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378화 (378/648)

378장: 두변, 죽어라!

황제의 몸이 휘청였다.

“식량은…… 얼마나 남았지?”

영설 공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아뢰었다.

“2할도 안 됩니다.”

그 말은 본래 다섯 달을 버틸 수 있는 식량이 지금 한 달만 버틸 정도로 남았다는 의미였다.

그때 이연정이 앞으로 나와서 머리를 조아렸다.

“폐하, 점점 더 많은 경성의 백성이 황궁 앞으로 모였습니다. 그들은 말없이 가만히 궁문을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태자가 말했다.

“부황, 절대로 실정을 백성들에게 알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다가는 폭동이 일어날 겁니다. 아신에게 계책이 하나 있는데 매일 빈 수레를 운반해 나간 다음에 모래를 가득 채워서 대낮에 다시 수레를 들여오는 겁니다. 그런 뒤 실수로 포대 하나를 찢어서 그 안에서 누런 식량이 쏟아지게 하는 겁니다. 경성의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매일 식량을 운반해와서 식량이 끊길 위기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면 경성이 어지러워지지 않을 겁니다.”

황제가 태자를 향해 한 번 웃어 보였다.

깊이 숨을 들이마신 황제는 궁문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때 궁문 밖에는 경성의 백성 몇만 명이 빽빽이 서 있었다. 그들은 황제의 모습에 당황해하다가 곧 전부 무릎을 꿇었다.

“폐하를 뵙습니다!”

“황상 만세, 만세, 만만세!”

이윽고 모든 백성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천윤제를 올려다봤다. 아무도 식량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백성이 이곳에 온 건 그들이 아직도 살 수 있을지, 아직도 먹을 식량이 있을지 알고 싶어서였다.

“짐은 너희가 이곳에 온 뜻을 알고 있다. 식량이 다 불타지 않았나 알고 싶을 것이다. 너희가 아직도 먹을 밥이 있고, 계속 살 수 있는지, 도망쳐야 하는 건 아닌지 말이다.”

황제가 온화하게 말했다.

태자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부황은 어째서 백성들에게 지금 실정을 그대로 알려주려고 하시지? 그렇게 하면 경성에 큰 난리가 일어날 텐데.’

황제의 말에 벌써부터 수많은 백성들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황제가 말했다.

“너희는 도망치지 말거라. 북쪽 전체가 흉작이 들어서 형편이 좋지 않다. 도망치면 도중에 죽게 될 것이다. 강남에는 식량이 있지만 수로와 해운이 모두 단절되었다. 가장 돈을 밝히는 곡물상들도 차마 경성에 양식을 운반하러 오지 못한다. 너희는 분명히 묻고 싶을 것이다. 우리에게 양식이 얼마나 남았는지 말이다.”

모든 이가 황제를 바라봤다. 그들은 바로 그 답을 알고 싶었다.

황제가 말했다.

“한 달. 우리에게는 한 달여의 양식이 남아있다. 한 달 뒤에도 수로와 해운이 회복되지 않으면 경성은 양식이 끊어져서 굶어 죽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이미 큰 소리로 울부짖고 있었다.

황제가 수많은 백성을 향해 허리를 굽히며 말을 이었다.

“짐이 무능한 탓에, 경성의 백성들이 짐과 함께 고생을 하는구나. 하지만 여기에서 짐이 모두에게 두 가지를 약속하겠다.

양이 적은 걸 근심하지 말고 균등하게 나누지 못하는 걸 근심해야 한다. 지난 한 달 동안 수많은 곡물상들과 지주들이 짐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짐이 가격을 낮춰서 그들의 식량을 강제로 샀기 때문이지. 심지어 어떤 이들에게는 아직 돈을 주지도 못했다. 하지만 짐은 또한 몹시 자랑스럽다. 지난 한 달 동안 경성에서 굶어 죽은 사람이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경성의 백성들에게 황제는 깊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한 달 동안, 수많은 백성이 황제의 은혜에 감사했다.

황제는 지위 고하와 귀천을 나누지 않고, 모든 식량을 균등하게 분배해서, 경성에서는 가장 가난한 사람도 굶어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니 짐의 첫 번째 약속은, 앞으로 한 달 동안 여전히 모든 양식을 균등하게 분배하겠다는 것이다. 짐과 황후에게 먹을 밥이 있는 한, 경성의 백성들에게도 먹을 밥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짐은 너희보다 양식 한 톨도 더 먹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백성이 머리를 조아리며 외쳤다.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황제가 말했다.

