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42화 (442/648)

442장: 복귀

다음날.

두변은 가면을 쓴 채 유경 국왕과 작별인사를 했다.

“내가 자네를 줄리앙이라고 불러야 할지, 두변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군.”

지팡이를 짚은 유경 국왕의 말에 두변이 허리를 숙이고 예를 올렸다.

“대녕 제국 진서 후작 두변, 국왕 폐하를 뵙습니다.”

유경 국왕 콘스탄틴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힘겹게 한 걸음씩 다가왔다. 그는 무척 힘들어 보였지만, 수하들의 부축을 거부했다.

“나도 대녕 제국의 천윤제를 알고 있네.”

“국왕 폐하께서는 천윤제 폐하를 어떻게 보십니까?”

“서방 세계에서 보기에 대녕 제국은 낙후하고 우매한 국가이고, 동방 연합 왕국이 동방 세계의 패권 국가로 알려져 있지.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게 하나 있네. 천윤제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단 두 명의 황제 중 한 명이야. 전 세계의 인정을 받은 황제 폐하란 말일세.”

콘스탄틴 국왕의 말에는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이 세계에는 황제가 몇 명 더 있긴 했다.

예를 들면 페르시아 왕국의 국왕이 곧 황제로 호칭을 바꿀 예정이고, 동영 제국에도 천황이 있다. 하지만 정말로 전 세계의 인정을 받은 황제는 동방 세계의 황제와 성로마 제국의 황제 단 두 명이었다.

유경 국왕이 말을 이었다.

“황제 폐하, 이 얼마나 지고지상한 칭호인가. 자네의 동방 제국이 2천 년 가까운 역사가 있으니, 내가 자네의 황제 폐하를 만나게 되어도 예를 올려야 하지. 황제는 황제야. 그의 제국이 얼마나 약해졌다고 해도 황제는 지고지상한 존재이지. 동방 연합 왕국이 이렇게 강성한데도 아직은 황제라는 칭호를 쓸 수 없어. 연합 왕국의 소군은 대녕 제국을 완전히 점령하고, 대녕 제국을 대신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황제가 될 수 있지.

두변 후작, 대녕 제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계속해서 황제 폐하께 존경과 충성을 다하게.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단 두 명의 황제 중 한 명이야. 자. 이게 바로 우리가 자네에게 줄 전함일세.”

두변이 유경 국왕의 시선을 따라 항구로 눈길을 돌렸다.

정박 중인 전함은 철갑이 둘러 있긴 하지만, 철갑전함에서 보지 못했던 돛이 달려있었다.

“존경하는 국왕 폐하. 저기 저 돛 전함이 아니라, 리아나 군주의 천랑호 전열함을 통째로 제게 주시기로 하신 것 아닙니까?”

“리아나 군주와 그녀의 수백 명 선원, 포병은 예정대로 자네를 따라 대녕 제국으로 갈 걸세. 국왕이 한 말은 금보다도 값진 것이니 말이야.”

하지만 두변이 원했던 건 기밀 동력 핵심이 장착된, 속도가 18절에 달하는 철갑전함이었다.

콘스탄틴 국왕이 말을 이었다.

“두변 후작, 성격이 꽤 급한가 보군. 내가 자네에게 주는 이 전함은 천랑호보다 더 고급인 전함이네. 이 전함에는 돛도 달려있고 기밀 핵심 동력도 달려있기 때문이지. 유경 왕국에서 대녕 제국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되지?”

유경 왕국에서 대녕 제국까지 가는 길은 무척 멀었다.

이 시기에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지 않은 터라, 대녕 제국으로 돌아가려면 아프리카대륙을 한 바퀴 돈 뒤, 인도해를 가로질러서 남중국해로 들어가야 했다.

“4, 5만 리가 넘습니다.”

“신비한 동력의 핵심 에너지는 무척 진귀한 걸세. 대녕 제국까지 그렇게 먼 거리를 가면서 에너지를 보충하는 건 어려운 일이야. 설마 그 귀하디귀한 에너지를 5만 리 길에 다 낭비할 셈인가?”

‘그런 거였어?’

두변이 화들짝 놀라고는 전함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국왕이 그에게 준 전열함에는 신비한 동력이 장착되어 있었고, 원양 항행의 보완 장치이자 위장용으로 돛이 달려있었다.

두변이 허리 숙여 예를 올렸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국왕 폐하.”

그때 리아나 군주가 군복을 입은 채 두변의 앞에 나타났다.

유경 국왕이 말했다.

