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51화 (451/648)

451장: 두변과 황제

이번에 두변과 태자가 들어간 곳은 양생재(養生齋)로, 황제가 평소 여가를 즐기는 전으로 안에는 작은 서재도 달려 있었다.

양생재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문앞을 지키는 사람은 두변도 몇 번 본 태감 운봉이었다.

운봉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태자 전하, 진서 후작을 뵙습니다.”

태자가 문밖에서 말했다.

“아신(儿臣), 진서 후작 두변과 함께 부황을 뵙습니다.”

잠시 뒤, 양생재의 문이 열렸다.

두변과 태자를 맞이하러 나온 사람은 이연정이었다. 이연정이 두변을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두변을 책망하는 기세가 대부분이었다.

양생재 안에 들어간 두변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침상에 누워서 꿈쩍도 하지 않는 황제였다. 황제는 뼈만 앙상해진 모습으로 조용히 누워있었다.

황후와 영종오 대종사가 삼탕(參湯)과 쌀죽을 황제의 입에 조금씩이라도 넣어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두 사람이 온갖 방법을 생각하면서 음식을 먹이려는데도 황제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황제의 모습은 꼭 식물인간 같았다.

한창때의 성숙한 아름다움이 가득하던 황후는 어느새 초췌한 몰골이 되었고, 머리카락 절반 이상이 하얗게 셌다.

영종오 대종사도 못 본 사이에 얼굴에 주름이 많이 생겼다.

황후가 두변을 보자마자 크게 기뻐하면서 그를 반겼다.

“얘야, 드디어 돌아왔구나.”

이어서 황후가 황제의 귓가에 바짝 다가가서 속삭였다.

“폐하, 두변이 왔습니다. 두변이요. 두변이 죽지 않고 돌아왔다고요. 폐하께서 제일 그리워하시던 두변이 돌아왔습니다.”

황제는 아주 조금 움찔거리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혼수상태인 듯했다.

두변의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져나올 것만 같았다.

“너와 영설 공주가 혼례를 올린 그 날 밤, 폐하께서 약주를 두어 잔 하셨는데 네 소식을 들으시고는 기혈이 솟구치셨다. 기란정이 너를 북명검파에 데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폐하의 상태가 잠시 좋아졌는데, 북명 종주가 너를 완전히 소멸시키려고 세계의 갈라진 균열에 던져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폐하께서 그대로 중풍으로 쓰러지셨다.”

영종오가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최선을 다해서 폐하의 목숨을 구하고자 했지만, 그저 폐하의 목숨만 부지할 수 있을 정도가 다이다. 폐하께선 다신 깨어나시지 않으셨다. 눈을 뜨고 계시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고 눈동자도 굴리지 못하신다.”

식물인간처럼 보이는 건 중풍의 후유증이었다.

두변은 믿기지 않아서 황제에게 달려가서 그의 야윈 손을 덥석 잡았다. 결국 눈물을 참지 못하고 쏟아내면서 외쳤다.

“폐하, 제가 돌아왔습니다. 제가 돌아왔어요.”

황제는 눈을 뜨고 있었지만, 눈빛에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

두변은 황제가 자신을 온전히 믿고, 자신을 위해 해줬던 모든 것을 떠올렸다.

황제는 두변이 두씨 가문에서 버림받은 치욕을 씻어주기 위해서 그를 후작에 봉했다.

백색성이 위급할 때는 강제로 선성후를 남쪽으로 보내서 두변을 돕게 했다

물론, 마지막엔 선성후가 도리어 백색성을 공격하는 적이 됐지만 말이다.

황제는 두변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줬다.

두변이 아직 정상적인 사내가 되기도 전에, 그가 회복할 수 있다는 말만 듣고 곧바로 영설 공주와의 혼인을 내리기도 했다.

이 정도면 거의 부자의 정보다 진한 정 아닌가.

두변이 모르고 있는 게 하나 있다면, 영설 공주와의 첫날밤, 두변이 피를 토하면서 혼절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황제가 이연정을 시켜서 태자를 감금했다는 것 정도였다.

그랬던 황제가 지금 식물인간이 되어버렸다.

두변이 죽었다는 소식만 듣고 중풍이 왔고, 그대로 식물인간이 되었다.

두변은 소리 내어 통곡했다.

황제의 몸이 다시 작게 움찔하더니, 그의 눈가에서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황후가 그 모습을 보고 크게 기뻐하면서 황제의 귓가에 속삭였다.

