?

심지어 그땐 영덕제가 이미 제위에 오른 뒤였다.

여완완이 말했다.

“부군, 영덕제가 영도현의 아들인데, 왜 동방 연합 왕국이 여진 제국의 손을 빌려서 대녕 제국을 멸망시키고, 남경의 연왕을 제위에 올리려고 했던 건지 이해가 안 되죠?”

여완완이 계속 두변을 부군이라고 부르는 걸 듣고만 있자니 정말 위화감이 들었다.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연왕도 영도현의 사생아라는 건가?”

여완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왕도 그렇고, 요왕도 그래요. 당시에 제위에 오를 수 있는 황자가 세 명이나 있어서, 사생아 한 명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겠죠. 지금의 태후는 영도현에게 당한 거지만, 연왕비는 아직까지도 영도현의 정인이에요.”

두변이 깜짝 놀랐다.

그냥 해본 말인데 그게 진짜일 줄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영도현의 실태는 두변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악질이었다.

‘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겠네. 영도현이 젊었을 때 얼마나 매력적이었겠어. 기음음, 기염염 두 사람도 그렇고, 여마두 막추도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으니.’

영도현은 감정적인 면에서 두변보다 더 쓰레기 같은 사내였다.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사람이었다.

동방 연합 왕국이 왜 대녕 제국의 껍데기에 이렇게 집착할까?

강남이 동방 연합 왕국의 최대 경제 중심지라는 이유가 다가 아니었다.

더 큰 이유는, 영도현이 대녕 제국을 파괴하는 게 아니라, 잃어버렸던 자신의 황위를 되찾고 싶어하기 때문이었다.

여완완이 말했다.

“부군이 너무 강해서, 여진 제국이 멸망했잖아요. 방계의 계획이 수포가 되면서 남경의 연왕이 제위에 오르는 것도 물 건너가게 됐죠. 대신에 방계가 북쪽에 있는 영덕제에게 눈길을 돌린 거죠.”

두변이 말했다.

“때마침 영덕제가 나를 뼈저리게 싫어하고, 게다가 방계 세력이 출생의 비밀로 그를 압박하고, 방계와 동방 연합 왕국의 세력으로 황제를 유혹했겠지. 그들은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맞아서 나를 지옥 18층으로 보내버리려는 작정이로군.”

“맞아요. 지금 당신이 대녕 제국에서 얼마나 명성을 떨치고 있는 줄 알아요? 거의 신이잖아요. 대염 왕국도 멸망시켰지, 여진 제국도 멸망시켰지. 벼랑 끝에 있던 대녕 제국을 혼자의 힘으로 살린 거잖아요. 그들이 원하는 건, 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에 당신을 천하의 대역죄인으로 만들고, 난신적자로 만드는 거예요. 당신 곁에 있는 사람들, 도움이 될 만한 세력을 전부 뜯어내기 위해서죠.”

영덕제는 여론을 부추기기 위해서 혼자서 궁 안에서 분개하고, 밖에서는 두변을 최고의 예우로 대했다.

열토봉왕이며, 백성들 앞에서 허리를 숙이는 것이며, 수십 리 밖까지 마중, 배웅해주는 것까지 전부 다 영덕제의 연기였다.

‘어쩐지 내게 너무 후하다고 했어. 자기 성격과 상반되게 해준 이유가 다 있었군.’

두변이 냉소를 지었다.

“이야, 내가 영덕제를 너무 얕봤군. 고집도 황소고집인 데다 계략적이기까지 하다니.”

“우리 부군도 그자의 연기에 넘어갈 정도면, 대단하긴 하죠.”

두변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영도현의 사생아가 천윤제께서 남기신 황위를 빼앗다니, 내가 그놈을 산산조각낼 수밖에.”

여완완의 아름다운 얼굴이 갑자기 슬퍼지더니, 애처로운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보았다.

“부군, 이렇게 오래 대화했는데, 우리 계속 사생아 황제 얘기만 하는 거 알아요? 나한텐 관심도 없고. 나 정말 속상해요.”

“내 손으로 당신을 죽였는데, 왜 죽지 않았는지 정도는 궁금하군.”

“당신의 지옥불이 내 손목을 태운 터라,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이 내 손목을 내 손으로 잘라내야 했어요. 그리고 만 장 깊이의 심연에 틈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틈에 들어가서 죽은척했죠. 당신들이 다 떠나간 뒤에야 불쌍하게 빠져나와서 도망쳤고요.”

