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9장: 환양단 二
한 시진 뒤, 유경 왕성의 최고 경매회가 시작되었고, 모든 귀빈이 자리에 도착했다.
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권력 있는 사람들로, 성화교의 거물, 최고급 귀족, 대군벌, 대국 왕자, 망명한 국왕 등등이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귀빈들의 각 자리는 모두 반 밀폐된 구조여서 서로를 볼 수 없게 되어있다는 점이었다. 익명의 경매이니, 모두 자신의 신분을 숨길 수 있었다.
게다가 유경 해적 왕국의 담보가 있으니, 익명으로 경매에 참가해서 마음 놓고 매매할 수 있는 것이다.
리아나 군주가 두변과 함께 거대하고 푹신한 자리에 앉았다.
“음. 읏흥.”
이때, 갑자기 옆자리에서 여인의 신음이 들려왔다.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진 나무벽 때문에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안쪽에서의 소리는 선명하게 들렸다.
“어떤 사람들은 꼭 이런 반 밀폐된 공공장소에서 창피한 짓거리를 하는 걸 좋아한다니까요.”
리아나 군주가 말했다.
이어서 여인의 목소리가 아니라, 무언가 참는 듯한 남자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두변으로서는 무척 익숙한 소리랄까.
‘유경 왕성은 진짜 사치스러운 도시구나.’
두변이 속으로 감탄했다.
천국탑 상회 주인이 고탑 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바다가 얼어붙기 전에 진행하는 마지막 대경매, 지금 시작합니다.
오늘의 첫 번째 보물, 열양용단입니다.”
두변이 깜짝 놀랐다.
자신이 사야 할 환양단이 하필 첫 번째 순서로 경매에 나올 줄이야.
두변의 양기를 100으로 만들어 줄 그 귀한 열양용단의 경매가 시작되었는데, 두변의 손에는 은화 한 닢 없었다.
왜 매마 피의 결정체가 첫 번째 순서가 아니었을까.
“열양용단 이야기에 관해서는 다들 잘 알고 계시죠? 제가 그 이야기를 열 번도 넘게 했던 것 같습니다. 이건 아주 진귀한 보물입니다. 3백 년 전, 성로마 제국의 황위를 찬탈했던 자가 이것을 얻기 위해서 2만 명의 목숨을 대가로 치렀습니다. 그리고 그도 결국 이 열양용단을 먹고 죽음을 맞이했죠.
극도로 귀한 만큼, 극도로 위험한 보물입니다.
벌써 유찰될 느낌이 들긴 하는데, 일단 입찰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 보물. 3백 년 전 성로마 제국의 이야기의 주인공인 열양용단. 10만 금화로 시작하겠습니다.
열양용단. 10만 금화. 입찰하실 분 계십니까?”
“셋!”
“둘!”
“제가 숫자를 다 셀 때까지 입찰하시는 분이 안 계신다면, 유찰을 공표하겠습니다.”
“하나.”
두변이 손을 번쩍 들고 목소리를 바꿔서 외쳤다.
“10만 금화!”
그런데 두변이 입찰가를 외치는 동시에, 다른 누군가도 입을 열었다.
“10만 금화!”
두변은 영어로 말했고, 다른 사람은 페르시아어였다.
천국탑 상회 주인 글렌이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벌써 열 번이나 유찰되었던 열양용단이었는데, 어쩐 일인지 오늘은 두 명이나 입찰을 하다니!
글렌은 너무 기쁜 나머지 활짝 웃었다.
글렌과 반대로, 두변은 이 상황이 어이없었다.
열양용단을 사겠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가, 왜 하필 자신이 입찰할 때 경쟁자가 나타난 것일까.
3백 년 전에 성로마 제국의 황제가 열양용단을 먹자마자 즉사했다고 하는데, 왜 이걸 사려는 거야!
‘열양용단은 다른 용도로 쓰이기도 한다. 누군가가 이걸 이용해서 어떤 중요한 실험을 하려나 보군. 이 실험이 성공한다면, 거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수준의 성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경쟁자가 생긴 것이고.’
시스템의 말에 두변이 물었다.
‘그럼 왜 예전엔 안 사다가 지금에서야 사는 겁니까? 열 번도 넘게 유찰됐다면서요.’
‘두 가지 이유가 있지. 세상이 이렇게나 큰데, 소식이 전파되는 속도도 필요하지 않겠나? 유경 왕성에서 열양용단을 판다는 소식을 접하기까지 시간이 좀 필요했을 것이다. 다른 이유를 생각해 본다면, 상대방이 일찌감치 열양용단을 눈독 들이고 있었는데, 이제 곧 많은 해역이 얼어붙을 예정이라 한동안 대경매가 중단될 것이니, 열양용단을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오늘에서야 사는 것이지.’
