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7장: 믿으셔야 합니다
이윽고 두변은 은관(銀冠)을 착용하고 제국의 진서 백작 장포를 걸치고 대문을 나서서 바깥 광장으로 걸어갔다.
이미 광장에는 절세 지하성 군단 3만 2천 명, 성화군단 1만 8천 명, 등 5만 대군이 질서정연하게 진형을 갖춰서 늘어서 있었다.
비록 5만뿐이었지만 모두 완전 무장을 했고, 몹시 선명한 색상의 갑옷을 입었다.
대군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정도였고, 그들이 내뿜는 살기가 10만, 15만 명을 넘어서는 것 같았다.
두변은 말 위에 올라서 검을 뽑고는 서쪽 방향을 향해 크게 소리를 질렀다.
“대군은 출발하라. 여씨를 정벌하고, 반역자를 섬멸한다!”
쿵, 쿵, 쿵.
5만 대군이 끝도 없이 늘어져서 성을 출발했다.
그 순간 대군이 내딛는 발걸음에 흙먼지가 뿌옇게 일면서 하늘의 색깔마저 변했다. 온 천지가 흔들리고 있었다.
영설 공주는 말에 올라서 두변의 대군이 멀리 떠나는 모습을 눈으로 전송했다.
대단히 뛰어난 군대였다. 대녕 제국의 어느 군대라도 뛰어넘을, 영설 공주가 꿈에서도 갖고 싶어하던 군대였다.
태양이 떠올라서 그 대군을 비추니, 갑옷이 찬란하게 반짝였다.
이 수만 대군이 행군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건 그야말로 시각적인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전방의 3만 대군은 발걸음이 한 사람처럼 일치했다.
이문회가 영설 공주 옆에 와서 말했다.
“공주 전하, 조금 휴식을 취하러 가십시오.”
영설 공주가 물었다.
“두변 백작은 10만 대군을 보유했나요?”
“9만 2천여 명이라, 9만 3천도 안 됩니다.”
“그럼 어째서 병력을 나눠서 여씨를 공격하는 거죠?”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9만 대군이 굳게 성을 지키는 수성전을 하는 것이야말로 최고로 지혜로운 선택인데?
이문회가 대답했다.
“경성에 곧 식량이 끊어질 테니 기다릴 시간이 없어서입니다. 여여해의 수십만 대군이 집결 완료한 뒤, 다시 백색성을 공격하러 오는 건 아마 한 달 뒤가 될 겁니다. 그때가 되면 경성의 백성들은 이미 수없이 굶어 죽었을 테고, 황제 폐하께서도 어쩌면 버티지 못하실 겁니다.”
영설 공주는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물을 흘렸다. 마음속 감동을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
이문회가 말했다.
“공주 전하께서 폐하께 전해주십시오. 반드시 버티시고, 절대로 포기하지 마시라고 말입니다. 두변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 애가 기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어주십시오.”
5만으로 여여해의 40만을 대적하는데, 그것도 자발적으로 출격한다?
영설 공주는 이번 전투를 어떻게 이길 수 있을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두변이 이긴다고 말했을뿐더러, 이문회까지 이긴다고 말한 이상, 정말로 이길 수 있다고 믿었다.
“이문회, 듣자니 원천조의 5만 대군이 끊임없이 북상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극단적인 상황이 펼쳐지면 전장 두 곳을 맞닥뜨릴 수 있겠죠?”
이문회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변이 5만 대군을 데려갔다. 나머지 절세 지하성의 2군 무사 2만 명, 기세 소성주가 거느린 절세 지하성의 무사 천 명, 거기에 제3군단 2만 명을 합치면 총 4만여 대군이 전부 남아서 백색성을 지키게 된다.
원천조의 5만 대군이 백색성을 공격한다면 그 전투는 사투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1만 5천 명이 막씨의 옛 부하들을 포로로 잡아서 만든 신병들이기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몹시 말을 잘 듣는다고 하지만 전장에 가면 이들은 도적 노릇을 너무 오래 했기 때문에, 정말로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문회, 옥진 군주, 기세 소성주 세 사람이 모두 남아서 백색성을 지키기로 했다.
영설 공주가 더없이 갈망의 눈빛을 드러내며 말했다.
“정말 이곳에 남아서 당신들과 나란히 전투를 치르고 싶습니다.”
이문회가 말했다.