“그때 왜 여씨 세력으로 돌아가지 않았지?”

“원래는 돌아가려고 했는데, 어째서인지 아버지께서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돌아가지 않았죠.”

여여해는 여담을 편애했던 터라, 여완완에 대한 감정이 좀 복잡했었다.

우선 여완완이 너무 뛰어날 경우, 여담의 지위가 위협받을 테니까.

그녀는 성화 마녀로 성화교에서는 여여해보다 지위가 더 높았다. 진정한 왕국을 세운 뒤에는 여여해도 성화교 세력을 눌러야만 했다. 그때가 되면, 여완완이 여여해의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다.

여완완이 말했다.

“물론, 제일 중요했던 이유는 나도 괴물이 되고 싶지 않아서예요. 내가 이렇게 절세미인인데, 손이 없으면 얼마나 추하겠어요? 그래서 먼 길을 달려서 성화 총교로 갔고, 거기서 내게 의수를 만들어줬죠.”

여완완이 의수를 두변에게 보여줬다.

‘이게 의수라고? 하얗고, 가녀리고, 피부가 옥석처럼 탄력적인데?’

여완완이 춤을 추는 것처럼 손짓하면서 물었다.

“어때요?”

두변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의수라고?”

“정확히 말하면 의수가 아니라, 다른 여인의 손을 내 팔에 붙인 거예요.”

두변은 더욱 경악했다.

‘서방 성화교가 이런 것까지 가능하다고?’

잘린 신체를 이어붙이는 수술은 현대 지구에서도 가능한 얘기지만, 그건 자신의 신체 일부를 이어붙이는 것 정도였다.

현대 지구의 의술로도 갑의 손을 을의 팔에 붙이는 건 어려웠다.

그런데 성화교는 그게 가능하다?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니.

두변이 물었다.

“당신은 지금 성화교를 대표하나?”

“나는 성화교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부군의 이익도 대표해요.”

두변이 언짢은 기색으로 물었다.

“계속 그렇게 나를 부군이라고 부를 건가?”

“부군, 사람이 평생 잠을 얼마나 자는 줄 알아요?”

“3분의 1.”

“맞아요. 그런데 내가 그 3분의 1시간 동안, 매일 당신의 꿈을 꿔요. 꿈속에서 우리는 정말 둘도 없는 금실 좋은 부부예요. 매일 그런 꿈을 꾸는데, 어떻게 낮에 현실을 제대로 구분할 수 있겠어요? 나는 매일 3분의 1을 당신과 함께 생활하고, 당신과 부부로 지내는데, 어떻게 구분하냐고요.”

“근데 왜 나를 죽이려고 했지?”

“내가 그렇게 독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당시엔 여씨 가문의 패업을 달성하려고 내 모든 걸 쏟아부었을 때잖아요. 그리고 내가 당신을 죽일 기회가 얼마나 많았는데, 한 번도 당신을 죽이지 않았잖아요. 나중에 당신을 극도로 미워하게 될 때가 돼서야 당신을 죽이려고 했죠. 내가 들은 얘긴데, 아무리 은애하는 부부여도 수십 번 상대를 죽이고 싶은 충동이 든대요.”

“영덕제가 선황의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지?”

“성화교 최고등급 정보예요. 부군, 이 귀여운 아내에게 입맞춤 좀 해줄 수 없어요? 내가 무슨 조건을 걸지도 않고 최고기밀을 당신에게 알려줬잖아요.”

“날 왜 찾아온 건지 말해.”

“부군, 당신에 대한 여론의 공격이 극한에 달했을 때, 황제는 당신이 난신적자라고 공표할 거예요. 그리고 역적을 죽이라는 명목으로 당신을 없애버리려고 하겠죠. 이어서 동방 연합 왕국은 천지를 뒤엎는 수준의 힘을 써서 서남을 완전히 폐허로 만들 것이고, 당신의 사람들을 몰살할 거예요. 그렇게 되면, 영덕제는 대녕 제국을 통일하고, 동방 연합 왕국에 합류할 거예요. 방진은 동방 세계를 통일한 뒤에 성화교 세계를, 마지막엔 서방 세계를 통일해서 세계 통일을 이뤄내려고 할 거예요.”

“세계 통일의 목적이 무엇 때문이지? 세계 대제가 되는 게 꿈은 아닐 텐데.”

