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47화 (447/648)

447장: 아무렴 상관없지 一

호광 총독 왕건속이 말했다.

“조정의 율법에 따르면, 네놈은 조사할 자격이 못 된다. 이 사건은 광서 순무 오삼석, 그리고 호광 총독인 나만 조사할 자격이 있지.”

광서 순무 오삼석이 말했다.

“맞아 죽은 사람이 진서 변진의 군속이기 때문에 진서 총독부에서도 조사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방 관부의 협조가 필요하지요.”

호광 총독 왕건속이 갑자기 호통을 쳤다.

“그래. 그렇다 치자. 와서 조사하면 조사하는 거지, 누가 네놈들에게 사람을 죽일 권리를 줬더냐? 심지어 조정 명관을? 진서 후작부가 진남 공작부보다 더 제멋대로이고, 이렇게 안하무인으로 설쳐댈 수 있더냐? 설마 정말로 광서를 너희 두변 후작의 독립 왕국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진평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총독 대인, 주의하실 게 있습니다. 오주 지부에서 백성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죽인 그 수십 명의 사람이 전부 진서 변진의 군속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건 난동을 부리는 사람들이 전부 두변 후작 밑에서 병사를 오래 하다 보니, 듬직한 뒷배가 있다고 믿고 겁도 없이 관아에 쳐들어온 것이겠지.”

진평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아니요. 이건 살인이 예정된 음모입니다. 두변 후작 소속의 군속을 죽이려던 음모지요. 이 음모의 목적은 지방 관아와 진서 후작부 사이를 이간질해서 쌍방의 관계를 완전히 결렬시키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주 지부와 세 현령은 제가 데려간 동창 무사들에게 죽임을 당한 게 아닙니다. 제가 동창 무사들을 이끌고 오주로 갔던 것도, 죽은 수십 명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갔던 게 아니라, 방계의 첩자 사건을 조사하려고 갔던 겁니다.

저와 동창 무사들은 애초에 오주 지부 관아에 간 적도 없고, 그 어떤 지방 관부의 관아에 간 적도 없습니다. 저희가 간 곳은 오주 동창 천호소였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오주 지부 현지 관리들이 수백 명의 관졸을 이끌고 오주 동창 천호소에 쳐들어와서는 저를 포위해서 온갖 책문을 했습니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방계 첩자가 오주 지부와 현령 세 명을 죽인 것입니다.

이건 명백히 방계가 꾸민 음모입니다. 두변 대인과 경성 사이에 갈등을 만들기 위해서고, 우리 쌍방의 갈등을 고조시키려는 수작입니다. 이문회 대인께서 일찍이 그 점을 파악하셔서 적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참고, 또 참으셨습니다. 저 또한 아무런 반항을 하지 않았기에 총독 대인께서 저를 체포하실 수 있었던 거지요. 그러지 않는 한, 이 서남에서 저를 체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진평이 차분하게 모든 사실을 말했다.

하지만 호광 총독은 진평의 말을 귓등으로 듣는 듯, 냉랭한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소리쳤다.

“진평, 정말 본독을 바보 취급하는 겐가? 정말 광서의 관리들이, 수천 명 백성이 죄다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게야? 네놈이 두변 후작부의 권력을 등에 업고, 제멋대로 율법을 어기며 조정 명관을 죽인 게 명백한데, 무슨 방계 첩자 같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이냐.

참나. 주인이 그 모양 그 꼴인데, 네놈 같은 족속이 뭘 보고 배웠겠냐.”

진평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왕건속을 바라보면서 냉랭하게 말했다.

“총독 대인, 말씀 조심하시지요. 제국의 동량지재(棟梁之材)가 되는 분을 그렇게 비방하는 말씀은 삼가셔야지요.”

호광 총독 왕건속이 속으로 헛웃음을 터트리면서 생각했다.

‘두변 그놈이 제국의 동량지재라고? 고작 스무 살 된 환관이 제국의 동량지재라고 불리다니. 시대에 영웅이 없으니, 개나 소나 유명세를 떨치는군.’

진평이 말했다.

“그리고 또 여쭤볼 게 있습니다. 진서 변진 총독부가 광서 백성을 대상으로 세금을 한 차례 거뒀는데, 당신들은 왜 또 세금을 징수하겠다는 겁니까?”

호광 총독 왕건속이 대답했다.