“공주 전하, 저희와 두변을 믿어주십시오. 이건 여명 직전의 가장 어두운 시간일 뿐입니다. 이번 관문을 넘으면 천지가 뒤집히는 듯한 변화를 맞이할 겁니다.”
영설 공주가 이문회를 향해 허리 굽혀 인사하며 말했다.
“영씨는 영원히 두변이 베푼 큰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며, 또 이문회의 은덕을 잊지 못할 겁니다. 나는 곧 경성으로 돌아가서 이곳의 모든 걸 부황께 말씀드리고, 그분께 어떻게 해서라도 버티시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반나절도 쉬지 않으실 겁니까?”
영설 공주가 고개를 저었다.
“대단히 다급한 일이니 쉴 새가 없습니다.”
이윽고 이문회는 급히 최고의 식사를 준비했다. 영설 공주와 함께 식사를 마친 뒤, 그녀에게 절세 지하성의 보마(寶馬)를 준비해주었다.
반 시진 뒤, 영설 공주는 십여 명을 데리고 나는 듯이 북상해서 경성으로 돌아갔다.
경성에서 백색성까지 장장 1만여 리의 노정을 열흘 만에 도착한 상태였다. 하지만 백색성에서 고작 한 시진 정도만 머무른 뒤, 다시 나는 듯이 질주해서 북상했다.
어쩐지 그녀가 십여 근이나 마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호북성, 영주부(永州府).
선성후 육전이 격노하며 말했다.
“천윤 그 도적놈이 감히 내 가족을 죽여? 내가 중병으로 며칠 지체했을 뿐인데, 내 가족을 죽여버려? 그렇게 하면 천하에 누가 또 감히 너희 영씨에게 충성을 바치겠냐?”
그는 검을 마구 휘둘러서 대청에 있는 대녕 제국 태조 황제의 초상화를 엉망으로 만들어놓았다.
천윤제가 매일 그의 일족을 열 명씩 죽이면서, 오늘은 마침내 선성후의 직계 가족의 차례가 되었다. 그래서 선성후가 이렇게 격노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선성후도 진작 마음의 준비를 해둔 상태였다. 더할 나위 없이 비통하고 분노한 것처럼 보이는 건, 전적으로 수하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기에 불과했다.
그의 진실한 마음속 생각은 단 하나였다. 그건 바로 ‘대장부가 어찌 아내를 얻지 못할까 봐 걱정하랴?’였다.
잠시 후, 전해진 배첩(拜帖: 방문할 때 사용한 봉투 크기의 붉은 종이에 쓴 명함) 하나를 받아들고, 육전은 놀라고 말았다.
‘광서 순무 두강의 사자 두쟁이라고?’
최근에 두쟁은 몹시 고생스럽게도 호북과 사천을 왔다 갔다 달리고 있었다.
다만 선성후 자신은 이미 병이 났다고 하면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 이자는 자신이 또 어쩌길 바라는 걸까?
두쟁은 전보다 더 유유자적하고 호방해 보였다. 최근에 국면이 너무나 순조로워서 그는 점차 자신감에 가득 찼을 뿐 아니라, 후방에서 전략을 세우지만 천 리 밖에서도 승리를 거두는 느낌이었다.
두쟁이 말했다.
“선성후, 까마귀 전서(傳書)를 막 받았습니다. 어제 이른 아침에 두변이 5만 대군을 거느리고, 자발적으로 여씨의 대염 왕국에 진격하러 갔다고 합니다.”
방계는 정말이지 대단하구나. 두변이 출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바로 그 소식을 받을 수 있다니.
선성후 육전이 놀라며 물었다.
“진짜입니까?”
두변의 여섯째 숙부 두쟁이 대답했다.
“당연히 진짜이지요.”
“두변이 머리가 이상해졌답니까? 그자가 미친 거요?”
모든 이가 보기에 두변은 미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죄다 합쳐도 군대가 9만밖에 안 될뿐더러, 태반은 잡아온 사람들로 이뤄진 신군이다. 아직 전투력이 형성되지도 않았을 테니, 굳게 성을 지키며 수성전을 해도 이길 수 없는데 병력을 나눠서 자발적으로 출격해?
두변, 네놈이 머리가 이상해진 게 아니냐?’
육전이 말했다.
“그자가 죽고 싶답니까?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그자의 9만 대군은 흩어진 모래알처럼 단결되지 않을 텐데, 다시 두 무리로 나누었다고요? 그럼 백색성에 있는 군대는 어떻소이까?”
