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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무제-383화 (383/648)

383장: 너는 타협해라.

황제는 무표정하게 방탁의 친필 서신을 찢어버렸다.

나쁜 소식 하나가 또 전해졌다.

검각후 장문소가 또다시 황제의 성지를 못 본 체하면서, 8만 대군을 거느리고 서주부에 진입한 뒤, 더는 한 걸음도 전진하지 않는다는 소식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두변의 황금 1만 냥을 받고는 두변의 사자를 내쫓았다. 또 사람들 앞에서 두변 같은 소환관 놈이 무슨 진서 백작이냐, 날뛰는 어릿광대일 뿐이라고 질책했다고 한다.

검각후 장문소가 방계를 향해 추파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선성후 육전의 대군은 호남에 진입한 뒤, 선성후가 바로 병으로 쓰러졌다고 한다. 서진해서 텅 빈 귀주를 공격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남하하여 두변과 합류하겠다는 뜻이 없다고 선포했다.

두 사람의 뜻은 몹시 명확했다. 옆에서 두변의 멸망을 좌시할뿐더러, 여여해가 수십만 대군을 집결시켜서 격렬한 기세로 두변을 없애게 내버려 두겠다는 뜻이었다.

일전에 선성후를 출병시키기 위해서 황제는 당근과 채찍을 같이 내렸다. 동창을 보내서 육전의 일족을 잡아갔을 뿐 아니라, 이 외에 군비 30만 냥을 보내주었다.

그 30만 냥은 정말 황제의 마지막 은전으로, 예전에 이문회가 바쳤던 그 은전이었다.

본래 영설의 신군에게 지급할 은전이었지만, 육전에게 주었으니 영설의 신군은 급료가 밀리게 되었고 이연정의 시위군도 급료가 밀리게 되었다.

지금 황제는 너무나 가난한 나머지 창고가 텅 비어서 쥐가 단체로 뛰어놀 수 있을 지경이었다.

결국, 선성후 육전은 돈을 받은 뒤로도 병사는 한 명도 출동시키지 않은 채, 호남에서 요양중이었다. 왼손으로는 황제의 돈을 받고, 오른손으로는 방계의 돈을 받았으니,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경성에서 황제에 충성을 바치는 군대는 두 달여나 급료가 밀렸는데도 시끄럽게 굴지도 않을뿐더러, 난리를 피우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경성 안에서 그들이 가장 많이 먹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황제는 지금 매일 양식을 석 냥씩 먹고 있는데 그들은 여전히 매일 일곱 냥씩 먹었다.

아무리 급료가 밀렸더라도 그들은 시종일관 경성에서 가장 우대 받는 사람들이었다.

눈앞의 절망적인 상황을 두고도 황제는 여전히 몹시 평온해 보였다. 단지 며칠 밤낮 잠을 자지 못해서 눈이 움푹 튀어나왔을 뿐.

“두변 쪽에서 군대를 확장하는 기세가 몹시 좋더구나. 지금의 국면은 몹시 두려워 보이기는 하지만 저번에도 두변이 이겼으니, 이번에도 꼭 질 것 같지는 않구나.”

황제의 말에 태자가 더는 참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사실을 아뢰었다.

“부황, 두변이 실종된 지 이미 두 달 됐다고 합니다. 이문회는 겉으로 조급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를 찾으러 이미 수천 명을 보냈습니다. 게다가 검각후와 선성후가 고의로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여여해는 이미 30만 대군을 집결해서 언제든 백색성을 공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두변이 없으니, 백색성은 수장이 없어서, 그 몇만 군대만 가지고서는…….”

황제가 몸을 흠칫 떨면서 이연정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이냐?”

이연정이 답했다.

“정말입니다……. 신, 차마 폐하께 아뢸 수 없었습니다!”

황제는 온몸이 다 떨릴 뿐 아니라, 심지어 주먹을 쥐어도 손의 떨림을 멈출 수 없었다.

황제는 길게 숨을 내쉬고 난 뒤에야 침착해져서 담담하게 말했다.

“다른 이는 나가고 태자만 남거라.”

순식간에 서재 안에는 황제와 태자 두 사람만 남았다.

황제가 말했다.

“우선 나는 여전히 두변을 굳게 믿는다. 태자, 너는 어쩌면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내가 나이가 드니 천명(天命)을 믿게 되더구나. 나는 점점 더 두변이 천운을 가진 사람이란 걸 믿게 되었다.”

태자는 눈꺼풀이 한번 떨렸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황제가 말을 이었다.