“두변 후작, 자네의 전함에 이름을 하나 지어주는 건 어떤가?”

“교룡호로 하겠습니다.”

유경 국왕이 이견이 없다는 뜻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황제 폐하께 내 숭고한 경의를 전해드리게. 그리고 나의 우정도 말일세.”

유경 국왕이 말한 뒤, 두변에게 손을 내밀었다.

두변이 두 손으로 국왕의 손을 꼭 맞잡았다.

유경 국왕이 두변에게 엄청난 가치의 전열함을 준 건, 단순히 두변이 자신의 목숨을 구했기 때문이 아니라, 대녕 제국과 협력하겠다는 의지이기도, 동방 연합 제국을 향해 복수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국왕 폐하, 안녕히 계십시오.”

“두변 후작, 잘 가게.”

“출항하라.”

두변이 외치자, 호각 소리가 항구에 울려 퍼졌다.

두변의 교룡호 전열함이 천천히 유경 왕국의 항구를 떠나 대녕 제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두변은 자신의 전열함을 한 번, 또 한 번 검사했다.

유경 국왕은 거짓말하지 않았다.

국왕이 그에게 선물한 전열함은 리아나 군주의 천랑호보다 더 강력했다. 배수량도 더 컸고, 포화구도 108개나 있었다. 포화도 12방 포화, 16방 포화, 그리고 18방 포화까지 완비되어있었다.

먼 길을 항해해야 하기에, 전열함에는 과일, 채소, 곡식, 육류, 물을 최대한 많이 적재하고, 포화와 화약은 적당량만 챙긴 상태였다.

이 강력한 전열함을 가진 덕에, 두변의 해군은 엄청난 도약을 하게 된 셈이었다.

유경 왕국의 신비한 동력을 가동하면, 전열함의 속도는 일반적인 전함보다 5할 이상이 빨라진다.

이 전열함을 가졌으니, 두변은 서남과 안남 왕국 사이의 근해권(近海權)까지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두변은 갑판 위에 서서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먼 곳을 내다보았다. 그는 하루 빨리 대녕 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두변, 우리 약속 세 가지만 합시다.”

리아나 군주가 두변의 옆에 다가와서 말했다.

“좋아요. 말씀하시죠.”

“이 전함은 당신의 것이지만, 나와 내 선원, 해군 병사들은 여전히 유경 왕국의 것입니다. 우린 당신에게 고용되어서 당신의 선원을 훈련하는 것을 돕는 겁니다. 우린 당신의 부하가 아니란 뜻이에요.”

“두 번째는요?”

“전열함이 대녕 제국의 경내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유경 왕국의 깃발을 달아야만 일부 항구에 정박해서 보급받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당신은 발포권이 없어요. 대녕 제국의 영해 안에 들어간 뒤에야 이 전함의 완전한 발포권을 가지는 거예요.”

“마지막은 뭐죠?”

“당신이 무척 잘생긴 것도 맞고, 남성적인 매력이 흘러넘치지만, 나는 남자에겐 관심이 없어요. 우리 사이에 어색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선, 앞으로 몇 달 동안 절대로 나에게 구애하거나 그 비슷한 걸 하지 않았으면 해요. 사이가 어색해져서 둘 중 하나가 바다에 뛰어내릴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두변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동의합니다.”

이어서 두변은 길고 긴 해상 여정에 나섰다.

북유럽에서 출발한 뒤, 남쪽으로 내려와 아프리카대륙을 빙 돌아서 아프리카 최남단의 희망봉을 지나 인도양에 진입했다.

유경 왕국의 깃발은 정말이지 대단했다. 항해하는 내내 다른 전함이나 범선을 많이 보았는데, 모두 깃발을 흔들면서 경의를 표하며 길을 비켜주었다.

유경 왕국의 깃발만 있다면, 거의 모든 항구에서 잠시 정박해서 식자재 등을 보충할 수 있었다.

해상 패권주의의 좋은 점이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꼬박 4개월이 지난 뒤.

두변의 교룡호 전열함은 가장 위험한 구간에 들어섰다. 이곳은 현대 지구에서 말라카 해협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동방 연합 왕국이 장악한 곳이기도 했다.

동아시아 해역은 전부 동방 연합 왕국의 영해라고 할 수 있었고, 연합 왕국을 경유하는 전함이 아니어도 특별한 이유 없이 이 해역을 지나칠 수 없다.

그리고 동방 연합 왕국의 전함이 매일 이 해협을 순찰하면서 감시했다.

