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354화 (354/648)

354장: 백색대전(百色大戰) 二

사륭석이 몸을 휙 돌리더니 여완완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본래 이번 공성전이 일방적인 도살이 될 줄 알았건만 뜻밖에 오히려 자신들이 도살당할 줄이야.

더군다나 그 도살로 죽은 건 투항한 비정규군뿐만이 아니라 사륭 부족의 만군까지 포함되었다.

빼곡하게 죽어나간 병사들을 보며 여완완은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을 뿐 아니라, 이를 악물어 피까지 날 정도였다.

‘두변! 귀신처럼 교활한 두변 같으니라고! 내게 이렇게 큰 손해를 보게 만들어?’

여여룡이 재빨리 달려와서 급박하게 말했다.

“완완, 빨리 명령을 내려라. 어떤 명령이든 좋으니, 빨리 내려. 사륭석의 몇만 대군이 전부 저곳에 모여 있으니 최고의 도살 대상이다. 빨리 철수하지 않으면 상상도 못할 사상자가 나올 거다.”

여완완이 이를 부득부득 갈며 말했다.

“철수라고요? 아뇨, 철수하는 건 불가능해요!”

이윽고 여완완의 아름다운 눈이 악랄하고 단호하게 변하더니,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륭석의 대군은 본래 희생물로 쓰려고 했잖아요. 기왕 수많은 사상자가 난 이상 계속 죽어도 상관없으니 계속 이렇게 저들의 전투력이나 막아주라고 해요.”

그녀가 힘차게 명령을 내렸다.

“여여룡 부대는 북쪽 성벽을 공격한다. 중군(中軍) 성화교군은 남쪽 성벽을 공격한다. 사륭석 부대는 서쪽 성벽을 공격한다. 세 대군이 백색성을 향해 총공격을 발동한다!”

여완완은 마치 미친 노름꾼이 도박에서 한 판 진 다음에 판돈을 거둬들일 생각도 하지 않고 도리어 남은 모든 판돈을 밀어넣는 모습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그 결정은 정확했다.

쿵, 쿵, 쿵, 쿵.

전투를 알리는 북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사륭석의 몇만 대군은 화살받이가 되어서 두변의 전투력을 소진시켰다.

여여룡의 3만 대군, 여완완의 성화교 중군 2만이 각자 좌우 양쪽에서 백색성을 향해 질서정연하게 돌격했다.

백색대전(百色大戰)의 총공격의 시간이 앞당겨졌다.

백색성의 운명을 가를 순간이 바로 코앞이었다.

서쪽 성벽.

슉, 슉, 슉, 슉.

백색성에서 초대형 강노가 여전히 미친 듯이 쏘아내렸지만 거두어들이는 성과는 이미 점점 더 줄어들고 있었다.

화살비의 위력이 약해진 게 아니라, 화살에 맞아 죽은 사람이 너무 많은 탓이었다. 게다가 일부는 그 와중에도 미궁 같은 장애물들을 지나쳐 성벽을 향해 계속 돌진했다.

마약의 작용 때문에 사륭석의 대군은 이성을 완전히 잃고 사상자가 얼마나 많이 나오든 상관하지 않은 채 계속 돌격했다.

겨우 30분 정도 만에 두변의 초대형 강노는 적어도 화살 수십만 개를 발사해서 사륭석의 병사를 족히 2만 명을 쏴 죽였다.

수십만 개의 화살로 2만 명을 쏴 죽였으니, 언뜻 보면 명중률이 평범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높은 비율이었다.

냉병기(冷兵器)를 사용하는 대규모 전장에서는 화살 100개로 적의 목숨 하나를 바꿀 수 있는 것만으로도 명중률이 몹시 높은 것이다.

거기에 방금 전에 투석기에 맞아 죽은 수천 명까지 합치면 사륭석의 5만 대군은 고작 절반이 남은 상태였다.

정상적인 군대에서 사상자가 절반이 나오면 진작 사기가 무너져서 도망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마약을 흡입한 군대라서 마음속은 파멸의 욕구로 충만했을뿐더러, 아예 두려움이 뭔지 몰랐다.

“죽여라, 죽여!”

“성안의 모든 이를 도살해버리자!”

사륭석의 살아남은 병사들이 성벽 앞 장애물들을 가로질러서 미친 듯이 성벽으로 달려들었다.

현재 두변 쪽 군대는 천보현에 있는 5천 대군을 제외하고 고작 3만 2천 명에 불과했다.

부홍빙은 7천 명을 이끌고 서쪽 성벽에서 사륭석의 살아남은 2만여 대군을 상대했다.

이문회는 8천 명을 이끌고 북쪽 성벽에서 여여룡의 3만 대군과 대적했다.

이에, 두변이 거느린 1만 명이 남쪽 성벽에서 여완완의 성화교군 2만 명과 대적해야 했다.

