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6장: 영덕제의 친부 一
두변의 두 군대가 각각 사천과 호남에 진입해서는 완전히 파죽지세로 며칠 만에 각 성의 대부분을 손에 넣었다.
아무도 두변의 군대를 막지 못했다.
이번 출병의 후폭풍은 거의 천지붕괴처럼 대녕 제국을 뒤흔들었다.
무수히 많은 여론이 해일처럼 두변을 공격했고, 그를 통째로 집어삼키려고 했다.
두변은 난신적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었고, 하루아침에 구국의 영웅에서 황위를 찬탈하려는 역적이 되었다.
경성의 황제는 사람들의 반응과 달리 무척 평온해 보였다.
그는 지의를 보내서 두변에게 물었다.
‘두변, 혹시 사천의 순무, 호남의 순무가 도리에 어긋난 짓을 한 것이오? 그렇다면 짐이 당장 두 사람을 물러나게 하겠소. 만약 무슨 오해가 있는 거라면 대화로 풀 수 있을 테니, 부디 진서왕이 우리에겐 고통스럽고, 적들에겐 통쾌한 일을 저지르지 않길 바라오.’
영덕제의 절절한 연기는 이내 모든 사람들의 동정을 얻었다.
영덕제와 달리, 영설 공주는 자신의 부군 두변이 절대로 대녕 제국을 배신할 리 없고, 역모할 리 없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그녀의 발언도 군신의 분노를 잠재울 수는 없었다.
상주서가 휘몰아치는 눈발처럼 황궁으로 쏟아졌다.
상주서의 내용은 전부 영설 공주에게 두변과 명확한 선을 그으라는 내용이었다.
영덕제가 다시 한 번 영설 공주를 불러들였다.
“영설, 두변과 갈라서거라. 네가 두변과 확실히 선을 그어야만 계요 변진의 총독을 계속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북방의 십여만 대군이 네 손에 있다는 이유로 경성의 백성들이 두려움에 떨 것이고, 군신이 불안해할 것이다.”
영설 공주가 말했다.
“황형, 저는 제 부군이 역모할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두변의 대군이 벌써 사천과 호남 태반을 가져갔다. 이런데도 그가 역모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냐?”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을 겁니다. 만약 부황께서 계셨다면, 이 지경이 되기도 전에 벌써 두 행성을 두변에게 넘겨줬을 겁니다. 황형, 아직 만회할 기회가 있으니, 어서 세상 사람에게 알리세요. 호남과 사천은 황형께서 두변에게 준 봉토라고요. 그래야만 두변에게 떨어진 난신적자라는 오명을 걷어낼 수 있습니다.”
영설 공주의 태도에 영덕제가 분노했다.
“짐은 그가 사천을 달라고 하면 사천을 주고, 호남을 달라고 하면 호남을 줘야 하는 것이냐? 나중에 그가 내 황위까지 달라고 하면? 그때도 짐이 황위를 두변에게 줘야 하는 게야? 천하에 그런 신하가 어디 있어!”
“지금 두변이 만인에게 손가락질당하고 있습니다. 전부 다 그가 난신적자라고, 대녕 제국 희대의 배신자라고 한다고요. 황형께서 일부러 두변이 반역하길 바라서 이러시는 겁니까? 만에 하나 두변이 정말로 반역이라도 저지른다면, 대녕 제국은 멸망할 것입니다. 황형께서 왜 이렇게 지혜롭게 굴지 않으시는 건지요?”
영덕제의 안색이 급변했다.
그가 냉랭한 눈빛으로 영설 공주를 바라보면서 천천히 말했다.
“영설, 두변과 갈라서서 확실히 선을 긋던가, 계요 변진의 총독 자리를 내려놓던가 하거라.”
영설 공주가 태후의 불당에 왔다.
“모후, 두변이 역모를 일으킬 거라는 말을 믿으시나요?”
태후가 고개를 저었다.
“그 아이는 반역을 일으키지 않겠지만, 그 아이의 행동이 황제에게 악영향을 주는구나.”
“부군이 경성을 떠날 때 내게 말했어요. 절대로 반역하지 않을 거라고요. 저는 그이를 믿어요.”
“도대체 사천과 호남을 꼭 가져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하더냐? 가족끼리 대화로 풀면 될 걸, 왜 무력까지 동원하는 거냔 말이다.”
“두변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거예요. 만약 두변이 반역을 일으키고자 한다면, 바로 경성에서 황제를 위협하면 그만이죠. 그런데 왜 요동과 십여만 대군을 포기하고 서남으로 돌아갔겠어요. 반역할 거라면, 힘들게 요동을 지킬 이유는 뭐가 있고요.
