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66화 (466/648)

466장: 맹세

밤이 되고, 두변, 영설 공주, 부홍빙, 이릉 네 사람이 모여서 군무회의를 진행했다.

벽에는 산해관 지도가 커다랗게 붙어있었다.

산해관은 다른 지구에서 천하 제일관이라고 불렸는데, 이곳에서도 산해관은 대녕 제국의 제일관으로 불렸다.

성벽은 15미터 높이에 10미터 두께였고, 성의 둘레는 10리가 넘었으며, 옹성(甕城: 군사적으로 중요한 성문 밖을 반원형이나 ㄷ형으로 둘러 쌓은 성곽)과 남북 익성(翼城: 날개처럼 좌우 양쪽에 쌓아서 가운데에 있는 성의 부족한 기능을 돕는 성)까지 있었다.

서쪽에서 시작된 산맥은 동쪽으로 쭉 뻗어서 바다까지 이어졌고, 산해관은 진정한 이공난수(易攻難守)한 천하 제일관이라 할 만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산해관의 범위가 너무 길고 넓어서, 산천에서 바다까지 이어진 20리 넘는 성벽이 오히려 공격당하기 쉬운 구간이 되었다.

두변의 수중에는 화포 30대, 대군 4만뿐이었다.

완안영도가 산해관을 공격할 군대는 30만이 넘고, 화포는 200대였다. 쌍방의 병력 차이가 약 열 배인 것이다.

부홍빙이 말했다.

“주군, 여진 병사들의 전투력이 무척 막강합니다. 그들의 장비가 우리 절세 지하성의 무사들만 못하지만, 전투력과 전투 투기만 보았을 땐 비등비등합니다. 게다가 그들에게는 화포 200대가 있어서 우리 병력만으로는 산해관을 지켜내기 힘듭니다.”

부홍빙은 직설적인 사람이었다.

이릉이 말했다.

“제가 군대를 이끌고 공주 전하를 지원하러 북상했고, 여진 무사들과 몇 번 격전을 치른 결과, 그들의 전투력이 강한 건 사실입니다. 여진이 무적이라는 말은 과장된 말이지만, 그들의 전투력은 대염 왕국의 군대보다 훨씬 강합니다. 제가 이끄는 제3군단 무사들이 완전무장했지만, 병사 한 명으로만 보았을 때는 여진 제국의 철갑 기마병보다는 전투력이 조금 부족합니다.”

부홍빙이 말했다.

“병사 한 명의 전투력으로만 보았을 때, 여진 무사와 동방 연합 왕국의 무사는 동급입니다. 우리 절세 지하성의 무사보다는 조금 약하고요.

여진 부족이 생활하던 곳은 이계의 기운이 활발하고, 무사들이 장기적으로 육식을 해왔던 터라 그들의 체질과 전투력은 관내에 있는 병사들보다 강합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부홍빙의 말에 동의했다.

두변의 4만 대군으로 여진 제국의 3, 40만 대군과 화포 200대를 상대하면서 산해관을 지키는 건 사실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이어서 부홍빙은 좀더 명확하게 말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여진 제국의 대군이 아직 모이기 전에 산해관을 포기하고 우리 직속 군대를 지키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산해관을 포기한다는 건, 경성을 포기하는 것이고, 대녕 제국 북방 전체를 포기한다는 뜻이었다.

영설 공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두변이 산해관을 포기하면 대녕 제국은 망국하는 것이요, 북방이 함락되면 방계 세력인 연왕이 남경에서 제위에 오를 것이다.

하지만 영설 공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먼저 나서서 산해관을 포기하면 안 된다는 말을 할 수 없었고, 대녕 제국을 포기하면 안 된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부홍빙이 대녕 제국의 멸망보다는 두변이 서남에서 일궈낸 근간을 더욱 중요시하는 건 당연했다.

그럼, 두변은 산해관을 포기할 수 있을까?

아니, 그는 절대로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자신이 포기한다면 여진 제국이 경성을 점령할 것이고 그곳에서 황제로 즉위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여진은 정말로 북방 전체를 짓밟을 것이고, 이 지구에서 명나라 말기의 비극이 재연될 것이다.

나라를 떠나서, 종족을 떠나서, 무수히 많은 무구한 백성들이 죽임을 당할 것이며, 가족과 집을 잃을 것이다.

산해관을 포기하면, 두변은 이 지구에서 역사의 죄인이 되는 것이다.

두변이 지도를 바라보면서 천천히 말했다.

“아니, 우리는 산해관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산해관을 지킬 것이고, 여진 제국의 병사들을 단 한 명도 관내에 들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정면으로 부딪치고 다시 올라가서 요동을 수복하고, 여진 제국을 멸망시킵니다.”

부홍빙이 흠칫 놀랐다가 허리를 숙이며 예를 갖추었다.

“주군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지금 바로 전투를 준비하겠습니다.”

이릉도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주군.”

두변은 서남에서도 이랬다.

처음에는 다 같이 모여서 자유롭게 의견을 내지만, 두변이 결심을 내리면 모두가 군말 없이 그의 말을 따랐다.

