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20화 (420/648)

420장: 한 가지 작은 일

두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혈관음, 계표표, 이도진 세 여인과 평생을 같이하기로 약속했지만 중매인을 통해 정식으로 정혼한 사람은 없었다.

“여인이 한 명 이상 있습니다. 한데…… 부부의 인연을 맺은 사람은 없습니다.”

“크흠…….”

두변의 답에 황제는 참지 못하고 기침을 한 번 하면서 그를 힐끗 노려봤다.

‘황후 앞에서 뭘 사실대로 말하는 거냐?’

황후는 도리어 듣지 않은 척했다. 황제도 순정파에 속하긴 하지만 빈이든 비든 한 명 이상 들였다. 게다가 황후를 막 아내로 맞아들이는 시기에는 아직 어린 편이라서 예쁜 여자를 보면 생선을 본 고양이처럼 굴기도 했다.

어차피 황후가 만나봤던 남자 중 진정 평생토록 한 여인과만 함께 했던 남자는 여창 국왕밖에 없을 것이다.

“두변, 그럼 내가 영설 공주를 정식으로 네 아내로 맺어주겠다. 어떠냐?”

황제의 말에 두변이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영설 공주를 아내로 맞는 건 본래 시스템이 그에게 알려준 중대한 사명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시스템의 계획에 따르면 양기 수치가 백까지 차고, 그에 대한 영설 공주의 호감도가 백까지 찬 뒤에야 그녀를 맞아들인다고 했다.

하지만 두변이 연달아 시스템의 노선을 거스르면서 이런 결과가 초래된 듯했다.

양기 수치가 아직 백까지 차지 않았는데도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다니!

“폐하, 제가 사적으로 폐하께 몇 마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두변의 말에 황후, 영종오, 이연정 등이 다 물러갔다.

영설 공주는 나가지 않고 여전히 남아 있었다.

두변이 말했다.

“폐하, 제가 영설 공주를 몹시 좋아합니다. 한데 저는 지금 여전히 정상적인 남자가 아닙니다. 또 가장 중요한 건 제가 세운 공이 너무 커서 폐하께서 반드시 제게 포상을 주시려고 하는 것이겠지만, 그게 영설 공주께는 부당한 일을 겪게 하는 포상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황제가 두변을 잠시 바라본 뒤, 웃으며 말했다.

“두변, 내 새로운 내각의 대신들이 모두 하는 말이, 네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고 하더군. 적어도 네 군대를 세 부분으로 나누고 사람을 보내 네 군대를 관장해야 한다고 하더구나. 더군다나 서남 여러 성의 관원들을 전부 교체해서, 어찌 되었든 서남 세 성을 두변 네 사적인 영지로 만들어서는 안 되고, 너를 여여해보다 더 강한 제후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더구나.

거의 모든 이가 그렇게 의견을 내놓았다. 방계가 물러남에 따라 대녕 제국 북부의 문관들은 내 앞에 무릎 꿇지 않을 수 없게 되었지. 이에 그들은 3백 명 이상의 문무 관원들을 추려서, 네 권력을 나눌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전부 부결해버렸다.

나는 여씨의 수하, 이문회, 또 절세 지하성에 많은 정무의 고수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특히 절세 지하성에서 시행되고 있는 정치에 대해서, 네가 내게 준 서신을 통해 전부 읽었는데 아주 개혁적이더구나.

서남 전체를 네가 함락시켜서 그곳은 현재 백지와도 같다. 나는 차라리 네가 그 토지의 생산력을 완전히 높일 수 있는지 시도해보게 하고 싶구나.

두회와 방탁은 말끝마다 우리 대녕 제국은 낙후한 곳이라 문명이란 것이 우리에게서 이미 멀리 떠났다고 말했다. 동방 연합 왕국이 얼마나 앞섰고, 생산력이 얼마나 발달됐는지 말하면서 말이다. 그럼 짐은 네가 서남에서 그런 시도를 해보게 하고 싶다. 너는 이미 발전 계획을 세워놓지 않았더냐?”

“예, 폐하. 저는 절세 지하성의 관원들을 3천 명 선발하여 배치해 두었습니다. 발전 계획을 수립한 뒤, 전면적으로 서남에서 시행할 계획입니다. 그 계획을 가져왔으니 잠시 후에 폐하께서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좋다. 그럼 우리가 방탁과 두회에게 증명해 보이자꾸나. 우리 대녕 제국이란 땅덩어리에서도 ‘진보적인 생산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말이다. 그 단어가 참 좋더구나. 네가 내게 쓴 밀서에서 그 단어가 가장 인상 깊었었다.

대신들은 서남 전체가 너의 독립적인 왕국이 될 것이라고, 두변, 네가 또 다른 여씨가 될 거라고 하더구나.

