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13화 (413/648)

413장: 방계의 조건

천진의 어떤 장원 안.

전 내각 수보 방탁은 손에 든 밀서를 본 순간, 온몸을 덜덜 떨며 몇 살이나 더 늙어 보였다.

방탁은 탁한 숨을 연달아 내쉬었고, 맞은 편 두회의 안색은 흐려졌다.

“두회, 당신 아주 좋은 아들을 낳았구려.”

방탁이 비꼬며 말하자, 두회의 잘생긴 얼굴이 한바탕 실룩였다. 항상 침착했던 그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그 애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그 애의 그것 두 개가 없는 걸 발견했소. 그때 그 애를 물에 빠뜨려 죽여야 할지, 목 졸라 죽일지 생각했소. 만약 그때 그 애를 죽였대도 그 애를 기른 그 천한 노비 외에는 아무도 개의치 않았을 것이요. 희민지도 그 애를 몇 번 안지도 않았으니까. 내가 그때 어째서 그 작은 축생을 목 졸라 죽이지 않았을까…….”

두회는 생전 침착함을 잃은 적이 없지만, 오늘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방탁이 말했다.

“주인에게 신하가 두 무리 있소. 한 무리는 동방 연합 왕국에서 주군을 위해 영토를 개척하고 있소. 또 한 무리는 대녕 제국에서 주군을 위해 대녕을 도모하려고 하오. 이번에 두변이 대승을 거두었으니, 대녕 제국에 있는 우리 같은 신하들은 불운을 당할 것이오. 두고 보시오. 곧 불운을 당할 것이오.”

두회의 얼굴이 또다시 실룩거렸다.

그는 아직 나이가 많지 않은 데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그건 바로 장래에 동방 대제국의 수상이 되는 것.

그는 주군을 위해 대녕 제국을 도모하느라 피땀을 쏟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결국 이번에 이렇게 곤두박질치게 되었지 않은가. 그것도 자기 아들의 손에 곤두박질치게 되었으니.

방탁이 쉰 목소리로 물었다.

“북명검파는 어떻게 된 거요? 그렇게 큰 세력이 두변을 죽이려고 하는데 어째서 고작 예상 등 몇 명이 그 일을 막을 수 있단 말이오? 예상 그 못된 것이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는 거요? 두변의 생사가 그녀가 무슨 상관이 있다고?

대체 두변이 어떻게 이건 거요? 아무리 짐작해 봐도 전혀 이길 방법이 없는데, 대체 어떻게 이긴 거요?”

두회가 말했다.

“경성에 들어가서 황제와 담판하러 갑시다. 전장에서 손에 넣지 못한 것을 어쩌면 담판장에서는 얻을 수 있을지 모르오.”

다음날, 방탁과 두회는 경성에 들어와서 담판에 임하는 성의를 표하기 위해 식량 백만 근을 가지고 들어왔다. 고작 하루 이틀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양이었다.

황궁에서 그 일이 있은 후 몇 달만에 다시 황제를 알현하는 두회와 방탁이었다.

방탁이 머리를 조아리며 울었다.

“폐하, 몇 달을 못 뵈었는데 폐하께서 어찌 이리 마르고 쇠약해지셨습니까? 폐하, 반드시 용체(龍體)를 보중하셔야 합니다.”

황제는 나른하게 용교의에 앉아서 죽을 한 술씩 떠먹으며, 전 내각 수보 방탁의 공연을 지켜봤다.

두회가 앞으로 나오며 입을 열었다.

“신이 듣자니 두변이 선성후 육전을 독자적으로 참살했다고 합니다. 폐하께서 성지는 내리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성후가 비록 죄를 지었다 하나 필경 조정의 공을 세운 귀족이 아닙니까? 황상의 성지도 없이, 두변이 사적으로 그를 능지처참해버리다니, 지나치게 오만방자합니다.”

황제가 옆에 있는 영설 공주를 바라보며 물었다.

“두변에게 성지가 있더냐?”

영설 공주가 대답했다.

“있습니다. 저번에 아신(兒臣)이 두변에게 성지를 전하러 갔을 때, 상방보검(尙方寶劍)을 전했습니다. 게다가 성지에 똑똑히 적혀 있습니다. 서남의 전쟁에 관해서는 두변의 말대로 결단을 내리며, 형편에 따라 일을 적절히 처리하라고 말입니다.”

황제가 말했다.

“두회, 성지가 있었다. 허니 두변이 선성후 육전을 능지처참한 건 국법에 합당한 일이다.”

두회가 말했다.

“여씨는 필경 조정의 반역자이며, 여담은 위염 왕국의 왕태자였습니다. 한데 두변은 폐하의 성지를 받지도 않고, 사적으로 그의 투항과 충성을 받아들였으니, 그건 대단히 타당하지 않은 일입니다. 이번에 무려 15만 대군이 두변에게 충성을 바치게 되었습니다. 조정의 규율에 따라, 여담은 반란자의 수괴이니 마땅히 능지처참해야 합니다.”

