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82화 (482/648)

482장: 안타깝군!

화르륵.

두변이 손바닥에서 지옥불을 피워내자, 창백한 지옥불이 화르륵 불타올랐다.

꿈속 시스템이 말했다.

“꼭 정확히 이 지점에 불을 붙여야 한다. 조금이라도 빗나가선 안 돼.”

두변이 신중하게 손을 든 뒤, 아주 정확한 지점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만약 두변이 좌표대로 아주 정확한 위치에 손을 댔다면, 손을 거둬도 지옥불은 계속 타오를 것이고, 불길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화르르륵!

1촌 가까웠던 불꽃이 순식간에 1척이 되었다.

다행히 두변이 정확한 곳에 불을 붙이면서, 북명검파의 11번째 운석에 지옥불이 점화되었다.

두변은 내력 현기를 거두고, 손바닥에 있던 지옥불을 껐다.

에너지 장벽을 통과한 1척 길이의 지옥불은 계속해서 불탔고, 운석에 가득한 에너지 덕분에 불길이 꺼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이때, 북명검파의 해저 운석이 격렬하게 흔들리면서, 수면 위로 거대한 해일이 일어났다.

쿠구구구궁.

동시에 사방 백 리 정도의 해역에 격렬한 지진이 일어났다.

11번째 운석에 불이 붙으면서, 오성 에너지 진의 균형이 즉시 무너진 것이다.

북명검파에 있던 사람들은 북명검파 영역 내의 현기 농도가 급격히 떨어졌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현기 농도가 떨어지는 건 차치하고, 북명검파의 방어 대진이 무력화되었다는 점이 중요할 것이다.

지금부터 북명검파는 나체로 전장에 나와 있는 것이나 다름없고, 언제라도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성공이구나!

두변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지혜의 성공, 지략의 성공이라 할 만했다.

게다가 이 계획은 꿈속 시스템이 아니라 두변이 짠 계획이었다.

두변은 소설 <삼체(三體)>의 면벽인(面壁人) 프로젝트를 떠올렸다.

지구는 삼체보다 훨씬 더 약하고 작은 곳이지만, 절체절명의 시기에 삼체와 함께 파멸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서 스스로를 보호했다.

(※삼체(三體) : 류츠신 작가의 SF 소설. 삼체라는 외계 문명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인류는 삼체 문명과의 전쟁에 대비하기 시작한다. 인류가 택한 프로젝트는 면벽 프로젝트. 삼체 문명은 결국 공존을 위해 인류에게 지식을 전수한다.)

꿈속 시스템이 말했다.

“숙주, 너는 정말 엄청난 일을 해낸 것이다. 혼자 힘으로 북명검파의 전략적 에너지 우산을 무력화시키다니. 이제 그들이 두손 두발 다 들고 네게 투항할 일만 남았군.”

“이제 떠날 때가 됐네요. 세계의 갈라진 균열에서 바로 제남부로 갈 수 있나요?”

“당연히 안 되지. 운석의 부서진 조각이 있는 곳에 좌표를 정하고, 지옥불로 그곳에 구멍을 뚫어서 밖으로 나갈 수는 있다.”

두변은 산동 연안 부근의 한 지점을 정한 뒤, 지옥불로 구멍을 내서 바깥세상의 바다로 돌아왔다.

“만약에 지난번에도 시스템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면 생뚱맞게 유경 왕국 해역에 나타나진 않았을 텐데요. 그때 대녕 제국으로 돌아가는 데 반년이나 걸렸다고요.”

두변이 투덜댔다.

너무도 복잡한 좌표 계산이라서, 꿈속 시스템 없이는 두변 혼자서 계산하는 건 불가능했다.

두변은 이제 제남부로 가서 북명검파 기천구를 만나야 했다.

가서 북명검파에게 본때를 보여줘야 했다.

제남부 표돌천.

약속한 마지막 사흘째의 해가 이미 서서히 지기 시작했다.

두변이 해가 다 떨어지기 전까지 도착하지 못한다면, 북명검파 대장로 기천구는 집행자들에게 처형을 명령할 것이다.

영설 공주가 한 말이 맞긴 하지만, 틀린 말이기도 했다.

인질이 산 채로 있어야 미끼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맞지만, 만약 두변이 이 인질들이 죽게 되었음을 알아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건, 인질이 미끼 역할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이니 죽여버리면 그만이었다.

기천구는 두변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북명검파의 위엄을 위해서라도 예상, 이도진, 계청주를 죽일 것이다.

“두변은 오지 않을 작정이로군.”

“원래부터 그가 오지 않길 바랐어요.”

기천구의 말에 예상 선자가 말했다.

“네 배 속에 그자의 아이가 있는데도?”

“어차피 와도 죽을 테니, 오지 않는 게 낫죠.”

“역시 죽기를 무서워하는 간사하고 이기적인 놈이군. 이미 정해진 결말이었어. 만약 두변이 온다면 당연히 죽임을 당했겠지만, 네 배 속의 아이는 살아남았을 것이다. 두변이 오지 않는다는 건, 자기 목숨을 배 속의 아이와 맞바꾸지 않겠다는 뜻이다. 참으로 무정하고 이기적인 놈이야.”