“그럼 한 달 뒤, 식량을 다 먹었는데도 경성에 여전히 식량이 운반되지 못하고 봉쇄된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수많은 백성이 고개를 들고 황제를 바라보았고, 황제는 황제답지 않은 말을 내뱉었다.

“그럼 짐이 보증하건대 짐은 너희 앞에서 죽을 것이다. 짐이 죽기만 하면 식량이 운반되어서 들어올 것이다.”

수많은 백성이 순식간에 큰소리로 울부짖었다. 눈물을 쏟으며 필사적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폐하!”

“폐하!”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흐른다 해도, 경성의 백성들은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천윤제를 잊지 못할 것이다.

황제는 황궁으로 들어갔지만 수많은 백성들은 여전히 궁문 밖에 무릎을 꿇은 채, 그곳에서 떠나지 않고 필사적으로 울부짖었다.

그날 밤, 수천 명이 넘는 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유는 단 하나, 자신들은 이미 살 만큼 살았으니 더 이상 식량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식량을 조금이라도 아낄 수 있으면 아이들과 황제 폐하께서 아주 조금이라도 목숨을 연명할 수 있을 것이다.

황제는 그 소식을 듣고는 한참 동안 묵묵히 눈물을 흘렸다.

황궁 안.

태자가 황제 앞에서 무릎을 꿇고 큰소리로 울부짖었다.

“어째서 그리하셨습니까? 그리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저들은 경성의 수많은 백성의 목숨을 상관하지 않을 수 있어도, 짐은 그럴 수가 없다. 정말로 그날이 오면 그들이 바라는 대로 짐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그만이다. 게다가 짐은 그들과 싸워서 한 번 이기기까지 했다. 노신들의 압박을 받으며 궁핍하게 죽지 않고, 수많은 경성의 백성을 위해 죽으니 영광스럽지 않겠느냐.”

이어서 황제가 탁자를 탁 치며 말했다.

“게다가 짐은 죽을 것 같지 않구나. 검각후가 이미 출병했고, 선성후도 출병했다. 두변이 대군을 몹시 빠른 속도로 확충하고 있다는 정보도 받지 않았느냐. 한 달여 만에 여여해를 섬멸한다는 것은 몹시 터무니없는 일처럼 들리지만, 그 기적이 꼭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여여해가 섬멸되면 경성의 봉쇄는 자연히 풀릴 것이다.”

한 달 안에 여여해를 섬멸한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여여해에게는 4, 50만 대군이 있는 반면, 두변에게는 고작 몇만 군대에 불과한 것을.

검각후와 선성후가 비록 출병했지만 병력만 동원할 뿐 전력을 다하지 않을 수도 있고.

한 달 안에 여여해를 섬멸한다는 건 해가 서쪽에서 떠도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이연정, 선성후의 일족을 다 잡아 왔나?”

황제가 묻자 이연정이 답했다.

“잡아 왔습니다.”

“선성후가 감히 더 나아가지 않고,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그의 일족을 주살하라.”

이연정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지금 이연정은 내심 더할 나위 없이 괴로웠다. 그는 차마 천윤제에게 두변이 실종된 지 한 달이 넘었음을 고할 수도 없었다.

황제는 고개를 들어 바깥의 하늘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한 달여 만에 여씨의 대염 왕국을 완전히 섬멸하는 것이 정말로 불가능할까?”

어째서 두변이 여씨를 섬멸하기만 하면 경성의 봉쇄가 자연히 풀릴까.

표면적인 이유는, 여여해가 멸망하기만 하면 두변이 제국의 서남부 전체를 제패하게 된다. 만약 방계가 경성의 봉쇄를 풀지 않으면 두변은 곧바로 대군을 거느리고 호북이라는 큰 곡창으로 쳐들어가서는 군대를 동원해서 경성으로 가는 양도(糧道: 군량을 운반하는 길)를 강제로 뚫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몹시 긴 시간이 필요해서 때를 맞추지 못할 것이다.

