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5장: 두변의 신법 一
“안남 왕국의 상황은 어때요?”
두변의 물음에 혈관음이 대답했다.
“당신이 실종된 뒤로 완씨 반왕이 곧바로 대반격을 진행했고, 35만 대군을 이끌고 순화부를 공격했어요. 그런데 자기 군대가 다가 아니라, 신비한 고용병 부대가 있더라고요. 당시에 순화부가 함락될 위기에 빠졌고, 해역 전체가 동방 연합 왕국의 함대에 의해 봉쇄되었어요.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여창 국왕과 송결 공작의 군대에 보급품이 엄청 부족한 상태였고,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죠.”
두변이 경성으로 갈 때, 안남 왕국의 전시 상황에 관련된 정보를 조금 듣긴 했다.
여여해가 두변을 공격하는 동시에 완씨 반왕도 반격을 할 예정이고, 두변, 여창 국왕과 송결 공작의 세력을 한 번에 없애려는 움직임이 보인다고.
그런데 두변이 그 대전을 이길 것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혈관음이 말했다.
“당시에 십여 일 동안 격전을 이어갔는데, 이상하게 적군의 병사들은 날이 갈수록 수가 많아졌고, 우리 쪽 물자는 점점 더 바닥나고 있었어요. 하지만 다행히도 절체절명의 시기에 기세 장군이 5만 대군을 이끌고 지원을 왔고, 20개 넘는 포화를 끌고 온 덕에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죠. 그 이후로는 서남에서 물자가 끊임없이 운송되었어요.”
당시 여창 국왕은 서남에 지원요청을 하지 않았다.
그는 두변이 사라졌다는 걸 알았고, 안남 왕국에 지원군을 보낼 수 있는지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자가 없다고 생각해서 지원요청을 하지 않은 것이다.
지원요청 서신을 보낸 뒤에, 두변의 진서 후작부에서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게 될 경우, 서남과 안남 왕국 사이의 우애에 금이 갈까 우려한 것이다.
당시 이문회가 상황을 파악하고 이틀 동안 고민한 뒤, 여담, 부홍빙, 기세 등을 불러서 상의한 뒤, 지원군을 보내기로 최종결정했다.
소식을 들은 여창 국왕은 이문회와 두변에게 고마워서 눈물을 흘렸다.
두변이 없다는 걸 알고 서남이 난감해질까 봐 일부러 지원요청을 하지 않았는데, 서남에서는 국왕이 말하지 않아도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이 지원군을 5만 명이나 보낸 것이다. 국왕에게 서남의 지원은 그야말로 설중송탄(雪中送炭)이나 다름없었다.
“두 달의 격전 뒤, 완씨 반왕은 8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해서는 350리 밖으로 후퇴했어요. 송결 공작과 여창 국왕께서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반군을 추격했고, 연달아 부 세 곳과 몇백 리 변방 지역을 수복했고요. 그 대전으로 여창 국왕께서는 또 한 번의 순화 대첩을 해내셨고, 완씨 반군은 크게 원기가 상하게 된 거죠.”
“그 계기로 완씨 반왕이 완전히 동방 연합 왕국에 합류하게 된 거고?”
혈관음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완씨 반왕은 사실 누굴 따를 것 같지도 않은, 포악하고 고집이 센 사람인데, 최근에 계속 동방 연합 왕국과 담판을 하고 있어요. 왕권호 순양함도 동방 연합 왕국이 그에게 준 미끼고요.”
두변이 눈썹을 으쓱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그 전함이 이젠 우리 것이 됐네요.”
두변의 교룡호 전함이 상처투성이인 왕권호 순양함과 이번 해전에서 포획한 십여 척의 전함을 끌고 순안해 항구에 도착했을 때, 항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열렬히 환호했다.
두변이 갑판 위에 올라가서 앞을 내다보니, 여창 국왕, 영신 왕후, 대녕 제국의 진남공 송결이 항구에서 혈관음 등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함이 정박하자마자 항구에서 흥겨운 풍악이 울려 퍼졌다. 여창 국왕이 성대한 환영식을 준비한 것이다.
두변과 혈관음은 이 광경을 보자마자 서둘러 전함에서 내려가서는, 여창 국왕 앞으로 가서 허리를 숙여 예를 올렸다.
“외신 두변, 국왕 폐하를 뵙습니다.”
여창 국왕이 허리를 깊이 숙이며 답례했다.