“폐하, 어서 보세요. 우리 두변이 돌아왔어요. 폐하께서 제일 그리워하시던 두변이요.”

황제의 눈에서 눈물이 더욱 쏟아져 나왔다.

황제는 어떻게든 눈동자를 굴리려고 애썼지만, 식물인간이기에 불가능했다.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눈물만 흘리는 것이었다.

두변이 꿈속 시스템에게 물었다.

‘시스템, 폐하를 구할 수 있어요? 내가 폐하를 살릴 수 있냐고요.’

‘안 된다. 이미 생명의 등불이 마르기 직전이다. 황제의 머리를 수술할 생각은 하지도 말아라. 이미 불가능하다.’

정말 불가능했다.

황제의 머릿속에 기생충이 하나 있었을 땐, 구멍을 뚫어서 기생충만 쏙 빼내면 됐지만 지금의 황제는 중풍, 뇌출혈이었다.

황제의 몸은 허약할 대로 허약해져서, 지금 오로지 정신력으로 생명줄을 붙잡고 있는 상태였다.

만약 여기서 두개골을 열고 수술을 하면 황제는 즉사할 것이다.

그러니 황제의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아는 영종오 대종사, 황후가 두변에게 황제를 살려달라고 애원하지 않은 것이다.

황제에게 남은 시간은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황제가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두변이고, 다른 하나는 대녕 제국과 여진 제국의 운명의 대전 때문이었다.

두변은 목이 메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채 황제의 손을 꼭 쥐었다.

황후가 말했다.

“다들 자리를 비워주시지요. 두변과 폐하가 잠시 둘이 있을 수 있게요.”

사람들은 황후의 말에 따라 밖으로 나갔고, 방 안에는 황제와 두변 단둘만 남게 되었다.

“폐하, 저는 역시 폐하께서 왕건속을 서남으로 보내라는 성지를 내리실 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폐하와 깊이 있게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폐하께선 모든 걸 다 알고 계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녕 제국은 이미 뿌리까지 썩어버려서, 썩은 뿌리를 잘라내야만 제국의 완전한 변화가 가능하다는 걸 알고 계셨겠지요.

당시에 서남 3성을 제게 전부 주셨을 때, 저희 곡식이 모자랄까 봐 호남까지 주시려고 했지요?

그리고 다들 제가 이러다 제후가 되겠다는 말을 했을 때, 폐하께서는 이미 썩은 물인데, 제가 제후가 된들 뭐가 문제냐고 하셨고요.

폐하께서는 모두에게 증명하고 싶으셨던 겁니다. 백지 한 장 상태인 서남 세 성이 다시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지, 시험적인 장소로 삼아서 대녕 제국이 완전히 새로운 살길을, 새로운 발전 방향을 찾을 수 있는지를요.

그래서 그 누구도 제 일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셨죠. 서남의 전체 대권을 제게 주셨고요. 게다가 폐하께서 제 신법에 대한 강령을 보시고도 아무런 지적을 하지 않으셨지요. 그때 폐하의 결의를 느꼈습니다. 서남의 신법이 성공하면, 여진 제국과의 운명의 대전을 이기면, 폐하께서는 신법을 널리 시행하실 예정이고, 대녕 제국의 썩은 뿌리를 완전히 잘라내서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으시려는 걸요. 폐하께선 대녕 제국의 진정한 중흥을 이루시려는 것이라는 점을요.

아무리 많은 저항이 있어도,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러도, 폐하께서는 그 가시덤불을 헤치고 나아가시려던 겁니다. 오직 제국의 중흥을 위해서요.

폐하께서 중추에 계시고 저는 지방에 있으니, 같이 합심하면 무서울 게 없습니다.

신에게도 웅대한 포부가 있고, 폐하와 이 천고 위업을 완성하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합니다. 의부도, 옥진 군주도, 송결 공작도, 이연정 어르신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다 속으로 저를 탓하고 있죠.

제가 호광 총독 왕건속을 죽여서는 안 됐다고, 제가 그런 짓을 저지른 건 대역무도한 것이라고, 폐하와 완전히 결렬하려는 것이라고요.

하지만 전 알고 있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깨어계셨다면, 분명히 저보다 먼저 왕건속 그 쓸모없는 놈을 죽이셨을 것이라고요.

신법은 폐하와 제가 함께 달성하려는 목적과 희망입니다. 누구든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면, 오직 죽음뿐입니다.

