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55화 (455/648)

455장: 예상 선자의 혼례

이원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왜죠?”

“나와 부군이 함께한 시간이 그리 길진 않아서, 그를 따라 순장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를 위해서 남은 생을 과부로 지내는 게 뭐 이상한가요? 당연한 일 아닌가요?”

“하지만 공주 전하께서는 아직 좋은 날이 많습니다.”

영설 공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시간이 늦었습니다. 이원 장군이 다른 군무에 대해 상의할 게 아니라면, 그만 물러가시죠.”

이원은 표정이 굳어서는 영설 공주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서 예를 갖추었다.

“소장,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이원은 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막사 밖으로 나왔다.

이원은 두변처럼 태생이 고자였다. 하지만 자기 같은 유형의 고자도 정상적인 사내가 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정확히 어떤 방법으로 가능한 건지도 파악해뒀다.

어떤 사람들은 기쁠 때 표정이 얼음장처럼 차갑고, 도리어 속상할 때 환하게 웃곤 한다.

두변과 영설 공주가 혼례를 올린 날, 이원은 종일 환하게 웃고 있었다.

태감이라고 해서 남녀 간의 정이 없는 건 아니었다. 특히 이원처럼 태생이 고자인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몇 년 전부터 그의 눈엔 제국의 꽃인 영설 공주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제일 아름답고 신분까지 고귀한 여인이니까. 이런 여인과 혼례를 올리는 것이야말로 남자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 아닌가.

요동 전쟁 이전의 이원은 영설 공주에게 그 어떤 행동이나 말도 하지 못했다. 이원이 아주 특별한 태감이긴 하지만, 그가 태감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으니까.

이원은 어린아이였던 아홉 살 때부터 이연정을 따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연정은 모를 것이다. 이원은 당시 아홉 살이 아니라 열일곱 살의 청소년이었고, 이미 많은 것을 알 나이였다.

실제로는 열일곱 살인데 겉으로 봤을 땐 아홉 살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너무 많은 괴롭힘을 당해서였다.

물론 이원은 재능이 특출난 사람이었고, 이연정의 가르침 하에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원의 앞에 두변이라는 적이 나타났다. 처음엔 두변을 내려다보았고, 그를 안중에 둘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두변은 한 번, 또 한 번 신화를 만들어냈고, 결국엔 진서 후작이 되어 영설 공주와 혼례까지 올렸다.

이원은 처음엔 두변을 상대라고 생각할 가치도 못 느꼈다가, 중간쯤엔 그를 동일 출발선에 있는 경쟁 상대로 인정했다가, 나중엔 뒤로 내동댕이쳐져서 두변의 뒷모습조차 보지 못하는 낙후자가 되었다.

이원은 독사에게 심장이 물린 것만 같았다. 이런 기분은 두변과 영설 공주가 혼례를 올리던 날 극에 달했다.

이원은 두변을 위해 계속해서 술을 대신 마셔주었고, 친형제보다 더욱 친형제 같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때 이원은 마음속으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두변을 죽을 만큼 질투하고 증오하고 있었다.

한때 자신의 경쟁자였던 사람이 지금은 눈부시게 빛이 나서 우러러봐야 하는 위치에 올라갔으니까. 심지어 그가 꿈에서도 그리던 여인과 혼례까지 올리게 되었으니까.

이원은 술을 마시면서 속으로 두변을 마음껏 비아냥댔다.

‘영설 공주 같은 절세 미인과 혼례를 올리면 뭐하나. 네놈은 어차피 천생 고자인데. 네가 합방하는 날 뭘 할 수 있겠어? 쓸모없는 고자 새끼 같으니.’

얼큰하게 취한 이원은 속으로 간절하게 빌고 또 빌었다.

‘합방할 때, 두변이 중풍이 걸려서 죽었으면 좋겠다. 영설 공주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중풍에 걸려서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이원은 자신이 정말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저주 정도는 마음 편히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누구도 생각지 못한 것은, 두변이 정말로 합방 때에 피를 토하면서 생사가 불분명해진 것이다.

그땐, 그 어떤 말로도 이원이 느끼는 흥분과 기쁨을 표현할 수 없었다.

‘두변 이 자식이 드디어 죽었구나!’

두변이 사경을 헤매는 동안, 이원은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곧 태자의 눈에 들면서 중용되기 시작했고, 태자는 그의 엄청난 뒷배가 되어 주었다.

지금 그는 두변을 대신해서 군대의 영웅, 구세주, 젊은 전신이 되었다.

게다가 일단 심양성을 탈환하면, 두변처럼 제국의 군벌이 되고, 자작, 혹은 백작이 될 것이다.

어쨌든, 이원은 태자의 직속 세력이 될 것이고, 두변을 대신해서 대녕 제국의 기둥이 될 것이다.

두변의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이원의 마음에는 온갖 환상이 펼쳐졌다.