“두변 후작, 큰 은혜에는 인사치레를 하는 게 아니라고 들었소. 여씨의 모든 세대가 두변 후작의 은덕을 잊지 않을 것이오.”
두변이 서둘러 말했다.
“국왕 폐하와 저는 서로 의지하는 관계이니, 도움이 필요할 땐 응당 언제든 서로 도와야지요.”
여창 국왕이 두변을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자네가 평안하게 돌아온 것을 보니, 정말 이 기쁨을 말로 형용할 수가 없소. 자네 덕분에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었소.”
이어서 두변이 여창 국왕, 왕후 영신, 진남 공작 송결을 교룡호 전열함 위로 초대했다.
세 사람은 전열함의 곳곳을 구경하면서 놀란 마음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여창 국왕이 거대하고 튼튼한 포화구를 만지면서 말했다.
“두변 후작, 우리는 정말 세계에 뒤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져 있었구려.”
두변이 공손하게 말했다.
“그 점은 외신도 해외에서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우리도 얼른 분발해서 선진국을 따라잡아야겠소. 촌음을 다퉈서 노력해야 해.”
여창 국왕은 또 무슨 말을 하려다가, 이내 입을 닫고 말을 아꼈다.
대녕 제국은 여창 국왕의 가장 충성스러운 맹우이지만, 어쨌든 그는 바깥사람이니 대녕 제국의 일을 직접 입에 올리긴 어려웠다.
참관이 끝난 뒤, 진남공 송결이 두변과 단둘이 남아서 밀담을 나눴다.
“지금 완씨 반왕이 동방 연합 왕국과 담판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 기회에 남쪽 아래까지 치고 내려가서 완씨 반군을 아예 없애버리고자 하네. 나중에 동방 연합 왕국이 완씨와 합세해서 안남 왕국을 점령한 뒤에 손을 쓰면, 상황은 더욱 뒤집기 힘들어질 테니까. 하지만 내 손에 있는 병사들과 여창 국왕의 군대로 완씨 반군을 전멸하는 건 좀 어렵네. 자네의 진서 후작부의 도움이 필요하네.
하지만 대녕 제국이 여진 제국과 대결전을 앞두고 있지. 그것이야말로 국운이 걸린 대전이야. 두변 자네의 군대는 제국의 중견 힘이 되었으니, 자네가 만에 하나 북쪽의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면, 안남 왕국에 지원할 병력이 없을 것이네.”
두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
지금의 국면에서 안남 왕국을 지원하는 건, 대녕 제국을 돕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안남 왕국은 두변의 뒤통수라고 볼 수 있고, 서로 신뢰가 돈독하고 교류가 무척 친밀했다.
만약 완씨 반왕을 무찌르게 되면, 여창 국왕은 안남 왕국 전체를 통일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두변은 뒤쪽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여창 국왕이 안남 왕국을 통일하면, 동방 연합 왕국도 이 땅에 발을 디딜 발판을 잃게 된다.
하지만 북쪽에서 일어날 여진 제국과의 대결전은 정말로 대녕 제국의 국운을 결정하는 결전이었다.
“서남의 이득에서 본다면, 나는 자네가 남쪽으로 내려가서 우리와 함께 완씨 반군을 처치했으면 하네. 하지만 제국의 이익을 생각하면, 난 또 자네가 북방의 전쟁에 집중했으면 좋겠네. 여진 제국을 이기기만 하면, 대녕 제국의 부흥이 더욱 가까워질 테니 말이야.”
송결 공작의 말에 두변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송 백부, 혹시 현재 서남의 일에 대해서 아시는지요?”
진남 공작 송결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왕건속이 광서에 와서 호광 총독직을 실제로 부임하고, 경성에서 많은 관리를 서남으로 파견한 일 말인가?”
두변이 고개를 끄덕이자, 송결 공작이 한참을 침묵하다가 어렵게 운을 뗐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봤을 땐, 난 당연히 자네를 지지하네. 하지만 자네가 반년 동안 실종되었던 것도 사실인지라, 그 기간의 서남은 우두머리 없는 용 무리와 같았지. 그리고 여씨가 서남에서의 세력이 무척 방대하다 보니, 간신히 사그라든 여씨 세력이 다시 모일까 봐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고.
