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5장: 이원의 패배
두변은 이제야 멸룡결의 작용 원리를 좀 이해했다.
자신의 내력과 현기의 특수 반응을 이용해서 주위의 천지 에너지를 교란시키고, 방해하고, 공진을 일으키는 것이다.
천지의 에너지란 꽤 많은데 예를 들면 공기, 온도, 천지 현기, 중력 등을 포함한다.
이번에 두변이 멸룡결을 시전했을 때, 엄청난 구풍(토네이도)을 만들어냈다.
구풍은 대개 극심한 공기의 온도차가 있어야만 발생해서 일반적으로는 여름에 많이 발생한다. 하지만 지금 요동은 추위가 한창인 겨울이니, 구풍이 발생하지 않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이 지구는 이계의 에너지가 침투한 곳이라서 천지에는 특수한 천지 현기가 존재했다.
두변의 멸룡결은 주위 몇 리 이내의 모든 천지 현기를 끌어모으는데, 천지 현기가 응축되는 과정에서 공기 온도가 수십 도로 상승되게 된다.
수십 도로 상승한 공기가 아래에 깔려 있는 차가운 공기와 엄청난 온도 차를 만들어내면서 한겨울의 요동에 거대한 구풍이 일어난 것이다.
요오오오오!
구풍이 용 울음소리를 내며 전장을 휩쓸고 지나갔다.
구풍이 지나가는 곳마다 병사들과 군마가 구풍에 휘감겨서 하늘로 치솟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도 다행히 사지가 붙어있겠지만, 대부분 사람은 구풍에 휘말리는 순간 뼈마디가 마디마디 부서지고 사지가 찢겼다.
그리고 더욱 끔찍한 것은 이 구풍이 정말로 정말 거대한 용처럼 전장을 휩쓴다는 점이었다. 수십 미터 굵기에 수백 미터 길이의 몸통을 가진 용은 잔인한 괴수처럼 미친 듯이 도살했다.
눈사태가 만들어진 원리는 더욱 간단했다.
굳이 지진이 나지 않아도, 눈이 쌓인 산은 굉음 한 번에도 거대한 눈사태를 만들 수 있다.
멸룡결이 천지의 힘을 끌어들여서 특수한 파장을 만들어내는데, 그 파장으로 거대한 눈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요란스러운 굉음과 함께 여진의 1만 병사들이 전부 구풍에 휘말려 죽거나 눈사태에 깔려 죽었다.
용을 닮은 구풍은 아직도 멈추지 않고 전장을 휩쓸고 있었다.
6방짜리 화포도 힘없이 구풍에 휘말려서 그대로 하늘로 날아갔다 떨어져 부서졌다.
구풍이 만들어낸 사상자는 1만 병사들을 한 번에 압살하는 눈사태만큼 많지 않았지만, 꼭 하늘의 신이 내려와 인류를 응징하는 것처럼 시각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여진 제국의 병사들이 벌벌 떨면서 제자리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용왕께서 노하셨다!”
“장생천(長生天: 초원 부족의 최고신)께서 노하셨다!”
“하늘이 우리를 벌하신다!”
콰광!
눈사태 속에서 금빛이 터져 나오더니, 두변이 그 사이를 뚫고 솟구쳐 나타났다.
거대한 눈사태는 여진 제국의 1만 병사를 깔아뭉개고 시체 더미와 엉겨붙어 거대한 눈 산이 되었다.
두변은 그 산 위에 올라서서 여진 제국의 10만 병사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천신의 뜻을 대표하는 자다. 지금 네놈들이 감히 하늘의 뜻을 거역하겠다는 것이냐!”
두변이 위엄 가득한 모습으로 노호하는 순간, 하늘에서 구풍이 여전히 미친 듯이 휘몰아치면서 병사들을 집어삼켰다.
두변이 손을 뻗어서 구풍을 가리키더니 오른쪽으로 손을 움직였다.
그 광경은 마치 두변이 구풍을 손으로 조종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구풍이 정말로 두변이 가리키는 곳으로 이동해서 병사들을 도살했다.
물론 두변은 그저 구풍이 움직이는 곳을 향해 손을 이동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미 엄청난 눈사태와 구풍에 놀라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병사들이 그런 걸 알아챌 리 있을까.
실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여진 제국 병사들이 경악해서는 두변과 구풍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들은 초원의 용감무쌍한 전사들이었지만, 하늘에 절대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자들이었다.
무수히 많은 병사가 제자리에서 무릎을 꿇으면서 여진 제국의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
색라 공작이 이원을 향해 소리쳤다.
“이게 어찌 된 일이오?”