“당신들은 너무 비열하고 비겁해서 남에게 이기적이고 무정하다고 욕할 자격이 없어요.”

“우리는 원래 비겁한 사람들이니까 이러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하지만 두변은 공명정대하고 희생할 줄을 알아야 해. 자기 아들을 위해서라면 불바다도 뛰어들고, 목숨을 내놓아야지.”

예상은 창피한 줄도 모르는 기천구의 말에 말문이 턱 막혔다.

“흐음, 내가 보기엔, 종주께서 두변을 잘못 보셨어. 그놈도 결국엔 죽기를 무서워하는 무능한 놈이야. 그런데 그놈은 생각이라는 걸 안 하나? 이번에 도망쳐봤자, 또 다음이 있을 텐데 말이지. 우리 북명검파는 그놈이 죽을 때까지 추살할 테니, 결국엔 죽게 돼 있어. 우리 위대한 북명검파 앞에서 그놈은 개미 한 마리에 불과해. 당랑거철의 꼴로 얼마나 살 수 있을 것 같아?”

이어서 기천구가 보검을 꺼내 들고 바위에다 칼날을 갈기 시작했다.

샤악, 샤악, 샤악.

사실, 기천구의 검은 워낙 날카롭기도 하고, 그의 무공 수준을 고려했을 때는 칼을 갈 필요가 없었다.

그저 칼 가는 소리가 사람들에게 엄청난 압박감을 줄 뿐이었다.

네 명의 은포 집행자들은 주위에 가부좌를 틀고 조용히 앉아있었다.

“반 시진이 남았군. 두변이 끝내 오지 않는다면, 너희를 죽일 수밖에 없겠구나. 참으로 안타깝군.”

이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타깝군. 안타까워.”

누군가가 석양을 등지고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해가 완전히 지기까지 반 시진이 남았을 때, 두변이 나타났다.

그 순간, 예상은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두변이 정말로 온 건가? 여길 오면 죽을 텐데,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진짜로 온 거야?’

이도진과 예상의 마음이 사르르 녹아 내렸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들의 눈빛에는 두변을 향한 무한한 애정이 드러났다.

“안타깝군. 안타까워. 당당한 패주가 이리도 천진난만하고 아둔하다니. 두 여인을 위해서,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아이를 위해서 죽음을 자초하다니.”

북명검파 대장로 기천구가 두변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기천구는 시간만 있다면 온 세상의 도리를 논할 기세였다.

두변이 오지 않자 죽기를 두려워하는 겁쟁이라고 했다가, 다시 두변이 나타나니 아둔해서 죽음을 자초한다고 하고.

두변이 말했다.

“기천구, 내가 왔으니 약속대로 예상, 이도진, 계청주를 데려가겠습니다. 아, 조건이 하나 더 있는데 내가 당신 뺨 좀 때리게 해주시죠. 그럼 내가 이번 일은 없던 일로 하고, 당신들을 잠시 용서해주겠습니다.”

기천구는 기가 찼다.

‘네놈이 미친 게지? 여기가 네놈이 죽을 곳이고, 죽기 전에 끔찍한 고문을 당할 텐데, 개미 새끼가 당당하게 인질들을 데려가겠다고 한 것도 모자라서 내 따귀를 치겠다고?’

“허, 미친놈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군. 두변, 문어 괴수는 여기까지 못 왔겠지?”

기천구는 두변과 터무니없는 입씨름할 생각이 없었다.

“당연하죠. 그 아이는 자기 영역에서 멀리 떨어지면 몸이 너무 약해지거든요. 저 혼자 왔습니다.”

기천구가 검날을 갈아둔 검을 뽑으면서 말했다.

“괜히 시간 낭비하지 말지. 난 너를 죽이고 나서 얼른 북명검파로 돌아가서 저녁을 먹어야겠거든.”

기천구가 명령했다.

“죽여라.”

네 명의 은포 집행자가 검을 뽑아 들고 순식간에 두변을 포위했다.

“기천구, 내가 이미 말했을 텐데요. 당장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세요. 내가 당신 뺨을 때리면, 이번 일은 일단 넘어가 준다니까? 안 그러면 당신네 잘난 북명검파는 끝장이에요. 내가 당신들의 오성 방어진을 파괴했거든요. 지금 북명검파는 천계십자회와 성화교에게 잡아먹히기 딱 좋은 무방비상태인 거죠.”

기천구가 화들짝 놀랐다.

같은 시각. 북명검파 안.

북명 종주 영도현은 끔찍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북명검파의 전략 방어진인 오성 진이 완전히 무력화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이는 북명검파에게 재난과도 같은 일이었다.

북명 종주 영도현은 이 소식을 듣자마자 1급 전투 준비 명령을 내릴까 생각했다.

오성 진의 방어가 일단 효력을 잃게 되면, 적에게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북명검파를 공격해올 적은 성화교일 수도, 서방 세계의 천계십자회일 수도, 두 세력의 연합일 수도 있었다.

까악, 까악, 까악!