‘황제 폐하께서 붕어하시면, 태자 전하께서 영설 공주를 내게 개가시켜 주시겠지?’

이원은 그 생각을 할 때마다 온몸의 피가 끓었다.

그리고 지금, 그 밀서가 도착했다.

그런데 영설 공주의 태도는 그에게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이원은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면서 냉소를 지었다.

“내가 세상을 놀라게 할 때가 됐다. 두변, 이제 내 무대를 잘 보라고.”

북명검파 내부.

오애지의 불빛이 사라지고, 두변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영도현이 두변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사명의 주인은 세계의 갈라진 균열을 지나, 죽음의 동굴을 거쳐 기적의 중생을 할 것이라고 했지.

북명 선조의 예언은 세계 기밀과 연관이 있어서 한동안 드러나지 않았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나는 그 예언이 허튼소리라고 생각했지. 나도 점복사이니까, 미래는 많은 것이 엮여있고, 불확실성이 가득하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 천년 전에 나왔던 예언이라는 게 과연 얼마나 정확하겠어?

그런데 놀랍게도 예언 속의 모든 게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군.

세계의 갈라진 균열에 떨어진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거늘, 자네는 멀쩡하게 살아 돌아왔고 진화에 가깝게 바뀌었군.”

영도현이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영 종주께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요?”

영도현이 두변을 또 한참 쳐다보다가 말했다.

“예상과 혼례를 올리시오. 지금 당장. 다른 일은, 모두 내일 얘기하기로 하지.”

두변은 눈을 감고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는 시스템과 복잡한 교감을 마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예상 선자는 오늘따라 유난히 더 아름다웠다.

그녀는 붉은 혼례복 대신 자줏빛 긴 치마를 입고 두변의 앞에 나타났다. 옥진 군주처럼 폭발적인 몸매는 아니었지만 동양적인 여인의 미가 물씬 풍기는 몸매였다. 특히 그녀의 허리는 세상에서 가장 섬세한 붓으로 그려낸 듯 완벽한 곡선을 보였다.

북명검파의 진정한 제일 미인, 예상 선자.

두변과 예상은 각자의 백마에 올라탄 뒤, 산으로 향해 달려갔다. 두 사람은 산을 넘고 또 넘어서, 제일 높은 산봉우리에 도착했다.

처음엔 예상 선자가 앞에서 길을 안내했는데, 나중에는 두변이 앞장섰다.

두 사람은 오전부터 저녁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고, 드디어 한 절벽 앞에서 멈춰섰다.

해가 지고 있었다. 붉은 석양이 잔잔한 바다 위로 쏟아지니 마치 무수히 많은 금화가 빛나는 것만 같아서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두변과 예상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은 채 말없이 눈부신 석양을 바라보았다.

밤이 찾아오고, 하늘엔 별이 반짝였다. 밤하늘을 수놓은 무수한 별빛 아래, 잔잔하게 일렁이는 바다에도 하늘의 별빛이 반짝였다.

이곳은 석양이 질 때도 아름다웠지만, 깊은 밤의 경치는 더욱 아름다웠다.

오늘은 공교롭게도 바람이 불지 않았다.

절벽 위, 예상 선자가 촛불을 꺼내서 불을 붙였다.

이어서 예상 선자가 담요를 펼치고, 술과 술잔, 그리고 과일을 올려놓았다.

“두변, 나를 좋아하나요?”

예상 선자가 물었다.

두변이 고개를 저었다.

“좋아하는 건 아니죠.”

“나도 마찬가지예요.”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이 없었고, 심지어 조금 미워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내 몸과 얼굴은 싫어하지 않죠?”

예상 선자의 물음에 두변이 대답했다.

“당연하죠. 북명 제일 미인이 아니라, 대녕 제국 제일 미인이라고 불릴 정도 아닌가요?”

두변이 머나먼 서쪽 바다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예상, 후회된다면 돌아가도 돼요.”

“아뇨. 당연히 아니죠. 나는 당신의 몸을 싫어하지도 않고, 당신이 싫지도 않아요. 지금 당신이 내뿜는 기운이 너무 강렬해서 정말 참을 수가 없을 지경이에요. 만약 당신도 내 몸이 싫은 게 아니라면, 우리 이 의식을 함께 해볼까요?”

예상 선자가 먼저 일어나서 두변을 향해 정중하게 예를 올렸다.

가느다란 허리를 숙인 예상 선자는 별빛 아래 더없이 매혹적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절벽 위에서도 예상 선자의 몸에선 향기로운 향이 났다. 예상 선자가 가는 어디든 꽃들이 만개한 화원이 된 것처럼 향기로웠다.

두변도 몸을 일으켜서 예상 선자에게 정중하게 예를 올렸다.

이어서 예상 선자가 술잔에 교배주를 따랐다.

두 사람은 팔을 교차해서 마시지 않고 각자 술잔을 비웠다.