하지만 이곳은 지금 17세기이지 21세기가 아닌지라, 비행기나 레이더 같은 것으로 정밀하게 해협을 감시하진 못했다.

두변은 꿈속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천둥 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지고, 파도가 거칠어진 날짜를 골라서 말라카 해협을 통과해 남중국해로 들어갔다.

‘곧 집에 도착하는구나. 드디어 대녕 제국으로 돌아갈 수 있구나.’

두변은 고향의 품으로 돌아가는 기대감도 컸지만 숨 막히는 긴장감이 몰려왔다.

그가 대녕 제국을 떠난 지 벌써 반년이 지나 있었다. 영설 공주와의 첫날밤에 피를 토하며 혼수상태에 빠진 후로 말이다. 두변 자신의 생사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대녕 제국에 격변이 일어난 건 아닐까 걱정이었다.

지난번에 여담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반란을 일으키고 싶다면, 두변 자신이 확실히 죽은 걸 확인한 뒤에 하라고.

그런데 말도 없이 사라진 지 반년이나 지났으니, 대녕 제국에는 온갖 유언비어가 쏟아졌을 것이다.

여담이 과연 흔들리지 않았을까.

동방 연합 왕국이 이 반년 동안 서남을 공격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대녕 제국과 여진 제국의 대결전은 어떻게 되었을까? 여진 제국과의 결전은 국운을 건 전쟁인데!

교룡호 전열함이 광서 염주항과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전열함의 선두에 서 있던 두변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기도했다.

‘곧 집에 도착한다. 곧 대녕 제국으로 돌아갈 수 있어. 하느님, 부디 대녕 제국을 보호해주십시오!’

쿠구구구궁.

이때, 갑자기 어디선가 포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른하게 늘어져 있던 선원과 해군 병사들이 일순간 경계 태세를 갖췄다. 선장 리아나 군주가 선장실 밖으로 뛰쳐나오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핵심 동력을 가동하고, 전투를 준비한다!”

안남 왕국과 완씨 반왕과의 대해전이 시작된 지 벌써 하루가 지났다. 이번 대해전이 발발한 이유는 동방 연합 왕국의 전함이 떠났기 때문이었다.

몇 개월 전, 동방 연합 왕국과 성화교 세계가 인도양에서 해전을 치르면서 모든 전함이 이 해역을 떠나게 되었다.

그 덕에 안남 왕국과 혈관음의 부대가 다시 두변의 영지를 오가며 해상운수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각양각색의 물자를 운반할 수 있게 되었다.

완씨 반왕은 그 꼴을 눈 뜨고 못 보겠는지 바로 해상 습격을 준비했다. 반왕의 기습전이 바로 이번 대해전이 된 것이다.

물론, 안남 왕국의 해군이나, 혈관음의 부대나, 완씨 반왕의 부대가 갖고 있는 것은 모두 낙후된 전함으로, 아직도 투석기와 대형 강노가 주된 무기였다.

그래서 대해전을 펼친다고 해도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공격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완씨 반왕이 동방 연합 왕국에 합류하겠다고 발표한 뒤, 동방 연합 왕국으로부터 2급 순양함을 얻게 되었다.

이 순양함은 배수량이 7백 톤에, 전함에 설치된 포화구가 15개에 불과하고, 항해 속도도 빨라야 12절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안남 왕국과는 문명의 차이이자 절대적인 무기의 차이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동방 연합 왕국이 완씨 반왕에게 구식 포화 전함을 준 탓에 안남 왕국과 혈관음은 엄청난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대해전이 시작된 지 꼬박 하루가 지났고, 혈관음과 안남 왕국의 부대가 절반 가까이 파괴되어서 침몰했다.

콰과과광!

혈관음의 전함이 또 포화에 맞았다. 낡은 전함에서 쩍쩍 갈라지는 굉음이 들리더니 선체가 거세게 떨리기 시작했다. 부서진 전함 안으로 바닷물이 밀려 들어왔다.

“방주! 전함이 곧 침몰합니다. 어서 다른 전함으로 갈아타세요!”

“방주! 서두르십시오. 어서요!”

혈관음은 사람이 몰라볼 정도로 핼쑥했다. 아름답던 두 눈은 복숭아처럼 벌겋게 실핏줄이 터져 있었고, 눈빛에는 절망만 남아 있었다.

그녀의 전함과 안남 왕국의 전함이 불에 활활 타면서 끊임없이 가라앉고 있었다.

이번 대해전에서 혈관음의 혈교방은 모든 걸 걸었고, 거의 모든 걸 잃었다.

완벽한 패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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