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장: 기음음
그들은 세상의 균열 중 인간에게 속한 부분으로 돌아와서 황금 집 안에 들어갔다.
“사명의 주인, 너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라. 모든 정신의 방어를 풀고 모든 심리적 방어를 풀어라.
꼭 기억해야 한다. 반드시 남김없이 내려놓아야 한다.
이제 우리가 북명대법을 너에게 전수하겠다. 우리의 무도 수준을 너에게 물려주겠다.
반드시 모든 정신 방어를 풀어야 한다. 아주 조금이라도 방어가 남아 있다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감당할 수 없는 결말을 맞는다. 곧바로 너와 우리가 함께 연기로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두변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어르신.”
이윽고 그는 눈을 감고서 정신의 방어를 풀고 몹시 이상한 상태에 진입했다. 죽음과 어딘지 가까운 상태라고나 할까.
물론 실제로 그의 몸은 지금 죽은 셈이었다. 심장이 박동을 멈췄을 뿐 아니라 호흡도 멈췄으니까. 온몸이 차가워지고 감각이 없어서 걸어다니는 시체와도 같으니까.
그런데 이제 정신까지 가사 상태에 빠진 것이다.
사람이 완전히 텅 비고 빈 껍데기만 남은 상태에서 남이 그 안에 무언가를 넣도록 내버려둔 상태이다.
북명 종주 다섯이 시선을 교환하더니 두변의 주위에 앉아 오성진(五星陳)을 만들었다.
12대 북명 종주 오애지가 말했다.
“선조의 예언을 위해, 사명을 위해, 온 세계를 위해, 우리 시작합시다.
어쩌면 우리는 연기로 사라질지 모른다네.
어쩌면 구름처럼 흩어지며, 혼비백산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모든 건 그럴 가치가 있어. 모든 희생은 다 그럴 가치가 있어.
어쩌면 이것도 일종의 해탈인지도 모르지.
시작하게!”
북명 종주 다섯이 손을 뻗어서 각각 두변의 가슴, 등, 이마, 정수리, 뒤통수를 눌렀다.
그런 뒤 공력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충격적이며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그 장면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정수리에서 기가 뿜어져 나오거나 두 손이 발광하는 종류가 아니었다. 오히려 다섯 종주의 몸에서 혼백이 빠져나가는 것 같다고나 할까.
휙, 휙, 휙, 휙, 휙.
다섯 종주의 빛이 끊임없이 두변의 체내로 파고들었다.
사실 다섯 종주는 신체가 없고 그 자체가 빛이었다. 강대한 기운이 충만한 빛들이 두변의 체내로 밀려 들어가면서 다섯 종주들의 형체가 점점 더 옅어지기 시작했다.
오애지가 말했듯이 이렇게 공력을 전달한 후의 결말은 그들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일 테다.
그런데 더 대단한 건 두변의 몸이 블랙홀과도 같다는 점이었다.
그 수많은 내력이 두변의 몸으로 밀려 들어갔지만, 바다에 가라앉은 것처럼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 순간 다섯 종주는 완전히 경악하고 말았다.
‘두변이 마셨다는 암흑 물질이란 것이 대체 어떤 것이길래, 이토록 거대한 구멍을 만든 거지? 그 구멍을 채우기가 너무 힘들 것 같은데?’
현재 상황은 몹시 간단했다.
두변이 암흑 물질을 마신 대가로 제가 갖고 있는 모든 기운과 생기를 지불했다. 그러니 동등한 기운이 들어와서 두변의 신체를 평형에 이루게 해야만 그의 몸을 부활시킬 수 있었다.
관건은 두변이 조금 전에 그토록 거대한 지옥불을 집어삼킨 데다, 지금 다섯 종주가 또 끊임없이 기운을 주입하는데도 여전히 두변 몸 안의 구멍을 메울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일각 뒤.
19대 북명 종주 임유천이 말했다.
“이 아우가 먼저 가겠습니다. 선조를 위해, 사명의 주인을 위해, 세상을 위해.”
그런 뒤 희미하게 빛무리로 남아 있던 임유천의 형체가 곧바로 연기처럼 사라졌다.
또 반각이 지난 후 18대 북명 종주 언불멸이 말했다.
“이 아우도 먼저 가겠습니다. 형님들이 대성공을 거둬서 사명의 주인이 열반해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겠습니다.”
이윽고 언불멸의 형체도 연기로 사라졌다.
그들은 혼백까지 흩어져서 모든 세계에서 사라졌다.