“아니죠. 세계를 통일하는 건 전제조건일 거고, 더 높고, 끔찍한 목표가 있을 거예요. 아쉽게도 나는 그 목적이 뭔지 몰라요. 성화교의 최고 폐하라면 알고 계실지도 모르죠.”

“왜 온 건지 말해.”

여완완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부군은 정말 대단해요. 우리 대염 왕국도 멸망시키고, 여진 제국도 없애고 말이죠. 하지만 동방 연합 왕국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강해요. 그들이 가진 증기 전함과 신식 화포가 서방 세계의 신대륙 연합 함대를 전부 처치했어요. 그들이 가진 신식 화총, 곤륜노 무사, 그리고 십여 리 밖까지 발사되는 대형 화포는 정말 파멸적인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고요.

부군, 동방 연합 왕국의 군대가 이 세계를 몇십 년 이상 선도하고 있어요. 당신의 군대보다 백 년 넘게 앞서 있고요. 당신의 서남 전투력을 총동원한다고 해도, 그들 전투력의 10분의 1, 심지어 100분의 1에도 못 미칠 거예요. 이대로 서남에서 전투가 일어난다면, 정말 절망적일 거예요. 그러니까 당신에겐 맹우가 필요해요.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이 있잖아요? 성화교가 당신의 친구가 될 수 있어요. 당신이 고개만 끄덕여 준다면, 우리 성화교 세계가 최강 원정군을 보내줄게요. 30만, 50만도 가능해요.”

“조건은? 이 세상에 공짜는 없겠지.”

“조건은 아주 약소해요. 바닷가에 있는 영지를 좀 떼다 주면 돼요. 성화교에게는 항구가, 군사 기지가 필요하거든요. 부군, 이번 전투는 정말 가망이 없어요. 성화교의 지원이 있어야만 이길 희망이 생긴다고요.”

두변이 진지한 얼굴로 빤히 바라보자, 여완완이 얼굴을 붉히면서 교태를 부렸다.

“왜 그렇게 쳐다봐요. 지금 당신이 얼마나 잘생겼는지 모르죠? 그리고 당신이 내뿜는 기운이 나를 달아오르게 해요. 부군의 변화가 커도 너무 커요. 당신은 예상을 회임시킬 정도로 아주 강하다면서요?”

두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완완이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거래 얘기를 더 하면 안 된다는 뜻이죠? 거래 얘기를 더 했다간, 나에 대한 좋은 인상이 없어지니까?”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완완은 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알겠어요. 말 안 하면 되잖아요.”

두변은 의자에 앉아서 눈을 감고 이번 싸움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했다.

‘영덕제를 기필코 끌어내려서 단두대에 올려야 해. 선황의 황위를 그 잡종에게 빼앗길 순 없어.’

여완완이 두변의 뒤로 가서 태양혈을 지압해줬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부드러운 볼을 두변의 뺨에 비비면서, 산봉우리처럼 솟아난 가슴을 두변의 등에 바짝 붙이고 흔들었다.

“낭군, 이번 싸움에서 황제를 이기고, 그를 신세를 망치고 싶어요? 당신의 가엾은 부인이 도와줄 수 있는데.”

여완완이 콧소리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두변은 여완완에게 더는 호칭 교정을 할 기력이 없었다.

꿈속에서 매일 자신과 부부라는 이유로 이렇게 당당하게 현실에서도 자신을 낭군이라고 부르다니 어리석고 찌질하기는.

여완완의 혀끝이 두변의 귓불을 핥으면서 귓속말했다.

“부군에게 필요한 건 나예요. 지금 당장이라도 경성에 들어가서 당신을 위해 불바다로 뛰어들 수 있어요. 경성엔 우리쪽 사람이 있고, 이미 준비를 다 해놨거든요.”

“황제와의 싸움에서 중요한 건 태후야. 그리고 나의 부인 영설이고.”

“맞아요. 영설 언니보다는 태후가 더 중요하죠.”

만약 이때 누군가가 영덕제가 천윤제의 친자가 아니라고, 영도현의 사생아라고 소문을 퍼트린다 해도, 그 누구도 이 소문을 믿지 않을 것이다.

이 사실을 밝힐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하지만 영덕제는 태후가 제일 아끼는 아들인지라, 태후는 백번을 죽어도 이 사실을 발설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태후는 자신이 죽는 한이 있어도 이 비밀을 지키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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