황제 폐하께서 서남은 두변 덕분에 되찾은 거라고 말씀하신 적 있지. 그리고 누군가가 자네가 이미 제국의 제후 노릇을 하고 있다고 말하자, 폐하께서는 그럼 제후를 시키자고 하셨네. 어차피 안팎으로 썩은 물이니, 마음대로 하라는 뜻이시지. 하지만 서남 세 성은 아직…….”
진남공 송결은 한마디 한마디 내뱉는 것 자체가 난감했다.
두변은 송결이 경성과 자신 사이에서 확고한 입장을 밝히기 어렵고, 밝힐 수도 없다는 걸 잘 이해했다.
“난 자네가 서남 몇 행성에서 시행한 신법(新法)을 완전히 지지하네. 그리고 나는 이미 세자 송옥을 자네의 공작부로 보내서 신법을 배우라고 했어. 그 아이는 지금 자네 소속의 행성에서 지부로 지내고 있네.”
두변이 화들짝 놀랐다.
“세자께서 지부가 되셨다고요? 세자께 너무한 것 아닙니까?”
진남공 송결이 한숨을 쉬었다.
“세자의 근맥은 이미 못 쓸 지경에 이르러서, 무장이 되기엔 글렀네. 군대를 이끌 수 없는 몸이 된 게지. 그리고 세자는 심성이 유약해서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 있기엔 적합하지 않아. 물론 나는…….”
송결이 말끝을 흐리면서 대화를 마무리했다.
두 사람은 밀담을 끝낸 뒤, 여창 국왕과 함께 식사했고, 교룡호에 충분한 보급을 채운 뒤에 북쪽 염주항으로 향하였다.
두변의 신법은 서남 세 행성에서 약 8개월 간 시행되었는데, 벌써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첫 번째로는 이 세 성의 곡식 생산량이 폭증했다.
전통적으로 서남 세 성은 곡식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지역이 아니었다. 이곳이 곡식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지역이었다면, 두변이 호남으로 출정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이곳의 곡식 생산량은 가까스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모든 농토를 농민들에게 분배해주자, 농민들의 곡식 생산에 대한 열정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전에 이곳은 자작농이 무척 적은 편이라 토지 겸병(兼倂) 현상이 무척 심했고, 자연스럽게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양이 많이 저조한 편이었다.
그런데 자기가 가꿔야 할 농토를 분배받게 되자, 농민들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농토를 비옥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농민들은 짚이나 나무 따위를 불에 태웠고, 눈에 보이는 모든 분변을 주워다가 농토에 영양분으로 공급했다.
두변의 진서 후작부가 저리로 대출해준 덕에, 몇몇 농가에서는 농우(農牛)를 사들이기도 했다.
그들은 신법에 따라, 가을이 지난 뒤에 곡식으로 대출을 상환할 수도 있게 되었다.
게다가 새로 농민들이 개척한 농토에는 병사들이 수리(水利) 건설을 돕는 보조 정책이 시행되었다.
덕분에 지난 8개월 동안, 곡식 생산량이 전년도보다 거의 4할이나 폭증했다.
절세 지하성의 술사들은 새로운 종자를 연구했고, 새로운 농작물을 연구했다. 사실 절세 지하성에는 일반인이 모르는 새로운 농작물이 많았고, 생산량도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그곳의 물이 이미 방사능에 오염된 터라, 무척 조심스럽게 연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절세 지하성에 있던 종자를 대규모로 심지 않고, 소규모로 연구하면서 배양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올해 서남 세 성의 곡식 생산량이 분명히 또 한 번 폭증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곡식뿐만 아니라, 염장, 금속 제련, 무기 제작, 납포의 생산량까지 모두 폭증할 게 분명했다.
특히 무기, 금속 제련은 절세 지하성의 구성원과 광산 덕분에 비약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강철, 경금(輕金), 밀금, 각종 금속의 생산량이 배로 늘어나서, 여씨 토사의 전성기 때의 생산량보다 훨씬 더 많았다.
전쟁의 신이라 불리는 포탄까지 눈에 띄는 생산량 증가가 있었다.
몇 개월의 모색 끝에, 서남에는 총 세 곳의 포탄 제조방이 설치되었다. 포탄 제조방 두 곳은 밀림 속에, 한 곳은 절세 지하성 안에 있었고, 화약 제조방도 두 곳이나 생겼다.
포탄이 됐든, 화약이 됐든, 아직 대규모 제조 공정이 만들어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낸 것이니 엄청난 발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서남의 군대도 23만에서 30만까지 확대되었다.
두변의 신법이 가져온 힘과 변화는 모든 사람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