“지방 관아에서 지방 백성에게 세금과 곡식을 거두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방 관아가 어떻게 국고에 상납하고, 지방을 다스리겠느냐.”

“총독 대인께서 잊으신 게 있나 봅니다. 황제 폐하께서 서남 세 성은 전란이 있었기에 3년 동안 조정 세금을 상납하지 않아도 된다는 지의를 내리셨습니다.”

호광 총독 왕건속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지만, 이내 언짢음을 털어내고 말했다.

“황제 폐하께서 만민을 연민하시어 그 지의를 내리셨지. 하지만 우리가 광서에 도착한 뒤에 보니, 실상은 폐하께서 걱정하신 것과 달랐다. 서남 세 성 곳곳에 곡식이 넘쳐나고, 백성들은 풍족한 삶을 살고 있지 않으냐. 이렇게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데, 나라를 위해서 걱정을 해결하고, 어려움을 함께 헤쳐나가는 게 당연하지. 경성은 아직까지도 곡식이 부족하고, 황족들도 매일 식사를 두 끼만 먹고 있다.”

진평이 말했다.

“조정에서 서남 세 성의 3년 치 조세를 면제한 뒤로도, 저희는 여전히 두변 대인의 명령에 따라 제국에 곡식과 돈을 상납했습니다. 몇 개월 전엔 요동 군량을 지원하는 명목으로 국고 30만 석 곡식을 상납했고, 또 곧바로 380만 냥 은자를 상납했습니다. 그래도 부족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총독 대인께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남이 무법지대고, 백성들이 고단한 삶을 살고 있고, 인간 지옥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왜 지금은 백성들이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어서 국가의 걱정거리를 덜어줘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건지요? 이참에 대인께 한번 묻고 싶습니다. 우리 서남의 백성들이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지요, 아니면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지요?”

호광 총독 왕건속으로서는 뺨을 연달아 세 차례 맞은 기분이었다. 그는 민망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역시 그 주인에 그 종놈이라 그런지, 교활한 주둥이를 잘도 놀리는구나. 서남 세 성이 풍족한 것도 사실이지만, 인간 지옥인 것도 사실이다. 얼마나 많은 사대부 가족들이 유랑하고 있고, 얼마나 많은 학자 가문의 자제들이 전란에 죽게 되었으며, 또 얼마나 많은 서생들이 궁핍한 삶을 살고 있는지 아느냐? 두변 후작은 공자와 맹자를 존중하지 않고, 과거 시험의 가치를 훼손했다. 이게 난법(亂法)이 아니라면, 무엇이 난법이라는 것이냐?”

진평이 차갑게 대꾸했다.

“사대부 가족이 과거를 통해 계속해서 토지를 겸병하고 탈세해서 자경농들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습니다. 조정에서 징수하는 세금이 점점 더 줄어들자 황제 폐하께서 어쩔 수 없이 광무사(鑛務司), 염운사를 강행하셨습니다. 폐하께서 그런 결정을 하신 이유는 모두 국고를 충당하기 위해서고, 어떻게든 제국을 유지하고자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서남에서 시행한 신법이 1년도 채 안 됐는데 벌써 이런 대수확을 거뒀고,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이 기간에 서남에서 조정에 상납한 국세와 곡식은 그 어느 해보다 많습니다. 그런데도 신법의 장점을 증명할 수 없는 겁니까? 총독 대인께서 말씀하신 그 서생들, 사대부 가족들은 집에 누워서 만민의 공양을 받으면서, 탈세를 하면서 만민을 마음대로 짓밟아도 된다는 겁니까?”

“교언영색(巧言令色: 남의 환심을 사려고 아첨하는 교묘한 말과 보기 좋게 꾸미는 얼굴빛)이로다! 네놈은 간악하기 짝이 없구나. 진평, 네놈은 글공부를 어떻게 한 것이냐? 네놈 같은 사문패류(斯文敗類: 겉만 번지르르하고 품행이 나쁜 서생)는 과거 시험을 참가하지 못하게 해야 해. 한 사람의 마음이 삐뚤어지면, 글공부를 얼마나 많이 해도 다 소용없다!”

왕건속은 부아가 치밀어올랐지만, 이 자리에서 삼켜야만 하는 말이 너무 많았다.