황제가 말했다.

“그래, 조금 타당하지 않지. 운주는 성지를 작성해라. 여담을 꾸짖고, 그의 모든 작위를 박탈하고, 그에게 있는 문산성 안위사(宣慰使) 직분을 박탈해라. 여담을 문산 참장으로 책봉해서, 백색 총병인 두변의 휘하에서 목숨을 바치며, 책임지고 공을 세워서 자신의 죄를 속죄하라고 하라.”

그런 뒤 황제가 두회를 보고 말했다.

“이러면 타당해졌군.”

방탁과 두회가 시선을 교환했다.

황제가 너무 강경해서 이번 담판은 쉽게 풀리지 않을 듯했다.

두회가 말했다.

“듣자니 경성의 백만 백성 중 이미 만 명은 굶어 죽었다고 합니다. 운송이 원활해져서 식량이 대량으로 경성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곧 10만, 심지어 수십만이 굶어 죽을 겁니다.”

하지만 황제는 아무 말이 없었다.

두회가 말을 이었다.

“게다가 또 가을이라서 전국 각지에 파견된 엄당 세력, 즉 모든 시박사(市舶司), 광무사(礦務司), 염운국(鹽運局),또 양회(兩淮)에서 걷은 염세(鹽稅)도 운하로 운집된 채, 경성으로 운송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건 총…….”

방탁이 그 말을 받아서 입을 열었다.

“1,680만 냥입니다. 그건 첫 번째로 걷는 세금이며, 이어서 강남의 부세(賦稅: 농지세·조세 등 각종 세금의 총칭)도 이미 은화로 주조를 마치고, 경성으로 운송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올해 제국의 서남이 크게 어지러워졌으니, 그쪽에서는 아마도 조세를 걷기 몹시 어려울 겁니다. 게다가 하북, 하남, 산동에 가뭄이 크게 들었으니, 그쪽에서도 조세를 얼마 내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다른 성의 부세는 평소대로 걷을 수 있으며, 심지어 작년보다 더 많이 걷혔을 겁니다. 의외의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올해 조정의 재정 수입은 2,500만 냥이 넘을 겁니다.”

대녕 제국의 재정 수입은 명왕조 말기보다 높은 셈이다. 왜냐하면 동방 연합 왕국이 궐기하면서, 해상 무역이 시기보다 일찍 번영을 이뤘기 때문이다.

두회가 말을 이었다.

“곧 다시 연말이 될 겁니다. 산동 등 군대의 급료를 곧 지급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 2,500만 냥이라는 돈이 운하에 묶인 채 운반되지 않으면, 그때 제국에 큰 난리가 날 겁니다.”

상황은 몹시 명확했다. 두회는 2,500만 냥이라는 돈과, 해로와 수로로 운반되는 식량을 판돈으로 삼았다. 정확히 말하면 경성의 백만 백성들의 목숨을 가지고 황제에게 모종의 타협을 하라고 압박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사실상, 그 부세들과 식량들은 다 대녕 제국의 소유이니, 본래 황제의 손에 들어가야 마땅한 것들이었다.

물론 지난해에는 번번이 가로채고, 수많은 탐관오리들이 빼돌린 탓에 가까스로 국고로 들어간 건 천여만 냥에 불과했다. 올해는 황제에게 타협을 권하기 위해서 국고로 들어갈 돈을 2,500만 냥으로 늘린 셈이었다.

2,500만 냥이라는 돈만 있으면 황제도 부자가 될 수 있었다. 한 번도 여유로웠던 적이 없던 천윤제도 말이다.

황제가 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라. 너희는 무엇을 원하지?”

두회가 대답했다.

“청컨대 폐하께서 성지를 내리시어 반역자 여담을 체포해서 경성으로 들여와 능지처참해 주십시오. 두변은 불세출의 공을 세웠으니, 성지를 내리시어 그를 경성으로 오라고 하셔서 사례감에 들어가서 병필 환관을 맡게 해주십시오.”

여담을 죽이는 건 두변의 체면을 구기는 일이다. 즉 황제더러 두변의 뺨을 내려치라는 의미였다.

두변이 경성에 들어와서 병필 환관을 맡게 하는 건, 그더러 다시 환관으로 돌아가라는 의미였다. 겉으로는 더 좋은 직위로 오른 것 같으나, 실제로는 좌천당하는 셈이었다.

두회가 웃으며 말했다.

“서남에 있는 두변의 군대는 두 부분으로 나눠서 일부는 진남 공작 송결에게 넘기면 됩니다. 심지어 영설 공주에게 서남에 진수하라고 보내면 분명히 태산처럼 굳건해질 수 있을 겁니다.”

순간, 전 안이 정적에 휩싸였다.

두회가 말을 이었다.