이릉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주군, 서남에서 병사들을 데려올까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고, 서남이 더 중요하니까 적에게 빈틈을 줘선 안 되죠.

심양 대전은 사실 우스꽝스러운 연극에 불과했고, 산해관 전투야말로 바로 대녕 제국의 사활을 건 국운 대전입니다.”

요동 대전에서 심양 결전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추한 연극에 불과했다. 산해관 대전이야말로 국운을 건 화려한 대전이 될 것이다.

정오, 쉬는 시간.

두변과 영설 공주는 또 침상 위에서 한데 얽혀 있었다.

두변이 사랑을 나누는 것에 재미 들린 건 아니었다. 오히려 영설 공주가 쉬는 시간만 생기면 두변과 함께 있으려고 했다.

사실, 젊은 부부가 원래 이런 모습 아닌가.

게다가 영설 공주는 이미 스물다섯인데, 완전히 성숙해진 몸으로 이제야 이 재미를 보았으니 해도 해도 질리지 않는 건 당연했다.

가장 중요한 건, 두변의 양기가 너무도 넘쳐서 영설 공주는 그의 옆에 서기만 해도 호흡이 떨려왔다.

사랑을 나눈 뒤, 영설은 또 고양이처럼 두변의 가슴에 기대서 그의 가슴을 핥고 있었다.

이때, 밖에서 환관 운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제가 명하노라. 두변 후작, 영설 공주는 즉시 경성으로 들어오도록. 이상.”

두변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 놀라고 말았다.

운봉 환관이 이어서 말했다.

“공주 전하, 두변 후작. 폐하께서 깨어나셨습니다.”

두변과 영설 공주가 침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운봉의 목소리에는 기쁨이 전혀 묻어나지 않았다. 이는 분명 황제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깨어난 것일 테고, 두변을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서 그를 경성으로 부른 것이리라.

두변과 영설이 서둘러 목욕을 마친 뒤, 옷을 갈아입었다.

반 시진 뒤.

두변과 영설 공주는 수십 명 기마병을 이끌고 산해관을 떠나 경성으로 질주했다.

‘폐하, 꼭 버티셔야 합니다.’

북명 종주 영도현은 혼자 있는 걸 좋아했다. 지금 그는 여느 때와 같이 높은 산꼭대기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북쪽을 내다보고 있었다.

마치 천 리 너머, 겹겹이 쌓인 운무(雲霧) 너머로 무언가를 보려고 하는 듯하기도 했다.

영종오는 북쪽을 한참 동안 내다보다가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이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의 손끝에 닿는 건 차가운 공기뿐이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그의 뒤로 나타났다.

“종주, 두변이 죽지 않았습니다.”

영도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아직, 죽지 않았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주마대에 올라갔는데도 죽지 않았다니. 왜 죽지 않은 거지?’

“확실한가?”

영도현이 묻자, 검은 옷의 사내가 대답했다.

“확실합니다. 그저께 요동 전장에 나타나서 구풍과 눈사태를 일으켰습니다. 여진 제국의 1만 병사가 눈사태에 깔려 죽었고, 10만 병사가 겁먹어서 도망쳤습니다.”

영도현이 침묵했다.

‘두변이 정말로 사명의 주인이란 건가. 어떻게 해도 죽지 않는 건가?’

영도현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두변이 주마대에 결함이 있다는 걸 안 것이다. 그놈은 일부러 북명검파에 온 것이었다. 내가 자신을 죽일 걸 알면서도 북명검파에 왔다는 건, 빠져나갈 구멍을 미리 만들어놨다는 얘기다.”

검은 옷의 사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도현은 이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왜 북명검파에 왔을까?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우리가 그를 제21대 종주로 만들 리 없다는 걸 자신도 알 텐데?”

검은 옷의 사내는 영도현이 자문자답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알겠다. 알겠어. 황금대제 태무친의 잔혼을 위해서 온 것이로군. 두변은 그의 정신적 계승을 받기 위해서 일부러 주마대에 올랐어. 300년 전 황금대제 태무친이 바로 그 주마대에서 숨을 거뒀으니까.”

영도현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두변, 네가 감히 날 도발해? 네놈이 나와 북명검파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농락하고, 나를 이기기까지 했어?’

“대단하군. 참으로 대단해.”

모든 게 다 설명되었다.

“두변이 요동 전장에서 구풍과 눈사태를 일으켜서 1만 병사를 죽였다고? 진정한 신기로군. 황금대제 태무친의 ‘멸룡결’, 항룡십팔장이라고도 불리는 전장의 신기를 부리다니.”

영도현은 어렵지 않게 두변이 살아남은 이유를 추측해냈다.

“그를 더 살려둬선 안 되겠다. 사람을 보내서 그놈을 죽여라.”

“알겠습니다.”

영도현의 명령에 검은 옷의 사내가 대답했다.

영도현이 두변을 죽이지 않고 어느 정도 방임했던 이유는, 자기 자신의 신성한 지위와 북명검파의 규율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두변이 천형을 당하고도 죽지 않았으니, 북명검파로서는 그를 죽일 수 없었다.

