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345화 (345/648)

345장: 오래 기다렸어.

그 장면을 본 성벽 위 살아남은 병사 천여 명은 불 같은 기운이 등 뒤에서 솟구쳐서 곧바로 머릿속으로 파고든 것처럼 머리가 다 저릿해지는 기분이었다. 자신들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천여 명은 온몸의 고통을 참으며 꼿꼿하게 섰다. 그들도 밑에 있는 군대를 향해 배운 방법대로 주먹을 들고 가슴을 두드렸다.

하지만 그중 많은 이는 그저 마음속으로 가슴을 두드릴 뿐이었다. 그들은 팔이 잘려서 이제 제게는 주먹이 없었다.

“오늘부터 너희는 생사를 함께 하고, 나란히 전투를 벌이는 형제이자 전우이다!”

“대군, 입성하라!”

두변이 명령을 내리자, 3만 대군과 마차 천여 대, 수많은 물자가 위풍당당하게 백색성으로 진입했다.

이제 백색성은 여전히 고립된 성인 건 맞지만 절대 죽은 성은 아니었다.

대군이 성으로 진입하는 순간 식량이 생겼을뿐더러 고기, 병기, 갑옷, 옷, 약까지 생겼다.

옥진 군주는 깨끗이 벗고서 향기로운 욕탕 안에 뛰어들어서 장장 한 시진이나 씻었다.

그런 뒤 고기를 실컷 먹고 마신 후 종국에는 침상에 누워 장장 하루 반나절이나 잠을 잤다.

모든 축복과 환희, 비통함은 전부 하룻밤 사이에 정리해야 했다. 다음날 일어나면 다시 새로운 전투를 치러야 하니까.

오랜 전투 끝이라 백색성의 성벽은 성한 곳이 드물었다. 성벽을 수리해야 하고 부대에 보급품도 나누어주고, 방어선도 다시 세워야 했다.

여여해는 그들에게 시간을 많이 주지 않을 것이다. 다음번에 여씨가 보내는 대군은 4, 5만도 아니고 10만에 가까운 대군일 것이고.

그 전투야말로 두변과 여여해가 전략을 겨루는 전투가 될 것이고, 그 전투의 결과가 곧바로 제국 서남부의 존망, 심지어 제국 전체의 존망을 결정지을 것이다.

다음번 전투에서 두변의 운명만 결정되는 게 아니라, 제국의 운명까지 달려있었다.

순무 두강은 비보를 읽는 순간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종이에 쓰인 글 자체를 믿을 수 없어 했다.

뭐라고? 두변이 죽지 않았어?

게다가 여언을 완전히 격파하고, 이문회와 백색성을 구했다고?

두강의 두 손이 가늘게 떨렸다.

두변이 그의 아들 두우를 죽었다. 비록 가장 변변치 않은 아들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두강은 두변을 뼈에 사무치도록 미워했다.

두강이 냉랭하게 말했다.

“서신을 여씨에게 전해라. 어떤 대가를 치르든 반드시 두변, 그 짐승만도 못한 놈을 철저히 교살하고, 없애버려야 한다.

8만이든 9만이든 10만이든, 여씨가 병력을 얼마나 보낼지 상관 않겠다. 하지만 반드시 두변 그 환관 새끼를 죽여버리고, 그의 군대를 모조리 몰살해야 한다!”

대염 왕국, 왕궁 안.

대왕 여여해는 화염과 금룡이 장식된 옥좌에 앉아 있는데, 사람 전체가 곧 폭발이라도 할 화산처럼 보였다.

이도전은 대전에서 무릎을 꿇고 몸을 떨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여여해의 앞에 상자 하나가 놓여 있는데, 상자 안에는 여언의 머리통, 터져서 뒤틀린 머리통이 들어있었다.

“두변의 기병 3천 명에 너희 2만 대군이 패배했다고?”

여여해가 소리를 지르자, 이도전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예, 두변, 그 짐승 새끼의 기병이 너무 불시에 나타났습니다.”

“후후…….”

여여해가 눈을 부릅뜨자, 대전 안의 공기가 떨리지 않은 곳이 없었다.

“동북에서는 여여룡이 이미 안륭 토사부를 없애버렸고, 곧 개선해서 돌아올 것이다. 왕태자의 주력 군대는 운남성 전체를 휩쓸다시피 했다. 한데 너와 여언의 4만 대군은 백색성이란 고립된 성을 무려 스무날 가까이 공격하면서도 함락도 시키지 못하고 2만여 대군을 버리기까지 해?”

“대왕,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이도전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조아렸다.

여여해가 다시 눈을 가늘게 뜨면서 천천히 말했다.

“두변에게는 기병 3천만 있는 게 아니라 총 3만 대군이 이미 백색성으로 들어갔다더군. 잘못하다가는 그 작은 벌레 새끼가 용으로 변하겠어.