“나, 나도 모르는 일이오.”
이원이 허둥대면서 대답했다.
이어서 두변을 쳐다보던 색라 공작은 두변의 몸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저 거대한 시체 더미 위에서 또 무슨 신비한 공법을 운용하는 건가 싶었다.
‘설마 또 무시무시한 공격을 하려는 건가?’
색라 공작이 다급하게 외쳤다.
“퇴각하라. 퇴각! 전군, 영원성으로 퇴각하라.”
조금 전에 벌어진 일이 너무도 믿기지 않는 터라, 색라 공작은 자신의 가치관이 완전히 무너져내리고 뒤집히는 기분이었다.
그는 더는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색라 공작의 명령에 10만 병사가 즉시 방향을 틀어서 영원성을 향해 미친 듯이 퇴각했다.
정확히 말하면 퇴각이 아니라, 살기 위해 도망치는 것이었다.
이원도 이 전투에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지금 도망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거대한 시체 더미 위에 서 있던 두변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멸룡결을 시전한 터라 몸에는 현기 내력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멸룡결의 위력은 엄청났지만, 현기 내력의 소모가 너무 심했다.
두변이 2계 종사의 경지로 멸룡결을 간신히 한 번 시전한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10만 대군이 퇴각하자, 영설 공주의 1만 잔군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외쳤다.
“주군 만세, 만세, 만세.”
황가의 다른 공주가 이 외침을 들었다면 분명히 마음이 불편했을 테지만, 영설 공주는 도량이 워낙 큰 사람인지라 병사들이 뭐라고 하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영설 공주는 홀린 듯한 표정으로 두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두변을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무의식적으로 그의 다리 사이에 시선이 닿고는, 화들짝 놀라서는 얼른 시선을 거두었다.
그녀의 볼이 발그레 상기되었다.
이릉이 갑옷을 들고 눈사태로 만들어진 산 위로 올라가서 한쪽 무릎을 꿇고 말했다.
“주군께서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두변은 이릉에게 일어나라고 말한 후, 진서 후작 장포와 갑옷을 둘렀다.
황금빛 용린이 그의 온몸을 뒤덮고 있었지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모습처럼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두변은 지금 1.9미터의 키에, 조각으로 만들어낸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갑옷을 두른 지금, 더욱더 용맹하고 위엄있어 보였다.
환관이었을 때와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 같다고나 할까.
두변은 산 아래로 내려와서 영설 공주의 군마 위로 몸을 날렸다. 말고삐를 쥐기 위해서 영설 공주의 잘록한 허리를 감싸 안는데, 그녀의 몸은 뜻밖에도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영설 공주는 두변의 손길에 화들짝 놀라서 잠시 얼었다가, 이내 조심스럽게 두변의 품에 기대었다.
“산해관으로 간다!”
두변의 명령에 1만여 잔군이 대열을 정리하고 곧바로 산해관을 향해 달려갔다.
며칠 내내 제대로 먹은 게 없어서 배가 무척 고팠지만, 그들은 어느 때보다 힘차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천하 제일관, 웅위한 장성, 견고하고 거대한 성.
산해관의 성문이 천천히 열렸다.
여장군 부홍빙이 말을 탄 채 성문을 나와서는 두변의 앞에서 말에서 내려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주군, 주모를 뵙습니다. 목욕물, 술과 음식, 그리고 옷까지 전부 다 준비해놓았습니다.”
부홍빙은 두변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제 주군은 키도 커지고 패기가 넘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더는 예전처럼 유약하고 예쁘장한 소년이 아니었다.
두변이 대답했다.
“부홍빙 장군, 고생 많았습니다. 대군, 성 안으로 들어간다!”
1만 병사들은 드디어 먹을 것과 쉴 곳이 있다는 생각에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서 질서정연하게 성 안으로 들어갔다.
두변은 성 안으로 들어가는 동시에, 십여 명 정찰병을 빠르게 경성으로 보냈다.
영설 공주는 시녀의 시중을 받으면서 꽃과 향정이 뿌려진 욕통에서 반 시진 동안 목욕을 했다.
전장에서 제대로 씻지 못했던 그녀의 몸이 다시 뽀얘지고 향기로워졌다.
욕통에서 나온 영설 공주는 구리 거울 앞에서 잠시 자신의 몸을 감상했다. 그녀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옥체였다. 충분히 큰 키에 나올 곳이 나오고, 들어갈 곳이 들어간 몸매.
영설 공주의 몸매는 예상 선자보다 풍만했지만, 옥진 군주처럼 과장된 몸매는 아니었다.