나는 두변 네가 제후가 될 것이라고 말했으니, 너는 그 말대로 제후가 되는 게 좋겠다. 만약 정말 그들이 말한 그런 날이 오더라도, 어쨌든 이익이 대녕 제국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니지 않으냐?”

그 말을 듣자 두변은 즉시 무릎 꿇었다.

“신, 제국을 위해 온 힘을 다 바치고, 죽을 때까지 그치지 않겠습니다!”

황제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짐이 영설 공주를 네게 짝지어 주려고 하는 것이다. 너에게 포상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내 자신을 위해서다.”

“하지만 이 일은 공주 자신의 의지를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

두변의 말에 황제는 비길 데 없이 아름다운 영설 공주를 돌아보며 물었다.

“영설, 너는 원하느냐?”

영설 공주가 두변을 진지한 얼굴로 바라보더니,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참지 못하고 웃고 말았다.

황제가 말했다.

“그럼 그렇게 정했다. 두변, 너는 경성에 사흘간 머무르거라. 내일 내가 너희를 위해 혼례를 거행하겠다. 흠천감(欽天監)이 살펴보니 내일이 바로 길일이라더구나.”

두변은 그 말에 당황했다.

그건…… 너무 급한 것 아닐까요?

황제가 공주를 시집보내는 과정은 몹시 복잡해서 준비하는 데에만 적어도 반년은 필요한 것으로 아는데요?

황제가 말했다.

“짐이 이 일을 천하에 알릴 것이다. 하지만 혼례 자체는 최대한 간소하게 진행해서 절대로 백성에게 부담을 주거나 물자를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경성에 네가 머물 진서후부(府)를 준비해두었으니, 때가 되면 꽃가마와 함께 황궁에 와서 신부를 데려간 뒤, 모두 함께 진서후부에 들어가서 혼례 축하연을 하자꾸나. 소박하고, 대범하지만 장중하고, 경사스럽게. 그렇게 진행해도 되겠느냐?”

두변이 본능적으로 영설 공주를 바라보자, 공주가 부끄러워하면서 말했다.

“왜 날 보고 그래요?”

두변이 본능적으로 그녀를 볼 때 공처가의 기질이 드러났기 때문일까?

물론 그런 건 아니었다.

단지 모든 게 너무 급작스러웠다. 두변은 자신의 종신대사에 관해서는 확실히 자기 주관이 없는 편이었고, 현대 지구의 이성관에서 보자면 망나니나 마찬가지인 자였다.

두변이 말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황제가 웃으며 말했다.

“가라, 운봉이 너를 데리고 진서후부로 갈 것이다.”

두변의 진서후부는 황궁과 아주 가까워서 고작 2천 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이곳은 본래 다른 후작부였다. 방계가 철수할 때 경성 안의 많은 공훈 귀족 가문도 그들을 따라 남경으로 갔고, 덕분에 많은 저택이 비어버렸다.

후작부는 300여 묘 크기로, 저택의 전 주인은 이곳에 분명히 많은 은자와 심혈을 기울였을 것이다. 저택 전체가 웅장하고 화려할 뿐 아니라, 정자와 누각, 축대와 호수 위의 건축물까지, 비록 경성이지만 제법 강남의 경관을 따라하고 있었다.

후작부에 들어간 두변은 빽빽하게 종복들이 서 있는 걸 발견했다.

그 노복과 시녀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주인을 뵙습니다.”

두변이 놀라며 환관 운봉에게 말했다.

“이건, 너무 사치스럽습니다.”

운봉이 나직이 말했다.

“이들은 대부분 경성에서 식량이 끊겼을 때 남겨진 고아들입니다. 부모들이 아이가 굶는 게 마음 아픈 나머지, 먹을 걸 아이들에게 주고, 자신들은 굶어 죽었습니다. 폐하께서는 이 아이들을 키울 방법까지 생각하셨습니다. 당신의 후작부는 장래에 부마부(駙馬府)가 될 테니, 아이들을 일부 여기에서 키우면 될 겁니다.”

두변이 종복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순식간에 다정해졌다.

“일어나거라.”

“진서후를 뵙습니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환관 하나가 두변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자, 두변이 급히 그를 부축해주었다.

운봉이 말했다.

“이자는 이홍경 공공입니다. 이연정 어르신을 따르던 분이라서 무공이 몹시 높습니다. 앞으로 이홍경 공공이 후작부의 가령(家令: 집사장. 가문의 고용인들을 지휘, 감독하고 집안일을 두루 살펴 관리하던 사람)입니다.”

아, 이제 보니 절대적인 내 편이었구나.

두변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 공공이 고생을 해주시지요.”

그날 밤, 새로운 후작부에서 두변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제 정말로 혼례를 올려야 했다.

혈관음이나 계표표처럼 사적으로 평생을 함께 한다고 약속하는 게 아니라 진정한 혼인이었다.