모후, 황형의 반응이 이상해요. 황형이 비록 도량은 좀 작지만, 똑똑한 사람이잖아요. 이 순간만큼은 절대로 두변을 몰아세워선 안 된다는 걸 알 거예요. 아무리 두변이 밉다고 해도, 대녕 제국과 황위를 위해서라면 성지를 내려서 두변을 구해줘야 해요. 그런데 황형은 일부러 사람들의 동정을 사고, 인자한 모습을 일관하면서 여론이 두변을 공격하는 걸 방관하고 있어요. 꼭 그가 반역을 일으키길 바라는 것처럼요.”
태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설아, 내가 뭘 해주면 되겠느냐?”
“모후께서 황형을 좀 설득해주세요. 황형은 당장 사천과 호남을 두변에게 하사하고, 두변에게 떨어진 난신적자라는 오명을 벗겨줘야 해요.”
태후가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내가 한 번 설득해보마.”
2시진 뒤, 태후가 돌아왔다.
태후의 낯빛은 무척 어두웠고, 두 눈은 울었던 것처럼 붉어 있었다.
눈빛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설아, 네 황형을 설득할 수 없었다. 차라리 황형의 말을 듣고, 네가 결정을 내리는 게 어떠하냐?”
영설 공주는 태후의 모습을 보고 뭔가를 눈치챈 듯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모후, 혹시 제게 숨기시는 게 있는지요?”
태후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없다. 정말로 없다.”
태후는 곧바로 목탁을 손에 쥐고 눈을 감고 목탁을 치기 시작했다.
“보살님, 우리를 보우해주십시오!”
“모후, 보살은 우리를 보우하지 못합니다.”
영설 공주가 슬픈 목소리로 말하고는 힘없는 표정으로 불당을 나와서 그대로 황궁을 떠났다.
다음 날, 영설 공주는 계요 변진 총독직을 사직했고, 경성에 있는 두변의 진서왕부로 거처를 옮겼다.
이로써 북방의 십여 만 대군의 군권이 영덕제의 손에 넘어갔다.
같은 날, 이문회가 경성에 도착하여 동창 대도독 자리에 부임했다.
두변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영덕제의 반응이 이상했다.
그날 영덕제에게 두 행성을 달라고 했을 때, 영덕제가 자신의 청을 거절한 건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두변이 정말로 출병을 결정했을 때, 황제는 대국을 위해서 기싸움을 그만두고, 두변과의 결렬을 막으려고 애를 써야 했다.
영덕제는 도량이 좁을지라도 연기는 잘했다. 황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두변이 반역을 일으키는 걸 원치 않을 것이다.
만에 하나 두변이 반역을 일으킨다면, 황위고, 강산이고, 전부 다 없어질 테니까.
즉 황제가 두변에게 화풀이를 할 순 있지만, 두변이 정말로 반역을 일으키길 바라진 않아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두변의 예상과 달리, 영덕제는 꼭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이 두변을 난신적자로 만들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처럼 보였다. 꼭 정말로 두변이 반역을 일으키길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절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현재 대녕 제국에서 두변을 욕하는 말들이 얼마나 차고 넘치는가.
각 주부에 걸려있던 두변의 초상화에 백성들의 침이 가득했다.
두변이 여진 제국을 물리치고, 경성을 구하고, 대녕 제국을 구했을 때, 두변을 신령처럼 떠받드는 백성이 많았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두변의 초상화와 동상을 집에 모셔두기도 했다.
그런데 여론의 부추김 때문에 사람들은 두변의 초상화에 불을 지르고, 동상을 깨부수고 있었다.
남경성 안.
두회와 방탁, 그리고 방계의 모든 구성원들이 축제의 분위기를 만끽했다.
“드디어 이날이 왔소.”
“송결 공작이 두변과 결렬했다고 합니다.”
“옥진 군주도 군대를 이끌고 서남을 떠났고, 진남 공작부의 사람들도 서남을 떠났습니다.”
“이문회도 서남을 떠나고, 경성에서 동창 대도독에 부임했다고 합니다.”
“영설 공주가 계변 총독직을 빼앗겼다고 합니다.”
“두변 그놈이 만인에게 손가락질받고 있고, 가까운 사람들이 그에게 등을 돌렸다고 합니다.”
“소군의 지의였던,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두변을 난신적자로 만들라는 계획은 대성공이로군. 두회의 공로가 참 크오.”
방탁의 말에 두회가 대답했다.
“이제 황제가 두변을 공식적으로 난신적자라고 선포하고, 천하에 역적 두변을 제거하고, 서남을 빼앗으라는 명령만 내리면 됩니다.”
여여해의 부인, 구 대염 제국의 왕후가 돌연 두변을 찾아왔다.
