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8장: 환양단 一
이제 막 긴 잠에서 깨어난 콘스탄틴 국왕은 상태가 무척 허약했다.
하지만 그는 침상에 누워있기를 거부하고 고집스럽게 지팡이를 짚으면서 수하의 부축을 받아 왕좌에 앉았다.
“태자, 리아나. 정말로 철갑전함을 거래하기로 한 것이냐?”
국왕의 물음에 리아나 군주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국왕 폐하.”
왕태자 콘스탄틴 2세가 대답했다.
“예, 아버지.”
두 사람이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이곳은 유경 왕국인지라 결국엔 국왕의 말이 모든 걸 결정한다.
철갑전함은 비매품인지라, 유경 왕국이 지금 와서 약속을 어긴다고 해도 두변으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심지어 더 나쁜 쪽으로 생각한다면, 십여 명의 대사제를 시켜서 두변을 바로 죽여버릴 수도 있었다.
“우리 유경인들은 말을 하면 지킬 줄 아는 사람이니 약속을 지켜야 한다.”
국왕이 말한 뒤 두변에게 물었다.
“줄리앙 선생에게 철갑전함 한 척을 주겠소. 어느 철갑전함을 갖고 싶으시오?”
“리아나 군주께서 지휘하시는 천랑호를 가지고 싶습니다.”
두변의 대답에 리아나 군주의 안색이 급변했다.
두변이 이어서 말했다.
“리아나 군주께서 제가 있는 나라로 가서 한동안 머물러주셨으면 합니다. 제 선원들이 철갑전함의 조작법을 완전히 익힌 뒤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시는 겁니다.”
콘스탄틴 국왕이 한참을 고민하다가 손을 휘휘 저었다.
“태자, 리아나. 일단 나가 있거라.”
두 사람이 나가자, 방대한 대전 안에는 두변과 유경 국왕 둘만이 남았다.
“줄리앙 선생,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였소.”
국왕의 말에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국왕 폐하께서 혼수상태에 빠지신 것과 악귀가 붙은 건, 누군가의 엄청난 음모였을 겁니다.”
“젊은 동방인, 내가 나이가 많은 건 맞지만, 내 눈과 마음은 혼탁해지지 않았소.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나도 알고 있다는 뜻이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자네에게 철갑전함을 한 척 줄 리 없지. 우리는 동방 세계와 약속을 한 게 있소. 동방 세계에 대량살상 무기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동방 세계는 동방 연합 왕국의 땅이나 다름없는데, 내가 자네에게 철갑전함을 한 척 준다는 건, 동방 세계와의 해상 균형을 깨트리겠다는 뜻이오.”
두변이 허리를 숙여서 예를 올렸다.
“현명하십니다. 국왕 폐하.”
“리아나 군주와 군주의 천랑호를 자네에게 주겠소. 2년을 줄 테니, 약속한 시간이 끝나면 리아나 군주와 군주의 선원들 모두 안전하게 왕국으로 돌려보내야 하오.”
“알겠습니다. 폐하.”
두변이 고개를 들고 이어서 말했다.
“국왕 폐하, 제가 이 철갑전함을 가지고 동방 세계로 돌아가는 동안, 습격이나 강도를 당할 수도 있겠습니까?”
“동방인 줄리앙, 내가 깨어났으니 이 세상의 그 어느 국가도, 그 누구도 유경 왕국의 전함을 공격하지 못할 것이오.”
국왕의 목소리는 허약했지만, 그의 위엄과 패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날 밤, 두변은 유경 왕국의 귀빈실에서 묵게 되었다.
‘시스템, 내가 성공적으로 철갑전함 한 척을 얻게 되었어요. 양기가 100이 되어서 다시 진정한 사내가 되는 임무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프리카의 거양족(巨陽族)이라는 종족을 아는가?’
시스템이 되물었다.
두변은 다른 지구에 존재하는 아프리카의 거양족을 알고 있었다.
그곳의 남자들은 암소의 분비물을 자주 핥아서 강력한 호르몬 자극을 받으며, 이 이유로 그들의 그곳이 무척 거대하고 양기가 정상 남자의 몇 배가 된다는 얘기가 있었다.
꿈속 시스템이 말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고, 1천 6백 년 전에 이계의 에너지가 이 지구에 침투했을 때, 그곳에도 대지 균열이 일어났다. 그곳 지하에는 신기하고 강력한 이계 괴수가 살고 있는데, 그 괴수가 내쉬는 숨이 그 지역 대륙에 영향을 끼쳐서, 주위 백 리 내의 모든 남자가 거대하고 엄청난 성능을 자랑하는 그것을 가지게 되었지.’