소식을 전하는 까마귀와 정찰하는 매가 사방팔방으로 날아갔다.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일순간 하늘이 온통 새까맸다.

새들은 북명검파 주위의 모든 해역을 향해 날아갈 것이고, 주위에 특별한 움직임이 있는지 확인할 것이다.

곧이어 배 한 척, 또 한 척이 줄줄이 섬을 떠났다.

샤악, 샤악, 샤악.

수백, 수천 명의 고수가 검을 쥐고 파도를 밟으며 바다 위를 달렸다.

북명검파 전체가 생사를 건 대전을 앞둔 것처럼 비장하고 분주했다.

뎅, 뎅, 뎅!

북명검파의 모든 섬에서 다급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종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장로가 됐든, 제자가 됐든, 모두 하던 걸 멈추고 재빨리 섬의 광장으로 집결해야 했다.

십여 명 대장로, 수백 명 장로가 각자의 동부(洞府)에서 밖으로 뛰어나왔다.

아우우우!

북명검파에서 기르던 이수들이 각자의 동굴에서 밖으로 튀어나왔다.

각 섬에 있던 무도인들이 각자의 건물, 동굴, 산림에서 나와 광장에 모였다.

각 섬에 모인 무도인의 수는 족히 수천수만 명이 넘었다.

이게 바로 북명검파의 최고의 방어 기제였다.

북명검파는 절체절명의 시기일 때만 이 방어 기제를 작동시켰다.

오성 방어진이 무력화되었으니, 북명검파에게는 지금이 절체절명의 시기였다.

한 시진 뒤.

영도현이 모든 정찰 보고를 받았다.

“북쪽에는 적의 침입 흔적이 없습니다.”

“서쪽에도 적의 침입 흔적이 없습니다.”

“동쪽에도 없습니다.”

“남쪽도요.”

“사방 몇백 리 이내에 성화교나 서방 천계십자회의 세력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북명 종주 영도현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직까지 막강한 적의 침입 흔적이 없으니, 일단 최악의 국면은 아니었다.

이어서 북명검파의 술사 대장로가 영도현에게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종주, 11번째 운석에 무슨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지금 운석에서 기운이 끊임없이 넘치고 있는데, 무슨 문제인지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영도현이 물었다.

“보수할 방법이 없는 것이오?”

술사 대장로가 고개를 저었다.

“문제가 어디서 발생한지조차 모르니, 그럴 수가 없습니다. 해저에 있는 운석을 곳곳마다 확인했는데, 어디서 기운이 방출되고 있는지를 모릅니다. 균형이 깨진 탓에 오성 진이 무력화되었습니다.”

영도현이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이 말했다.

“두변이 제남부에 있는 기천구를 만나러 간다고 했었나?”

“맞습니다.”

제남부 표돌천.

두변의 말을 들은 북명검파의 기천구는 경악하면서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서고 말았다.

북명검파의 오성 방어진은 최고 기밀인지라, 대장로회 이외의 누구도 그것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리고 오성 방어진은 북명검파의 급소와도 같아서, 방어진이 무력화되는 순간 엄청난 재난이 벌어지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외부인인 두변이 오성 방어진을 어떻게 알지? 뭔가 크게 잘못됐어!’

기천구가 두변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런 식으로 이번 고비를 넘기려는 것이냐? 네가 어디서 오성 방어진에 대해서 주워들은 건진 모르지만, 이 세상 그 누구도 오성 방어진을 파괴할 수 없다. 그런데 네깟놈이 그걸 파괴했다고? 참나. 네 무도 수위가 어느 정도인데?”

성화교, 천계십자회처럼 막강한 적수도 온갖 방법을 썼음에도 방어진을 무력화시킬 수 없거늘.

그런데 무도 수위가 한참 낮은 두변이 방어진을 파괴했다니, 기천구가 못 믿을 만했다.

기천구는 그저 두변이 터무니없는 말을 하면서 시간을 끄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변이 말했다.

“영양가 없는 논쟁은 하기 싫으니, 잠자코 기다려보시죠. 그쪽 종주가 똑똑한 사람이라면, 이쪽으로 곧 사람을 보내올 테니까요.”

“내가 너를 죽이는 것까지 지체해야 하나? 내 원래 계획대로라면, 너를 죽이고 예상 배 속에 있는 아이를 살려두려고 했지. 하지만 지금 보아하니, 내가 그런 선심을 쓸 필요가 없겠군. 네가 나를 화나게 했으니까.”

두변이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기천구 대장로, 만약 내가 죽는다면, 성화교는 북명검파의 오성 방어진이 무력화되었다는 걸 열흘도 안 돼서 알게 될 겁니다. 서방 천계십자회도 한 달이면 그 소식을 듣겠네요. 그때가 되면, 북명검파는 정말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겁니다.”

두변이 아예 바닥에 털썩 앉은 뒤 가부좌를 틀면서 말했다.

“괜히 서로 피곤하게 하지 말고, 좀 기다려봅시다.”

곧이어 두변은 눈까지 감았다.

기천구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어디 한 번 기다려보지. 딱 두 시진을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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