또 반각이 지난 후, 15대 축천한이 말했다.
“두 분 형님, 아우가 먼저 가겠습니다.”
이윽고 그도 연기로 사라지면서 혼백이 흩어졌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두변의 호흡과 맥박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고, 온몸은 여전히 죽은 채였다.
12대 북명 종주 오애지는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만약 다섯 종주의 기운을 전부 두변에게 전수해주었는데도 두변의 단전을 채울 수 없다면, 그럼…… 놀라운 결말을 맞게 된다.
두변이 열반해서 다시 태어나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또 반각이 지나자, 13대 북명 종주 구양노가 말했다.
“형님, 하늘에 기도합시다. 이 아우 먼저 가겠습니다.”
이윽고 그도 연기로 사라졌다.
이제 12대 북명 종주 오애지만 남았다.
오애지가 이를 악물고서 소리를 질렀다.
“하늘의 뜻에 따르자!”
그의 몸이 수많은 빛으로 바뀌어서 미친 듯이 두변의 체내로 밀려들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두변의 단전 안에서 화염 한 송이가 맹렬히 터져나오더니, 이어서 그의 온몸 자체가 활활 타올랐다. 그와 동시에 용의 비늘이 한 줄씩 나타나면서 무시무시한 금빛을 발산했다.
더욱더 전율적인 건 두변의 정수리에 뿔 두 개가 갑자기 자라났다.
두변의 눈이 녹색 화염으로 타올랐다.
기음음에게 남은 생명은 2달 남짓이었다.
정말 슬픈 일이었다.
두변과 함께한 시간이 벌써 1년이나 지났다.
지난번에 암흑 물질을 마신 뒤에 갑자기 엄청나게 강해져서 북명검파 대종사급 강자 2명을 죽이고 두변을 살려냈다.
그때 이후로 기음음은 계속해서 휴면 상태에 들어갔고, 미약한 심장박동과 호흡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원래 두변은 이번 전투가 끝난 뒤에 우선 경성으로 들어가서 북명검파를 찾아가 기음음을 살릴 방법을 찾고자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두변도 쓰러지게 되었으니, 기음음도 그저 매일 이곳에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기란정이 경성에서 두변을 데려간 후 계표표는 빠른 속도로 서남으로 돌아와 이문회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계표표가 서남에서 할 일이 많지 않은지라, 대부분 시간을 무도 수련에 썼고, 남은 시간에는 기음음의 방 안에서 그녀의 곁을 지켰다.
기음음은 혼수상태에 빠져 있음에도 매일매일 어려졌고, 그녀의 모습은 벌써 서너 살 어린아이가 되어 있었다.
기음음은 북명종주의 부인 기염염과 쌍둥이 자매로, 그녀의 부모는 이 두 아이를 낳았을 때 분명히 무척 행복했을 것이다.
지금 기음음의 모습은 꼭 인형처럼 귀여웠다.
기음음의 작고 갸름한 얼굴에 아름다운 이목구비가 오목조목 들어가 있어서, 눈을 감고 있음에도 정밀한 옥 조각처럼 어여뻤다.
계표표는 기음음을 보면 볼수록 마음이 아려왔다.
계표표의 나이는 올해 서른이었다. 매일 어려지는 기음음을 보고 있자니 모성애가 샘솟는 건지 기음음이 꼭 자신의 딸처럼 느껴졌다.
두변은 서남에서 점점 더 막강해졌고, 지금도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지만, 기음음의 죽음에 대해선 속수무책이었다.
잔혹한 현실은, 세계의 균열에 있는 두변은 생사조차 알 수 없었기에 기음음은 이곳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어야만 한다는 점이었다.
부홍빙과 기세 소성주 부부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기세 소성주가 말했다.
“기음음은 우리와 같은 종족이지만, 난 기음음을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기음음의 부친은 기음음이 아예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부녀의 정을 완전히 끊었기 때문입니다.”
부홍빙이 계표표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어깨를 살짝 토닥였다.
“기음음은 반평생을 살아있는 전설로 지냈는데, 그래도 마지막엔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떠나는 것이니, 너무 속상해하진 말아요.”
계표표가 결국 울음을 터트리면서 연신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죽어선 안 될 사람이에요. 정말로요.”
기음음의 인형 같은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부홍빙은 저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한평생을 독신으로 살게 될 운명이니, 남녀 간의 정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대도, 미련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기음음처럼 예쁜 딸이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홍빙이 허리를 숙이고 기음음의 뺨에 다정하게 입맞춤을 했다.