술잔을 비운 예상 선자의 뺨이 발그레 상기되면서 여인의 향이 더욱 짙어졌다.

“지금도 내가 그렇게 싫은가요?”

예상 선자가 물었다.

“조금 나은 것 같기도 하네요.”

“만약 싫은 게 아니라면, 이어서 할게요.”

예상 선자가 자신의 자줏빛 치마를 스르륵 벗은 뒤, 백옥보다도 고운 몸을 드러냈다.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땐 나온, 완벽한 몸매였다. 달빛이 예상 선자의 몸에 떨어지자, 그녀의 몸이 백옥처럼 반짝였다. 백송이 꽃이 만개한 듯한 꽃내음이 절벽 위를 가득 채웠다.

예상 선자가 섬섬옥수로 두변의 옷을 벗겼다.

두 사람의 몸은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남녀의 몸이 아닐까.

망망대해의 절벽 위, 환한 달빛과 무수한 별빛 아래.

예상 선자는 조금 긴장한 듯 입술을 파르르 떨었고, 조심스럽게 두변의 가슴팍에 입맞춤했다.

그녀는 꼭 잠자리가 수면을 톡, 톡, 건드리고 가는 것처럼, 꽃잎이 서서히 물들어가는 것처럼 두변의 가슴에서 목으로, 그리고 얼굴로 입맞춤을 해갔다.

마지막으로 예상 선자의 입술이 두변의 입술과 포개졌고, 두 사람은 서로를 꼭 껴안았다.

예상 선자가 두변을 바라보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부께서 당신이 아이를 남길 수 있도록 하랬어요.”

이어서 옥석이 깨지는 듯한 신음이 절벽 위를 가득 메웠다.

두변이 사내 구실을 할 수 있게 된 뒤로, 처음으로 품에 안은 사람이 예상 선자일 줄이야.

두 사람은 꼬박 하룻밤을 사랑을 나눴다.

머지않아 아침 태양이 떠오를 듯했다.

예상 선자가 두변의 품에 안겨서 눈물을 흘리더니, 갑자기 고개를 들고 두변을 밀치면서 말했다.

“얼른 일어나요. 일어나라니까요. 어서 도망쳐요.”

“왜요? 아쉬워서 그래요?”

예상 선자는 두변의 가슴팍을 밀면서 계속 말했다.

“얼른 가라고요!”

두변이 태연한 모습으로 말했다.

“괜찮아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어요.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기에 북명검파로 돌아온 거예요.”

두변이 가느다란 허리를 더욱 세게 끌어안으면서 그녀를 안심시켰다.

“좀 더 자요. 어제 많이 힘들었을 텐데. 아, 당신은 왜 그렇게 몸이 향기로워요?”

“어렸을 때부터 꽃잎을 많이 먹었거든요. 정말 많이.”

“거짓말이겠죠. 다른 이유가 있는 거죠? 당신의 사부가 나와 혼례를 올리라고, 내가 후대를 남길 수 있게 하라고 했다고요?”

예상 선자가 두변의 품 안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흠. 종주께 고마워해야겠네요. 내 동정을 당신에게 빼앗기다니, 정말 영광인걸요.”

“나, 나도예요. 무아지경에 빠질 정도로 환상적인 경험이었어요. 이럴 때가 아니라, 얼른 가라고요. 제발 가면 안 돼요?”

두변이 고개를 저었다.

“도망칠 생각으로 다시 돌아온 게 아니에요. 내가 여기서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얼른 좀 더 자요.”

두변은 예상 선자의 몸을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결국 예상 선자도 담요를 좀 더 끌어다가 두변과 자신의 몸에 덮은 뒤, 두변을 따라 눈을 감았다.

두 사람이 잠든 지 한 시진이 지났을 무렵, 태양이 하늘을 환하게 비췄다.

두변은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켰다.

절벽 아래, 망망대해에 빽빽한 군함 부대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각양각색의 전함이 바다 전체를 가릴 기세로 바다 위에 쫙 펼쳐져 있었다. 가장 선두에서 다가오는 군함은 꼭 금이라도 칠한 것처럼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고, 갑판 선두에 젊은 공자가 서 있었다.

공자가 고개를 들고 절벽 위의 두변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이 바로 동방 연합 왕국의 소군 전하였다.

꿈속 시스템이 물었다.

‘숙주. 정말로 이 길을 가려는 건가?’

두변이 대답했다.

‘이미 시뮬레이션을 몇 번 해봤잖아요. 옛날에 당신들이 빈틈을 남겨놨던 것도 확실하고요. 오늘 같은 날을 위해서 그랬던 거 아닌가요?’

‘그건 맞지만, 네 몸이 터지거나 부서질 정도로 엄청난 힘이야.’

‘그 힘이 없다면, 애초에 그 공간을 열지도 못하잖아요. 아닌가요?’

‘숙주, 이젠 네가 우리보다 더 미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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