장로회에서 그를 죽이기 위해 대종사를 보냈지만, 예상 선자가 두변을 구해준 걸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하지만 두변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무섭게 성장하고 있었다. 특히 두변이 세계의 갈라진 균열에서 살아 돌아온 뒤부터 모든 게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이 모든 게 북명 선조의 예언과 일치했지만, 영도현은 이대로 두변을 놔줄 생각이 없었다.

사실상 지난번에 북명검파가 두변을 주마대에 올렸을 때, 영도현은 이미 제 가면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북명검파의 규율 따위 지키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북명 종주로서의 명성이 실추되겠지만, 그에게는 달리 선택권이 없었다.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반 시진 뒤.

쾌속선 한 척이 대종사 네 명을 싣고 산해관을 향해, 두변을 향해 북상했다.

경성에서 산해관까지 약 8백 리 거리였다.

두변은 야생마를 타고, 영설 공주는 거대한 늑대를 타고 쉬지 않고 경성을 향해 달렸다.

네 시진 뒤면 두 사람이 경성에 도착할 것이다.

폐하, 꼭 버티셔야 합니다. 꼭이요!

두변이 속으로 외쳤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두 사람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곧장 성문을 통과했고, 두변을 맞이하러 나온 병사들은 화들짝 놀라서는 서둘러 두 사람의 뒤를 따라 성안으로 들어갔다.

경성은 혼란 그 자체였다.

거리엔 온통 경황없고 불안해 보이는 사람들뿐이었다. 요동 전투에서 대녕 제국이 패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경성에는 피난을 떠나려는 사람들로 혼잡했다.

아직 경성에 남은 사람들은 이곳 외엔 오갈 곳이 없거나, 먼 길을 떠나기 위한 식량이 부족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집에만 있는 것도 불안해서 매일 사람들 틈에 껴서 저잣거리를 방황했고, 새로운 소식을 주워들으려고 사방팔방을 돌아다녔다.

요동 전투 이후로 경성에 온갖 소문이 퍼졌다.

산해관이 이미 함락되었고, 여진 제국 대군이 경성을 향해 진격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고, 여진 제국의 황제가 경성에 있는 백성 절반을 죽이고, 나머지 절반을 여진 제국의 노예로 삼겠다는 소문도 떠돌았다.

어쨌든 소문은 날이 갈수록 흉흉해졌다.

두변을 마중 나온 장군이 큰소리로 외쳤다.

“거리에서 배회하는 사람들은 즉시 길가로 물러나시오. 두변 후작께서 급한 군무로 폐하를 뵈어야 하니, 어서 길을 비키시오.”

장군은 수하들과 함께 미리 앞장서서 길을 텄고, 두변을 위해서 곧장 황궁으로 가는 길을 만들어주었다.

경성의 병사들은 모두 신병이었고 그들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여서, 장군의 명령에도 느릿느릿 움직일 뿐이었다.

경성의 백성 중 한 명이 큰소리로 물었다.

“두변 후작, 우리도 도망쳐야 합니까? 우리도 피난 가야 합니까?”

“두변 후작, 산해관이 함락되었습니까?”

“두변 후작, 경성도 이제 끝인 겁니까? 대녕 제국의 망국이 도래한 겁니까?”

사람들은 길을 터주긴커녕, 두변이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할 정도로 그를 에워쌌다.

사람들은 불안한 어린아이 같은 눈빛으로, 저마다 다른 희망을 품고 두변을 바라보았다.

두변 후작이 자신들의 목숨을 두 번이나 구했었으니, 혹시나 이번에도 구할 수 있을지 궁금했고, 두변이 정말로 대녕 제국의 구원자인지 궁금했다.

두변이 멈춰 서서 자신을 빽빽하게 에워싼 백성들을 둘러보았다.

두변은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제가 두변입니다.”

시끄럽게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산해관은 함락되지 않았고, 제 군대가 산해관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도 물러나지 않았다.

두변은 불안함에 벌벌 떠는 사람들을 쳐다보다가 목청을 높였다.

“산해관은 함락되지 않을 것이고, 경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있으니, 대녕 제국은 멸망하지 않을 겁니다.

저 두변이 살아있는 한, 경성은 절대로 함락되지 않을 것이고, 대녕 제국 또한 멸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건 저 두변의 맹세이고, 여러분이 제 맹세의 증인입니다.

저 두변이 살아있는 한, 경성은 절대로 함락되지 않을 것이고, 대녕 제국 또한 멸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정한 구원자는 이런 큰소리를 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두변은 불안에 떠는 사람들을 차마 외면할 수가 없었다.

두변의 말을 들은 사람들의 눈빛에 희망의 빛이 번득이기 시작했다.

“두변 후작 만세!”

“대녕 제국은 멸망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외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파도타기 하듯 두변을 향해 환호했다.

무수히 많은 백성이 바다가 갈리듯 양쪽으로 갈라졌고, 두변을 위해서 길을 터주었다.

두변과 영설 공주는 환호하는 백성들을 뒤로하고 빠르게 황궁을 향해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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