옥진 군주가 이끄는 7천 명은 동쪽 성벽을 맡으면서 당분간 맡은 전투 임무가 없었다. 때문에, 옥진 군주가 거느린 7천 명은 한편으로는 동쪽에서 나타날지도 모르는 적을 방어하면서 예비부대를 겸하고 있었다.

이어질 전투에서는 두변의 초대형 강노를 쓸 일이 많지 않았다. 이제 전적으로 필요한 건 병사들의 피와 힘, 진정한 군대의 실력과 의지였다.

부홍빙이 이끄는 7천 명은 사륭석의 2만 5천 명을 상대하고 있었다.

사륭석의 대군은 마약을 먹기도 했고 만군이기도 해서, 얼핏 보면 정말로 야수 떼가 달려드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부홍빙의 병사들은 그들의 매서운 모습을 보고도 성벽 위에 서서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피가 뜨겁게 끓어올랐지만 몸을 떨지도, 행여 손도 떨지 않았다. 그들이 흥분했다는 걸 유일하게 알아볼 수 있는 표시는 그들의 눈빛, 냉혹하면서도 집중하고 있는 그들의 눈빛이었다.

사륭석의 대군이 빠르게 사정거리 안에 진입했다.

부홍빙이 침착하게 말했다.

“준비!”

무사 7천 명이 활시위를 당기며 조준하기 시작했다.

“발사!”

슉, 슉, 슉, 슉.

화살비가 또다시 떨어졌다. 다만 이번에는 초대형 강노에서 발사하는 게 아니라, 절세 지하성의 군대가 발사하는 화살이었다.

강노처럼 밀집도가 높진 않았지만 정확도가 높았다.

순식간에 사륭석의 병사 수백 명이 잇달아 화살에 맞아서 죽었다.

“준비, 발사!”

“준비, 발사!”

“준비, 발사!”

부홍빙의 무사 7천 명에게는 화살을 발사할 기회가 다섯 차례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자부심이 넘치는 절세 지하성의 무사들은 너무나 강하고 화살 솜씨가 대단해서, 다섯 차례의 공격만으로도 사륭석 대군 2, 3천 명의 목숨을 거두어갔으니, 명중률이 놀라울 정도였다.

쿵, 쿵, 쿵, 쿵.

공성전용 사다리가 잇달아 성벽 위에 걸쳐졌다.

백색성 성벽은 높은 편이 아니라 고작 9미터밖에 되지 않았다.

“준비, 자유 사격하라!”

부홍빙의 명령이 떨어지자 무사 7천 명은 활을 아래로 향해서는 사다리를 기어오르는 병사들을 겨누었다.

슉, 슉, 슉, 슉.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의 점사(點射) 방식의 위력은 놀라울 뿐이었다.

사륭석의 군대는 사다리로 올라오는 족족 곧바로 화살에 맞아 죽었다. 통나무나 돌을 던지거나 끓는 기름을 부을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공성 사다리의 수가 많아지면서 결국 사륭석 군대가 개미처럼 빼곡하게 성벽 위로 기어 올라왔다.

이제는 화살만으로 그들을 다 쏘아 죽일 수 없었다.

사실 명령을 내릴 필요도 없었다. 부홍빙의 무사 7천 명 가운데 절반이 너무나 우아한 자세로 검을 뽑아서는 적이 성벽 위로 기어오르는 걸 기다렸다.

“아아악!”

처음으로 성벽에 오른 건 사륭 부족의 한 만군이었다. 그는 2미터가 넘는 키에, 근육이 쇠처럼 단단해서는 온몸에 문신이 가득했다. 미친 듯이 으르렁거리며 성첩(城堞) 위로 뛰어올라서는, 화려한 갑옷을 입은 절세 지하성의 무사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절세 지하성의 무사는 뒤로 한 걸음도 후퇴하지 않은 채 제 검으로 힘차게 받아쳤다.

굉음과 함께 불똥이 사방으로 튀었다.

사륭 부족의 키가 큰 만군이 손에 쥐고 있던 검이 부러지면서 휙 날아가 버렸다.

절세 지하성의 무사가 큰 힘을 들이지 않고 검을 가볍게 그어올리자, 순식간에 사륭 부족의 만군은 사타구니부터 목까지 바로 갈라지더니 그대로 성 밑으로 추락했다.

점점 더 많은 사륭석의 만군이 사다리를 타고 성벽 위로 오르는 데에 성공했다. 그 수가 수십 명, 수백 명, 천 명, 수천 명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들이 아무리 미쳐 날뛰어도 두 군대 사이의 크나큰 격차를 메울 수 없었다.

부홍빙의 무사 7천 명은 평균 나이가 마흔이었다. 그건 절세 지하성에서 젊은 나이에 속하지만, 동시에 군대에 들어간 지 이미 20년도 더 되었다는 의미였다.