“신의 제안은 전부 폐하께 최고로 유리한 겁니다. 폐하께서 승낙하시면 경성의 백만 백성들이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2,500만 냥도 순조롭게 국고로 들어올 수 있고, 폐하께서는 직접 서남의 병권을 장악하실 수 있습니다. 폐하께서도 두변을 좋아하시니, 그를 곁에 부르십시오. 그렇게 되면 그가 더 큰 군벌로 팽창한 나머지 그자를 지휘하는 게 어려워지는 일도 생기지 않을 겁니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두회의 제안은 황제에게 백 번 유리하고 해가 되는 일은 하나도 없어 보였다.

두변의 20여만 대군을 해체시킨 뒤, 일부는 송결에게, 일부는 영설 공주에게 준다? 전부 황제가 가장 신임하는 충신들인데?

황제가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

“짐이 승낙하지 않으면?”

두회가 대답했다.

“그럼 경성의 백만 백성들은 완전히 식량이 끊긴 뒤, 수많은 이가 굶어 죽을 겁니다. 산서, 요동의 두 대군은 대규모로 군비가 밀리겠지요. 그때가 돼서 여진 제국과 북달이 거침없이 쳐들어오면 우리 대녕에 정말로 망국의 위기가 생기겠지요. 신이 건의 드린 건, 두변을 보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애가 어린 나이에 뜻을 이뤘으니, 쉽게 방향을 잃을 수 있습니다. 만일 그 애에게 다른 야심이라도 생긴다면 여여해보다 더 큰 화근이 되지 않겠습니까.”

황제가 눈을 가늘게 뜨고서 두회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부세 2,500만 냥에 대해서 그대들이 확실히 알아둬야 할 게 있지. 짐은 그 돈을 관리하는 사람일 뿐, 그 돈이 짐의 손에 들어오면 눈 깜짝할 사이에 요동, 산서, 각지의 수비군에 나눠줘야 한다. 나머지는 이재민을 구제하고, 관원들에게 봉록을 나눠줘야 한다. 허니 너희가 그 돈을 묶어놓고 싶으면 편한 대로 하거라! 요동의 대군이든 산서의 대군이든 또 각지의 수비군에 너희 방계가 알아서 설명하면 될 일이다. 그때 원등의 대군이 너희를 물어뜯지 않을지 두고봐야겠구나. 그들은 짐처럼 괴롭히기 좋은 상대가 아니니 말이다.”

그 말은 조금도 틀림이 없었다.

그 돈은 대녕 제국의 군대와 관원들을 키우기 위한 돈이지, 황제 개인의 주머니에 들어가는 돈은 아니었다.

방계가 그 돈을 묶어버리면 천하의 관원들과 군대의 재산을 끊어버리는 일이었다.

두회가 냉랭하게 물었다.

“그럼 경성의 백만 백성들의 생사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태자는 성지를 받들거라.”

황제의 명에 태자가 즉시 무릎을 꿇었다.

“이연정에게 동창 고수들을 거느리고 태자가 서남으로 진입하도록 호송할 것을 명한다. 만약 짐이 붕어하면 태자는 곧바로 서남에서 등극하라.”

두회의 안색이 급변했다.

이건 절대적인 비장의 무기였다.

방계가 경성의 백만 백성들의 목숨을 인질로 잡으면, 태자는 두변의 보호를 받으며 서남에서 등극한다는 것.

그러면 두변은 천자를 등에 업고 제후들에게 명령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게 된다. 일이 그런 상황으로 발전하면 방계에게 극도로 불리했다.

한참을 침묵한 뒤, 두회가 입을 열었다.

“폐하, 그럼 저희에게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여담을 체포해서 경성으로 들여와 능지처참해 주십시오. 폐하께서 그 일만 승낙하시면 수로와 해상 운송이 곧 원활해질 겁니다. 끊임없는 식량과 돈이 즉시 경성으로 운송될 겁니다.”

두회가 극도로 노련하고 악랄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제가 두변을 다치게 하는 걸 결단코 원하지 않고, 두변의 군대를 해체시키는 건 더더욱 원하지 않으니, 목표를 여담으로 바꾸는 것이다.

아무래도 여담을 죽이는 데는 떳떳한 명분이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일단 여담을 체포해서 능지처참해 버리면, 두변에게 투항한 여씨는 즉시 마음이 식어서 두변을 배반할 것이다.

10만에 가까운 대군과 여러 성, 홍하상회, 수많은 광산 등은 완전히 두변에게서 마음이 떠날 것이다.

여씨의 투항으로 인해 두변이 얻은 최대의 수확은 10만 대군이 아니라 온전한 산업과 성, 온전한 조직 세력이었다.

그것들은 두변을 순식간에 강하게 만들 뿐 아니라, 그의 군대가 더 이상 뿌리내리지 못하고 떠돌지 않게 만들어줬다.

그러니 반대로 여담을 죽이게 되면 서남에 있는 두변의 토대를 파버리게 되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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