기세 소성주의 부인은 아이를 둘 낳은 어머니이다 보니, 어린아이가 아프거나 고생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어했다.
방에 들어온 그녀는 기음음의 모습을 보자마자 눈물을 주르륵 흘리면서 남편의 품에 기대어 울음을 터트렸다.
기세 소성주가 부인의 등을 토닥이면서 그녀를 달랬다.
“이제 갑시다. 주군께서 계시지 않으니 우리가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몫이 더욱 무거워졌으니까요.”
부홍빙이 말했다.
세 사람은 군에서 중요한 직무를 맡은 터라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세 사람이 떠나가자, 방 안에는 또다시 계표표와 기음음 두 사람만 남았다.
계표표가 기음음의 작은 몸을 품에 끌어안았다.
기음음을 너무 살리고 싶은 나머지, 계표표는 미쳤다고 할 수밖에 없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계표표는 자신이 북명검파에 들어가기도 힘들다는 걸 알지만, 북명검파에 찾아가서 영도현에게 기음음을 살려달라고 사정하고 싶었다.
이 생각이 뇌리를 스치자, 계표표는 진지하게 자신이 북명검파에 갈 방법이 없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때, 마당 주위에서 잔잔하게 지저귀고 있던 새 소리와 벌레 울음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방 안은 마치 엄청난 기운에 완전히 압살된 것처럼 정적이 흘렀다.
이어서 계표표의 눈앞이 잠시 하얘지더니, 그녀의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신비로운 향기를 가진 이역(異域)의 여인이 얇은 면포를 얼굴에 두르고 있었다. 면포 사이로 여인의 푸른 눈동자가 보이는데, 눈빛이 바닷속처럼 속을 알 수 없었다. 이마에는 보랏빛 보석이 박혀 있는데, 보석 덕분인지 그녀의 얼굴이 더욱 새하얘 보이기만 했다. 화려한 치마를 두른 여인은 열 손가락에 화려한 장신구를 달고 있었다.
계표표는 살면서 이 여인처럼 가느다랗고 매혹적인 손가락을 본 적이 없었다. 이 여인의 살짝 드러난 잘록한 허리만큼 아름답고 매끈한 허리를 본 적이 없었다.
갑자기 나타난 이역 여인은 어디에 눈길을 두어도 매혹적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여완완보다 더 아름답네.’
계표표가 본능적으로 생각했다.
낯선 이역의 여인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기음음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생명이 두 달 남았네요.”
이역 여인의 말에 계표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회춘한 건가요?”
여인이 묻자, 계표표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 사람을 살릴 수 있어요.”
“정말요?”
계표표가 떨리는 목소리로 되묻는데, 이역의 여인이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기음음의 이마를 살짝 짚었다.
“으음.”
기음음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면서 서서히 눈을 떴다. 그러더니 잠투정하는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리면서 물었다.
“두변 오라버니는 어딨어?”
그러더니 다시 피곤한 듯 하품을 하고는 눈을 감았다.
기음음은 2초만에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면서 휴면 상태로 돌아갔다.
이역의 여인이 말했다.
“지금 잠깐 깨어난 시간 동안, 이 사람은 보름치 생명을 소진했어요. 이제 수명이 한 달 반 남은 셈이네요.
우리가 이 사람을 살릴 수 있어요. 정확히 말하면, 우리만 이 사람을 살릴 수 있어요.”
이역의 여인이 계표표를 향해 두 손을 내밀면서 말을 이었다.
“우리에게 넘겨줘요.”
계표표는 아쉬우면서도 동시에 불안했다.
사실상 이역의 여인은 절대 무공자여서 손쉽게 계표표에게서 기음음을 빼앗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여인은 기음음을 빼앗아오지 않고, 계표표에게 손을 내밀면서 그녀가 기음음을 안겨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들은 누구죠?”
“지금 그게 중요한가요?”
이역의 여인이 되물었다.
맞는 말이다. 지금 그게 중요한가.
기음음에게는 살길이 없던 터라, 갑자기 나타난 이 신비로운 여인이 그녀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래, 기음음을 살릴 수만 있다면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지.
계표표는 두 눈을 감고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기음음의 이마에 입맞춤했다. 그리고는 기음음을 안아 들어서 이역의 여인에게 건넸다.
“잘 있어요.”
이역의 여인은 이 말만 남긴 뒤, 눈 깜빡할 사이에 계표표의 시야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