20년 동안 그들에게는 오직 한 가지 임무만 주어지는데, 그건 바로 끊임없이 전투를 치르는 것이었다.

활쏘기 일품, 검술 일품, 힘 일품, 민첩성 일품에 도달할 때까지 말이다.

그런 그들이 벌떼처럼 성벽 위로 달려드는 적을 상대하며 심지어 발끝마저 움직이지 않고 두 손으로 더할 나위 없이 능숙하게 검을 휘둘렀다.

가장 적은 힘을 들여서, 가장 가벼운 동작으로, 가장 많은 적을 죽인다.

그러니 먼 곳에서 보면 더 놀라운 장면이 확연히 드러났다. 무사 수천 명이 적군을 죽이는 데 동작이 거의 일치했고, 군더더기 동작이 전혀 없었다. 손에 든 검도를 가볍게 긋는 것만으로도 목숨 하나를 거두어갔다.

처음에 사륭석은 너무나 좋아했다. 성벽 위로 올라가는 게 너무 쉽지 않은가.

어떤 공성전이든 성벽 위로 올라가는 단계가 가장 어려운 법이다.

사륭석의 대군이 대규모 기세로 성벽에 오른 지 얼마 안 돼서 사륭석은 전투가 곧 끝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은 적이 일부러 그들이 성벽에 오르도록 놔둔 것이다. 성벽에 올라야 죽이기가 더 쉬우니까.

나중에야 사륭석은 자신이 본 장면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런 뛰어난 군대가 있을 수 있나?

이렇게 동작이 빈틈없이 일치하고, 우아하고, 담담할 수 있다니!

그들이 적 한 명을 죽이는 건 너무 쉬운 반면, 사륭석의 군대가 부홍빙 부대의 무사 한 명을 죽이기란 너무나 힘들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치아를 포함해서 전신의 모든 곳을 갑옷 속에 감싸 놓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갑옷은 귀신이 곡할 정도로 견고해서 평범한 도검을 사용해서는 애초에 망가뜨릴 수도 없었다.

사륭 부족의 만군 1만 명은 힘이 끝도 없이 세고 망치를 즐겨 사용해서 절세 지하성의 무사들에게 어느 정도 부상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

하지만 만군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으니 갑옷을 입는 걸 좋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옷을 입는 것조차 싫어했다.

치아까지 무장한 사람과 웃통을 벗은 사람, 양쪽은 전투력의 격차까지 존재했다.

그렇게 되니, 전장은 일방적인 도살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부홍빙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이쪽 성벽을 지켜낸 셈이었다. 심지어 전투는 그녀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수월했다.

전투는 완전히 도살 임무로 바뀌었다.

북쪽 성벽에서는 이문회가 군대 8천 명을 거느리고 여여룡 부족의 대군 3만 명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들은 비정규군이 아니라 갑옷을 입은 여씨의 정예 부대였다.

북쪽 성벽에도 마찬가지로 수많은 장애물이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여여룡의 부대는 벌떼처럼 모여들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그곳을 가로질렀다.

똑같은 장애물이 사륭석 대군에게는 크나큰 사상자를 냈지만 여여룡의 부대에게는 평범할 정도의 사상자를 냈다.

게다가 초대형 강노 천여 대가 본래의 진지에서 이동할 겨를이 없어서 여여룡의 부대를 사살할 수 없었다.

“돌격하라!”

장애물 방어진을 가로지른 뒤에 여여룡의 3만 대군은 분산되면서도 질서정연하게 북쪽 성벽으로 돌격했다.

“준비! 발사!”

“준비! 발사!”

이문회가 거느린 무사 8천 명은 심지어 일곱 차례나 활을 쏘았다. 이 무사 8천 명도 전부 절세 지하성의 무사라서 더할 나위 없이 정확한 활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일곱 차례의 일제 사격은 서쪽 성벽의 부홍빙 부대보다 살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여여룡 부대가 갑옷을 입었기 때문에 화살이 갑옷을 꿰뚫는 게 어려웠다. 목이나 얼굴 등 갑옷으로 감싸지 않은 곳을 쏘아야만 그나마 명중하는 데에 성공했다.

성 밑까지 달려든 뒤에 여여룡의 부대는 일제히 공성전용 사다리를 성벽에 걸고 나서 벌떼처럼 위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성벽 위에서 통나무가 굴러떨어졌다.

이어서 돌덩이가 던져지고 끓는 기름이 한 솥씩 연이어 뿌려졌다.

서쪽 성벽의 부홍빙 부대가 화려하고, 힘을 들이지 않는 일방적인 도살을 펼쳤다면, 북쪽 성벽의 이문회 부대는 정통적인 전투, 잔혹하고,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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