왕건속은 글공부를 한 서생이면 당연히 다른 사람보다 격이 더 높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천자를 도와 만민을 통솔하는 데 당연히 서생이 앞서야 한다고 생각했고, 걸출한 서생이 없다면 우매한 만민이 삶의 방향성을 잃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니 서생들이 만민의 공양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그도 토지 겸병은 반대했다.

하지만 소위 사대부라는 집단도 결국 서생이요 학자에 속하기 때문에 왕건속의 팔은 어쩔 수 없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에게 있어서 두변의 신법은 당연히 건곤을 뒤바꾸는 일이고, 천지를 망하게 하는 난법이었다.

호광 총독 왕건속이 몸을 일으키더니 바깥에서 구경하는 수천 명의 사람들을 향해 공수의 예를 갖추며 물었다.

“여러 어르신들, 다들 말씀해보시오. 진서 후작부에서 시행한 신법이 좋소, 안 좋소?”

“안 좋습니다!”

“안 좋아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소리쳤다.

이 사람들은 진심으로 두변의 신법이 불편했다.

신법 덕에 이득을 얻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손실을 본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두변이 시행한 신법으로 득을 많이 본 사람들은 농민이었고, 제일 많이 손해를 본 사람은 사대부 가족과 서생이었다.

그리고 비교적 손해를 덜 본 집단은 상인 계급이었다.

서남 신법의 중심이 곡식, 금속 제련, 무기 제련, 성벽 건축 등인지라 계획 경제의 색깔이 짙었다.

아직 두변의 신법은 기초를 탄탄히 만드는 단계여서 상업 발달까지는 눈에 띄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두변은 상인 집단을 일부러 억제하지도 않았고, 향후 몇 년 뒤면 상업의 폭발적인 발전도 이뤄질 것이며, 그때가 되면 대부분 상인이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사대부 가족, 지부들이 탄압받는 상황인지라, 장사꾼들이 얻어가는 게 많이 없는 건 사실이었다.

일반 백성이 아무리 많이 소비한다고 해도, 사대부 등보다 소비력이 없는 게 당연했고, 백성의 소비 능력이 아직 충분히 길러지지 않은 터라 상인들은 날마다 두변을 욕하고 저주했다.

두변의 죽음이 전해졌을 때, 남녕성, 계림성, 오주성에는 폭죽 소리가 울려 퍼졌고, 사람들은 꼭 두변의 죽음을 축하하는 것처럼 행동했었다.

호광 총독 왕건속이 또 물었다.

“두변의 신법이 난법이오, 아니오?”

“난법입니다!”

“엄당 놈들은 곱게 죽지 못할 겁니다. 두변 그놈도요.”

“맞습니다. 그리고 두변은 이미 죽었잖습니까.”

“잘 죽었다 그놈!”

“잘 죽었다!”

구경꾼들 사이에서 두변을 욕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이들은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서 이렇게 행동하는 게 아니었고, 서생도 아니었다.

이들은 천하가 태평한 것보단, 시끌벅적하고 구경거리가 많은 게 좋은 한가한 장사꾼들이었다. 두변의 신법 때문에 1년에 수십 냥 은자를 적게 벌게 되었으니, 당연히 두변이 죽을 만큼 미웠다.

하지만 두변이 아니었다면, 광서는 벌써 진흙탕이 되었을 것이고, 뒷배도 없고 무기도 못 드는 이런 작은 장사꾼들은 벌써 전쟁통에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런 건 알 바 아니었고, 오직 두변 때문에 수십 냥 은자를 덜 벌어서, 두변이 죽일 놈이라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두변 때문에 불법 무역이나 거래가 전부 중단되었고 지금 당장 돈을 못 벌게 되었으니, 두변의 사지를 찢어버리고 살점을 잘라서 죽으로 끓여 먹고 싶을 지경이었다.

호광 총독 왕건속이 말했다.

“진서 후작부 주부 진평이 조정 명관을 살해했소. 이건 반역죄에 해당하는 중죄이니, 이 죄인을 죽여야 마땅치 않겠소?”

“죽여 마땅합니다!”

“죽입시다!”

구경꾼 수천 명은 서생이거나, 장사꾼이거나, 한량이거나, 두변을 싫어하거나, 시끌벅적하게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어찌 됐든 일이 커지길 바라는 마음에 한마음, 한뜻으로 진평을 죽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오삼석이 미간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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