항상 무예를 수련한 터라 두 다리는 길고 탄탄했으며, 허리는 가녀리지만 탄력이 넘쳤다. 가슴과 허리 아래의 곡선은 예술에 가까웠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몸 곳곳에 상흔이 남아 있었다.
영설 공주의 무공 수준 자체가 무척 높고, 그녀의 주변에는 항상 십여 명의 무공 고수들이 있다지만, 직접 전장에 나서는 몸인지라 상처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녀의 완벽한 몸에 일고여덟 개의 상흔이 있긴 했지만 다행히도 그리 깊고 짙은 상흔은 아니었다.
상흔 덕분에 영설 공주의 몸은 옷을 입고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색다른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그녀가 한창 자신의 몸매를 감상하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두변이 방 안으로 들어오자, 영설 공주는 작게 헉 소리를 내면서 본능적으로 옷을 끌어다 자신의 몸을 가렸다.
하지만 잠시 뒤, 그녀는 입술을 깨물더니 몸을 가리고 있던 옷을 툭 하고 떨궜다.
발그레 상기된 얼굴, 앙다문 입술의 그녀는 두변을 마주하는 게 부끄러웠지만, 용감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몸매를 두변에게 드러냈다.
두변은 진지한 표정으로 영설 공주를 바라보았다.
영설 공주의 얼굴은 너무도 아름다웠지만, 그 아름다움 속에는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는 고귀함과 대범함이 공존했다.
단순히 얼굴만 보았을 때도 그녀의 얼굴은 다른 여인들과 비교할 수도 없어서, 대녕 제국에서 예상 선자와 더불어 최고의 미모라 할 만했다.
그리고 영설 공주가 더욱 귀한 이유는 신분이 고귀하면서도 정의로운 마음과 천진난만함이 남아있다는 점이었다.
영설 공주는 지금 수줍어하면서도 용감했고, 가식적으로 일부러 꾸며내는 게 없었다.
두변이 영설 공주에게 다가가서 손끝으로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의 손끝이 영설 공주의 얼굴을 쓸어내린 뒤, 그녀의 목선을 따라서 아래로 천천히 쓸어 내려갔다.
영설 공주의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하면서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더없이 순수한 여인이었다.
영설 공주는 예전엔 두변을 예쁘장한 남동생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다 부황의 뜻으로 두변과 혼례를 올렸고, 미래에 대한 아름다운 환상과 두변과 뜨거운 시간을 보내는 걸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변을 마주할 때 한 번도 지금처럼 온몸이 후끈 달아오르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호흡이 가빠진 적이 없었다.
두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특별한 기운이 그녀를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공주, 추워요?”
두변이 영설 공주의 붉은 입술을 살짝 깨물면서 물었다.
“아니요. 더워요.”
“그럼, 옷을 안 입고 싶어요?”
“네.”
“바닥은 차가워요?”
“새로 깐 양모 융단이 있어서 차지 않아요.”
“그럼 여기서 해요. 침상까지 가지 말고.”
“여기서 해요. 그리고 침상에서도.”
영설 공주가 부끄러워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하자, 두변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영설 공주의 입술을 덮쳤다.
두 사람은 양모 융단 위에서 뜨겁게 뒹굴기 시작했다.
공주의 시중을 들던 그 이쁘장한 시녀가 화들짝 놀라서는 한참 뒤에야 비로소 손으로 눈을 가렸다.
영설 공주와 두변은 옆에 아무도 없다는 듯 둘만의 뜨거운 사랑을 나눴다.
편안한 침상 위.
영설 공주가 나른한 모습으로 두변의 품에 안겨서 아기 고양이처럼 새근새근 숨을 쉬었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두변을 사랑하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 사랑이란 건, 가족 간의 정도 아니요, 친구 간의 정이 아니요, 온전한 남녀 간의 정이었다.
영설 공주는 이대로 두변의 품에서 긴 세월을 보내면서 아들과 딸들을 낳는 행복한 상상을 했다.
“부군, 나도 회임할까요?”
영설 공주가 물었다.
“아이를 갖고 싶어요?”
“당연하죠. 특히 전장에서 적군과 격전을 치를 때, 머릿속에서 계속 아이들이 옹알이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돼요.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힘과 희망이 샘솟고요.”
“우리에게 곧 아이가 생길 거라면 내가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네요. 우리 아이가 위험천만한 난세에서 자라길 바라지 않으니까요.”
영설 공주가 고양이처럼 작은 혀를 내밀어서 두변의 가슴을 핥았다.
사실 원래는 그저 친밀하게 장난을 치려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조금씩 핥다 보니 오히려 그녀의 몸이 또 달아올라서 자연스럽게 두변의 몸 위로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