여완완!”

여여해가 성난 목소리로 일갈하자, 순식간에 대전 내의 모든 편종이 우연인 듯 두드리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울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비길 데 없이 아름다운 경국지색의 여완완이 걸어와서 대전에 무릎 꿇고 엎드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소녀, 부왕을 뵈옵니다.”

여여해가 냉랭하게 물었다.

“너는 두변을 죽일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지?”

“예.”

“한데 너는 그를 죽이지 않았을뿐더러, 무슨 미래니, 너의 꿈속 세계니 얘기를 했다. 이제 그 작은 뱀이 부화해서 나왔으니 사람을 물기 시작할 것이다.”

여완완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소녀, 잘못했습니다.”

그때 여완완은 확실히 두변을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두변을 막영의 동굴에 던지는 걸 선택했다. 물론 막씨의 보물에 숨겨진 비밀을 알아내기 위한 계략이었다.

여여해가 말했다.

“네가 직접 가서 그를 죽여라. 성화교의 고수들을 충분히 데리고 가서 두변의 머리통을 내게 가져다 다오. 절대로 실수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그를 죽여야 한다.”

여완완이 답했다.

“존명!”

세 시진 뒤, 여완완은 성화교의 고수들을 이끌고 문산왕성을 떠나서 발이 땅에 닿지도 않는 듯이 백색성으로 쏜살같이 이동했다.

백색성에서는 매일 맹렬한 기세로 보수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파손된 성벽뿐 아니라, 방어선이 한 줄씩 지어졌다.

모든 병사들도 불같이 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모든 이는 다음번에 있을 대단한 전투, 모든 이의 운명을 결정지을 초대형 전투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변은 하루도 빠짐없이 군대와 성벽, 방어선을 둘러봤다.

여여룡의 수만 대군이 이미 문산성으로 돌아왔고, 그곳에 점점 더 많은 군대가 집결되고 있으니 경천대전(驚天大戰)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두변은 차마 아주 조금도 나태해질 수 없었다.

그에게 3만여 대군과 초대형 강궁, 대규모 살상 무기, 또 2만여 근이나 되는 녹색 부식액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어질 전투에서는 자신들보다 세 배나 많은 적을 맞닥뜨릴 가능성이 컸다.

자정 무렵.

떠들썩한 백색성이 마침내 조용해졌다. 순찰하는 병사들과 성벽 위에서 경계를 하는 병사들을 제외하면 대다수가 이미 꿈나라에 들어갔다.

두변이 조용히 거리를 걷고 있었고 계표표가 십여 미터 뒤에서 그를 따랐다.

“표표, 가서 자요. 며칠이나 제대로 못 잤잖아요.”

두변의 말을 듣고 계표표가 입을 열었다.

“안 돼. 당신은 너무 중요한 사람이니까, 내가 항상 당신을 보호해야 해.”

“표표, 이미 몇 날 며칠이나 잠을 자지 않았잖아요. 빨리 자러 가요. 이건 명령이에요.”

계표표가 말을 하려다가 멈칫했다.

“표표, 당신이 아버지를 그리워한다는 걸 알아요. 안심해요. 이번 전투가 끝나면 북명검파에게 계청주 대종사를 놓아달라고 할게요. 한데 지금은 당신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명령을 내려야겠어요.”

계표표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두변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부드럽게 웃고는 청룡회가 있던 장소를 향해 걸어갔다.

이곳은 이미 전부 텅 비어서 아무도 없었다. 이곳의 건물은 웅장한 데다 몹시 화려하고 편안하지만 성벽과 거리가 멀어서 대군을 이곳에 주둔시킬 수는 없었다.

청룡회에 들어간 두변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누각 앞 공터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구양진경을 운행하며 운기토납을 시작했다.

기막힌 것은 반 시진 뒤에 계표표가 다시 찾아왔다는 점이다. 그녀는 두변과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녀는 잠시 잠을 자고 일어나서는 다시 두변을 밀착 보호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두변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고는 계속 눈을 감고 운기토납을 했다.

백색성에서 이곳이 천지 현기가 가장 짙어서 이곳에서 수련을 하는 것이 효과가 가장 좋았다.

한 시간이 지났다.

향기로운 바람이 불어왔다. 더할 나위 없이 익숙하고 매혹적인 향기였다.

동시에 놀라운 살기가 순식간에 사방 수백 미터 안을 진압했다.

요녀 여완완, 더할 나위 없이 강한 무공을 가진 여완완이 두변 앞에 구름처럼 나풀거리며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성화교의 고수 열아홉 명이 갑자기 나타났다.

두변이 두 눈을 뜨자 여완완이 천천히 걸어왔다.