일리가 있는 얘기였다.
리아나 군주는 두변이 열양용단을 입찰한 걸 보고 조금 놀란 눈치로 그를 흘깃 쳐다보았다.
아주 노골적인 의미였다.
줄리앙 선생, 거기가 안 되나 봐요?
두변은 당당하게 리아나 군주를 향해 눈짓했다.
안 되면, 안 되나요?
“11만 금화!”
두변이 이어서 값을 외쳤다.
리아나 군주가 두변이 외친 값을 듣고 물었다.
“돈은 있고요?”
“없습니다. 마법 수정을 판 값으로 사는 거죠.”
“그 보석은 팔리지 않을 거예요. 지금 그렇게 마구잡이로 값을 불렀다간, 나중에 그 값을 치르지 못할 때 큰일을 당할 거라고요. 경매장에서 제일 비싼 값을 불러서 입찰한 뒤에 대금을 치르지 않으면, 유경 왕국 공공의 적으로 몰려서 처형당해요.”
“설마 나한테 돈을 빌려주지 않을 건가요?”
“뭐라고요? 유경 왕국 사람들이 뱉은 말을 꼭 지키는 편이지만, 당신의 수고비는 이미 철갑전함으로 치렀어요. 우정은 우정이고, 금전은 금전이죠. 아무리 우애 깊은 친구여도 돈 빌린다는 얘기가 나오면 그 우정은 깨지는 거예요.”
유경 왕국의 군주가 4백 년이나 일찍 이런 명언을 내뱉을 줄이야.
이어서 리아나 군주가 눈알을 슬쩍 굴리더니 말했다.
“다만, 거래를 하나 할 수는 있죠. 유경 왕국에서 당신에게 줬던 그 철갑전함을 20만 금화에 사는 걸로요.”
두변은 리아나 군주의 말에 혀를 내둘렀다.
열양용단이 무척 진귀한 건 맞지만, 아무리 그래도 철갑전함과 비교할 수야 있나.
다른 지구에서는 대영제국의 2천 톤 배수량의 돛 전열함(戰列艦)의 제조비용은 9백만 냥 은자다. 이를 유경 왕국의 금화로 바꾼다고 해도 최소 60만 금화이다.
유경 왕국의 철갑전함은 철갑과 특수한 동력 때문에 돛 전열함보다 최소 몇 배의 가격 차이가 날 것이다.
철갑전함이 비매품이어서 다행이지, 이걸 경매에 올린다면 150만 금화에 팔아도 사려는 사람이 줄지어있을 것이다.
“군주 전하의 얼굴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두변의 말에 리아나 군주가 대꾸했다.
“줄리앙 선생, 지금 와서 아부 떨어봤자 이미 늦었어요.”
두변이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서 말했다.
“그런데 참 아쉽게도 그 아름다운 얼굴 아래에 있는 마음은 새까맣네요.”
리아나 군주가 입꼬리를 올리면서 대꾸했다.
“과찬이시네요. 존경스러운 줄리앙 선생, 진지하게 말하는 건데, 우린 천랑호 전함을 사들이기 위해서 정말 20만 금화만 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열양요단 입찰가를 20만 금화 이상으로 부르지 말아요. 안 그러면 내가 직접 나서서 당신의 입찰이 무효하다고 발표할 거니까요.”
“진지하게 하는 말입니까?”
“네. 내 전재산이 20만 금화거든요.”
이때, 페르시아어를 하는 사내가 또 입찰가를 외쳤다.
“12만 금화!”
“13만 금화!”
두변이 외쳤다.
“14만 금화!”
페르시아어를 하는 사내가 뒤이어 외쳤다.
“15만 금화!”
두변이 또 외쳤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손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대경매가 시작하자마자 이렇게 치열하다니.
천국탑 상회 주인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상회 주인은 경매가 입찰되면 입찰가의 2할을 수수료로 받기 때문이었다.
귀빈들도 예상치 못한 치열함에 놀랐는지, 두변의 옆 칸에 있던 여인과 사내도 은밀하게 즐기던 걸 멈추고 입찰에 집중하는 모양이었다.
“값을 제시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우리 옆자리인가 봐요. 목소리를 들어보니 아주 준수한 것 같은데, 이렇게 돈까지 많다니. 이 사내를 한번 맛보고 싶은 걸요.”
옆 칸의 여인이 말했다.
찰싹.
옆 칸의 사내가 여인의 엉덩이를 찰지게 때리면서 말했다.