‘열양수(烈陽獸) 말입니까?’
두변은 놀랐다.
그는 영종오 대종사가 쓴 한 서책에서 열양수에 관한 소개를 본 적 있었다.
그 괴수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도 무척 놀라워했었다.
‘사실 열양수는 교룡의 일종이었는데, 이계의 에너지가 침투되어서 기형 변형이 일어났고, 특수한 양성 기운이 가득한 몸이 되었지. 3백 년 전, 성로마 제국의 황제가 너처럼 선천적인 고자였는데, 정변을 일으켜서 황제가 되었다. 그자도 온갖 수단과 방법을 썼는데도 정상적인 남자가 되지 못했었다.’
정변을 일으켜야만 황제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태생이 고자인 사람은 제국의 후계자로서 자격이 없었을 테니까.
꿈속 시스템이 이어서 설명했다.
‘그런데 어느 날, 연로한 술사가 성로마 제국의 황제를 찾아와서, 아프리카에 있는 열양수가 엄청난 양성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렸지. 그 괴수를 죽이기만 하면, 괴수의 피와 결정핵으로 연단해낸 단약을 먹으면, 태생이 고자인 사람도 정상적인 양기를 되찾을 수 있다고 말이야. 성로마 제국의 황제가 이 사실을 알게 된 뒤, 열양수를 죽이기 위해서 곧바로 막강한 제사장들과 군대를 아프리카로 보냈다. 그때 황제가 총 네 번이나 군대를 보냈고, 수만 명이 목숨을 잃은 뒤에야 열양수를 죽일 수 있었다. 그리고 실력이 뛰어난 술사들에게 열양수의 피와 결정핵으로 연단을 만들게 했지. 술사들은 무려 2년의 세월을 들여서 열양용단 세 알을 연단해냈다. 열양용단은 세간에 환양단(還陽丹)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그리고요?”
‘그런데 성로마 제국 황제가 열양용단을 한 알 복용하자마자 온몸의 근맥이 파열되어서 즉사했다. 연단을 만든 모든 술사가 처형을 당했는데, 연단을 이끌었던 수석 연단 술사가 행방불명되었지. 그때 만들었던 나머지 두 알의 열양용단도 사라지게 되었고.’
‘그러니까, 성로마 제국 황제의 계획이 실패했다는 뜻이군요.’
‘그렇다. 그가 열양용단을 먹자마자 몸이 터져서 죽은 거니까. 그런데 몇 개월 전에, 그 전설의 열양용단이 유경 왕성의 경매장에 나타났다. 열양용단의 주인은 무척 비밀스러운 사람이고, 가격도 10만 금화부터 시작할 정도로 아주 비싸게 경매를 했다더군.’
두변이 유경 왕국으로 오게 된 게 어쩌면 하늘의 뜻이 아니었을까.
열양용단 같은 건 오직 유경 왕국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큰 암시장에서만 거래될 테니까.
‘10만 금화요?’
하지만 그 가격은 경악할 정도였다.
10만 금화는 두변에게는 거의 천문학적인 숫자의 금액이었다.
하지만 성로마 제국의 황제가 이 단약을 위해 치른 대가를 생각하면, 10만 금화가 또 그렇게 비싼 것 같진 않았다.
꿈속 시스템이 말했다.
‘너무 비싸기도 하고, 3백 년 전에 성로마 제국의 황제가 이 단약을 먹자마자 죽었기도 해서, 많은 사람이 열양용단을 두려워하기만 하고, 애초에 환양이라는 기능이 있는 게 아니라, 황제를 암살하기 위해 만들어진 음모라고 생각하지. 그래서 열양용단이 경매장에 오른 지 몇 개월이 지났는데도 계속 유찰되고 있다.’
두변이 보기에도 열양용단은 성로마 제국 황제를 암살하기 위한 음모 같기도 했다. 황제가 죽은 뒤에 수석 연단술사가 실종되었다고 하지 않나.
꿈속 시스템이 말했다.
‘내일 아침이 밝자마자 리아나 군주를 찾아가도록 해라. 리아나 군주에게 천국탑의 경매장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해야 해. 열양용단은 내일도 경매에 오를 것이고, 아무리 많은 돈, 아무리 큰 대가를 치르게 되더라도 꼭 열양용단을 구해야 한다. 이건 백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야.’
‘그걸 사려면 10만 금화가 필요할 텐데, 그 돈을 어디서 구해요? 콘스탄틴 국왕도 나한테 그렇게 큰 돈을 주진 않을 것 같은데요.’
‘국왕이 왜 너한테 그 돈을 주겠냐. 국왕은 이미 철갑전함으로 자신의 목숨값을 치렀다. 네가 세계의 갈라진 균열에서 가져온 매마의 피 결정체 기억하나?’