그녀가 교성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두변, 네 잡초 같은 마음가짐이 정말 존경스러워. 대단한 중임을 지녔으니 늘 대군 속에 있어야 하거늘, 어찌 이리 제멋대로 굴면서 혼자 여기 있을까? 어, 아니지. 옆에 사랑하는 계표표까지 있구나!”

계표표가 갑자기 뛰어오르면서 검을 뽑아 번개처럼 달려왔지만, 여완완이 가볍게 손바닥을 탁, 하고 치자 계표표의 몸이 곧바로 수십 미터 밖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너무 비정상적으로 고강한 무공이 아닌가!

여완완의 나이가 계표표보다 많이 어리기도 하고, 계표표가 워낙 종사급 고수인데도 뜻밖에 여완완의 한 수에 날아가 버리다니.

요녀 여완완이 계속해서 두변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 곁의 성화교 고수 열아홉 명도 천천히 두변을 향해 포위망을 좁혀 왔다.

여완완이 말했다.

“두변, 예전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내가 너를 죽이지는 않았지. 한데 뜻밖에 작은 뱀이 탈바꿈하더니 사람을 물기 시작할 줄 누가 알았겠어. 이 누나가 너무 무정하다고 탓하지 말아줘. 사실 너를 죽이게 되어서 누나도 몹시 가슴이 아프다고.”

여완완이 천천히 검을 뽑으면서 말을 이었다.

“동생이 참 멍청하네. 대군 속에 있었어야지. 그랬으면 우리가 설령 무공이 아무리 고강하다고 한들, 뛰어들어서 널 죽이기가 몹시 힘들잖아. 왜 하필 혼자 뛰어나와서 이곳에 있는 건데?

동생이 너무 멍청해서 이 누나가 울고 싶어지잖아.

이제 너는 하늘로 솟을 수도, 땅으로 꺼질 수도 없게 되었다고.

천상뿐 아니라 지하에서조차 그 누구도 너를 구할 수 없어.”

그렇다. 얼핏 보면 상황은 확실히 그래 보였다.

사방 수백 미터 안에 두변과 계표표밖에 없는 데다, 계표표는 일장에 이미 날아가 버렸다.

이제 두변이라는 3품 무사 하나를 절정의 고수 스무 명이 포위한 상황이니, 의심할 여지 없이 그대로 죽을 것이다.

성화교의 초절정 고수 열아홉 명이 전부 날카로운 검을 뽑았다.

“두변, 자랑스럽게 생각해. 나 같은 초절정 고수가 종사 아홉 명에 준종사 열 명을 데리고, 고작 너라는 보잘것없는 환관을 죽이러 왔잖아. 안심하고 가도 돼. 누나를 모질다고 원망하지 말고.”

그러더니 여완완의 낯빛이 확 바뀌면서 “죽여랏!” 하고 소리쳤다.

초절정 고수 여완완이 검을 휘둘렀다.

동시에 성화교 고수 열아홉 명이 검을 휘둘렀다.

검 스무 자루가 두변을 철저히 찢으려 하고 있었다.

두변이 고개를 들더니 야릇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요녀 여완완, 오래 기다렸어.”

두변의 야릇한 미소를 보는 순간, 여완완은 놀라서 순간 머리가 쭈뼛 섰다.

쾅.

그 순간 두변을 중심으로 사방 10미터의 지면이 갑자기 폭발했다.

황금빛이 아주 조금 섞인 초록빛 독무가 맹렬히 터진 것이다.

성화교 고수 열아홉 명은 전력으로 두변을 향해 달려들다가, 독무가 터지는 걸 보고는 자신의 현기를 온몸의 근맥 혈도에 힘껏 보내 그 독무를 튕겨내려고 했다.

예전에 이문회가 여씨 별원을 공격할 때도 펼쳐진 장면이었다.

그 당시 화살 비가 쏟아져서 이도진과 여천천 몸에 떨어졌었다. 이도진이 바로 그렇게 제 내력으로 강력한 보호막을 만들어서 날아온 화살들을 튕겨냈다.

물론 그건 에너지 보호막이 아니라 폭탄이 터질 때 충격파가 생기는 것처럼 온몸의 내력을 발사해서 외부의 모든 걸 튕겨낸 방식이다.

당연히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이들은 종사급 고수이니, 화살도 튕겨낼 수 있는데 독무는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괴상한 건, 이 독무는 격렬하게 쏟아져나오는 내력의 파동을 아예 무시하더니 곧바로 서서히 체내로 침투되었다.

“으아악! 악! 아악!!”

순식간에 더할 나위 없이 처참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성화교 고수들의 온몸의 피부가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속도로 빠르게 부식되어 문드러졌다.

살이 한 조각씩 연달아 진흙처럼 떨어지더니 최후에는 뼈대만 남았다.

그 처절하기 그지없는 울부짖음이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

1초도 되지 않아 성화교의 고수 열아홉 명이 전부 처참하게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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