“열양용단을 입찰하는 걸 보면 태생이 고자인 사람이겠지. 당신의 입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고자가 뭘 느끼겠어? 물론, 저 사람이 열양용단을 먹고 죽지 않는다면, 당신이 저 사내의 맛을 한 번 보는 건 괜찮아. 열양용단을 먹은 사람의 맛은 어떤지 한 번 먹어보고 알려줘.”
두변은 두 사람이 부부관계인지, 은밀한 애인 관계인지 알 수 없었지만, 무척 개방적이라는 점에 감탄했다.
천국탑 상회 주인 글렌이 흥분한 모습으로 경매를 이어갔다.
“15만 금화! 15만 금화가 나왔습니다. 영어를 하시는 존경스러운 각하께서 15만 금화를 입찰하셨습니다. 이보다 더 높은 가격을 부르는 분이 계실까요?”
“20만 금화!”
페르시아어를 하는 사내의 말에 두변은 하마터면 자리에서 펄쩍 뛰어오를 뻔했다.
‘야 너 진짜 미친 거냐? 이딴 단약을 20만 금화에 사? 나는 진짜 필요해서 사는 거라고! 태생이 고자인 사람의 고충을 네가 알아? 내 후대를 이어가려면 어쩔 수 없이 이걸 사야 하는 거라고!’
자리에 있던 사람들도 깜짝 놀라서 헉 소리를 냈다.
경매에서 입찰가가 수십만 금화에 달한 적도 있었고, 백만 금화를 넘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떤 국가가 파산하면서 2백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아프리카 식민지를 경매에 올렸을 때나, 어떤 국가가 재정 상황이 너무 어려워서 국가 군함의 7할을 5년 기간 동안 빌려줬을 때 정도였다.
물건 하나를 이 정도 값을 주고 입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수십 년 전의 경매에서 5백 년 전의 성로마 제국 황제의 왕관이 20만 금화에 팔렸고, 7년 전에는 2천 8백 캐럿의 초대형 다이아몬드가 17만 금화에 팔렸다.
그런데 지금 페르시아어를 하는 사내가 열양용단 단약 하나를 사고자 20만 금화를 외친 것이다.
리아나 군주가 진지하게 말했다.
“줄리앙 선생, 한도를 다 썼으니 더 높은 값을 부를 수 없어요.”
하지만 두변이 입찰패를 들고 외쳤다.
“21만 금화!”
그리곤 리아나 군주의 눈을 바라보았다.
리아나 군주는 얼마든지 두변의 입찰이 무효라고 선언할 수 있었지만, 두변과의 교분을 생각해서 가만히 있었다.
두변이 무척 진지하고 엄숙하게 리아나 군주를 바라보는데, 그 모습이 마치 리아나 군주가 입찰이 무효라고 선언하면 아주 골치 아파질 거라고 말하는 듯했다.
리아나 군주가 고개를 돌리고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줄리앙 선생, 우리 둘의 친분은 이제 깨진 겁니다.”
하지만 그녀는 일어서서 두변의 입찰이 무효라고 선언하지 않았다.
두변이 21만 금화를 외친 걸 들은 페르시아 사내는 조금 전처럼 곧바로 더 높은 입찰가를 외치지 않았다.
천국탑 상회 주인 글렌이 말했다.
“21만 금화! 21만 금화가 나왔습니다. 3백 년 전에 황위를 찬탈했던 황제가 먹자마자 죽었던 열양용단! 성로마 제국의 역사를 바꿨던 그 열양용단! 21만 금화보다 더 높은 입찰가를 제시하시는 분이 계실까요?”
페르시아어를 구사하는 사내가 한참이 지난 뒤에야 말했다.
“25만 금화!”
‘미쳤어. 정말 미쳤어!’
자리의 귀빈들은 자신의 체통을 지키는 것도 잊고 입찰 경쟁을 하는 두 사내가 누군지 보려고 까치발을 들고 칸막이 너머를 보려고 애썼다.
두변도 놀라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두변의 눈에도 페르시아어로 말하는 사내는 정말 미친 사람 같았다.
꼭 일부러 자신을 겁주려는 듯이, 자신의 기세와 구매 의지를 보여주듯이 한 번에 값을 몇 만 금화나 올려버리더니!
하지만 두변은 한 가지 직감이 있었다. 페르시아어를 하는 사내는 자신의 총알을 거의 다 썼구나!
저자는 열양용단을 꼭 사겠다는 의지가 있긴 하지만, 수중에 있는 돈은 25만 금화가 전부로구나!
페르시아어를 구사하는 사내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고, 입찰가를 외칠 때 무척 힘겨워 보였다.
“25만 3천 금화!”
두변은 아무 주저 없이 홀가분한 말투로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