두변은 당연히 그 결정체를 기억했다.
제12대 북명종주 오애지가 매마와 마지막 전투를 치른 뒤, 생명이 다하기 직전에 두변에게 매마의 피로 응집한 결정체를 건네줬고, 이게 무척 진귀한 것이라고 말해줬다.
꿈속 시스템이 말했다.
‘그 결정체의 10분의 1 정도를 잘라내서, 익명으로 내일 열릴 경매에 참여해라. 시작가는 10만 금화로 설정하고.’
‘사람들이 매마 피의 결정체가 진귀한 건지는 알고 있나요?’
‘아니,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유경 왕성의 천국탑에서 네 수정체를 경매에 올리는 걸 거절할 것이다. 게다가 10만 금화로 시작가를 설정하는 것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리아나 군주의 도움이 필요하다. 리아나 군주의 권한으로 이 수정체를 강제로 경매에 참여시켜야 하고, 10만 금화로 경매를 시작해야 한다.’
열양용단은 적어도 유래 깊은 사연과 배경이라도 있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희소성이 있는 물건이라지만, 이 매마 피의 결정체는 일반인이 봤을 때는 그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투명한 계혈석(鷄血石)일 뿐이었다.
두변이 물었다.
‘그럼 매마 피의 결정체가 유찰될 가능성은 없나요?’
‘매마 피의 결정체를 아는 사람을 마주치게 된다면, 그 사람은 아무리 큰 대가를 치르더라도 수정체를 사게 돼 있다.’
시스템의 단호한 말에 두변은 매마 피의 결정체를 꺼냈다.
주먹 하나 정도의 크기의 결정체를 경매에 입찰하기 위해 1할 정도 잘라내려는 순간, 꿈속 시스템이 말했다.
‘아 잠깐. 20분의 1이 좋겠다.’
시스템이 매마 피의 결정체를 엄청난 보물로 여기는 걸까?
두변은 수정체를 조심스럽게 20분의 1을 잘라냈다.
잘라낸 결정체는 누가 봐도 평범하고 투명한 수정 같았지만, 신비한 기운이 아주 미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신비한 기운이 너무 은은해서, 두변도 겨우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다른 평범한 사람들 눈에는 이 결정체 조각이 그저 그런 붉은 보석에 불과할 것이다.
리아나 군주가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붉은 수정체를 빤히 바라보더니,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고작 이 보석을 10만 금화에 팔겠다고요?”
“10만 금화는 시작가입니다. 이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마법 수정입니다.”
“이 마법 수정으로 오늘 열릴 최고 경매에 참여하고, 시작가를 10만 금화로 해줄 수 있어요. 하지만 결과가 실망스러울 것 같은데요. 그저 평범한 보석이잖아요. 기껏해야 은화 한 닢 정도의 값어치일 거예요.”
리아나 군주가 두변을 데리고 천국탑으로 향했다.
천국탑 상회의 주인이 두변이 가져온 수정체 조각을 손에 쥐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기껏해야 은화 한 닢 정도 할 평범한 보석 같은데요. 군주, 이번 최고 경매에는 오직 물건 열 개만 입찰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이 물건을 껴 넣으셔야 하는 겁니까? 이 물건은 분명히 유찰될 것이고, 우리 천국탑의 명예에도 손해를 끼칠 텐데요.”
리아나 군주가 두변을 쳐다보았다.
“천국탑의 주인은 유경 왕실의 가장 충직한 신하예요. 이 사람이 천국탑을 관리한 지 벌써 20년이나 되었고,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진귀한 보물을 봤던 사람이에요. 이 사람이 당신의 마법 수정이 은화 한 닢 정도의 값어치라면 정말 그런 거예요. 그래도 입찰할 건가요? 진짜 확실해요?”
“네, 확실합니다.”
두변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글렌 대인, 명령을 따르세요. 줄리앙 선생의 마법 수정을 진귀품 목록 안에 넣어서 경매를 진행하세요.”
천국탑 상회 주인 글렌이 울상을 지으면서 말했다.
“군주, 진짜 천국탑 명성에 흠이 될 수도 있다니까요. 아무리 봐도 이건 평범한 붉은 보석이에요.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으로 수를 쓰는 거라고 욕할 겁니다.”
“명령을 따르세요. 줄리앙 선생은 국왕 폐하의 벗이에요.”
글렌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군주 전하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정말로 오늘 치욕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겠군.
아무리 봐도 평범한 붉은 보석을 10대 진귀품 목록에 넣어서 입찰하라니.
글렌이 두변을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