많은 사람이 제가 반역을 일으킬 거라고 하더군요. 제가 누구에게 반역을 한다는 겁니까? 저는 이미 폐하의 따님과 혼례를 치렀는데, 한 식구끼리 무슨 반역을 한다는 겁니까?”

두변이 또 한 번 눈물을 쏟아냈다.

두변이 호광 총독 왕건속과 서남에 온 관리들을 죽인 후, 옥진 군주, 이문회와 이연정은 두변에게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두변이 너무 횡포하고 황권을 경시했다고 질책했다.

두변과 친밀감이 있고 두변에게 정이 있지만, 이들은 신법에 대한 이해도가 굉장히 낮았다.

신법 관련해서는 여담과 황제가 두변의 지음이라 할 수 있었다.

의부 이문회와 옥진 군주는 두변의 신법이 공장을 만들고, 토지를 농민에게 나눠주는 것 정도로 이해했지, 기존의 생산력과 생산 관계를 완전히 뒤집는 것이고, 제국 전체를 완전히 변혁하는 것이라고까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의부 이문회는 내정 천재이고 일류 집행자이지만, 정치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여담은 정치가였다.

황제의 성격이 너무 인자한 건 맞지만, 그도 정치가의 시야와 포부가 있는 사람이었다.

두변이 눈물을 닦은 뒤, 황제의 두 손을 꼭 잡고 말했다.

“폐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제국이 중흥하는 날이 꼭 올 겁니다.”

황제는 온몸의 힘을 쥐어짜서 두변의 말에 대답하려는 듯 손을 미세하게 움찔했다.

다른 서재 안.

태자가 두변을 향해 반 이상 허리를 숙이고 예를 갖추었다.

“두변, 내가 잘못했소. 나를 용서해주시오.”

두변의 얼굴에 살짝 경련이 일었다.

두변이 태자를 일으켜 세우자, 태자가 이어서 말했다.

“당시에 자네의 생사가 불분명한데, 여진 제국이 그사이에 대군을 준비해서 우리와 전투를 하겠다잖소. 그래서 나는 부황께서 중풍에 걸려서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바깥에 알릴 엄두를 내지 못했소.

왕건속과 관리들은 내가 보낸 것이오. 나는 감국(監國: 천자가 일시적으로 권한을 대행시키던 기관) 태자이니, 부황의 명의를 빌려 성지를 내렸소.”

태자가 쓴웃음을 보이면서 말을 이었다.

“두변, 나는 사실상 지금까지도 그 일을 잘한 건지, 아닌지 구분하지 못하오. 어쩌면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지.

만약 두변 자네가 서남에 멀쩡히 있었다면, 나도 절대로 왕건속을 서남으로 보내지 않았을 것이고, 자네의 신법에도 관여하지 않았을 것이오. 하지만 북명 종주가 자네를 세계의 갈라진 균열로 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자네가 죽었다고 생각했소. 그러니 부황께서도 쓰러지신 거 아니오.

만약 자네가 죽는다면, 서남에서 세력이 가장 큰 곳이 어디요? 당연히 여씨 세력이겠지. 어쩌면 그들이 다시 재정비해서 역모를 일으킬 수도 있소. 난 열심히 고심한 끝에 왕건속을 서남으로 보낸 것이오. 서남이 조정의 손에 있는 게, 차라리 여씨의 손에 있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나는 여씨가 또다시 역모를 일으킬까 봐 너무 걱정되었소.”

태자가 깊은 탄식을 뱉은 뒤, 다시 말을 이어갔다.

“왕건속 그자의 고질병이 뭐인지는 나도 알고 있었소. 언관(言官)들의 특징이 다 그런 거니까. 전투욕이 넘치고 나라를 망칠 수도 있는 공허한 담론을 즐기는 것 말이오. 하지만 내가 조당에서 더 고를 수 있는 사람이 없었소. 다른 사람들은 왕건속보다 더 형편없으니까.”

태자가 두변에게 차를 한 잔 따라주었다.

“자네가 왕건속을 죽이고, 수백 명의 관리 중 절반을 서남에서 내쫓고, 절반을 죽였지. 당시에 내가 그 소식을 듣고 정말 화가 많이 났소. 자네를 난신적자라고 욕하기도 했지. 홧김에 자네와 결별하겠다는 말도 했고.”

두변은 태자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잠자코 그의 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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