진짜 실제적인 이유는 두변이 여씨를 소멸시키게 되면 두변이 바로 서남의 땅과 강력한 군대를 얻게 된다. 그렇게 되면 설령 황제가 죽고 태자가 등극해도 의지할 수 있는 크나큰 세력이 생기는 셈이다.

그런데 최악의 국면은 태자가 즉위한 후, 곧바로 남방을 순시한다는 이유로 제국 서남부에 들어가서 두변의 지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두변이 천자를 등에 업고 제후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크게 된다. 그럼으로써 두변은 크게 이득을 보게 되고.

그러니 두변이 서남에서 여여해를 섬멸하는 일을 철저히 할수록 황제가 죽으면 최대의 수혜자는 두변이 되는 셈이다. 방계는 그런 멍청한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두변이 여여해를 섬멸하기만 하면 경성의 봉쇄가 자연히 풀리게 된다.

제국 서남부, 성화교의 비밀 제단.

여완완이 냉랭한 눈빛으로 소리쳤다.

“두변, 죽거라. 연기로 사라지고, 혼백까지 흩어져라!”

이윽고 두변의 몸이 창백하고 괴이한 지옥 성화 속으로 휙 던져졌다.

순식간에 두변의 몸이 지옥불에 완전히 집어삼켜져 보이지 않았다.

지난번에 일어난 상황과 똑같았다.

여완완이 지옥불을 가리키며 성화교군 수천 명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보았나? 다들 보았나?

두변은 지옥 성화에 불타서 연기로 사라졌다. 그는 가짜 신이다.

그가 불사의 몸을 가졌다는 건 철저한 거짓말이다!”

순간 수많은 성화교군의 표정이 점점 바뀌었다.

‘두변은 역시 화신이 빙의된 게 아니구나!’

‘그럼 일전에 전장에서 일어난 모든 게 역시 그가 연기를 펼친 건가?’

한순간, 수많은 성화교군이 두변에 대해 갖고 있던 신성하고 강한 인상이 일제히 무너져버렸다.

여완완은 그걸 보고 몹시 기뻐했다. 이어서 자신이 연기를 한 번 더 펼쳐서, 저 불길 속에 깊이 들어가도 죽지 않는 연기를 펼치면 다시 저들의 신앙과 숭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지고무상한 화마 성녀가 되는 것이다!

‘두변, 너는 갈기갈기 찢겨 죽어야 마땅해! 네가 이렇게 지옥불에서 잿더미가 된 건 너에게 너무 좋은 일은 시켜준 거지!’

이어서 그녀가 오른손을 높이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두변은 죽었다. 두변은 죽었다!”

그녀 휘하의 성화 친위군도 그녀를 따라서 외쳤다.

“두변은 죽었다. 가짜 신이 죽었다!”

처음에는 수십 명이 외쳤을 뿐이었는데 이어서 수백 명, 천여 명이 외치기 시작했다.

“두변은 죽었다. 가짜 신이 죽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지옥불 안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황금빛 그림자였다.

두변의 단전 안에서 구양진경이 미친 듯이 회전하면서 끊임없이 지옥불을 집어삼켰다.

이어서 황금빛 그림자가 점점 어둡게 변하더니, 사람 윤곽의 어두운 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모든 이가 놀라서 넋이 나갔고, 여완완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완전히 충격을 받았을뿐더러, 자신이 본 장면이 믿기지 않았다.

이어서 더욱더 공포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지옥 성화가 뜻밖에 점점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주 조금씩 두변의 몸 안으로 집어삼켜지는 듯했다.

여완완은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정말 죽어도 눈앞의 장면을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의 모든 가치관이 무너지는 장면이었다.

‘설마 이 세상에 정말로 신이 있다고? 정말로 화신의 사자가 있다고?’

여완완은 믿기지 않았지만 그곳에 있는 성화교군 수천 명은 더할 나위 없이 열광하며 흥분했다.

지옥 성화에 불타도 죽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지옥 성화를 정복하다니! 그건 바로 화신의 사자가 아닌가!

진짜로 신의 기적을 목격한 그들의 감격스러운 마음은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

자신들의 믿음이 신으로부터 응답받은 것이다. 자신들의 신앙은 지킬 가치가 있었다!

이제 지옥 성화는 전부 두변에게 집어삼켜지고 사라졌다.

이번에는 두변이 혼절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단전과 근맥은 이미 완전히 개조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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