“한데 국면이 완전히 무너져서 두변이 죽고, 백색성과 서남 전체가 철저히 함락될 뿐 아니라 경성에 식량이 완전히 끊긴다면 나는 황제로서 자연히 그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경성의 백만 백성들을 굶어 죽게 할 수 없지. 나는 정녕 죽더라도 타협을 하지 않겠지만 태자, 너는 타협해야 한다. 대녕 제국의 강산을 위해서라도 너는 타협을 해야 해.

만약 연왕이 등극하게 되면 대녕 제국은 완전히 끝장난다. 너는 총명한 데다 계책을 잘 쓰기도 하고, 나처럼…… 제멋대로 굴지도 않으니까. 네가 황제에 등극하면, 어쩌면 조금이라도 만회할 여지가 생길지도 모른다.”

태자는 그런 말은 마시라는 듯이 필사적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물론, 영설을 방검지에게 시집보낼 수 없고, 이연정도 절대로 죽일 수 없으니, 그들은 멀리 떠나면 된다. 물론 짐이 죽으면 이연정은 아마…… 따라서 죽을 것이다. 네가 휴처를 할지, 방청의를 처로 맞을지 여부는 스스로 결정하거라.”

황제가 한숨을 쉰 뒤에 말을 이었다.

“그러면 된다. 너는 더 이상 아무것도 말할 필요 없고, 그렇게 정한 거다. 아비보다 자식을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말처럼, 나는 아주 일찍부터 네가 나보다 황제에 더 적합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너는 아주 어릴 때부터 몹시 총명했으니까. 어쩌면 황제 노릇을 정말로 네가 나보다 더 잘할지도 모르겠구나.”

태자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바닥에 쓰러질 정도로 울면서 필사적으로 머리에 피가 나도록 이마를 바닥에 찧었다.

황제가 담담하게 말했다.

“선성후 육전의 일가를 참수하거라. 하루에 열 명씩 죽이거라.”

사천, 서주. 검각후 대군의 군영 안.

검각후 장문소는 귀빈 한 명을 맞고 있었다. 두변의 여섯째 숙부 두쟁이었다. 두쟁은 올해 겨우 서른다섯으로, 선성후 육전을 설득한 뒤 다시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사천으로 들어왔다.

두쟁은 곧바로 은표 한 묶음을 꺼내며 말했다.

“이건 은자 50만 냥입니다. 선성후보다 10만 냥이나 많습니다.”

두쟁은 이어서 은표 한 묶음을 더 내놓으며 말했다.

“우리 주군께서는 검각후 장문소는 한 세대의 영웅이니, 절대로 선성후와 나란히 논하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듣자니 검각후의 쉰다섯 생신연이 곧 다가올 거라고요. 이 은자는 생신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무슨 일이오?”

장문소가 거드름을 피우며 묻자, 두쟁이 찻잔을 들며 말했다.

“이 잔이 참 보기 좋습니다.”

그런 뒤 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꼭 엄당의 소환관 두변 같군요. 빛을 사방으로 뿜어내서 사람을 짜증나게 합니다.”

두쟁이 손으로 가볍게 밀자 찻잔이 탁자에서 떨어져서 산산조각이 났다.

두쟁이 말했다.

“여여해가 수십만 대군을 집결해서 두변을 없애버리러 가는 중입니다. 검각후의 8만 대군이 서주에 있으니 조금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말입니다. 비록 당신은 두변을 도와주려는 뜻이 조금도 없겠지만 사실상 여전히 그를 돕고 있는 겁니다. 차라리 성도(成都: 사천성의 성도省都)로 물러나면 어떻습니까?”

장문소가 말했다.

“성도로 물러나면 다른 이들은 내가 여여해를 무서워해서 그러는 줄 알 거요.”

두쟁이 대답했다.

“여여해의 대군도 완전히 철수해서 당신의 사천에서 멀리 떨어질 겁니다. 대염의 왕태자 여담도 대염 왕성으로 돌아가서 당신 눈앞에서 아른거리지 않을 겁니다. 모든 건 먼저 두변 그 환관 놈을 없애고 나서 얘기하면 어떻습니까?

이것도 우리 소군의 뜻입니다.”

검각후 장문소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소. 여담이 먼저 퇴병하면 나도 따라서 퇴병해서 성도로 돌아가겠소.”

“좋습니다. 그럼 제가 바로 여담에게 수백 리 퇴병하라고 하겠습니다.”

이윽고 두쟁이 작별을 고했다.

잠시 후, 아름다운 여인이 걸어 나와서는 장문소에게 말했다.

“노야, 우리와 두변은 순망치한의 관계입니다.”

“네가 무엇을 안다고! 두변은 불알도 없는 솜털도 안 가신 풋내기다. 그런 놈이 나와 그런 관계가 될 자격이 있다고?”

그 첩실이 말했다.