두변은 여전히 환관이니, 영설 공주가 두변에게 시집가면 분명히 듣기 안 좋은 말들이 나돌 것이다. 어떻게 보면 공주가 억울한 일을 많이 겪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황제가 영설에게 시집가길 원하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웃을 뿐이었다.

그런데 영설 공주와 혼인을 한 후 생과부처럼 지내게 둬야 할까?

내일이면 혼례를 하는데, 아니지, 오늘이지!

물론 두변의 혀와 손 기술은 초일류였다. 그것만으로도 다른 여인들과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영설 공주는 다르지 않나.

그녀가 두변과 혼인하게 되면 자손을 낳고 키워야 한다.

그의 양기 수치는 대략 절반쯤 찼지만 전부 차기까지는 몹시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 순간 두변이 물었다.

‘시스템, 내 양기 수치를 즉시 백으로 채울 방법이 있습니까?’

시스템이 잠시 침묵한 뒤에 답했다.

‘있다!’

‘무슨 방법입니까?’

‘그 방법은 북명검파에 있으니 곧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두변이 울컥해서 소리쳤다.

‘오늘 밤, 동방(洞房)에서 화촉을 밝혀야 한다고요! 그런데 북명검파에 가야만 양기 수치가 가득 찰 거라고요?’

‘네가 단지 영설 공주의 처녀성을 깨려고만 한다면, 아마 방법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런 의미가 없지.’

‘꺼지십시오!’

두변이 창가에 다가가 바깥의 하늘을 바라보니, 이미 날이 어슴푸레 밝아왔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두변은 자신이 밤새 잠을 자지 못한 이유가 자신의 양기 수치 때문이 아닐뿐더러, 영설 공주와 동방에서 화촉을 밝혀야 하기 때문도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바로 태자 때문이었다.

백색성에서 밀서 한 통을 받았었다. 거기에는 방계의 조건을 설명한 뒤, 여담을 죽이면 교환 조건으로 경성에 대한 방계의 봉쇄를 풀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어제 황제를 만났을 때는 그 일을 꺼내지 않았다. 그것이야말로 그가 잠을 자지 못한 이유였다. 그 일을 황제에게 알려야 하지 않을까?

그건 작은 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큰 일이기도 했다.

아침 해가 떠오르자, 두변은 세수를 끝낸 뒤 다시 입궁했다.

“폐하, 신, 폐하께만 고할 수 있는 한 가지 작은 일이 있습니다.”

두변의 말에 이연정과 영종오가 즉시 물러났고 궁 주위의 모든 이가 물러갔다.

“지난번 서남 대전이 끝난 뒤, 신은 태자 전하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밀서 하나를 받았습니다.”

두변이 그 밀서를 꺼내서 건넸다. 황제가 그걸 받아서 열어본 순간 안색이 살짝 바뀌었다.

한참이 지난 뒤, 황제가 입을 열었다.

“이걸 가져와 보여줘서 고맙구나.”

“두회가 여담을 죽여야만 경성의 봉쇄를 해제하겠다고 제안했을 때, 총명한 이는 한눈에 그게 전략적인 위협이라는 걸 알아챘을 겁니다. 태자께서는 총명하고 지혜로우시니 그 점을 알아채지 못하실 수가 없습니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줄곧 태자가 자신보다 총명할뿐더러, 심지어 자신보다 황제에 적합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두변이 말했다.

“그와 동시에 방계는 여담에게 사람을 보내서 제가 그를 잡아서 경성으로 호송한 뒤에 능지처참할 것이라고 알렸습니다. 이런 간단한 이간계에 여담은 당연히 속지 않았습니다. 허니 신이 보기에 이 밀서는 아마도 방계가 위조했을 겁니다. 목적은 저와 여담을 이간질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저와 폐하, 저와 태자 전하 간의 관계를 이간질시키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얘야, 네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니 나도 몹시 기쁘구나.”

“왜냐하면 저는 태자 전하께서 이 밀서를 쓰실 아무런 이유도 생각해내지 못했고, 그 일이 전하께 아무런 이익도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이 밀서는 태자에게 아무런 이익도 가져다주지 못하지.”

“제가 만약 이 밀서를 내놓지 않았다면 그건 폐하께 불충한 겁니다. 한데 제가 이 밀서를 내놓은 것은 태자 전하께 불경한 것입니다.”

황제가 웃으며 말했다.

“괜찮다.”

이어서 황제가 다시 그 밀서를 펴서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두변이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그럼 신은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두변이 떠난 뒤, 황제는 다시 밀서를 펴서 살펴본 뒤 말했다.

“이연정, 태자를 오라 하라.”

“예.”

하지만 잠시 후 황제가 다시 말했다.

“됐다. 그럴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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