두쟁이 말했다.
“전부 다 신군입니다. 1, 2만 명은 잡아온 지 보름도 넘지 않았습니다.”
선성후가 말했다.
“미치광이는 본 적이 있지만 이토록 머리가 이상해진 사람은 본 적이 없소이다. 그렇게 죽음을 자초하는 사람이 있소이까?”
“중요한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황제가 경성에서 곧 식량이 끊기려 해서, 더는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영설 공주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백색성에 가서 새로운 성지를 낭독했다고 합니다.”
모든 이가 보기에 황제의 그 성지는 분명히 두변에게 출병하라고 압박하는 것이었다.
선성후 육전이 말했다.
“두변, 그 환관 놈은 참 색을 좋아하기도 하는군요. 영설 공주의 미색과 황제가 이익으로 꼬드기니, 뜻밖에 정말로 출병을 했군요.”
“젊은이가 머리가 한번 어지러워지면 발정 난 들개 같아서 아무리 끌고 오려고 해도 끌려오지 않지요.”
그들은 소인배의 마음으로 군자의 도량을 헤아리고 있었다. 황제는 분명히 두변의 목숨과 어렵사리 얻은 그의 군대를 보전해주려고 했지만, 이들은 황제가 두변에게 출병하라고 압박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두쟁이 물었다.
“선성후, 당신의 가족 중에 아직 죽지 않은 이는 몇 명입니까?”
선성후 육전이 낯빛이 변하더니, 이를 부득부득 갈며 말했다.
“첩실 몇 명은 전부 죽었고, 서출들도 죽임을 당했소이다. 부모님과 처, 적출 몇 명만 남았소.”
“그럼 당신은 황제의 뜻에 따라 군대를 거느리고 남하하십시오.”
선성후 육전의 눈매가 가늘어지더니 물었다.
“당신들, 당신들의 뜻은 나더러…… 백색성을 빼앗으라는 거요?”
육전은 당연히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이 군대를 자신의 목숨처럼 간주하기에, 당연히 이런 일로 소진시키고 싶지 않았다.
두쟁이 물었다.
“선성후께서는 광서와 호남이 어떤 것 같습니까?”
“당연히 좋소.”
“대동부와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당연히 그보다 좋소.”
“두변, 그 소환관 놈은 곧 끝장날 테고, 황제도 죽을 겁니다. 태자가 말을 들으면 그를 등극시키고, 말을 듣지 않으면 사람을 바꿔서 등극시킬 겁니다.”
선성후 육전이 몸을 흠칫 떨었다.
그렇다. 방계가 완전히 조정을 장악하는 시대에 진입하려고 했다. 진정 천자를 위협해서 제후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두쟁이 말했다.
“우리 방계는 여씨와 맹우입니다. 한데 황제가 죽은 뒤에 그 관계에 일정한 변화가 생길 겁니다. 우리는 여씨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와 성화교라는 이 세계의 패주를 잘 완충시켜주기 때문입니다. 한데 우리는 절대로 여씨의 대염왕국이 지나치게 강대해지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허니 우리는 여씨를 압박할 필요가 있습니다. 원천조, 검각후 장문소, 선성후, 당신 셋이 몹시 중요해졌습니다.”
선성후 육전의 호흡이 급박해졌다.
두쟁이 말했다.
“우리 소군께서 직접 약속하셨습니다. 당신이 백색성을 함락시키면 남녕부를 기준으로 한 서쪽과 영주부를 기준으로 한 남쪽이 전부 당신 선성후의 새로운 지반이 될 겁니다.”
선성후의 심장이 마구 뛰었다.
두쟁이 말을 이었다.
“새로운 황제가 즉위한 뒤, 일련의 책봉이 진행될 겁니다. 의외의 일이 없는 한, 선성후도 선성공이 되실 겁니다. 수백 년 동안 후작을 하셨으니 한 등급 오를 필요가 있겠지요. 사실대로 말하면 검각후는 오히려 지금 화를 내고 계실 겁니다. 그는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백색성을 없애버리는 좋은 일은 선성후의 차례까지 오지 않았겠지요. 검각후께서도 공작으로 작위가 오르고 싶어하시니까요.”
선성후 육전이 말했다.
“하루만 기다려주시오. 내일 내가 반드시 답을 드리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