“노야, 우리 장씨 가문은 대대로 황은을 입었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만일 두변이 이번 전투에서 이기면 그때, 장씨 가문은 어찌해야 합니까?”

장문소가 큰소리로 웃었다.

“이긴다고? 두변, 그 소환관 놈이 이긴다고? 꿈 깨라고 해라.

무지한 것 같으니! 본후(本侯), 네가 글씨를 잘 쓰는 데다 공부를 조금 했다고 해서 네게 일부 문서 일을 처리하라고 맡겼건만, 네가 감히 분수를 모르고 날뛰어?”

그러더니 장문소가 여인의 뺨을 후려쳤다.

네까짓 게 뭘 안다고?

두변이 죽고, 황제도 곧 죽을 거다. 황제가 죽으면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진다.

그렇게 되면 검각후인 자신은 편해진다. 사천은 풍요롭고 광활한 데다, 인구도 많으니 패업을 성취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때가 되면 검각후는 공작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왕이 될 수도 있다.

그는 황제가 죽어서 천하가 크게 혼란해지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백색성.

두변이 사라진 지 시간이 너무나 오래 지났다. 처음에는 그나마 나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가지 유언비어가 퍼지고 불안감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바로 그런 시기에, 두변은 2만여 명을 거느리고 위풍당당하게 백색성에 진입했다.

수많은 물자와 양식, 금은을 가득 싣고 말이다.

그 순간 백색성은 완전히 들끓었다.

며칠이나 침체되었던 사기가 다시 한 번 고취되었다.

“진서 백작 만세!”

“두변 대인 만세!”

이틀 뒤.

두변에게 속한 모든 대군이 전부 백색성 밖에 집결했다.

이건 열병식일 뿐 아니라 병사 훈련이기도 했다.

장장 9만 대군, 아주 조금 모자라서 10만은 안 되지만, 거의 10만 대군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

이번 성대한 열병식에 온 성의 백성들이 모두 구경하러 나왔다.

하지만 주된 목적은 신병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열병식에 참여해서 공연을 펼치는 건 주로 절세 지하성 무사들과 성화교군 수천 명이었다.

최후의 결전이 곧 다가올 테니, 반드시 최정예 군대를 사용해서 신병들이 전율케 하고 그들의 사기를 진작시켜야 했다.

열병식은 몹시 성공적이었다. 주력인 6만에 가까운 절세 지하성 무사들의 완전무장한 갑옷, 장비, 게다가 그들의 한 사람처럼 질서정연한 발걸음, 뛰어난 전투 기술 등에 모두 엄청난 충격을 받고 말았다.

신병 3만 명은 경악하고, 숭배했으며, 두려워했다.

그날 밤. 백색성의 최고위 회의의 분위기는 다소 무거웠다.

부홍빙이 말했다.

“우리에게는 9만 대군이 있으니, 여여해의 30만 대군과 상대할 때, 수성전을 펼치면 패배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사상자는 대단히 많을 겁니다.”

이문회가 말했다.

“원천조의 3만 5천 대군도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다. 일단 그자가 백색성 공격에 가담하면 전세가 몹시 위험해진다.

최신 정보에 의하면 검각후 장문소의 8만 대군이 철수해서 성도로 진입했다고 한다. 이제 여여해가 모든 힘을 집결시켜서 우리를 공격할 수 있게 되었다. 대염 왕국의 태자 여담은 이미 회군하고 있다. 최근 정보에 따르면 대염 왕성 주변에 집결한 군대는 37만이 넘는다더구나!”

그 말은 두변을 공격하러 온 군대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다는 뜻이었다. 25만이 아니라, 30만, 심지어 33만에 이를 것이다.

상황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복잡했다.

그런데 그때, 동창 무사 한 명이 쏜살같이 달려와서 이문회의 귓가에 나직이 몇 마디를 보고했다.

이문회가 안색이 변하며 말했다.

“양광 총독 고정이 광동 1만 5천 대군에게 광서에 진입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즉 원천조 수중의 대군은 3만 5천이 아니라 5만이 됐다는 뜻이다!”

원천조 수중의 대군은 모두 방계 해외 제국의 정예라서 전투력이 특히 더 강했다.

이제는 더 이상 복잡한 국면이 아니라 두려운 국면이 되어버렸다.

대녕 제국의 군벌들이 타협한 탓에 두변이 마주해야 할 적이 예상보다 많아졌다.

회의 분위기는 극도로 엄중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극도로 비관적이었다.

그렇지만 두변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에 우리는 성을 지키는 게 아닙니다. 나는 대군을 이끌고 출격해서 위염 왕국을 공격하고 여씨의 반란을 토벌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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