“주군, 신첩과 함께 지하 밀실에 잠깐 가실 수 있을까요? 주군께서 최근 황제와의 싸움에서 무척 수동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이 일 때문에 주군의 명예에 큰 오점이 남았죠. 지금 주군을 뵙고자 하는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주군,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겁니다. 이 사람은 주군께서 생각조차 하지 못할 인물이고, 경악하실 수도 있습니다.”
두변은 흠칫 놀랐다.
‘누구길래 이렇게 비밀스러운 거지?’
두변은 여황과 함께 여씨 고택으로 향했다.
여황은 이미 고택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을 바깥으로 물러나게 한 터라, 고요한 고택 안은 더욱 기이하기만 했다.
여황이 안채로 들어가서는 지하 밀실의 문을 열었다.
지하 밀도가 보이자, 여황이 말했다.
“주군께서 혼자 가시면 됩니다. 신첩은 이곳에서 주군을 기다리겠습니다.”
두변이 고개를 끄덕인 뒤, 밀도 안으로 들어갔다.
두변은 밀도를 따라 지하 수십 미터를 걸어갔고, 밀도의 끝에 도착하자 또다른 문이 두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변이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굉장히 익숙한 매혹적인 향기가 두변의 코끝을 스쳤다.
향기의 끝에는 요염한 자태의 여인이 서 있었다.
마법처럼 사람을 홀리는 절세의 요물, 완벽한 곡선을 보이는 몸매.
두변은 그 뒷모습을 보자마자 모골이 송연해지고, 자신의 두 눈을 거의 믿을 수 없었다.
‘저 여인은 이미 죽었었잖아?
내가 직접 죽였는데, 어떻게 살아서 내 눈앞에 서 있는 거지?’
“부군, 내가 죽지 않은 걸 보니까 많이 놀랐죠? 당신은 정말 독한 사람이에요. 그때 정말 죽을 뻔했다고요. 에이, 그런 표정으로 날 보지 말아요. 난 만 리 길을 달려서 당신을 보러 온 거니까. 대염 왕국이 멸망했으니까, 우리가 더는 적이 아니잖아요.
아, 듣기로는 지금 부군의 상황이 아주 곤란하다고 하던데, 사람들이 당신을 난신적자라고 말한다면서요? 황제도 당신을 천하의 역적으로 만들려고 애를 쓰고 있고요. 당신의 의부, 옥진 군주, 송결 공작도 당신의 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얼마나 속상했는지 알아요?
내가 부군을 구해줄게요. 당신에게 등을 보인 사람들이 후회해서 죽을 정도로요.
세상에서 제일 큰 비밀 하나 알려줄까요? 영덕제에 관한 비밀이에요. 그는 천윤제의 친아들이 아니에요. 영덕제의 친부가 누구일 것 같아요? 한 번 맞춰봐요.”
두변은 정말 놀라고 말았다.
‘영덕제가 천윤제의 친자가 아니라고?
왜 나는 그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그러기엔 영덕제가 천윤제와 얼굴이 닮았는데?
하지만 영덕제가 천윤제의 친자가 아니라면, 최근 그의 태도가 설명이 되긴 하지.’
영덕제가 군주로서의 이익을 생각했다면, 두변이 요동과 북방의 십여만 대군으로 사천과 호남을 맞바꾼다고 했을 때, 영덕제는 이 제안에 동의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두변의 제안을 거절했다.
두변이 천하로부터 손가락질당할 걸 알면서도 사천과 호남에 출병했을 때, 영덕제는 자신의 제위와 강산을 위해서라도 스스로 관계를 완화해야 하고 서로 한 걸음 물러서야 했다.
그런데 영덕제는 화해의 손길은 무슨, 불난 집에 신나게 기름을 부었다.
그런 영덕제의 태도 때문에 두변을 향한 여론의 뭇매는 날로 심해졌고, 영덕제는 마치 두변이 반역을 일으키길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두변으로서는 이런 영덕제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영덕제가 자기 고집이 세고, 도량이 작은 건 맞지만, 멍청한 사람은 아니어서 자신의 이익에 득 될 것 없는 결정을 할 리가 없지 않나.
하지만 만약 영덕제가 천윤제의 친자가 아니라면, 그의 제위는 큰 위협을 받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그 비밀을 무기 삼아 영덕제를 겁박한다면, 그는 제위를 지키기 위해서 뭐라도 해낼 인물이었다.
아니, 어쩌면 겁박이 아니라, 공모일 수도 있었다.
영덕제가 엄청난 이익을 대가로 두변을 없애려는 것이다.
“영덕제의 친부가 누군지 알고 싶어요? 내가 알려줄까요? 대신, 나랑 자야 해요. 그럼 알려줄게요.”
여완완이 여우 같은 눈빛으로 교태를 부리면서 말했다.
이때, 두변의 머릿속에서 한 생각이 번쩍 떠올랐다.
“설마, 영도현이 영덕제의 친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